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경쟁규약이 시행되면서 의학계가 흔들리고 있다. 급격하게 줄어든 기부금으로 살림살이가 급속히 나빠졌고 국제학회 유치는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방만한 학회 운영방식으로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공정경쟁규약 개정으로 촉발된 학회의 위기 상황을 짚어보고 올바른 학술단체로 재정립되기 위한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 본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공정경쟁규약에 몸살앓는 의학회 (2) 밥값도 안되는 등록비…관습 버려야
(3) 변화에 대한 요구…활로는 어디인가
공정경쟁규약으로 학회활동이 위축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오히려 이번 기회를 이용해 학회의 자립심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방만하게 학회를 운영하던 악습을 이제는 버려야 하지 않겠냐는 자성의 목소리다.
후원금으로 굴러가는 학회…예산 중 회비 비율 10% 남짓
대한뇌종양학회 정용호 회장은 8일 "공정경쟁규약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언제까지 제약사에 기대 학회를 운영할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이제는 타의적인 압박에 의해서라도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할 시기가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학회가 진정한 학술모임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독립적인 운영주체가 되야 한다"며 "제약사에 기대서는 그 어떤 명분도 퇴색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과연 학회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살림살이를 운영하고 있는 것일까.
메디칼타임즈가 총회자료집 등을 통해 학회의 예산현황을 들여다본 결과 상당수 학회들이 제약사의 후원금으로 운영자금을 충당하고 있었다.
메이저학회인 A학회. 이 학회는 총 14억 9천만원의 예산을 운용하고 있었지만 회원들의 회비수입은 7100만원에 불과했다. 학술대회 참가비는 2억원 상당.
결국 14억원의 수입금 중 회원들의 힘으로 걷어진 돈은 불과 2억 7천만원여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금액은 어디서 충원이 된 것일까. 가장 많은 금원이 들어온 곳은 제약사의 기부금이었다. 총 5억 6천여만원이 제약사로부터 흘러들어왔다.
또한 학술대회 지원금으로 2억여원이 유입됐고 소식지와 초록집에 실리는 광고료가 3억여원에 달했다. 이 또한 결국 제약사들의 돈이다.
모학회인 B학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나마 이 학회는 사정이 낫다.
이 학회는 연간 총 수입이 7억 7천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회비수입은 5천만원여에 불과하다. 춘계, 추계 학술대회 등록비와 입회비 등을 모두 합쳐도 회원들에게 걷어들인 수입은 2억 5천만원뿐이다.
결국 A학회와 마찬가지로 학술대회 찬조금과 광고비, 보조금 등으로 5억여원을 메꾸고 있다는 의미다.
"밦값도 안되는 등록비…이제라도 관습깨야"
C학회 이사장은 "사실 지난 수십년간 대부분의 학회들이 회원들의 편의를 위해서 원가에도 못미치는 등록비를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래도 학회가 굴러갔던 것은 결국 후원금의 덕택이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대다수 학회들의 학술대회 등록비는 3만원에서 8만원선. 학회가 학술대회 개최지로 선호하는 호텔의 점심값이 3만~6만원선 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한끼 식사값에 불과한 비용이다.
대부분 학회들이 2~3일간 학회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머지 비용은 모두 회원이 아닌 학회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대다수 학회들은 런천 심포지엄 등을 통해 이를 해결해왔지만 최근 공정경쟁규약과 리베이트 쌍벌제 등으로 제약사들이 후원에 몸을 사리면서 이 또한 어려운 일이 됐다.
이로 인해 행사장소를 변경하거나 식사메뉴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참석인원이 1천명이 넘는 학회의 경우 호텔외에는 마땅한 장소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점에서 대안이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따라서 최소한 식사값 등 원가만은 충원할 수 있는 등록비를 받아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D학회 이사장은 "기념품이나 대관료 등은 후원으로 채운다해도 최소한 밥값 정도는 회원들이 각자 부담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라며 "사실 지금의 등록비는 초록집 비용이나 갓 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물론 학회가 홀로 일어서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조금씩이라도 바꿔가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냐"며 "공정경쟁규약이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그런면에서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학회 이사장도 "언제까지 남의 돈으로 학회를 운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하지만 갑자기 학회 등록비를 몇십만원으로 올릴 수도 없는 일이니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물론, 학회재정을 투명화하고 적정한 등록비와 회비를 걷어 합리적으로 학회를 운영해야 한다는 것에는 적극적으로 동의한다"며 "하지만 한번에 모든 것을 바꾸려 하는 것도 너무 큰 욕심일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