혈액원이 수혈 전 필수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교차적합성검사(Cross Matching)를 의료기관의 의무로 전가함에 따라 검사실을 갖추지 못한 의원들은 응급상황에서 검사없이 바로 수혈하게되는 등 응급수혈 체계가 엉망인 것으로 드러났다.
11일 대한적십자사 중앙혈액원에 따르면 수혈전 필수검사 항목인 교차적합성 검사는 혈액원의 혈액불출단계가 아닌 의료기관이 직접 수혈단계에서 실시하도록 정책을 최근 급선회했다.
혈액원은 혈액공급의 의무는 있지만 검사까지 실시할 의무는 없다는 것과 인력부족 및 업무과다 등의 이유를 들어 이같은 정책변화에 정당성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일선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검사실을 갖추고 임상병리사를 고용해 수혈전 교차적합성 검사를 하기에는 인력 및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특히 의료기관에서 교차적합성 검사를 타 기관에 위탁해도 응급상황에서는 혈액원의 혈액을 공급받은 후 다시 수탁기관으로 이동해 교차검사(1시간 소요)를 실시해야 하기 때문에 수혈까지 3시간 이상 소요되는 등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의 조사에 따르면 산부인과 의원에서 혈액수급처와의 평균거리는 11.77km로 교통혼잡시 왕복소요시간은 1시간 26분43초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체 혈액원과 검사실을 보유하고 혈액을 조달한다는 산부인과 의원은 6.1%에 불과했으며 '인근 의료기관에서 공급받는다'는 응답이 37.8%,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이 56.1%로 큰 의존도를 보였다.
이러한 요인에 따라 혈액교차반응시험을 아예 실시하지 않는다는 산부인과의원은 21.2%에 달했다. 그러나 이는 응급상황일 때를 제외한 조사결과인 만큼 응급상황에서의 검사여부는 더욱 불투명한 것으로 조사됐다.
산개협 최영렬 회장은 "산부인과는 Bloody business라 할 만큼 혈액과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가 있는 과"라며 "수혈시 교차적합성검사를 시행하지 않은 경우 단순한 부작용이 아닌 환자 사망이라는 끔찍한 결과가 일어날 수 있으며 이는 의사책임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위탁검사의 경우 교차적합성검사를 하려면 혈액원에서 혈액을 분출받아 그것을 가지고 검사실로 가서 한 시간여의 교차적합성검사를 하고 다시 의료기관으로 가지고 와서 수혈을 하려면 3-4시간이 소요된다"며 이는 응급수혈 개념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는 혈액의 안전한 수혈을 위해 종전처럼 혈액원에서 교차적합성검사를 시행하여 줄 것과 이를 법제화해 줄 것을 복지부에 요청했다고 최 회장은 밝혔다.
이와 관련 혈액원 공급과 관계자는 "일선 의료기관에서 응급상황이라는 이유로 혈액원이 검사까지 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원칙을 벗어난 논리"라며 "검사는 의료기관에서, 혈액공급은 혈액원에서 하는 것이 타당하고 응급상황을 대비해 의료기관은 자체 검사실을 갖추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혈액원 운영 관계법에 원심분리기 등 교차적합성 검사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도록 의무화하고 있다며 종전처럼 혈액원에서 혈액불출시 검사도 동반되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책임주체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