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의료기기 급여 제도 손질 나선 미국…K-헬스 기회될까
[메디칼타임즈=이인복 기자]세계 최대 의료기기 시장인 미국에서 혁신 의료기기 상용화에 허들로 꼽히던 보험 적용 문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더라도 실제 보험 적용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던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미국 규제 당국과 보험 당국이 심사를 연계하는 새로운 제도를 내놨기 때문이다.특히 이번 제도는 혁신 의료기기 지정 제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시장 진출을 노리는 국내 의료기기·디지털헬스 기업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FDA와 CMS가 혁신 의료기기에 대해 2달만에 허가와 보험적용까지 결정하는 패스트트랙을 마련했다(사진=AI 생성).25일 의료산업계에 따르면 미국 메디케어·메디케이드서비스센터(CMS)와 FDA가 혁신 의료기기 보험 적용을 앞당기기 위한 새로운 트랙인 래피드(RAPID, Regulatory Alignment for Predictable and Immediate Device) 제도를 추진중인 것으로 확인됐다.이 제도는 FDA가 혁신 의료기기로 지정한 일부 2등급 및 3등급 의료기기에 대해 개발 단계부터 FDA와 CMS가 함께 관여해, 허가 이후 메디케어 전국 보험 적용과 지불 결정을 더 빠르게 진행하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즉, 의료 AI 등 안전성이 확보된 혁신 의료기기에 대해 패스트트랙에 얹어 빠르게 허가와 보험적용까지 한번에 묶어주겠다는 의지다.현재 미국에서는 혁신 의료기기가 FDA 허가를 받아도 보험 적용까지 1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실제로 FDA 허가 이후 전국 메디케어 및 상업 보험 적용까지 평균 5년이 걸린다는 조사 결과도 나온 바 있다.하지만 RAPID 제도가 적용되면 FDA 시판 허가 이후 이르면 2개월 만에 메디케어 전국 보험 적용과 지불이 가능해진다. 말 그대로 속도가 달라진다는 의미다.의료기기 기업들이 이번 발표에 환호를 보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동안 혁신 의료기기 기업들이 가장 어려워했던 지점은 허가 자체보다 허가 이후 실제 제품을 파는데까지 시간이 걸리는 문제였기 때문이다.FDA 허가를 받았더라도 보험 적용이 지연되면 병원은 제품 도입을 주저할 수밖에 없고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 발생까지 시간이 길어지는 구조였다는 의미다. 이번 제도는 이 병목을 직접 겨냥한 것이다.앞서 FDA는 혁신 의료기기 프로그램을 통해 현재 존재하는 기술보다 더 효과적인 치료 또는 진단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는 의료기기를 대상으로 우선 심사와 조기 상담을 제공하는 제도를 운영해 왔다.문제는 허가 심사는 빨라졌지만 보험 적용은 별도 절차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개발사는 FDA 허가를 위한 임상 근거를 만들었지만 CMS가 요구하는 보험 적용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추가 연구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의미다.RAPID 제도는 바로 이 간극을 줄이려는 시도다. FDA와 CMS가 개발 초기부터 기업과 함께 임상시험 설계를 논의하고 FDA 허가에 필요한 근거와 메디케어 보험 적용에 필요한 근거를 동시에 확보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즉, 허가용 임상과 보험용 임상을 따로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두 기관이 요구하는 임상 결과 지표를 맞춰 연구를 설계하겠다는 뜻이다.특히 CMS는 기업들이 FDA와 주요 임상시험을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CMS 전문가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이를 통해 메디케어 수혜자에게 실제로 중요한 임상 결과가 무엇인지, 보험 적용 판단에 필요한 근거가 무엇인지 사전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다.제도 적용 대상도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RAPID 제도는 메디케어 수혜자의 미충족 의료 수요를 해결하는 혁신 의료기기 중 일부 2등급 및 3등급 의료기기를 대상으로 한다.2등급 기기의 경우 FDA의 전주기 자문 프로그램(TAP, Total Product Life Cycle Advisory Program)에 참여하는 제품이 대상이 될 수 있고, 3등급 기기는 TAP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적용될 수 있다.또한 해당 기기는 임상시험용 의료기기 면제(IDE, Investigational Device Exemption) 연구 대상이어야 하며 이 연구에는 메디케어 수혜자가 포함돼야 한다. FDA와 CMS가 합의한 임상 건강 결과를 평가하는 것도 조건이다.