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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은 어디까지 의료를 바꿀 것인가

[메디칼타임즈=손문호 위원]보험은 본래 질병과 사고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제도이다. 예기치 못한 의료비로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막고, 경제적 이유로 필요한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보험의 본래 역할이다.그러나 최근 우리나라 의료현장을 들여다보면 보험이 단순히 의료비를 보장하는 수준을 넘어 의료이용의 방식과 양상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정 의료행위와 입원, 간병, 나아가 특정 질병의 진단 자체에 경제적 가치가 부여되면서 보험이 새로운 의료수요를 만들어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대표적인 사례가 실손보험이다.실손보험은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못하는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하여 도입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영역에서는 보험 가입 여부가 의료이용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나타났다. 환자의 실제 본인부담이 줄어들면서 비급여 진료에 대한 가격 민감도가 낮아졌고, 일부에서는 도수치료, 각종 주사치료, 검사 등 실손보험으로 보장되는 의료서비스가 반복적으로 이용되는 현상도 발생하였다.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보험상품의 구조를 잘 이해하는 일부 보험설계사와 브로커가 가입자들에게 보험 활용방법을 적극적으로 안내하면서 이른바 '보험 학습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환자 스스로 보험금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하여 진료를 선택하고, 의료기관 역시 실손보험 가입 여부에 따라 비급여 진료에 대한 설명과 이용 방식이 달라지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결국 실손보험은 단순한 의료비 보상제도를 넘어 의료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로 자리 잡았다.최근에는 유사한 문제가 간병보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간병인을 사용할 경우 입원일수에 따라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간병보험 상품이 확대되면서 실제 간병 여부를 둘러싼 허위·부정청구 사례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실제 간병을 하지 않은 가족이나 지인을 간병인으로 등록하거나, 간병업체와 연계하여 형식적인 서류를 만들어 보험금을 청구하는 사례까지 보도되고 있다.특히 실제로 지출한 간병비보다 보험금이 더 많아질 수 있는 상품구조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입원이 비용이 아니라 경제적 이익이 될 수 있는 순간, 환자의 의료이용에 대한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필요 이상의 입원이나 장기입원이 경제적으로 유리해지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으며, 이는 단순한 보험사기 문제를 넘어 의료체계 전반의 왜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그 피해는 민간보험에만 머물지 않는다.간병보험의 유인으로 불필요한 입원이 증가한다면 간병보험금은 민간보험사가 지급하지만, 입원 과정에서 발생하는 진찰료와 검사비, 약제비 상당 부분은 국민건강보험이 부담하게 된다. 민간보험상품이 만들어낸 의료수요의 비용을 공적 건강보험이 함께 부담하게 되는 구조이다.최근 진료현장에서는 또 다른 변화도 감지된다.특정 질병을 진단받으면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이른바 '진단비 보험'이다. 대상포진과 같은 질환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물론 고령화와 면역저하 환자의 증가 등으로 대상포진의 실제 발생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특정 질환의 진단 증가를 보험상품 하나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그러나 특정 진단명이 보험금 지급요건이 되는 순간 환자의 행동이 달라질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과거에는 단순 피부염이나 신경통으로 경과를 관찰하였을 경계성 증상에 대해서도 환자는 특정 질환의 확진 여부를 보다 적극적으로 확인하려 할 수 있다. 추가 검사를 요구하거나 재진을 반복하는 경우도 늘어날 수 있다. 의료진 역시 진단명, 진단서, 질병코드에 대한 요구를 더 자주 접하게 된다.이처럼 진단 자체가 경제적 가치와 연결되기 시작하면 의료는 다시 한 번 보험의 영향을 받게 된다.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의료정책 논의에 새로운 개념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그동안 의료비 증가를 설명할 때 흔히 사용된 개념은 '공급자 유발 수요'였다. 의료공급자인 의료기관이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불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만들어낸다는 논리이다.그러나 이제는 그에 못지않게 '보험 유발 의료수요'를 살펴보아야 한다.보험상품이 특정 의료행위나 입원, 간병, 진단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면 환자의 행동이 변화한다. 환자의 의료이용이 늘어나면 의료기관의 공급도 증가하게 된다. 이후 보험금 지급이 증가하면 보험료가 오르고, 보험회사는 손해율을 줄이기 위하여 의료기관의 진료행위를 통제하려 하며, 정부는 다시 비급여 규제와 의료비 통제에 나서게 된다.이 과정에서 문제의 책임이 의료기관에만 집중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보험상품의 설계 자체가 의료이용 증가의 출발점이 아니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실손보험은 치료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였다.간병보험은 입원과 간병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였다.진단비 보험은 특정 질병의 진단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보험상품이 확대될수록 의료현장 곳곳에 새로운 경제적 유인이 만들어지는 셈이다.따라서 금융당국과 보건당국이 각각 별도로 대응하는 현재의 구조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새로운 의료 관련 보험상품이 출시될 때에는 보험사의 재무건전성과 소비자 보호만을 평가할 것이 아니라, 해당 상품이 실제 의료이용량과 건강보험 재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도 사전에 평가할 필요가 있다.필요하다면 이른바 '의료영향평가' 제도의 도입도 검토할 수 있다. 특정 보험상품 출시 이후 특정 질환의 진단, 입원, 검사, 치료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는지를 건강보험 자료와 보험금 청구자료를 연계하여 분석하는 체계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또한 실제 손해를 보전하는 수준을 넘어 환자가 입원이나 치료, 진단을 통하여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는 최소화하여야 한다.보험은 질병으로 인한 손실을 보상하는 제도이어야 한다.질병과 입원, 진단을 통하여 경제적 이익을 얻도록 만드는 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우리나라는 이미 실손보험을 통하여 값비싼 경험을 하였다. 비급여 시장이 급속히 확대된 뒤 이를 뒤늦게 규제하면서 정부와 의료계, 보험업계, 환자 사이에 상당한 갈등이 발생하였다.같은 실수를 간병보험과 진단비보험에서 반복해서는 안 된다.의료기관이 보험을 이용하는 행위만을 감시할 것이 아니라, 보험이 의료수요를 만들어내는 구조 또한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좋은 보험은 필요한 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그러나 잘못 설계된 보험은 치료에 가격표를 붙이고, 입원에 가격표를 붙이며, 결국에는 진단명에까지 가격표를 붙일 수 있다.이제 대한민국 의료정책은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2026-10-06 05:00:00이슈칼럼

잘 먹는 것 vs 자주 먹는 것(9편)

"선생님, 저 요즘 너무 잘 먹어요""어제 저녁은 수술 전처럼 먹었어요""글쎄, 김밥 한 줄을 다 먹었다니까요?"외래 진료실에서 위소매절제술을 받으신 환자분들을 만나다 보면, 종종 걱정 어린 얼굴로 이런 이야기를 건네시곤 합니다.위소매절제술은 위를 수직으로 절제하여 늘어나지 못하게 하는 대표적인 비만대사수술입니다. 수술 전 평균 위 용적의 80% 이상을 감소시키죠. 실제 수술 후 3개월까지는 한 끼에 드실 수 있는 양이 작은 종이컵 하나 분량(150~200cc)에 불과하고, 시간이 서서히 지나더라도 한 끼에 400~500cc 정도가 최대치입니다.이해를 돕자면, 하루 세끼를 정성스럽게 챙겨 드신다 해도 세끼를 다 합쳐 1,000kcal를 넘기기조차 어려운 구조입니다. 이런 신체적 변화 배경을 고려하면, 수술 후 "잘 먹었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의 식사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그렇다면 환자분들이 느껴서 말씀하시는 "너무 잘 들어간다", "잘 먹는다"라는 표현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요? 면밀히 여쭤보면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설명됩니다.첫째, '잘' 먹는 것이 아니라 '자주' 먹는 것입니다.위소매절제술의 특성상 음식이 위를 통과하여 소장으로 내려가는 시간이 매우 짧아집니다. 자연스럽게 돌아서면 금방 배가 고픈 느낌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한 번에 먹은 양 자체가 워낙 적다 보니 심리적 허기까지 더해집니다. 결국 한 번에 많이 드신 것이 아니라, 조금씩 자주 손을 대다 보니 결과적으로 많이 먹었다고 느끼시는 것입니다.둘째, '식사 시간'이 길어진 것입니다."아침이나 점심은 잘 안 들어가는데, 이상하게 저녁은 꽤 많이 들어가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는 위의 용량이 갑자기 늘어난 것이 아니라, 저녁 시간에 여유를 두고 천천히 드셨기 때문입니다. 음식물 비워짐과 동시에 천천히 음식을 채워 넣으니, 드신 총량이 늘어난 것이죠.비만 치료의 시작과 끝, '정성스러운 식사'속상하게도 체중 감량과 감량된 체중의 지속적인 유지는 결국 '총 칼로리 섭취량'에 달려 있습니다. 위소매절제술 후 올바른 식사 관리를 위해서는 '잘 먹는 것(자주 먹거나 길게 먹는 것)'과 '올바르게 먹는 것'을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비만 치료의 시작과 끝은 다름 아닌 정성스러운 식사입니다.여기서 정성스러운 식사란 단순히 맛있는 것을 먹는 뜻이 아닙니다. 정해진 시간에 양질의 칼로리를 섭취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 '하루 세끼의 규칙성'을 지키는 것입니다.주전부리로 자주 허기를 달래거나 긴 저녁 식사로 칼로리를 채우기보다, 정해진 시간에 정갈하게 차려진 하루 세끼를 통해 양질의 영양소를 섭취하는 습관. 이것이 수술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건강하게 체중을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열쇠입니다.
2026-10-06 05:00:00이슈칼럼

