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⑤이용민 후보 "약속을 지키는 회장이 되고 싶다"
"언제든지 오세요. 3일도 좋고 4일도 좋고 5일도 좋고 6일도 괜찮아요. 정 안되면 7일도 좋고 8일도 좋고요."
어색했다. 아니 의아했다. 그와의 동행 취재를 위해 일정을 묻는 순간 그는 '언제든지'라며 다가올 날들을 하루 간격으로 꺼내놓았다.
많은 후보들이 가장 극적인 순간을 찾기 위해 몇 번씩이나 일정을 조율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그는 내일, 모레, 글피 모두를 선택지로 내놨다. 아니 일주일의 일정을 모두 제시했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면 그게 어떻게 진정성이 있겠어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똑같은 마음으로 똑같이 다가가야죠. 누가 옆에 있다고 달라진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거 아니에요?"
그렇게 제40대 대한의사협회장 후보 6번 이용민 후보와의 동행취재가 시작됐다. 스타트라인은 강서구에 있는 그의 의원에서였다. 그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유세를 펼치면서도 진료를 지속하고 있다.
"전국 8도를 돌면서도 오전에는 꼭 진료실을 열었어요. 환자 3~4명을 보더라도 아니면 수술 1건을 하더라도. 돈을 떠나서 그건 환자와의 약속이잖아요. 저는 회장 후보이기도 하지만 의사고."
그렇게 그의 진료실 앞에서 2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본격적으로 그와의 동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춘천. 고향이 강원도인 그는 오랜만에 고향 방향으로 간다며 들떠있었다.
하지만 그와의 잡담은 채 5분을 넘기지 못했다. 휴대전화로 쏟아지는 전화와 문자, 카카오톡 메시지와 밴드 메시지가 쉴새 없이 울려댔다.
"하루 평균 100건 정도 통화를 하는 것 같아요. 문자와 카톡, 밴드, 페이스북 글도 그 정도 되겠네요. 캠프를 통해 할 수도 있지만 우선은 무조건 스스로 하자고 다짐해요. 캠프를 통해 하면 매끄럽겠지만 같은 말이라도 직접 하는 것과 통해서 하는 건 다르잖아요."
그렇게 핸드폰과 씨름하며 한시간 여를 달린 끝에 겨우 가평휴게소에 도착했다. 모두가 아침을 건너뛰고 차에 오른지라 허기진 배를 부여잡은 채 휴게소에 들어섰지만 그의 메뉴는 단촐했다. 충무김밥 1개.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한 날부터 거의 매일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가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식사를 하면서도 핸드폰에서 눈과 손을 떼지 못했다.
"어떤 후보는 조직망이 있고 어느 후보는 기획단이 있지만 저는 제가 일정을 알아서 찾고 기획도 하고 하니 일이 좀 많죠. 가내수공업이랄까? 하지만 그래서 더 공부가 많이 돼요. 번듯하고 매끄럽진 않지만 캠프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짜낸 결과물인 만큼 더 애착도 가고요."
실제로 그는 모든 일정을 스스로 계획하고 조율하고 있다. 본격적인 출정식에 앞서 제주도를 시작으로 전국 8도를 돌며 세미 출정식을 기획한 것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말로 하는 공약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회원들의 마음을 보듬겠다. 회원들의 요구에 부응하겠다. 뭐 그런 것들이요. 하지만 진정성은 발끝에서 나온다고 봐요. 얼마나 많은 회원들을 만나 그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는가. 바로 그 부분이요. 그래서 가는거에요. 회원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그렇게 당일 그의 발끝이 향한 곳은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이었다. 도착 10여분을 앞두고 동선을 묻자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황당해 하는 기자에게 그는 "원래부터 그렇게 일정을 잡는다"고 더욱 의아한 말을 전한다.
"제 지지자들을 만나는 것은 쉬워요. 약속 잡고 전단지 주고 돌려달라 부탁하고.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선거에 관심 없는 회원들, 이용민을 모르는 회원들을 만나야죠. 그래서 늘 몸으로 그냥 부딪혀요. 만나면 좋고 아니어도 할 수 없고."
