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직의가 퇴직금을 받지 않을테니 4대 보험료를 모두 대납해주고 연봉 전부를 현금으로 달라고 한다. 그렇다면 B병원 원장은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정답은 '무조건 거부해야 한다'다. 아무리 이같은 약속을 했더라도 의사가 퇴직금을 요구할 경우 이를 거부하면 범법자가 되기 때문이다.
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13부는 최근 퇴직금을 주지 않는 대신 4대보험료 전액을 대납주는 것을 약속했던 의사가 병원을 그만두며 퇴직금을 요구하자 그동안 대신 내왔던 보험료 전액을 물어내라며 병원이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에서 의사의 손을 들어줬다.
보험료를 대신 내준 것과 퇴직금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 법원의 판단. 현재 관행적으로 의사와 이같은 계약을 맺는 중소병원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병원계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20일 판결문에 따르면 의사 A씨는 지난 2005년 B병원에 정형외과 과장으로 고용되면서 퇴직금을 받지 않을테니 병원에서 건강보험료 등 4대보험료와 세금 전액을 대납하고 연봉 전액을 현금으로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B병원은 의사가 재직하는 4년동안 월급에서 원천징수해야할 근로소득세 등 총 1억 62만원여를 대납해줬다.
그러나 이 의사는 2009년 4월 병원을 그만두면서 B병원에 퇴직금을 달라고 요구했고 병원은 대납약정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의사는 병원이 퇴직금을 주지 않는다며 병원이 소속된 의료재단 이사장을 노동청에 신고했고 결국 병원은 퇴직금을 지급했다.
이에 따라 병원은 퇴직금을 모두 정산해줬으니 약정에 의해 그동안 대신 내준 세금과 4대보험료를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의사가 이를 거부하자 결국 법원에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근로기준법에는 퇴직시 발생하는 퇴직금청구권을 사전에 포기하는 약정은 모두 무효로 명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만약 의사가 퇴직금을 청구하지 않기로 하고 보험료를 수령한 뒤 다시 퇴직금을 달라고 해 부당이득을 취했더라도 이를 반환하게 한다면 결국 퇴직금 사전포기 약정의 효력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고 덧붙였다.
결국 퇴직금을 청구하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대납약정을 맺었더라도 퇴직금을 주지 않으면 불법이며, 퇴직금을 줬으니 대납약정을 깨졌다는 주장도 법정에서 인정해줄 수는 힘들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결국 대납해준 금액을 돌려달라는 병원측의 주장은 어느면에서 봐도 인정하기 힘들다"며 "병원의 주장을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