환자 보는 의사에서 전산 보는 의사로

[메디칼타임즈=손문호 칼럼위원]" 진료기록 강화가 필수의료의 새로운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오는 12월부터 전자의무기록을 단순 열람한 경우에도 누가 언제 환자의 기록을 열어봤는지 접속기록을 보관하도록 제도가 강화된다.환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진료와 관계없는 무단열람을 막자는 취지는 옳다. 의료인 역시 환자의 민감한 정보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그러나 의료현장에서 바라보면 한 가지 걱정을 지울 수 없다.우리는 환자를 잘 보는 의사를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전산기록을 잘 남기는 의사를 만들고 있는가.의료는 언제나 기록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특히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과 같은 필수의료 현장은 더욱 그렇다. 환자가 출혈하고 있다면 먼저 지혈해야 한다. 혈압이 떨어진다면 먼저 수액과 약물을 투여해야 하고, 심정지가 발생하면 기록보다 심폐소생술이 먼저다.환자의 생명 앞에서는 당연히 처치가 기록보다 앞선다.하지만 의료분쟁이 발생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몇 시 몇 분에 의사가 EMR을 열었는지, 언제 처방을 입력했는지, 기록을 언제 추가했는지가 모두 남는다. 실제 진료과정보다 전산기록의 시간표가 의료행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예를 들어 새벽에 간호사로부터 환자의 상태 변화를 보고받은 의사가 전화로 즉시 처치를 지시했다고 하자. 간호사는 처치를 시행하고 의사는 다른 응급환자를 진료한 뒤 조금 늦게 전산처방을 입력할 수 있다.현장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그러나 몇 년 뒤 법정에서는 EMR에 남아 있는 시간만 놓고 "처방보다 처치가 먼저 이루어졌다"고 문제 삼을 수도 있다.실제 진료와 전산상의 진료가 달라지는 순간이다.진료기록을 보완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의사는 환자 진료가 끝난 뒤 빠뜨린 내용을 확인해 추가할 수도 있고, 수술이나 응급처치 후 보다 상세한 경과를 기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록의 수정과 추가 이력이 모두 남고 이것이 의료분쟁에서 중요한 증거가 된다면 의사는 정상적인 기록 보완조차 두려워하게 된다.기록을 바로잡는 행위와 기록을 조작하는 행위는 분명히 다르다.그럼에도 의료분쟁 과정에서 "사고 이후 기록을 수정했다"는 사실 자체가 의사에게 불리한 정황으로 제시되는 순간, 의사는 정확한 기록보다 자신에게 불리하지 않은 기록을 고민하게 된다.더 큰 문제는 이것이 필수의료에 미치는 영향이다.필수의료에는 불확실성이 많다. 환자의 상태가 급변하고, 여러 의료인이 동시에 치료하며, 순간적인 판단이 반복된다. 수술과 응급처치에는 사후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임상적 판단도 존재한다.그런데 모든 판단을 몇 시 몇 분 몇 초의 전산기록으로 재구성해 책임을 판단한다면 의사에게 가장 안전한 선택은 무엇일까.환자를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보다 기록을 완벽하게 남기는 것이 될 수도 있다.의사는 처치를 시작하기 전에 컴퓨터를 찾고, 전화로 지시하기 전에 처방을 입력하며, 환자의 상태보다 자신의 기록이 어떻게 남을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이른바 '방어진료'를 넘어 '방어적 기록'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이런 의사를 '전산의사'라고 부르고 싶다.수술을 잘하는 의사보다 수술기록을 잘 작성하는 의사가 안전하고, 응급처치를 잘하는 의사보다 처방시간과 기록시간을 완벽하게 맞추는 의사가 법적으로 안전한 의료환경은 정상적이지 않다.의료의 디지털화는 필요하다. 기록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그러나 의료의 본질은 전산이 아니라 환자다.정부가 전자의무기록 관리를 강화하려 한다면 동시에 필수의료 현장을 보호하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응급상황에서는 처치 이후 전산입력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제도적으로 인정해야 하고, 실제 처치시각과 전산입력 시각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화오더와 구두오더, PRN 처방에 대해서도 현실에 맞는 표준기준이 필요하다.정상적인 진료기록의 추가기재와 허위기록 변경을 구별하는 원칙도 보다 명확해야 한다.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다.EMR을 열었다는 사실이 곧 그 환자의 모든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기록이 늦었다는 사실이 곧 진료가 늦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이 원칙이 무너지면 EMR은 환자를 위한 진료기록이 아니라 의사의 책임을 추적하는 블랙박스로 변할 수 있다.정부는 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한다.그렇다면 필수의료 의사가 환자 앞에서 컴퓨터 화면부터 걱정하게 만드는 제도는 아닌지 함께 살펴야 한다.좋은 의사는 기록을 가장 잘하는 의사가 아니다. 위급한 순간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판단과 처치를 할 수 있는 의사다.환자를 살리는 손보다 전산을 입력하는 손이 더 중요해지는 의료제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2026-09-28 05:00:00이슈칼럼

결과만 묻는 사법, 과정 잃어가는 의료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마상혁 고문개정 의료분쟁 조정법이 2027년 5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12대 중과실의 판단 기준, 고위험 필수의료의 범위, 심의체계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법을 먼저 통과시켜 놓고 뼈대를 뒤늦게 세우는 방식이니 순서가 뒤바뀌었다`.필수의료 붕괴는 이 법의 시행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국민일보 조사에 따르면 다음 달이면 비수도권 신생아중환자실(NICU)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동아대병원 두 명만 남는다. 2026년 상반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은 21.7%로 전 과목 최저치였다. 인제의대 남소현 교수는 대한의사협회 학술지에서 소아 심장 수술 합병증으로 10억 원 배상 판결이 나온 뒤 소아외과 기피와 방어진료가 악순환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원인은 하나로 수렴한다. 낮은 수가와 사법 리스크다.그러니 개정 의료분쟁 조정법이 더욱 필요하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형사특례로 필수의료의 사법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 자체는 정당하다.그러나 지난 국회 공청회는 이 법의 구조적 결함을 드러냈다.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법전원) 교수는 중과실 유형을 법률로 확정한 방식이 오히려 예견 가능성을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황용남 수원고법 판사는 중과실 개념을 하위법령이 아닌 법률로 확정한 방식이 국내에서 유례가 없는 형식이라고 평가했다. 이은경 순천향대 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30년 응급의료 경험에서 본 팀원들의 의료실수 대부분이 12대 중과실 안에 들어 있었다고 증언했다. 시행령, 시행규칙, 연구용역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하위법령에 담아야 할 쟁점이 이렇게 많은 법이라면, 공청회는 법 통과 전에 열렸어야 했다.최근 고위 공직자 청문회는 의료계의 불신을 한층 키웠다. 임상시험 승인 로비 의혹을 두고 "문과라서 치료제 성능은 몰랐다"는 해명이 나왔다. 대법관 후보자는 법왜곡죄로 판사가 고소당할 가능성을 두고 "그렇게 운영되면 안 된다"는 원론적 답변에 그쳤다. 그러나 판사에게는 오판에 대한 형사책임이 요구되지 않고, 의사에게는 과정이 아닌 결과에 대한 책임이 요구되는 비대칭은 그대로 남았다. 판사가 두려워하는 것은 의사가 30년째 감당해온 그 두려움이다. 사법부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보는 부담을 의료 현장에는 요구해 왔다는 사실이 이 비대칭에서 드러난다.의료는 공공재의 성격을 가진다. 그렇다면 불가피한 상황과 최선의 노력에도 발생하는 나쁜 결과에 대한 보상은 개별 의사와 병원의 민형사 책임으로 흩어져서는 안 된다. 뉴질랜드형 무과실 공적보상기금, 환자안전 조사와 책임 판단의 분리, 독립된 환자안전 전담기구의 신설이 이제 논의 테이블에 올라야 한다. 이는 공청회에서 이은경 교수가 제안한 방향이기도 하다.법과 제도는 오랜 시간에 걸쳐 모든 이해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해 다듬어야 한다. 의료인만을 위한 법이어서도 안 되고, 환자와 유족의 감정만을 위한 법이어서도 안 된다. 사법부의 온정주의 재판과 의료계의 방어진료는 동전의 양면이다. 어느 한쪽만 해결해서는 풀리지 않는다.의료계를 압박한 결과는 방어진료와 필수의료 이탈로 되돌아온다. 불필요한 검사와 치료가 증가하고, 그 부담은 결국 건강보험과 환자가 진다. 12대 중과실을 놓고 현장이 예측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면, 그 법은 이미 실패한 법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행일에 맞춘 서두른 입법이 아니라, 시행을 늦추더라도 하위법령을 정교하게 다듬을 용기다. 국민도, 법조인도, 정부도 인식을 새로 해야 한다. 의료계를 향한 압박의 청구서는 결국 국민의 이름으로 되돌아온다.
2026-09-21 05:00:00이슈칼럼