하지만 병원 도착 5분 전에 기적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지인의 지인을 통해 이상곤 전 병원장과의 미팅이 극적으로 성사됐다.
급작스런 만남이었지만 의료계 현안을 중심으로 금새 환담이 이어졌다. 문재인 케어와 의료전달체계까지 한참의 얘기가 진행됐다.
그러나 그 후의 일정은 역시 이용민 후보의 말처럼 '맨땅에 헤딩'이었다. 이 전 원장과의 만남이 끝난 후 그는 안내판을 보고 교수실과 의국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것이 일정 조율의 끝이었다.
그 후 그는 병원 전체에 퍼져있는 교수 연구실과 의국을 하나하나 노크하기 시작했다. 한창 진료시간인 만큼 자리에 있는 교수와 전공의들은 적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명함형 프로필과 유세 전단을 일일히 문마다 꽂아가며 모든 교수실을 돌았다.
그러다보니 극적인 만남도 성사됐다. 노크에 반응을 하며 문을 연 교수들은 '열정이 대단하시다'라는 말을 남기며 그와 악수를 나눴다.
그렇게 병원 모두를 샅샅히 돌고 나서야 그는 강원대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2시간여 동안 병원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뒤였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도 직진은 아니었다. 근처 찻집을 발견한 그는 급히 'STOP'을 외쳤다. 잠시 노트북을 써야한다는 이유였다.
"아까 말했듯 거의 스스로 유세 전략을 짜는지라 단체 메일을 보낼 시간이 되서요. 온라인 홍보 전략 마련한 것도 손 봐서 캠프에 넘겨줘야 하고. 페이브북에 달린 댓글들에 댓글도 좀 달고요. 딱 30분만 있다가 가죠."
그렇게 백팩에 짊어진 노트북을 통해 각종 페이지를 돌아다니며 일을 마무리한 뒤에야 강원대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강원대병원에서도 그의 불도저식 유세는 거침이 없었다. 병원 전체에 퍼져있는 교수 연구실과 의국을 모두 돌며 노크하기 시작했고 명함 프로필과 유세 전단 또한 모두 배포했다.
"명함 프로필과 유세 전단을 8000장 인쇄했는데 불과 10여일만에 다 쓴거 같아요. 사실 모두가 이런 방문을 반기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도 무조건 한명이라도 더 만나야죠. 만나면 적어도 눈빛이라도 나누잖아요. 한마디라도 나눠볼 수 있고. 그게 바로 공감이라고 생각해요. 공감하면 이 의료계도 바뀐다는 믿음도 있고요."
그렇게 4~5시간 여 동안 병원 곳곳을 누비며 녹초가 되어갈 때쯤 그의 비타민의 응원전화가 걸려왔다. 6살배기 딸의 영상통화였다.
"조금만 쉴까요?"라는 말과 함께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왔다. 심신이 지친 아빠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그의 딸은 쉴새없는 애교로 그의 몸와 마음을 녹이고 있었다.
"사실 오늘이 딸아이 유치원 입학식이거든요. 꼭 가봐야겠다 싶은 마음이었는데 참 아쉽죠. 딸아이도 제가 선거에 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매일 아침 나올때마다 '아빠 1등해', '아빠 이기고와'라고 얘기하죠. 힘이 나기도 하고 부담도 되고 하죠."
딸아이의 응원 덕분이었을까. 그에게 예기치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지인의 지인을 통해 두 병원의 전공의 대표를 만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예상외의 수확이라고 기뻐하며 그는 서둘러 전공의 대표를 만나러 나섰다. 그의 손에는 100여장의 유세 전단이 함께였다.
이후 그는 예정된 춘천시의사회 정기총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래도 저녁은 뷔페를 먹겠다며 기뻐하던 찰나. 총회장에는 예상외의 인물들이 있었다. 최대집 후보와 김숙희 후보가 유세를 위해 자리를 찾은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것 보세요. 늘 유세에서는 이렇게 변수가 따른다니까요. 빨리 오길 잘했네요. 여기서도 한명이라도 더 인사 나눠야죠. 그래도 강원도의 아들인데 조금은 더 반갑게 맞아주겠죠 뭐."