절차도 기존보다 공격적으로 설계됐다.CMS는 대상 기기가 FDA 시판 허가를 받는 당일, 메디케어 전국 보험 적용 결정안(NCD, National Coverage Determination)을 동시에 발표할 계획이다. 이후 법정 절차에 따라 30일간 공개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 결정을 진행하는 구조다.이는 보험 적용 논의를 허가 이후에야 시작하던 기존 구조와는 상당히 다르다. 허가와 보험 적용이 사실상 병렬로 진행되는 셈이다.기존 제도와의 차이도 크다. CMS는 2024년 신기술 전환 보험 적용 제도(TCET, Transitional Coverage for Emerging Technologies)를 마련했지만 이 제도는 연간 약 5개 혁신 기술만 검토 대상으로 삼는 제한적인 구조였다.반면, FDA는 매년 100개가 넘는 의료기기에 혁신 의료기기 지정을 부여해 왔다.이 때문에 의료기기 업계에서는 TCET가 실제 혁신 의료기기 시장의 수요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불만이 이어졌다. 미국 의료기기산업협회인 애드바메드(AdvaMed)도 TCET가 최종화될 당시 참여 가능 제품 수가 지나치게 제한적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이번 RAPID 제도는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CMS는 현재 약 40개 기기가 새 제도의 요건을 충족할 수 있으며 추가로 약 20개 기기가 잠재적으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CMS는 RAPID에 집중하기 위해 TCET의 신규 후보 접수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사실상 혁신 의료기기 보험 적용 정책의 무게중심을 TCET에서 RAPID로 옮기겠다는 신호로 읽힌다.이번 변화는 글로벌 기업뿐 아니라 국내 기업에게도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국내 의료기기 기업들은 현재 의료 AI를 기반으로 디지털 치료기기, 로봇수술, 심혈관 중재기기, 신경자극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현재 상당수 기업들은 FDA 허가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잇는 상태다. 하지만 RAPID 제도가 자리잡을 경우 국내 기업들도 미국 임상 전략을 초기부터 다르게 짤 필요가 있다.단순히 FDA 허가를 목표로 임상시험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CMS 보험 적용에 필요한 임상 결과 지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메디케어 수혜자, 즉 고령 환자군에서 임상적 유용성과 건강 결과 개선을 입증하는 데이터가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이는 국내 기업에게 부담이자 기회갈 될 것으로 보인다. 부담인 이유는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더 정교한 임상 설계와 근거 전략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단순 성능 지표나 정확도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제 환자 결과와 의료비 절감, 기존 치료 대비 임상적 의미를 보여줘야 한다.반대로 기회인 이유는 초기부터 FDA와 CMS 요구를 동시에 충족하는 전략을 세울 경우, 허가 이후 보험 적용까지 걸리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금력이 제한적인 국내 기업에게는 허가 후 매출 발생까지의 시간을 줄이는 것이 생존과 직결될 수 있다.특히 이 제도는 국내 스타트업들이 주목하고 있는 AI 기반 의료기기 기업에게도 중요한 변화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국내 기업들은 영상 AI, 심전도 AI, 병리 AI, 뇌질환 진단 AI 등에서 기술력을 축적하고 있지만, 미국 시장에서는 보험 적용과 지불 모델이 가장 큰 허들로 꼽혀 왔다.RAPID 제도가 실제로 AI 기반 혁신 의료기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면, 국내 AI 의료기기 기업들이 미국 진출 전략을 다시 설계할 계기가 될 수 있다.미국 시장을 목표로 한다면 과거 FDA 허가를 받을 수 있느냐에 맞춰졌던 전략을 보험 적용까지 함께 묶어 고민해야 할 시점이 왔다는 의미다.의료기기산업협회 임원인 A기업 대표는 "국내 스타트업들이 자신만만하게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가 좌절을 겪는 대부분의 경우가 여기에 있다"며 "FDA 허들을 넘는데만 집중하다보니 어떻게 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적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그는 이어 "결국 예산과 시간을 쏟아부어서 FDA 허가를 받고서 판로를 개척하지 못해 몇 년동안 손가락만 빠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이번 RAPID 트랙은 국내 기업들에게 큰 기회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