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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벌제 6개월 "허리띠 졸라매지만 이게 맞나"

발행날짜: 2011-05-30 06:50:10

의료계-제약 관계정립 잰걸음…"의학발전 저해 우려"


"제약사 후원없이도 충분히 학술대회를 개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규모를 축소하는 게 의료 발전에 도움이 될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리베이트 근절을 목표로 시행된 쌍벌제가 시행된지 6개월이 지나면서 의료계에 크고 작은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의학회들은 예산 절감에 사활을 걸며 생존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대학병원과 일선 개원가에서는 제약사와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허리띠 졸라맨 의학회 "아껴야 산다"

쌍벌제 시행으로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곳은 바로 의학계다.

관행적으로 제약사들의 후원을 받아 학술대회와 연수강좌를 개최하던 학회들은 쌍벌제 시행으로 직격탄을 맞았고 일부 학회들은 존폐 위기를 걱정하는 상황까지 몰렸다.

그러나 각 학회들은 발빠르게 자구책을 찾아 나섰고 쌍벌제 이후 처음으로 맞는 춘계학술대회는 큰 위기없이 넘기는 모습이다.

최근 그랜드힐튼호텔에서 학술대회를 개최한 대한혈액학회. 이 학회는 올해 등록비와 학회비를 두배 이상 올렸다.

제약사들의 후원이 급감한 상황에서 학술대회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회원들의 고통 분담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혈액학회 이동순 학술이사(서울의대)는 29일 "회비와 등록비를 인상해야 하는지를 놓고 많은 고민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회원들도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학술대회를 즐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상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다행히 회원들도 이러한 뜻에 공감해 큰 무리없이 학술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신경외과학회는 학회 개최장소를 변경하고 일정을 최소화해 예산을 절감한 케이스다.

실제로 신경외과학회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모호텔에서 4일간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쌍벌제 여파로 예산 마련에 어려움이 따르자 급히 송도 컨벤시아로 장소를 변경하고 일정을 3일로 줄였다.

신경외과학회 홍승철 홍보위원장(성균관의대)은 "사실 당초 예상했던 것에 비해 예산이 절반 정도 밖에 확보되지 않았다"며 "이에 따라 일정을 최대한 줄이고, 학회 장소를 변경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과정상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오히려 내실 있는 학술대회가 됐다는 평가가 많았다"며 "올해 경험을 토대로 내년에는 더욱 알찬 학회를 준비해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대학병원-개원가, 제약사와 관계 재정립

이같은 변화는 비단 학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일선 대학병원들과 개원가도 쌍벌제 여파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의사들의 모임에 제약사들의 후원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지역 의사회 정기총회가 열리면 제약사가 후원하고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경이었다.

하지만 올해 초 개최된 지역 의사회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대다수 의사회는 자체 예산으로 정기 총회를 개최했고 식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구로구의사회 김교웅 회장은 "이제는 회원들도 리베이트를 받으면 안된다는 인식이 확고하다"며 "의사회 행사에 제약사 후원을 전혀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의사회 예산은 공식적인 배너 광고 등을 통해 마련하고 있다"면서 "이 또한 사업자등록을 내고 추진하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전공의 연수강좌 등 대학병원이 주최하는 행사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병원은 주임교수가 사비를 털어 식사를 제공하기도 했으며 대다수는 원내 강당에서 행사를 진행한 뒤 간단한 빵과 음료로 식사를 대신하기도 했다.

일부 대학병원과 의사회가 영업사원 출입금지령을 내린 것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아예 논란의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신약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채널이 단절됐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만만치 않은 반작용…"합리적 기준 합의해야"

쌍벌제로 인한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의료계는 일부 긍정적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학계는 최신 지견을 접해야 하는 학술대회가 위축돼 의학발전에 저해가 되고 있다는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실제로 최근 A학회는 이번 춘계학회에 초대하기로 했던 해외 연자를 절반 이상 교체했다. 당초 미국·유럽 등에서 연자를 초청하기로 했지만 예산이 부족했던 것.

이 학회 이사장은 "세계 학계를 이끄는 거장이라는 점에서 최대한 초빙하려 애썼지만 항공료와 숙박비 등으로 최소 1천만원 이상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며 "연자를 대폭 줄이고 그나마도 아시아권 석학들로 교체했다"고 전했다.

B학회도 2012년 국제학회를 유치하고 연자를 섭외중이지만 예산 마련이 어려워 한숨을 쉬고 있다.

이 학회 이사장은 "가능한 많은 연자들을 모셔 풍성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싶은데 지금으로서는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다"며 "내일부터 연자 섭외에 나설 계획인데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해외 활동이 여의치 않은 일선 개원의들은 이러한 기회가 아니면 최신 지견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며 "학술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합리적인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노인병학회는 연구비 지원금을 대폭 줄였다.

대한노인병학회 관계자는 "과거에는 매년 5명에게 연구비를 지원했는데 제약사 후원금이 대폭 줄어 불가피하게 2명으로 줄였다"며 학술사업 위축에 대한 우려감을 감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