그렇게 총회에서 세시간여 동안 테이블 모두를 돌며 인사를 나눈 끝에야 그는 고대하던 뷔페 반 접시로 허기만을 채운 채 다시 서울로 발길을 돌렸다.
이미 칠흑같은 어둠이 깔린 도로에 적막하게 차 배기음만이 들리는 상황에서야 그와 진지하게 인터뷰를 나눌 수 있었다.
"투쟁이냐 협상이냐를 두고 선거에서 말이 많잖아요. 어느 쪽인지 노선을 분명히 하라는 의견도 있고. 하지만 저는 화합이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투쟁도, 협상도 화합이 우선 이뤄져야 가능한 것들이에요. 의협 회장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해요. 회원들이 함께 해야 그것이 투쟁이든 협상이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그는 모든 공약과 유세전에서 화합에 방점을 찍어두고 있다. 후보 단일화 논의를 가장 먼저 꺼낸 것도 그였다. 또한 각 후보들을 비롯해 후보 캠프의 인재들을 영입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지금 초점이 문 케어에 맞춰져 있지만 이것만 막는다고 끝이 아니에요. 투쟁 전문가도 필요하고 협상 전문가도 있어야 하고 대관 업무 전문가도 있어야 하고 젊은 의사들을 규합해줄 사람도 필요해요. 그들 모두가 후보로 나와있어요. 모두가 훌륭한 인물들이죠. 왜 이용민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렇게 대답해요. 이들 모두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저 밖에 없다고. 그게 사실이고요. 너무 아깝잖아요 그들의 능력들이. 하나로 합쳐질 구심점만 있으면 되는건데."
그렇게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시계는 어느 덧 밤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그와 함께한 시간이 15시간을 넘기며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오늘 사진 찍은 것들 꼭 좀 다 전해주세요. 이용민이 오늘을 살아온 삶이 담겨있잖아요. 그 사진을 보면서 또 다짐해야죠. 이 사람과는 이러한 대화를 하면서 이러한 약속을 했었지. 그 약속을 지켜야지 하고요. 다른 것을 다 떠나 저는 약속을 지키는 회장이 되고 싶어요."
어색했다. 아니 의아했다. 그와의 동행 취재를 위해 일정을 묻는 순간 그는 '언제든지'라며 다가올 날들을 하루 간격으로 꺼내놓았다.
많은 후보들이 가장 극적인 순간을 찾기 위해 몇 번씩이나 일정을 조율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그는 내일, 모레, 글피 모두를 선택지로 내놨다. 아니 일주일의 일정을 모두 제시했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면 그게 어떻게 진정성이 있겠어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똑같은 마음으로 똑같이 다가가야죠. 누가 옆에 있다고 달라진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거 아니에요?"
그렇게 제40대 대한의사협회장 후보 6번 이용민 후보와의 동행취재가 시작됐다. 스타트라인은 강서구에 있는 그의 의원에서였다. 그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유세를 펼치면서도 진료를 지속하고 있다.
"전국 8도를 돌면서도 오전에는 꼭 진료실을 열었어요. 환자 3~4명을 보더라도 아니면 수술 1건을 하더라도. 돈을 떠나서 그건 환자와의 약속이잖아요. 저는 회장 후보이기도 하지만 의사고."
그렇게 그의 진료실 앞에서 2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본격적으로 그와의 동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춘천. 고향이 강원도인 그는 오랜만에 고향 방향으로 간다며 들떠있었다.
하지만 그와의 잡담은 채 5분을 넘기지 못했다. 휴대전화로 쏟아지는 전화와 문자, 카카오톡 메시지와 밴드 메시지가 쉴새 없이 울려댔다.
"하루 평균 100건 정도 통화를 하는 것 같아요. 문자와 카톡, 밴드, 페이스북 글도 그 정도 되겠네요. 캠프를 통해 할 수도 있지만 우선은 무조건 스스로 하자고 다짐해요. 캠프를 통해 하면 매끄럽겠지만 같은 말이라도 직접 하는 것과 통해서 하는 건 다르잖아요."