지역의료,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마상혁 고문 지역의료의 위기는 결국 사람의 문제다. 그런데 정부는 그 빈자리에 인공지능(AI)을 밀어 넣으려 한다. 오는 16일 정부와 학계가 여는 'AI 기본의료' 포럼은 의료 AI를 지역·필수·공공의료 붕괴의 열쇠로 내세운다. 그러나 분명히 하자. 수술은 AI가 할 수 없다. 한밤중에 실려 온 환자를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확인하는 판단 역시 AI는 대신하지 못한다. 사람이 없어 무너지는 현장을 알고리즘으로 덮을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빠른 발표가 아니라 더 정직한 진단이다.우선순위부터 의심스럽다. 지난해 12월 이후 정부는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급여화를 밀어붙였고, 7월 14일 국무회의에서는 임신중절약 '미프진' 처방을 의사 재량에 떠넘기자는 지시가 나왔다. 중증질환 환자들은 생명과 직결된 치료제 급여는 미루면서 미용에 가까운 탈모약에 재정을 쓰는 것은 주객전도라며 반발했다. 산부인과계 역시 입법 공백을 의사 재량으로 메우는 것은 사법 리스크의 전가라고 성토했다.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분만 붕괴가 눈앞인데, 국정의 에너지는 엉뚱한 곳에 쏠려 있다. 이런 인식으로 위기의 본질을 겨냥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자기모순도 뚜렷하다. 지난 정권의 의대 2,000명 증원을 부당하다고 비판하던 세력이, 집권 후 2027학년도 490명을 시작으로 2031년까지 3,342명 증원을 확정했다. 규모만 줄었을 뿐 '공급을 늘리면 지역이 채워진다'는 접근은 그대로다. 의사협회도 환자단체도 반발했고, 심의에 참여한 의사협회장조차 결과를 되돌리지 못한 채 회원들에게 사과했다.더 큰 문제는 진단이 없다는 것이다. 손영래 지역필수공공의료실장은 지난 20~30년 보건정책의 첫째 화두가 보장성 강화였다고 했다. 지역의료가 그만큼 오래 방치돼 왔다는 자백이다. 그렇다면 왜 무너졌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새 조직을 세우고 1조 2,614억 원의 특별회계를 편성한 뒤 그 위에 AI를 얹었다. 진단을 건너뛴 처방이다. 강릉의료원 최안나 원장은 "좋은 이야기가 판타지처럼 펼쳐졌을 뿐 무엇이 우선인지, 어떤 결과를 국민에게 주겠다는 것인지 목표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고, 울산의대 조민우 교수는 "치료가능사망률 격차를 줄인다는 목표를 어떤 세부 계획으로 달성할지가 빠졌다"고 꼬집었다. 투입 목표만 있고 결과가 계량되지 않으면, 돈은 돈대로 쓰고도 무엇이 나아졌는지 알 수 없다.의료는 1차·2차·3차 기관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작동한다. 경증은 동네의원에서, 입원과 수술은 지역병원에서, 최종 치료는 상급병원에서 감당하고 다시 지역으로 회송되는 흐름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 전달체계가 무너져 환자는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쏠리고 의뢰와 회송의 고리는 끊겼다. 돈의 앞뒤도 맞지 않는다. 정부는 검사 수가를 깎아 연 2조 6000억 원을 아껴 필수의료에 3조 6000억 원을 재투자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검사 재원을 깎아 메우는 돌려막기일 뿐 새로운 재원을 투입하는 결단이 아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 개혁이 건강보험 재정에만 기대면 준비금 소진 시점이 2029년으로 앞당겨진다고 경고했다. 건강보험은 이미 올해 1분기에만 3조 9,000억 원의 적자를 냈다. 양질의 의료에는 정당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은 국고 투입과 수가 정상화에는 인색하고, 표를 겨냥한 선심성 지출에는 후하다. 비용을 치를 의지가 선별적이고 정치적이다.AI를 만병통치약처럼 세우는 순간 진짜 병목은 가려진다. 지역의료는 의사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24시간 응급과 분만을 지탱할 숙련된 간호사, 영상과 검사를 다룰 의료기사, 약사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 인력 공백을 메울 대책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빈자리를 기계로 덮겠다는 발상은, 그 빈자리를 더 깊게 팔 뿐이다.무엇보다 지역의료 붕괴는 지역소멸의 한 단면이다. 교육·일자리·주거가 함께 무너지는 곳에 의사만 남을 수는 없다. 지역 의사 부족의 뿌리는 수도권과 지방의 총체적 불균형이며, 그 해소 없이 지역의사제로 10년을 묶어도 의무복무가 끝나는 순간 이탈은 정해진 수순이다. 이것은 복지부 혼자 감당할 과제가 아니다. 국토·교육·산업이 함께 움직여야 할 구조 개혁을 한 부처가 예산과 조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무리다."그래도 특별회계와 AI로 무엇이라도 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아니다. 방향 없는 투입은 방치보다 위험하다. 한정된 재원을 소진하고도 실패의 원인마저 흐려 놓기 때문이다. 무너진 곳간을 들여다보지 않고 새 지출부터 늘리면, 다음 세대가 갚아야 할 청구서만 커진다.지역·필수·공공의료는 임기 안에 끝낼 일이 아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일관성으로, 전문가와 오래 머리를 맞대야 하는 개혁이다. 순환보직으로 몇 년마다 자리를 옮기는 공무원 조직에 수십 년 축적이 필요한 전문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새 조직을 자랑하고 청사진을 서둘러 윗선에 올리는 것이 목표가 되면, 그것은 국민이 아니라 성과를 위한 정책이다. 진단 없는 처방, 재원 없는 약속, 사람 없는 자동화는 반드시 실패한다. 발표를 서두르기 전에, 진단부터 다시 하라.
2026-09-14 05:00:00이슈칼럼

비만치료제 1조 원 시대…정작 필요한 환자는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한병덕 교수비만 치료의 시대가 달라졌다.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만 진료의 가장 큰 어려움은 효과적인 치료 수단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식사와 운동만으로 의미 있는 체중감량을 장기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고, 기존 비만치료제 역시 효과와 부작용 측면에서 한계가 있었다.그러나 GLP-1 수용체작용제와 GIP/GLP-1 이중작용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비만치료제의 등장은 이러한 상황을 크게 바꿨다. 세마글루타이드와 터제파타이드 등을 통해 과거에는 비만대사수술에서나 기대했던 수준에 가까운 체중감량도 가능해졌다.시장의 반응도 폭발적이다. 마운자로는 국내 출시 1년 만에 매출이 1조 원에 육박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비만치료제가 국내 의약품 시장의 중심으로 들어왔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변화다.그런데 진료실에서는 이와는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있는데, 정작 치료가 가장 필요한 환자가 비용 때문에 그 약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비만은 질병이지만 치료비는 개인의 몫비만은 단순히 많이 먹고 적게 움직여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유전적·생물학적 요인과 환경, 사회경제적 조건, 수면, 스트레스, 약물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만성질환이다.체중이 감소하면 우리 몸에서는 에너지 소비가 줄고 식욕이 증가하는 등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려는 생물학적 반응도 나타난다. 어렵게 체중을 감량한 뒤 다시 증가하는 것을 단순히 환자의 의지 부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더욱 중요한 것은 비만이 수많은 질환과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제2형 당뇨병,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심혈관질환, 지방간질환, 폐쇄성 수면무호흡증, 퇴행성 관절질환 등 비만과 관련된 질환은 매우 다양하다.따라서 고도비만 환자의 체중을 치료하는 것은 외모를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당뇨병과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낮추고 비만 관련 합병증을 예방하거나 개선하며, 궁극적으로 건강수명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치료다.그런데 여기에서 역설이 발생한다.당뇨병이 발생하면 건강보험을 통해 약물치료를 한다. 고혈압과 이상지질혈증도 마찬가지다. 비만으로 수면무호흡증이나 관절질환이 발생하면 그 합병증에 대해서는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다.하지만 이러한 질환의 중요한 원인이 되는 비만을 약물로 적극적으로 치료하려 하면 환자가 상당한 비용을 직접 부담해야 한다.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치료 필요성이 높은 고도비만 환자들이다.진료 현장에서는 여러 비만 관련 합병증을 가지고 있어 적극적인 체중감량이 필요한데도 경제적인 이유로 약물치료를 시작하지 못하거나, 효과를 보고 있으면서도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중단하는 환자를 만날 수 있다.비만을 만성질환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장기간 지속해야 할 치료비를 사실상 개인의 경제력에 맡겨놓는다면 치료의 형평성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모든 환자가 아니라, 가장 필요한 환자부터그렇다고 모든 비만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자는 것은 아니다.우리나라의 비만 인구를 고려하면 잠재적인 치료 대상자가 매우 많고, 새로운 비만치료제의 가격도 높다.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만큼 무분별한 급여 확대는 건강보험 재정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정상체중이나 경도의 과체중인 사람이 단순한 미용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까지 공적 보험으로 지원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따라서 '전면 급여냐, 전면 비급여냐'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치료 필요성이 높고 체중감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강상의 이득이 큰 환자부터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예를 들어 중증 또는 고도비만이면서 당뇨병이나 당뇨병 전단계,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수면무호흡증, 지방간질환, 체중 관련 관절질환 등 중요한 비만 관련 합병증을 가진 환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BMI라는 숫자 하나만으로 대상을 결정하기보다 비만의 중증도와 동반질환, 향후 건강위험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이 필요하다.치료 반응에 따라 급여 지속 여부를 평가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일정 기간 치료 후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체중감량과 비만 관련 건강지표의 개선이 확인되고 치료를 지속할 필요성이 있는 환자에게 지원을 이어가는 방식이다.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한다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혜택을 제공하는 것보다 치료하지 않았을 때 질병 부담이 크고, 치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건강상의 이득이 큰 환자에게 우선적으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현실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다.동시에 약값 자체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비만을 장기간 치료해야 하는 만성질환으로 인정한다면 정부와 보험자, 제약회사 역시 환자가 치료를 지속할 수 있는 가격과 재정 모델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아무리 효과적인 치료제가 있어도 환자가 사용할 수 없다면 의학의 발전이 실제 건강의 개선으로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약이 좋아질수록 의사의 역할은 더 중요치료 접근성만 높인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최근에는 어떤 약이 더 많이 빠지는지, 어디에서 더 저렴하게 처방받을 수 있는지가 중요한 정보처럼 공유되고 비만치료제가 하나의 '다이어트 상품'처럼 소비되기도 한다.그러나 비만치료는 주사제 하나를 처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치료 전에는 비만의 정도와 함께 당뇨병,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지방간질환, 수면무호흡증 등 동반질환을 평가해야 한다. 체중 증가를 유발하는 약물을 복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차성 비만의 가능성은 없는지도 살펴야 한다. 치료를 시작한 뒤에는 체중감량 속도와 부작용뿐 아니라 영양 상태와 체성분의 변화도 관찰해야 한다. 특히 강력한 비만치료제가 등장하면서 근육량과 신체기능의 유지가 더욱 중요해졌다. 체중이 감소할 때 지방만 선택적으로 감소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젊고 건강한 성인의 15kg 감량과 근감소 위험이 높은 고령 환자의 15kg 감량을 같은 치료 결과로 평가할 수 없다. 따라서 적절한 영양 섭취와 신체활동, 특히 근력운동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고령자와 근감소증 위험군에서는 근육량뿐 아니라 근력과 신체기능도 살펴야 한다.체중감량 이후의 관리도 중요하다. 비만치료제를 중단하면 체중이 다시 증가할 수 있다. 몇 개월 동안 약물을 사용해 목표 체중에 도달했다고 해서 치료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감량한 체중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동반질환은 얼마나 개선됐는지, 약물치료를 어떻게 지속하거나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약의 효과가 강력해질수록 단순한 처방보다 제대로 된 관리의 중요성은 오히려 커진다.그래서 환자 곁에서 지속적으로 치료하는 주치의, 가정의학과의 역할이 필요하다.비만은 어느 한 장기의 질환이 아니다.한 명의 비만 환자에게 당뇨병,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지방간질환, 수면무호흡증과 관절질환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 식사와 운동뿐 아니라 수면, 음주, 스트레스, 정신건강, 직업과 가족 환경도 체중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비만은 환자 전체를 바라보고 장기간 관리하는 의료가 필요한 대표적인 만성질환이다.바로 이 지점에서 가정의학과와 일차의료의 역할이 중요하다. 비만 환자의 체중뿐 아니라 혈압, 혈당, 지질, 간 기능, 수면, 신체활동, 흡연과 음주, 정신건강과 복용 약물을 함께 평가하고, 체중이 감소하면서 혈압과 혈당이 개선되면 기존 만성질환 치료도 조정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영양·운동 중재를 강화하거나 다른 전문 분야의 치료로 연결하는 역할도 필요하다.무엇보다 비만 치료는 수개월 만에 끝나는 단기 프로젝트가 아니다. 체중감량과 유지, 때로는 재증가와 재치료까지 이어지는 긴 과정이다. 지속성, 포괄성, 조정성을 핵심 가치로 하는 일차의료가 비만 치료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 이유다.■비만치료제 시장의 성공이 비만 치료의 성공으로 이어지길 새로운 비만치료제가 가져온 변화는 분명 놀랍다.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큰 폭의 체중감량이 약물로 가능해졌고, 비만 관련 합병증을 예방하고 개선할 가능성도 커졌다.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이 단기간에 급격하게 성장한 것도 이러한 변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제는 '얼마나 많이 팔렸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한다. "그 약은 누구에게 사용되고 있는가. 그리고 가장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도달하고 있는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몇 kg을 더 감량하기 위해 최신 치료제를 사용하는 동안, 고도비만에 여러 합병증을 가진 환자가 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치료를 포기한다면 비만치료제 시장의 성공을 곧 비만 치료의 성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진정한 성공은 매출이나 처방 건수가 아니다.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고, 그 결과 당뇨병과 심혈관질환을 비롯한 비만 관련 질환의 부담이 감소하고 더 건강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어야 한다.비만치료제의 시대에 우리 의료가 고민해야 할 다음 과제는 더 강력한 약을 기다리는 것만이 아니다.미용 목적의 사용과 의학적으로 필요한 치료를 구분하고, 제한된 건강보험 재정 안에서도 고도비만과 합병증을 가진 고위험 환자부터 치료 접근성을 높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동시에 일차의료를 중심으로 영양, 운동, 근육, 동반질환과 감량 이후의 체중까지 장기간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좋은 약을 개발하는 것은 의학의 발전이다. 그러나 그 약이 가장 필요한 환자에게 도달하고, 치료의 혜택을 건강한 삶으로 이어가게 만드는 것은 의료의 책임이다.
2026-09-14 05:00:00이슈칼럼

