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은 심평원이 환자에게 처방한 항생제 약값 1백여만원을 삭감한 것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연대 세브란스병원 한석주(소아외과 과장) 교수 사건에 대해 각하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한 교수는 소송 과정에서 심평원으로 하여금 삭감 처분을 취소하도록 만들었고, 법원으로부터 심평원이 소송 비용을 부담한다는 판결을 이끌어 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서울행정법원 제1부(부장판사 오석준)는 최근 연대 세브란스병원 한석주 교수가 심평원을 상대로 청구한 의료급여비용 삭감처분 취소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한 교수는 난치성 희귀질환인 담도폐쇄증 환자에게 항생제 자가 정맥주사 치료(HIVA)를 하는 권위자로 잘 알려져 있다.
한 교수는 담도폐쇄증 진단을 받고 카사이 수술을 받은 후 난치성 담도염을 앓고 있는 박모양에게 항생제(세프피란주)를 처방하고 해당 비용을 심평원에 청구했다.
하지만 심평원은 한 교수가 2007년 10월 배양검사를 하지 않은 채 세프피란주를 장기 투여하자 의학적 근거가 없다며 수차례에 걸쳐 100여만원 삭감 처분을 내렸다.
한 교수는 삭감처분에 대해 이의신청, 행정심판을 잇따라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되자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그러자 심평원은 2009년 11월 행정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HIVA 처방을 급여로 인정하기로 입장을 바꿨고, 삭감 처분을 직권취소했다.
이에 따라 한 교수는 법원으로부터 소를 취하할 것을 권고 받았지만 소송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심평원이 박모양의 진료비 삭감을 철회하면서도 유사한 질환을 앓고 있는 다른 환아의 HIVA요법 항생제 처방에 대해 또다시 삭감했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최근 <메디칼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HIVA 진료비가 삭감된 것을 보면서 걱정스러운 점은 재판부의 권고를 받아 들여 소송을 취하할 경우 제2, 제3의 환자들이 계속 나올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라고 환기시켰다.
만약 소송을 취하하면 심평원이 아닌 병원이 소송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고, 심평원이 진료비를 삭감할 때마다 소송으로 맞서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심평원이 심사, 이의신청건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소송 비용을 부담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 소를 취하하지 않았다는 게 한 교수의 설명이다.
한 교수는 “심평원 심사가 전문성이 떨어지다 보니 삭감하고, 이의신청을 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서 “의사가 전문성을 갖고 소신껏 진료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래선 안되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법원도 한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이 사건 소송은 심평원이 삭감 처분을 직권취소함에 따라 각하하되, 이는 행정청이 처분을 취소해 소를 각하하는 사례이므로 피고가 소송비용을 부담하라”고 결론 내렸다.
한석주 교수 대리인인 현두륜(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는 14일 “이번 사건은 진료비 삭감액보다 소송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어쩌면 상처뿐인 영광일 수도 있지만 부실한 심사관행에 경종을 울렸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현 변호사는 “적어도 심평원이 진료비 삭감 이의신청에 대해 실질적인 심사를 했더라면 행정소송이나 행정력 낭비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