그렇게 핸드폰과 씨름하며 한시간 여를 달린 끝에 겨우 가평휴게소에 도착했다. 모두가 아침을 건너뛰고 차에 오른지라 허기진 배를 부여잡은 채 휴게소에 들어섰지만 그의 메뉴는 단촐했다. 충무김밥 1개.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한 날부터 거의 매일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가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식사를 하면서도 핸드폰에서 눈과 손을 떼지 못했다.
"어떤 후보는 조직망이 있고 어느 후보는 기획단이 있지만 저는 제가 일정을 알아서 찾고 기획도 하고 하니 일이 좀 많죠. 가내수공업이랄까? 하지만 그래서 더 공부가 많이 돼요. 번듯하고 매끄럽진 않지만 캠프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짜낸 결과물인 만큼 더 애착도 가고요."
실제로 그는 모든 일정을 스스로 계획하고 조율하고 있다. 본격적인 출정식에 앞서 제주도를 시작으로 전국 8도를 돌며 세미 출정식을 기획한 것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말로 하는 공약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회원들의 마음을 보듬겠다. 회원들의 요구에 부응하겠다. 뭐 그런 것들이요. 하지만 진정성은 발끝에서 나온다고 봐요. 얼마나 많은 회원들을 만나 그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는가. 바로 그 부분이요. 그래서 가는거에요. 회원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그렇게 당일 그의 발끝이 향한 곳은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이었다. 도착 10여분을 앞두고 동선을 묻자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황당해 하는 기자에게 그는 "원래부터 그렇게 일정을 잡는다"고 더욱 의아한 말을 전한다.
"제 지지자들을 만나는 것은 쉬워요. 약속 잡고 전단지 주고 돌려달라 부탁하고.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선거에 관심 없는 회원들, 이용민을 모르는 회원들을 만나야죠. 그래서 늘 몸으로 그냥 부딪혀요. 만나면 좋고 아니어도 할 수 없고."
하지만 병원 도착 5분 전에 기적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지인의 지인을 통해 이상곤 전 병원장과의 미팅이 극적으로 성사됐다.
급작스런 만남이었지만 의료계 현안을 중심으로 금새 환담이 이어졌다. 문재인 케어와 의료전달체계까지 한참의 얘기가 진행됐다.
그러나 그 후의 일정은 역시 이용민 후보의 말처럼 '맨땅에 헤딩'이었다. 이 전 원장과의 만남이 끝난 후 그는 안내판을 보고 교수실과 의국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것이 일정 조율의 끝이었다.
그 후 그는 병원 전체에 퍼져있는 교수 연구실과 의국을 하나하나 노크하기 시작했다. 한창 진료시간인 만큼 자리에 있는 교수와 전공의들은 적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명함형 프로필과 유세 전단을 일일히 문마다 꽂아가며 모든 교수실을 돌았다.
그러다보니 극적인 만남도 성사됐다. 노크에 반응을 하며 문을 연 교수들은 '열정이 대단하시다'라는 말을 남기며 그와 악수를 나눴다.
그렇게 병원 모두를 샅샅히 돌고 나서야 그는 강원대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2시간여 동안 병원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뒤였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도 직진은 아니었다. 근처 찻집을 발견한 그는 급히 'STOP'을 외쳤다. 잠시 노트북을 써야한다는 이유였다.
"아까 말했듯 거의 스스로 유세 전략을 짜는지라 단체 메일을 보낼 시간이 되서요. 온라인 홍보 전략 마련한 것도 손 봐서 캠프에 넘겨줘야 하고. 페이브북에 달린 댓글들에 댓글도 좀 달고요. 딱 30분만 있다가 가죠."
그렇게 백팩에 짊어진 노트북을 통해 각종 페이지를 돌아다니며 일을 마무리한 뒤에야 강원대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강원대병원에서도 그의 불도저식 유세는 거침이 없었다. 병원 전체에 퍼져있는 교수 연구실과 의국을 모두 돌며 노크하기 시작했고 명함 프로필과 유세 전단 또한 모두 배포했다.