해외부동산 투자, 세금부터 따져야

최근 자산 배분의 다변화와 은퇴 후 상속, 증여세 절세이민 등을 목적으로 미국, 두바이, 싱가포르 등 해외부동산 취득에 관심을 갖는 투자자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부동산 투자는 단순히 한국에서 투자할 주택을 해외에서 매수하는 것으로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대한민국 법령상 중첩적인 신고 의무와 과세 구조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안일하게 접근했다가, 투자 원금에 상당하는 징벌적 과태료나 형사처벌에 직면하는 납세자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성공적인 해외 투자의 첫걸음은 관련 법적 리스크를 철저히 검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싱가포르, 두바이, 말레이시아 등 다양한 해외 부동산 투자 및 절세이민을 역임하는 국제조세전문 회계사로서 해외부동산 투자를 고민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할 사항을 점검해 본다.1. 한국 '거주자'로서 전세계에서 자산, 소득에 대한 신고 및 납세의무한국에서만 생활하였다면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모든 해외투자는 '거주자 비거주자'의 개념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국적과는 관계가 적으며, 주된 생활 근거지가 어디인지를 통해 거주자와 비거주자를 분류한다. 비거주자라면 한국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만 과세되지만, 한국의 거주자로 분류될 경우,① 전세계 모든 소득, 증여 그리고 상속에 대해 한국에 납세의무가 발생하고,② 외국환거래법 및 세법에 따라 해외 자산에 대한 한국정부 신고의무가 발생한다.③ 상기 의무 해태 시. 가산세는 물론 고율의 징벌적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어 해외 투자자산이 있을 경우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2. 한국의 법령상 거주자와 비거주자의 구분해외 자산에 대한 신고와 납세 의무는 오직 납세자가 한국 세법상 '거주자'인 경우에 한하여 적용되며, 한국 '비거주자'의 경우 국내원천소득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납세 의무가 성립한다. 따라서 단순히 해외 투자만을 진행할 경우라면 상관없지만, 만일 향후 상속 증여세 절세를 위한 이민까지 염두에 둔 경우라면 자산의 투자, 운영, 처분 시점에 본인의 거주자 비거주자 여부를 정교하게 예측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한다.소득세법은 '거주자'를 "국내에 주소를 두거나 183일 이상의 거소를 둔 개인을 의미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어 마치 납세자가 183일 이상만 해외에 거주하면 비거주자로 자동 판정받아 각종 절세가 가능한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실제 상담자 중 "나는 해외 영주권을 가졌으니 비거주자다" 혹은 "외국 국적을 가졌으니 안전하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거주성 판정은 국적이나 영주권 보유 여부를 불문하며, 관련 판례, 조세심판례 등을 볼 때 거주자 비거주자 여부는 국내에서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의 유무, 국내 소재 자산의 규모, 직업, 국내 체류 일수 등 "생활관계의 객관적 실질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정"하기에 국제조세전문가의 조력 없는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3. 해외 주택은 세법상 주택 수 산정에 포함되지 않는다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국내 거주자가 해외부동산을 취득한 경우, 해당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각종 소득은 한국 국세청에 신고 및 납세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해외부동산을 취득하여 이를 타인에게 임대하고 월세 등의 해외부동산 임대소득(투자운용 소득)이 발생하는 경우, 해당 임대소득을 매년 5월 종합소득세 신고 시 국내에서 발생한 소득과 전액 합산하여 신고·납부하여야 한다.일견 해외 이민 계획이 없다면 해외부동산 투자는 국내 투자 대비 아무런 실익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해외 부동산 중 주택 투자의 가장 큰 장점은 대한민국 세법상 주택 수 산정에서 전면 제외된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세법상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기에, 규제지역 내 주택 양도 시 최대 82.5%(※)에 달하는 다주택으로 인한 양도소득세 중과세에서 자유롭다는 세무 메리트가 존재한다.※ 부동산 양도소득세율 45% + 3주택 중과세율 30%(2주택의 경우 20%) + 지방세 7.5%아울러 비록 대한민국 거주자 신분일 때 매수하신 해외부동산이라 하더라도, 향후 실제로 해외 이주(이민) 등으로 대한민국 세법상 '비거주자'로 전환된다면, 그 전환일 이후 발생하는 해당 해외부동산의 월세 임대수익 및 처분(양도) 시 발생하는 양도소득세에 대한 한국 국세청의 과세권(납세의무)은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이에 더하여 국외 자산에 대한 증여세 및 상속세 납세의무 역시 원천적으로 면제되므로, 오직 그 부동산이 소재한 국가의 세법에 따라서만 신고·납부 절차를 종결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와 같은 조세피난처로 이민을 가는 경우라면, 현지의 부동산 취득세 성격인 4%의 토지청(DLD) 수수료를 제외하고는 개인 차원의 임대소득세, 양도소득세, 상속세 및 증여세 등의 모든 세부담이 실질적으로 발생하지 않아 합법적인 글로벌 절세가 가능하다.4. 해외부동산 신고의무와 징벌적 과태료해외부동산을 취득할 경우, 두 가지 법령에 따른 신고 의무를 동시에 준수해야 한다.첫째, 「외국환거래법」에 따라 취득 자금 송금 전 사전 신고(수리) 및 취득·보유·처분 단계별 사후 보고를 지정외국환은행에 이행해야 한다. 이를 누락할 경우 건별 위반 금액의 2%~4%에 해당하는 과태료가 부과되며, 이는 자본거래 미신고의 경우 최대 1억 원, 사후 보고의무 위반 등은 최대 5,000만 원을 법정 최고 한도로 하여 부과된다.둘째, 이와는 별개로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국조법)」에 따라 매년 취득·보유·투자운용 및 처분 명세서를 관할 세무서에 제출해야 한다. 세법상 명세서 제출을 누락하거나 허위로 제출할 경우, 취득·처분가액의 10% 이하에 상당하는 자료 미제출 과태료가 부과되며, 이는 개인 기준 물건별 최대 1억 원을 최고 상한선으로 제한된다.무엇보다 강력한 제재는 '취득자금 출처 소명 위반 과태료'이다. 국세청이 미신고 해외부동산을 포착하여 자금 출처 소명을 요구했으나 이를 입증하지 못하거나 거짓으로 소명하는 경우, 미소명 금액의 20%에 상당하는 과태료가 별도의 법정 한도(상한선) 없이 무제한으로 추가 부과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5. 해외부동산 투자는 매물이 아니라 국제조세전문가를 먼저 찾아야 하는 이유해외부동산 투자업체나 이주·이민 알선 대행업체들은 해외부동산의 분양, 매매, 중개에 따른 수수료를 수취하는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어, 투자자는 부동산 투자 이후 관련 리스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은 경우가 많다.실제 말레이시아 이민을 준비하며 현지 부동산 중개인의 그릇된 안내를 신뢰하였다가 고액의 벌금이 부과된 판례가 확인되고 있어 "은퇴 비자를 받았으니 신고가 면제된다", "해외 현지 계좌에 직접 송금하면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식의 검증되지 않은 풍문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해서는 안 된다. 국제조세와 외환 이슈가 공존하는 해외부동산 투자 및 절세이민은, 의사결정 초기 단계부터 풍부한 실무 경험을 갖춘 세무전문가와 함께 가족의 생애주기에 맞춘 절세 플랜을 시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점은 지속적으로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2026-09-07 05:00:00이슈칼럼

