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전문가단체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의사협회와 의원협회를 분리해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복지부와 의료계 모두 의약분업 10년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서울의대 의료정책실은 20일 ‘의약분업 시행 10년의 교훈’을 주제로 제8차 함춘포럼을 열었다.
서울의대 권용진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의원협회를 설립, 의사협회와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권 교수는 “전문가단체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구체적으로 지식체계의 관리나 윤리지침의 제정, 윤리위원회 운영”이라고 환기시켰다.
그는 “지식체계의 관리의 경우 연수교육 형태로 유지해 왔지만 연간 의무 교육시간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적고 윤리지침이 있지만 의대나 병원에서 교육하지 않고 있으며, 윤리위원회는 실질적인 징계권한이 없어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권 교수는 의사협회가 이런 전문가단체로서 정체성과 함께 매년 수가계약의 주체가 됨에 따라 국민들이 이익단체로 인식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전문가단체로서 정체성이 확고해지기 전에 수가협상과 같은 이익단체의 기능이 커짐에 따라 사회적으로 의사집단은 경제적 이익추구만 주장하는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이로 인해 보건의료전문가단체의 입지가 약화되고, 의협이 개원의 대변조직의 성격이 강화되고 있다”면서 “그 결과 의사집단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전문성 관리 측면에서 리더십이 약화되는 악순환이 빚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권 교수는 의원협회를 설립해 의료계 전문가단체와 이익단체의 위상을 분리할 것을 제안하고 나섰다.
의사협회가 의사 회원들의 전문성을 관리하는 전문가단체로서 위상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이익단체의 기능을 의원협회에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등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단체와 이익단체를 분리했다는 게 권 교수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그는 “병협은 병원을 회원으로 하는 기관조직인 반면 의원을 회원으로 하는 기관조직은 부재하기 때문에 의원협회가 필요하다”면서 “의원협회를 설치해야 수가계약 주체를 의사협회에서 의원협회로 변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의원협회는 수가계약, 의원 권익신장에 주력하고, 의사협회는 회원 연수교육 관리, 윤리교육, 윤리위원회 운용, 정책개발 등을 강화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보건의료분야 정책결정에 전문가적 참여를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의대교수협의회 이병인 회장도 공감을 표시했다.
이 회장은 “현재 의협은 의약분업사태 이후 회장 직선제를 채택함으로써 전체 의사들을 대변하는 조직체로 변신을 시도했지만 개원의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크게 강화되고, 위상이 날로 퇴색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 회장은 “의협에서 차지하고 있는 의대교수들의 영향력은 매우 미미한 것이 사실이며 회비만 제공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있다”면서 “의협은 의약분업 10년을 맞아 전체 의료계를 아우르는 새로운 전문가단체로서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날 함춘포럼에서는 의약분업 10년에 대한 재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데 참석자들이 인식을 같이 했다.
의협 신원형 상근부회장은 “의약분업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통해 국민과 의료계, 정부 모두 고통을 분담하는 합리적인 건강보험 지출구조를 강구해야 한다는 게 뼈아픈 교훈”이라면서 선택분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개원내과의사회 이원표 회장 역시 “현재의 기관 분업을 직능 분업으로 변경해 원하는 의원은 약사를 고용해 조제, 투약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못 박았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노홍인 과장은 “건강보험 30년, 의약분업 10년을 맞아 그간 문제점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면서 “여러 주체들이 참여한 가운데 평가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