"명함 프로필과 유세 전단을 8000장 인쇄했는데 불과 10여일만에 다 쓴거 같아요. 사실 모두가 이런 방문을 반기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도 무조건 한명이라도 더 만나야죠. 만나면 적어도 눈빛이라도 나누잖아요. 한마디라도 나눠볼 수 있고. 그게 바로 공감이라고 생각해요. 공감하면 이 의료계도 바뀐다는 믿음도 있고요."
그렇게 4~5시간 여 동안 병원 곳곳을 누비며 녹초가 되어갈 때쯤 그의 비타민의 응원전화가 걸려왔다. 6살배기 딸의 영상통화였다.
"조금만 쉴까요?"라는 말과 함께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왔다. 심신이 지친 아빠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그의 딸은 쉴새없는 애교로 그의 몸와 마음을 녹이고 있었다.
"사실 오늘이 딸아이 유치원 입학식이거든요. 꼭 가봐야겠다 싶은 마음이었는데 참 아쉽죠. 딸아이도 제가 선거에 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매일 아침 나올때마다 '아빠 1등해', '아빠 이기고와'라고 얘기하죠. 힘이 나기도 하고 부담도 되고 하죠."
딸아이의 응원 덕분이었을까. 그에게 예기치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지인의 지인을 통해 두 병원의 전공의 대표를 만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예상외의 수확이라고 기뻐하며 그는 서둘러 전공의 대표를 만나러 나섰다. 그의 손에는 100여장의 유세 전단이 함께였다.
이후 그는 예정된 춘천시의사회 정기총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래도 저녁은 뷔페를 먹겠다며 기뻐하던 찰나. 총회장에는 예상외의 인물들이 있었다. 최대집 후보와 김숙희 후보가 유세를 위해 자리를 찾은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것 보세요. 늘 유세에서는 이렇게 변수가 따른다니까요. 빨리 오길 잘했네요. 여기서도 한명이라도 더 인사 나눠야죠. 그래도 강원도의 아들인데 조금은 더 반갑게 맞아주겠죠 뭐."
그렇게 총회에서 세시간여 동안 테이블 모두를 돌며 인사를 나눈 끝에야 그는 고대하던 뷔페 반 접시로 허기만을 채운 채 다시 서울로 발길을 돌렸다.
이미 칠흑같은 어둠이 깔린 도로에 적막하게 차 배기음만이 들리는 상황에서야 그와 진지하게 인터뷰를 나눌 수 있었다.
"투쟁이냐 협상이냐를 두고 선거에서 말이 많잖아요. 어느 쪽인지 노선을 분명히 하라는 의견도 있고. 하지만 저는 화합이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투쟁도, 협상도 화합이 우선 이뤄져야 가능한 것들이에요. 의협 회장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해요. 회원들이 함께 해야 그것이 투쟁이든 협상이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그는 모든 공약과 유세전에서 화합에 방점을 찍어두고 있다. 후보 단일화 논의를 가장 먼저 꺼낸 것도 그였다. 또한 각 후보들을 비롯해 후보 캠프의 인재들을 영입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지금 초점이 문 케어에 맞춰져 있지만 이것만 막는다고 끝이 아니에요. 투쟁 전문가도 필요하고 협상 전문가도 있어야 하고 대관 업무 전문가도 있어야 하고 젊은 의사들을 규합해줄 사람도 필요해요. 그들 모두가 후보로 나와있어요. 모두가 훌륭한 인물들이죠. 왜 이용민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렇게 대답해요. 이들 모두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저 밖에 없다고. 그게 사실이고요. 너무 아깝잖아요 그들의 능력들이. 하나로 합쳐질 구심점만 있으면 되는건데."
그렇게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시계는 어느 덧 밤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그와 함께한 시간이 15시간을 넘기며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오늘 사진 찍은 것들 꼭 좀 다 전해주세요. 이용민이 오늘을 살아온 삶이 담겨있잖아요. 그 사진을 보면서 또 다짐해야죠. 이 사람과는 이러한 대화를 하면서 이러한 약속을 했었지. 그 약속을 지켜야지 하고요. 다른 것을 다 떠나 저는 약속을 지키는 회장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