비만수술 후에도 계속되는 식단관리(8편)

[메디칼타임즈=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김용진 센터장] 음식을 크기로 기억해주세요. 비만대사수술 후에도 식단 관리는 계속됩니다.수술 직후에는 강력한 동기부여와 작아진 위 용적으로 인해 누구나 조심스럽게 식단을 잘 관리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우리 몸의 강력한 식욕 호르몬이 다시 작동하면서 일탈이 시작됩니다."선생님, 돌아서면 배가 고파요"외래에서 흔히 듣는 호소입니다. 전문 용어로 '그레이징(Grazing)'이라 부르는데, 식사 시간이 아닌데도 하루 종일 조금씩 계속 음식을 섭취하는 습관을 말합니다.그레이징 습관이 잡힌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매 끼니 본인의 적정량을 정확히 기억하고 식사하느냐'에 있습니다. 사실 비만대사수술을 전공한 필자가 외래에서 환자들과 가장 많이 나누는 대화도 수술 자체보다는 그레이징을 극복하기 위한 식습관 이야기입니다.음식을 종류가 아닌 '크기'로 기억하세요수술 후 3개월을 넘어서면 식단이 다양해집니다. 지겹던 단백질 쉐이크에서 벗어나 평소 좋아하던 일반식으로 급격히 넘어가게 되죠. 이때 환자분들에게 강조하는 핵심 팁이 있습니다. 가족들과 삼겹살을 먹으러 간다면 지방이 적은 목살을 선택하시고, 고기를 불판에서 바로 집어 드시는 대신 구워진 고기 중 본인이 먹을 수 있는 적정량만큼만 접시에 먼저 덜어두고 식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이는 수술 후 훌륭한 식습관을 유지하는 환자분들에게서 직접 배운 지혜이자 실제로 의학 교과서에서도 권장하는 교육 지침입니다.나만의 적정량을 눈으로 저장하기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음식의 종류는 생각보다 한정되어 있습니다. 자주 먹는 음식 위주로 '배가 부르기 직전까지의 양'을 눈으로 보고 그 크기를 기억해 두는 습관, 이것이야말로 그레이징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수술까지 받았으니 이제는 신경 쓰지 않아도 저절로 식이 조절이 되겠지" 하고 기대하는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몸의 호르몬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비만을 '강력한 만성 재발성 질환'으로 정의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성공적인 체중 감량과 요요 없는 정착은 내 몸을 이해하고, 매 끼니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부터 내가 먹는 음식의 '적정 크기'를 눈에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2026-08-31 05:00:00이슈칼럼

CKM 시대의 지질관리

임상순환기학회 류재춘 고문·전 회장비만, 인슐린저항성, 제2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고혈압, 만성콩팥병, 대사기능이상 지방간질환(MASLD), 심혈관질환은 진료과별로 나뉘어 보이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하나의 연속된 질병 경로를 이룬다. 미국심장협회(AHA)가 제시한 심혈관-신장-대사(Cardiovascular-Kidney-Metabolic, CKM) 증후군은 이러한 상호연결성을 체계화한 개념이다. 핵심은 심장, 신장, 대사질환이 상호작용하며 생애 전반에 걸쳐 위험을 누적시키므로, 임상질환이 발생한 뒤 개별 장기를 치료하는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대한임상순환기학회 심장대사의학연구회는 최근 심장대사증후군저널(Cardiometab Syndr J)에 발표한 종설 논문에서 CKM 질환 관리의 중요한 축으로 아포지단백질 B(apolipoprotein B, apoB) 중심의 지질평가를 제안했다. 이는 LDL-콜레스테롤(LDL-C)의 중요성을 낮추자는 주장이 아니라, LDL-C만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죽상경화성 지단백질 부담을 보완적으로 평가하자는 것이다.LDL-C는 LDL 입자 내 콜레스테롤 질량을 반영한다. 반면 apoB는 LDL, 중간밀도지단백질, 초저밀도지단백질 및 잔여지단백질 등 잠재적으로 죽상경화를 유발하는 지단백질 입자당 하나씩 존재하므로, 혈관벽에 침투할 수 있는 입자 수를 비교적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동맥경화는 이러한 apoB 함유 지단백질이 내피 아래 공간으로 들어가 머무르고 축적되는 데서 시작되며, 뒤이어 산화·변형, 대식세포 활성화, 염증반응, 죽상판 형성과 진행이 이어진다.문제는 LDL-C와 apoB가 항상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만, 인슐린저항성, 제2형 당뇨병, 고중성지방혈증, 만성콩팥병, MASLD 환자에서는 작은 콜레스테롤 저부하 LDL 입자와 중성지방이 풍부한 잔여지단백질이 증가해 LDL-C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지만 apoB가 상승하는 '불일치'가 나타날 수 있다. 이때 LDL-C만 보면 위험이 낮아 보이지만, 실제 혈관벽에 들어갈 수 있는 죽상경화 유발 입자 수는 많을 수 있다.최근 발표된 2026년 미국 ACC/AHA 이상지질혈증 가이드라인은 이러한 임상적 필요성을 반영해 apoB의 활용 범위를 확대했다. ASCVD, CKM 증후군, 제2형 당뇨병 또는 고중성지방혈증이 있으면서 LDL-C와 비-HDL-콜레스테롤(non-HDL-C) 목표를 달성한 환자에서 apoB 측정은 잔여 ASCVD 위험을 평가하고 치료 강화 여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치료 전 환자에서도 위험평가를 정교화하거나 유전성 지질질환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apoB 측정을 고려할 수 있다.심장대사의학연구회는 AHA의 CKM 단계 0~4 분류를 참고해 국제 지질관리 원칙을 국내 진료에 적용할 수 있는 예시적 틀을 제시했다.위험인자는 있으나 장기손상이 없는 초기 단계에서는 LDL-C를 기저치 대비 35% 이상 낮추고 apoB를 90 mg/dL 미만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MASLD나 초기 장기손상이 동반된 단계에서는 LDL-C를 50% 이상 낮추고 70 mg/dL 미만으로 관리하며, apoB는 80 mg/dL 미만을 목표로 스타틴 치료를 강화하고 에제티미브 병용을 검토할 수 있다.잠재성 ASCVD 또는 B단계 심부전 환자에서는 apoB 65 mg/dL 미만을, 확진 ASCVD 또는 C단계 심부전 환자에서는 apoB 55 mg/dL 미만을 고려하는 고강도 치료전략이 제시됐다. 다만 이는 국제 권고의 원칙을 CKM 단계와 연결한 개념적·예시적 제안이며, 국내의 공식 CKM 단계별 apoB 치료목표는 아니다. 실제 처방은 국내 진료지침, 환자의 절대 위험도, 동반질환, 치료 반응, 약제 접근성을 바탕으로 개별화해야 한다.국내 일차의료 현장에서는 apoB 검사 접근성과 비용 문제가 여전히 장벽이다. apoB 검사가 가능하지 않거나 비급여 부담이 큰 경우, 비-HDL-C는 유용한 대안이다. 비-HDL-C는 총콜레스테롤에서 HDL-C를 뺀 값으로, LDL-C뿐 아니라 중성지방이 풍부한 잔여지단백질에 포함된 콜레스테롤까지 반영한다. 특히 고중성지방혈증과 대사이상이 동반된 환자에서 LDL-C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CKM 관리의 목표는 단일 지질수치의 단기적 정상화가 아니다. 경미한 알부민뇨도 전신 혈관·대사 손상의 신호로 평가하고, 혈압, 체중, 혈당, 지질, 신장기능을 지속적으로 함께 관리해야 한다. 환자에 따라 심장과 신장 보호효과가 확인된 SGLT2 억제제나 GLP-1 수용체 작용제의 조기 활용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결국 CKM 시대의 일차의료는 위험인자를 나열하는 진료가 아니라, 위험 노출의 궤적을 바꾸는 진료여야 한다. LDL-C 중심 치료의 확고한 근거 위에 apoB 또는 비-HDL-C를 보완적으로 활용한다면, 대사이상 환자에서 실제 죽상경화성 지단백질 부담을 더 정확히 파악하고 치료적 타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일차의료가 진료 연속성을 바탕으로 CKM 통합관리의 중심 플랫폼 역할을 할 때, 심혈관사건과 장기손상을 보다 이른 단계에서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2026-08-24 05:00:00이슈칼럼

