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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무 마친 공보의들 "개원할 생각 접은지 오래"

발행날짜: 2011-05-11 08:01:52

자금 압박·입지 선정 발목…봉직의 선호 현상 뚜렷


#지난달 21일 소집해제 된 공중보건의 이 모씨는 "막막하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공보의 시절부터 개원을 생각했지만 선배들로 부터 돌아온 말은 "개원은 미친 짓이다"는 대답뿐이었다. 컨설팅 업체에 문의한 결과 대출 자금을 포함해 개원에 필요한 최소 자금은 3억원 정도. 이 씨는 개원을 포기하고 봉직의를 하면서 일단 돈을 모아보자고 생각했지만 언제 쯤 자금이 모일지, 개원이 정답인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주위에 개원한 선배가 없다는 점도 불안했다.

이런 고민은 비단 이 모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대공협)가 지난 달 14일부터 19일까지 소집해제를 앞둔 3년차 공보의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개원을 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불과 5%에 그쳤다.

나머지는 전공의(35%)나 임상강사(31%), 봉직의 (29%)를 하겠다고 대답했다.

개원을 생각 중인 몇몇 공보의들은 개원은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들이 말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자금 부족과 입지 선정의 어려움, 그리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다.

자금 부족에 입지 없어 개원 '못'한다

시중 은행들은 3억원에 이르던 일반의의 개업 대출 자금을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계속 1억 5천만원 수준으로 동결하고 있다.

소위 '망하는 의사'들이 늘면서 은행들도 연체율 증가를 우려해 대출금 확대에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

개원에 필요한 최소 자금이 2억원에서 3억원 사이라는 점, 금리·임대료·임금 인상이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보면 개원 대출금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공보의들은 6%에 이르는 금리 부담과 함께 부족한 개원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신용대출까지 받는 '모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개원을 하려는 사람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자료사진
입지 선정도 개원을 꺼리게 하는 요소다.

이미 유동 인구가 풍부한 '노른자 땅'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진단이다.

21일 소집해제된 정 모씨는 현재 입지 선정을 위해 지방까지 돌아다니며 6개월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그는 "유동인구가 풍부한 곳이나 항아리 상권이 있는 곳은 모두 의원이 들어서 있어 도저히 입지 선정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서 "서울에는 임대료 부담이 있어 지방에까지 눈을 돌리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고 전했다.

개원 환경 척박, 개원 '안'하고 만다

미래의 불확실성은 공보의들을 전공의 선택의 길로 이끌고 있다. 시간을 더 투자해서라도 전문의를 따는 게 불안한 미래에서 선택의 폭을 넓혀주지 않겠냐는 것.

제대 후 전공의를 선택한 김 모씨는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전했다.

봉직의를 하든, 임상 강사를 하든 전공 과목이 있어야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저수가에 환자에 치이면서도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할 바에야 개원을 접고 월급을 받는 봉직의로 생활하는 게 낫다"면서 "봉직의로 몸값을 올리려면 전문과목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공의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전문의 자격증이 있는 공보의도 제대 후 개원을 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대공협의 설문 조사에서 보듯 3년차 공보의는 주로 임상강사(31%)나 봉직의 (29%)를 지원하고 있는 것. 전공이 있어도 결코 개원을 하기에는 유리한 게 없기 때문이다.

전문의도 '규모의 경제학', 단독 개원 경쟁력 없어

의협이 2009년 발간한 '전국 회원 실태조사 보고서'(2008년 기준)에 따르면 개원한 회원은 34.9%로 전년 대비(35.9%)에 비해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의과대학을 포함해 병의원에 봉직하는 회원은 29.9%, 전공의 수련교육을 받는 회원은 19%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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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회원 중 개원 비율이 가장 높은 과는 이비인후과(68.6%), 피부과(64.6%), 안과(60.4%) 순으로 집계됐다.

전문의 자격증이 있는 공보의도 선뜻 개원을 하기 어려운 이유는 주로 개원하는 분야가 어느 정도 규모가 있지 않고서는 인근 의원과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안과 전문의 노 모씨는 지난 달 공보의를 마친 후 개원 대신 임상강사를 선택했다. 안과들이 규모의 경제를 앞세워 박리다매 할인 경쟁을 하고 있는 시기에 도저히 단독 개원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개원을 하려고 해도 이미 자리를 선점한 의원들이 규모를 앞세워 저가 공세를 하는 통에 단독 개원은 불가능 하다"면서 "안과나 피부과 등에서 공동 개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은 바로 규모의 경제 때문이다"고 밝혔다.

과거처럼 작은 의원에서 시작해 점차 규모를 늘려나가는 식의 방법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노 씨는 "개원을 하려고 해도 일단 봉직의로 있으면서 일을 배우고 자금을 쌓은 후 하는 게 낫다"면서 "이미 자리를 잡은 의원들은 단골 환자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신참 개원의들은 규모라도 크게 하지 않으면 말그대로 망하기 십상이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