집에서 하던 석션도 무면허 의료행위인가

[메디칼타임즈=손문호 위원]대법원이 병원에서 간병인이 시행한 가래 흡인, 즉 석션을 의료행위로 판단했다. 석션을 시행한 간병인에게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간병인에게 석션을 지시하고 교육한 의사에게는 무면허 의료행위 공모 책임을 인정한 벌금형의 선고유예가 확정됐다.사건은 뇌출혈로 기관절개술을 받은 환자에게 간병인이 석션을 시행하다 발생했다. 간병인은 흡인 카테터를 삽입한 상태에서 잠이 들었고, 환자는 기관 손상과 저산소증으로 사망했다. 법원은 석션이 호흡곤란과 감염을 예방하는 의료행위이며, 비의료인이 시행할 경우 위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환자가 사망한 결과는 무겁다. 카테터를 꽂아 놓은 채 잠들고 환자의 상태를 관찰하지 않았다면 업무상과실치사 책임을 엄정하게 물어야 한다. 그러나 석션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다시 무면허 의료행위로 처벌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는 별개의 문제다.기관절개 환자가 퇴원할 때 의료진은 보호자에게 석션 방법을 교육한다. 보호자는 집에서 환자의 가래가 차면 직접 석션을 시행한다. 그렇다면 집에서 보호자가 하던 석션도 무면허 의료행위인가.석션은 위험이 없는 단순한 생활행위는 아니다. 잘못 시행하면 출혈, 점막 손상, 감염, 저산소증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 기관절개 환자에게 석션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반복되는 생활 유지형 처치이기도 하다. 모든 석션을 수술이나 마취와 같은 고도의 의료행위로 취급하는 것은 의료현실과 맞지 않는다.이번 사건에서 살펴야 할 핵심은 석션 자체보다 구체적인 과실이다. 흡인압과 삽입 깊이를 지켰는지, 시행시간을 초과했는지, 환자의 산소포화도와 호흡상태를 관찰했는지, 이상징후가 발생했을 때 즉시 보고했는지를 따져야 한다.또한 간병인이 독자적으로 석션을 시행한 것인지, 의사나 간호사의 지시와 병원의 관행 아래 수행한 것인지도 구분해야 한다. 간호사가 간병인에게 석션을 맡겼다면 교육과 관리·감독 책임을 물어야 하고, 병원이 인력 부족을 이유로 간호업무를 간병인에게 전가했다면 조직적 책임도 함께 따져야 한다.기사에 따르면 법원도 병원의 만성적 인력 부족과 구조적 한계, 간병인이나 보호자가 석션을 시행해 온 관행을 양형에 반영했다. 그렇다면 사고가 발생한 뒤 간병인과 의사 개인만 처벌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관행을 만들어 낸 간호인력과 업무분담 구조부터 바로잡아야 한다.의사의 책임도 무한정 확대해서는 안 된다. 의사는 치료방침과 위험요인, 석션 필요성을 판단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간호사와 간병인이 수행하는 모든 반복적 처치에 직접 입회하고 일일이 감독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간호사의 감독 책임과 간병인의 시행상 과실까지 모두 의사에게 포괄적으로 귀속시키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이번 판결 이후 병원들은 간병인의 석션을 전면 금지하는 안내문을 게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금지문을 붙인다고 환자의 가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석션을 의료인만 시행하도록 하려면 그에 맞는 간호인력과 수가를 국가가 먼저 보장해야 한다.필요한 것은 처벌 확대가 아니라 기준의 정립이다. 급성기 환자나 산소포화도가 불안정한 환자의 고위험 석션은 의료인이 직접 시행해야 한다. 반면 상태가 안정된 장기 기관절개 환자의 반복적 석션은 일정한 교육과 술기평가를 이수한 보호자나 간병인이 의료진의 관리 아래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환자 사망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과실을 엄정하게 물어야 한다. 그러나 의료기관의 지시와 교육 아래 이루어진 반복적 간호·간병행위까지 무조건 무면허 의료행위로 확대해 중첩 처벌하는 것은 과도할 수 있다.집에서 보호자가 하던 석션과 병원에서 간병인이 하던 석션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달라야 하는 것은 처벌 여부가 아니라 교육과 감독의 수준이다.환자 안전은 금지와 처벌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현실에 맞는 인력, 교육, 책임체계를 마련할 때 비로소 지켜질 수 있다.
2026-08-10 05:00:00이슈칼럼

의료와 노인장기요양보험은 하나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유승호 공보이사환자의 삶 속에서는 의료도 노인장기요양보험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외래 진료실에서 우리는 환자의 혈압을 재고, 약을 처방하고, 검사 결과를 설명한다. 의학적으로는 최선의 진료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이 환자는 집에 가서 정말 이 약을 잘 드실까?''혼자 화장실은 갈 수 있을까?''최근에도 넘어지지는 않았을까?''식사는 제대로 하고 계실까?''집에서 누가 이분을 돌보고 있을까?'놀랍게도 이러한 질문의 상당수는 의료기관 안에서는 답을 얻기 어렵다.의사는 환자를 진료하지만, 환자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만나는 10분의 진료는 환자의 하루 중 극히 일부일 뿐이며,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지역사회에서 보내게 된다. 그 시간 동안 약이 제대로 복용되는지,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는지, 거동이 점점 불편해지는지, 낙상의 위험은 없는지와 같은 문제는 건강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지만 의료기관에서는 쉽게 확인하기 어렵다.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의료 역시 급성질환 중심에서 만성질환 관리와 기능 유지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의사의 관심은 여전히 병원 안에 머물러 있다. 진단과 처방, 검사와 시술은 익숙하지만, 환자가 병원을 나간 이후의 삶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두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지금까지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의료와 돌봄을 서로 다른 영역으로 구분해 발전해 왔다. 의료는 건강보험이, 돌봄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담당하면서 두 제도는 자연스럽게 분리되었고, 의과대학과 수련 과정에서도 장기요양보험을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는 거의 없었다. 많은 의사가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복지'의 영역으로만 인식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하지만 초고령사회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이 지점에서 우리가 다시 주목해야 할 제도가 있다. 바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이다.노인장기요양보험은 흔히 요양원이나 요양보호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의료와는 별개의 복지제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 장기요양보험은 의료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어르신의 일상을 지탱하는 제도이다.주간보호센터에서는 어르신이 식사를 제대로 하는지, 보행 능력이 저하되고 있는지, 인지기능에 변화는 없는지, 평소보다 기력이 떨어지지는 않았는지를 매일 관찰한다. 방문요양 현장에서는 복약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욕창이나 피부 이상은 없는지, 생활환경은 안전한지, 보호자의 돌봄 부담은 어떠한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확인한다.이러한 정보는 의사가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정보이기도 하다.혈압 수치 하나보다 최근 한 달 동안 두 번 넘어졌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경우가 있다. 혈당 수치보다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는 정보가 치료 방향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검사 결과는 정상이지만 활동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사실이 중대한 질환의 신호일 수도 있다. 이러한 변화는 진료실보다 장기요양 현장에서 먼저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우리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는 하루 10분이지만, 장기요양 현장에서는 하루 종일 환자의 삶을 마주한다. 의료와 장기요양이 서로 단절되어 있다면, 환자의 건강관리 역시 단절될 수밖에 없다.앞으로 의사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질병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환자가 실제 생활 속에서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돌봄체계와 연결하고, 장기요양서비스를 이해하며, 필요한 자원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 역시 일차의료의 중요한 역할이 될 것이다.노인장기요양보험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환자의 상태에 맞는 서비스를 안내하고, 장기요양기관과 소통하며, 돌봄 현장에서 얻어진 정보를 진료에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의료의 질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 정책 역시 이러한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앞으로는 의료와 돌봄이 각각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팀으로 환자를 지원하는 체계가 점점 중요해질 것이다. 그 중심에는 지역사회를 가장 잘 이해하는 일차의료가 있어야 한다.의료와 돌봄은 서로 다른 영역이 아니다. 환자에게는 하나의 삶일 뿐이다.좋은 의사는 질병만 잘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가 살아가는 환경과 돌봄까지 함께 이해하는 의사일 것이다. 초고령사회에서 의료의 경쟁력은 더 많은 검사를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삶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지역사회 자원과 연결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이제는 의료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의료를 완성하는 돌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2026-08-10 05:00:00이슈칼럼

의료사고 설명의무…신뢰 디딤돌 되려면

서울특별시의사회 노복균 법제이사최근 의료계를 뜨겁게 달군 '의료사고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의료분쟁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027년 5월 27일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있다.고위험 필수의료 분야의 형사책임 완화와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 등 진료환경 안정화를 위한 여러 장치가 마련되었지만, 일선 개원가에서 가장 피부로 느끼는 변화 중 하나는 단연 '중대 의료사고 발생 시 7일 이내 설명의무 법제화'일 것이다.사망, 의식불명, 중증 장애 등 예상치 못한 악결과가 발생했을 때, 의료기관 개설자와 보건의료인은 사고를 인지한 지 7일 이내에 경위를 의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마주하는 임상의로서 솔직한 첫 심정은 우려와 부담이다. 예기치 못한 결과로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법적 기한에 쫓겨 설명을 강제당하는 것이 자칫 또 다른 분쟁의 불씨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기 때문이다.그러나 우리는 이제 이 법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완전히 전환해야 한다. 이를 의료인에 대한 또 하나의 '법적 규제나 강제 처벌'로만 받아들이고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데 급급해서는 안 된다.의료사고 발생 시 경위를 명확히 듣는 것은 환자의 당연한 '기본권'이자 알 권리다. 환자가 겪는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는 악결과 그 자체만큼이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답답함과 소외감이다. 따라서 이번 법제화는 의사에게 규제의 족쇄를 채운 것이 아니라, 환자의 정당한 기본권을 보장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와 불신을 예방하는 소통의 채널이 열린 것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오히려 의료계가 이를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야 한다. 마침 이번 개정법에는 의료계가 오랜 기간 요구해 온 중요한 방어장치인 이른바 '사과법(Apology Law)'이 명문화되었다. 설명 과정에서 의료진이 표명한 위로, 공감, 유감의 표현은 향후 민·형사 재판에서 책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도록 법적으로 보호해 준다.그동안 많은 의사들이 환자에게 도의적인 미안함이나 공감을 전하고 싶어도 법정에서 과실 자백으로 악용될까 봐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환자 측에게 "잘못을 감추려 한다"는 오해를 사 소송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었다.2027년 5월 이후부터는 법적 족쇄에 대한 두려움 없이,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의학적 사실을 당당하고 능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미국의 여러 주와 캐나다 등지에서 사과법 도입 이후 의료 소송률이 눈에 띄게 감소한 원동력도 바로 이러한 '능동적 소통'에 있었다.법이 시행되기까지 남은 기간 동안, 우리 집행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하위법령을 정교하게 다듬는 데 총력을 다할 것이다. 원인 불명의 악결과를 무조건 7일 이내에 밝혀내라는 식의 경직된 운영이 되지 않도록 '인지한 날'의 기준을 합리화하고, 유감 표현의 증거능력 배제 범위를 시행령 단계에서 더욱 명확히 확립해야 한다.의료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최선을 다하더라도 원치 않는 결과는 발생할 수 있다. 분쟁의 갈림길에서 갈등을 완화하는 것은 결국 법적 강제력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소통과 이를 통한 라포(신뢰 관계)의 회복이다.새로운 제도를 환자의 기본권을 존중하는 품격 있는 의료계로 거듭나는 기회로 삼자. 규제에 끌려가는 것이 아닌, 전문가 집단으로서 능동적으로 환자의 손을 먼저 잡는 '진료실 신뢰의 선순환'을 우리가 직접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2026-08-03 05:30:00이슈칼럼

발표만 남은 의료개혁, 그 침묵의 민낯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마상혁 고문결론부터 말한다. 지금 정부가 말하는 '성공'은 공문과 브리핑 위에만 존재한다. 대통령은 만족하고, 장관은 무리 없이 진행 중이라 답했으나, 정작 그 정책이 작동해야 할 진료 현장은 아수라장이다. 의료계 어느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다. 이것은 합의가 아니라 일방적 선언이며,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개혁의 성과가 아니라 개혁이라 이름 붙인 착시다.지난 7월 16일 청와대 영빈관 업무보고에서 대통령은 "의료개혁은 지금 별 무리 없이 잘 진행되고 있느냐"고 물었고, 스스로 답을 내렸다. "엄청난 사회적 의제였는데 조용하게 진행되니까 안 하는 것 같다. 잘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정책 판단의 근본적 오류가 있다.조용함을 성공의 지표로 삼는 순간, 침묵이 곧 붕괴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친다. 응급실을 찾지 못해 부산에서 제주까지 실려 가는 환자, 돌아오지 않는 전공의, 개원가로 이탈하는 교수. 이 붕괴는 소리 내지 않고 진행된다. 임상에서 가장 위험한 환자는 비명을 지르는 환자가 아니라, 이미 반응이 사라진 환자다.비대면 진료를 두고 대통령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했다. 잘했다"고 평가한 대목에 이르면 우려는 더 깊어진다. 제도의 전면화가 최고 정책결정권자조차 "모르는 사이에" 이뤄졌다는 진술 자체가, 역설적으로 거버넌스 부재를 증언한다.원인 불명의 다발성 진행. 지금은 비대면 진료의 성패를 자축할 때가 아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는 처치의 순서가 있다. 대량 출혈 앞에서 미용 봉합을 논하지 않는 것처럼, 응급·필수·지역의료의 붕괴라는 활력징후부터 잡는 것이 먼저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대응에는 그 순서가 보이지 않는다.문제 해결의 착시는 조직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위원회가 생기고 시민패널 300명이 소집되면 무언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국민에게 심는다. 그러나 새로 만든 기구는 대체로 의결기구가 아니라 권고기구다. 권고는 정책이 아니며, 공론화는 실행이 아니다. 조직도가 늘어난다고 현장의 인력이 채워지지 않는다. 정작 이 모든 구조 어디에도, 의료를 실제로 공급하는 당사자와의 실질적 합의는 빠져 있다.그리고 여기서 가장 분명히 짚어야 할 지점이 있다. 정부는 거버넌스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취지로 말한다. 동의할 수 없다. 공문 몇 장을 발송한 것을 소통이라 부를 수는 없다. 거버넌스는 발신함이 아니다. 그것은 이해당사자가 같은 테이블에서 이견을 조정하고, 반대를 설득하고, 책임을 나누는 '과정'의 이름이다. 통보를 소통으로, 접수를 합의로 치환하는 순간 거버넌스라는 단어는 알맹이를 잃는다. 소통했다는 기록은 남았으되, 소통은 없었다.이런 방식의 정책 수행이 향하는 종착지는 명백하다. 그 청구서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아이가 열이 나도 갈 병원을 찾지 못하고, 밤에 쓰러진 환자가 받아줄 응급실을 찾아 도로 위를 떠도는 나라. 우리는 지금 병원 가기 힘든 나라를 향해 조용히, 아주 조용히 걸어가고 있다.발표는 정책이 아니다. 조용한 것은 성공이 아니라, 때로는 이미 숨이 멎었다는 뜻이다.
2026-07-29 05:00:00이슈칼럼

강청희 건보공단 이사장에 거는 기대

[메디칼타임즈=손문호 칼럼위원]강청희 제11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취임했다. 흉부외과 의사로 의료현장을 경험했고,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과 건강보험공단 급여상임이사, 보건소장과 공공기관장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의료공급자와 보험자, 중앙과 지역의 보건행정을 모두 경험한 드문 경력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강 이사장은 취임사에서 건강보험의 존재 이유부터 서비스와 조직, 재정과 운영체계를 국민 중심으로 다시 설계하는 '리부트 건강보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건강보험을 단순히 환자가 병원을 이용한 뒤 진료비를 보장하는 제도에 머물게 하지 않고, 질병 예방과 건강 유지, 건강한 노후와 돌봄까지 책임지는 생애주기 건강보장체계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또한,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연결해 의료·요양·돌봄·복지서비스가 분절되지 않는 '국민 중심 건강복지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건강보험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질병 위험을 예측하고, 건강 이상 신호를 조기에 발견하며, 개인별 맞춤형 건강관리와 재정 누수 관리까지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방향은 옳다. 초고령사회에서 건강보험이 치료비 지급에만 머물 수는 없다. 질병이 발생한 뒤 치료하는 것보다 예방하고 조기에 발견하며, 치료 이후 돌봄까지 연계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의료와 요양, 돌봄이 서로 단절돼 국민이 여러 기관을 전전하는 현실도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그러나 아무리 좋은 구상이라도 의료현장과 분리돼 추진된다면 성공하기 어렵다.건강보험공단은 보험자이지 의료기관이 아니다. 공단이 보유한 빅데이터와 AI는 질병 위험을 알려주고 필요한 서비스를 연결하는 데 유용할 수 있지만, 환자의 상태를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진단하며 치료하는 주체는 의료인이다. 공단이 예방과 건강관리를 직접 수행하는 거대한 행정 플랫폼으로 확장할 경우, 기존 의료기관과 역할이 중복되고 일차의료를 오히려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건강복지플랫폼'은 공단이 모든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체계가 아니라, 국민과 의료기관, 요양기관, 돌봄기관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기반이 돼야 한다. 특히 동네의원과 지역 의료기관이 만성질환 관리와 예방의료의 중심이 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일차의료를 배제한 예방관리 체계는 지속될 수 없다.AI 활용의 방향도 중요하다.강 이사장은 AI를 이용해 재정 누수와 부당청구를 정밀하게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위해 부당청구를 막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AI가 의료기관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도구로만 활용돼서는 안 된다.현재 의료기관은 복잡하고 자주 변경되는 급여기준, 청구심사 규정, 자료 제출과 설명 의무로 상당한 행정부담을 안고 있다. 고의적인 부당청구와 복잡한 기준 때문에 발생한 단순 착오를 구분하지 않은 채 모두 같은 방식으로 다루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AI는 부당청구 적발에 앞서 의료기관이 급여기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청구 오류를 예방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진료 단계에서 적용 가능한 급여기준을 안내하고, 청구 전에 오류 가능성을 알려주며, 반복적인 행정업무를 자동화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조사와 처벌의 AI가 아니라 신뢰와 예방의 AI가 먼저여야 한다.재정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방법 역시 단순한 지출 억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강 이사장은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필요한 국민에게 더 두텁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원칙에 동의한다. 다만 무엇이 불필요하고 무엇이 필요한 의료인지는 행정편의나 총진료비 규모가 아니라 의학적 근거와 환자의 상태를 토대로 판단해야 한다.필수의료와 일차의료가 원가에도 못 미치는 보상으로 위축되는 상황에서 의료기관의 진료비만 계속 억제하면 건강보험 재정은 단기적으로 절감될지 모르지만, 의료공급 기반은 무너질 수 있다. 의료기관이 사라진 뒤에는 보험이 있어도 진료받을 곳이 없다.건강보험 재정은 적게 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제대로 쓰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 수술·응급·분만·소아·중환자 진료처럼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에는 충분히 보상하고, 의학적 근거가 부족한 과잉 이용과 불합리한 지출은 정교하게 관리해야 한다.강 이사장에게는 조직운영 능력도 요구된다.건강보험공단은 전국 조직과 방대한 인력을 가진 거대 공공기관이다. 급여상임이사로 특정 분야를 담당하는 것과 기관 전체를 이끄는 이사장의 역할은 다르다. 노동조합과 내부 구성원의 의견을 존중하되, 최종 판단 기준은 공단 내부의 이해가 아니라 국민과 가입자의 이익이어야 한다.대화하되 끌려가지 않고, 결단하되 독선적이지 않은 리더십이 필요하다. 과거의 세평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제는 이사장으로서 보여주는 성과로 평가받아야 한다.강청희 이사장이 내세운 '리부트 건강보험'은 단순한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 건강보험 제도의 역할을 확대하면서도 의료현장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AI를 감시보다 지원에 활용하며, 재정 절감과 필수의료 보상을 균형 있게 추진해야 한다.의사 출신 이사장이 의료계의 이해만을 대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의료현장을 경험한 수장이라면 잘못된 급여정책과 과도한 행정규제가 환자와 의료기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현실을 공단과 정부에 솔직히 전달할 책임이 있다.강 이사장이 건강보험을 넘어 건강복지플랫폼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 플랫폼이 성공하려면 공단이 중심에 서기보다 국민과 의료현장을 연결해야 한다.건강보험의 리부트는 시스템의 확장이 아니라 신뢰의 회복에서 시작돼야 한다.강청희 이사장의 3년이 공단의 역할만 확대하는 시간이 아니라, 국민과 의료계가 함께 신뢰할 수 있는 건강보험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2026-07-27 05:00:00이슈칼럼

미래를 준비하는 AI 의사 ③

[메디칼타임즈=손문호 위원]AI 혁명은 전문지식의 독점 구조를 흔들고 있다. 이제 환자는 의사를 만나기 전 이미 자신의 증상과 검사 결과를 AI에게 묻고, 질병의 가능성과 치료 방법을 어느 정도 이해한 상태로 진료실에 들어온다. 의사의 권위가 단순한 지식의 보유에서 나오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그러나 이것이 의사의 시대가 끝났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지식의 독점이 약해질수록 의사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더 분명해진다. AI가 제시한 정보를 검증하고, 환자의 상황에 맞게 해석하고, 불확실성 속에서 판단하며, 그 판단에 책임지는 능력이다. AI 시대의 의사는 지식의 문지기가 아니라 판단의 책임자여야 한다.그런데 이제 이 변화는 진료실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AI가 지식의 장벽을 낮추고, 비대면진료가 공간의 장벽을 낮추면서 의사의 진료실은 국경 밖으로 확장되고 있다. 앞으로의 의료는 병원 안에서 환자를 기다리는 방식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환자는 화면을 통해 의사를 만나고, 의사는 AI의 도움을 받아 언어와 기록, 설명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내국인 비대면진료는 이미 시범사업을 거쳐 왔고, 의료법 개정에 따라 2026년 12월 제도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또한 2026년 5월 26일 공포된 의료해외진출법 개정안은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되므로, 2027년 5월 이후에는 외국인환자에 대한 초진을 포함한 비대면진료의 제도적 길이 열리게 된다. 이는 단순히 진료 방식이 하나 더 늘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료가 국내 진료권역을 넘어 세계 환자와 연결될 수 있는 제도적 통로가 열리는 것이다.그동안 외국인환자 진료는 대체로 환자가 한국에 입국한 뒤 시작되었다. 진료 전 상담은 제한적이었고, 귀국 후 사후관리는 단절되기 쉬웠다. 의료관광은 있었지만, 연속적 의료서비스라고 부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환자가 한국에 머무르는 짧은 기간 안에 검사, 진단, 치료, 설명, 회복계획까지 압축적으로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이다.외국인환자 초진 비대면진료가 제도화되면 이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 해외 환자는 한국에 오기 전 한국의사와 먼저 상담할 수 있다. 기존 검사자료를 보내고, 필요한 추가검사를 안내받고, 치료 가능성과 위험성을 설명받을 수 있다. 한국 방문 여부를 더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고, 의료기관도 환자 상태를 사전에 파악해 더 준비된 진료를 제공할 수 있다.치료 후에도 변화는 크다. 외국인환자는 귀국 후에도 한국의사에게 경과를 확인받고, 재활과 약물 복용, 생활관리, 추가 치료 필요성을 상담할 수 있다. 한국에서 받은 치료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전상담과 본진료, 사후관리로 이어지는 하나의 의료서비스로 확장되는 것이다.AI는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도구가 된다. 외국인환자 진료에서 가장 큰 장벽은 언어와 기록, 의료문화의 차이다. 환자의 과거 진료기록은 국가마다 형식이 다르고, 검사 결과의 표현도 다르며, 환자가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는 방식도 다르다. AI는 이러한 정보를 번역하고 요약하며, 의사가 필요한 핵심 정보를 빠르게 파악하도록 도울 수 있다.물론 의료에서 번역은 단순한 언어 변환이 아니다. "통증이 있다"는 말도 문화권에 따라 표현이 다르고, 치료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도 다르다. AI는 단어를 번역할 수 있지만, 환자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의사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AI가 언어의 장벽을 낮춘다면, 의사는 환자의 맥락을 읽어야 한다. AI가 기록을 요약한다면, 의사는 그 요약이 임상적으로 타당한지 검증해야 한다.한국의료는 이미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건강검진, 암 치료, 척추·관절, 재활, 성형, 피부, 치과, 난임, 만성질환 관리 등 여러 영역에서 한국 의료기관의 수준은 국제적으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AI 번역, 의료기록 요약, 원격 모니터링, 맞춤형 환자 교육, 비대면 사후관리 시스템이 결합되면 한국의료의 경쟁력은 더 넓은 시장으로 확장될 수 있다.특히 개원의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과거 글로벌 의료는 대형병원 중심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AI와 비대면진료가 결합되면 특정 전문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개원의도 해외 환자와 연결될 수 있다. 만성 통증, 재활, 피부질환, 대사질환, 생활습관 관리, 수술 전후 상담, 세컨드 오피니언 같은 영역은 AI 기반 설명자료와 비대면 추적관리가 결합될 때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진료 모델이 될 수 있다.미래의 한국의사는 국내 환자만 보는 전문가에 머물 필요가 없다. 한국어 진료실 안에서만 자신의 전문성을 설명하던 시대를 넘어, AI를 활용해 영어, 중국어, 일본어, 아랍어, 스페인어권 환자에게도 자신의 전문성을 전달할 수 있다. 과거에는 언어 장벽 때문에 세계시장에 나가기 어려웠던 의사도, 이제는 AI를 통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국제적 의료서비스로 재구성할 수 있다.그러나 기회가 크다는 말은 위험이 작다는 뜻이 아니다. AI와 비대면진료가 결합하면 의료의 주도권이 의사에게 남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플랫폼 기업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 환자를 모으는 플랫폼, 번역을 제공하는 플랫폼, 결제를 담당하는 플랫폼, 의료기록을 관리하는 플랫폼이 진료의 앞단과 뒷단을 장악하면 의사는 플랫폼 안에서 단순 서비스 제공자가 될 수 있다.이것이 가장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AI 시대의 의료가 의사의 전문성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의사를 플랫폼의 부속품으로 만들 것인지는 지금 어떤 원칙을 세우느냐에 달려 있다. 의사가 AI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대면진료의 흐름을 외면하면, 제도와 시장은 의사의 충분한 참여 없이 설계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의사는 책임은 지되 주도권은 갖지 못하는 위치로 밀려날 수 있다.다만 외국인환자 비대면진료는 무제한적 온라인 진료 허용이 아니다. 유치의료기관 등록, 진료 절차, 처방 시스템, 환자 안전 기준, 사후관리 체계가 함께 갖추어져야 한다. 기회가 열린 만큼 의료계가 먼저 표준과 책임 원칙을 세워야 한다. 제도의 오남용을 막고, 외국인환자 치료의 안전성과 한국의료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의사 주도의 기준 설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따라서 의료계는 단순히 비대면진료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의 구도를 넘어야 한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환자의 안전을 책임질 것인가. AI가 만든 설명과 판단을 누가 검증할 것인가. 외국인환자의 사전상담과 사후관리는 어떤 기준으로 관리할 것인가.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사, 의료기관, 플랫폼, AI 개발사의 책임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 의료데이터는 누구의 권리와 기여를 반영해 활용할 것인가.의사단체는 이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AI와 비대면진료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렇다면 의사단체의 역할은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기준 설정이어야 한다. 의사가 주도하는 AI 진료 원칙, 외국인환자 비대면진료 표준, 환자 안전 기준, 책임 배분 원칙, 의료데이터 활용 기준, 적정 수가 체계, 국제 진료 윤리 기준을 선제적으로 제안해야 한다.AI를 활용한 글로벌 진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외국인환자는 한국의료의 기술만 보고 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설명, 치료 전후의 연속적 관리, 안전한 시스템, 책임 있는 의사를 기대한다. AI는 설명을 돕고 비대면진료는 연결을 돕지만, 신뢰를 완성하는 것은 결국 의사다.이런 점에서 AI 시대의 글로벌 한국의사는 단순히 외국어를 잘하는 의사가 아니다. AI를 통해 언어와 정보를 다루고, 환자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며, 국제적 기준에 맞는 설명과 동의를 제공하고, 치료 전후의 과정을 책임 있게 관리할 수 있는 의사다. 지식만 많은 의사가 아니라, 지식을 세계 환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의사다. 기술을 아는 의사이면서 동시에 인간을 이해하는 의사다.산업혁명이 생산의 속도를 바꾸었고, 물류·유통혁명이 시장의 거리를 줄였으며, 지식혁명이 정보의 격차를 낮추었다면, AI와 비대면진료의 결합은 의료의 국경을 낮추고 있다. 이제 의사의 전문성은 병원 안에서만 증명되지 않는다. 화면 너머의 환자에게도 설명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도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하며, 치료 이후의 삶까지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우리는 AI를 두려워하며 진료실의 문을 걸어 잠글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변화가 멈추지는 않는다. 환자는 이미 AI를 사용하고, 플랫폼은 이미 의료시장에 들어오고 있으며, 국가는 비대면진료의 제도화를 준비하고 있다. 의사가 멈추면 시장은 의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이제 한국의사는 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 AI를 진료실의 경쟁자로 볼 것이 아니라, 전문성을 확장하는 도구로 삼아야 한다. 비대면진료를 단순한 편의 서비스로 볼 것이 아니라, 한국의료가 세계 환자와 만나는 새로운 통로로 보아야 한다. 외국인환자 진료를 의료관광의 부가사업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한국의사의 전문성이 국제적으로 평가받는 무대로 보아야 한다.미래를 준비하는 AI 의사는 AI를 거부하지 않는다. AI에 끌려가지도 않는다. AI를 이해하고 활용하되, 인간을 중심에 놓는다. 국내 진료실의 한계를 넘어 세계 환자와 연결되지만, 최종 판단과 책임은 의사의 이름으로 감당한다.AI 시대의 한국의사는 더 이상 작은 진료실 안에 갇힌 전문가가 아니다.AI를 도구로 삼고, 비대면진료를 통로로 삼아, 세계 환자와 만나는 글로벌 의료전문가로 진화해야 한다.그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AI 의사의 길이다.
2026-07-20 05:00:00이슈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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