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의사들을 돌아오게 하라
[메디칼타임즈=이비인후과의사회 김병철 회장 ]대한민국 의료계는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은 필수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했지만, 그 과정에서 젊은 의사들의 집단 사직과 의대생들의 휴학 투쟁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 이로 인해 의료 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위험에 처한 상황이다. 지금의 상황이 과연 의료개혁으로 가는 길인지, 아니면 의료붕괴로 가는 길인지 우려스럽기만 하다.지금의 의료공백 사태는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리게 한다. 조금 비뚤어진 소의 뿔을 바로잡으려다 뿔 전체가 빠져서 소를 죽인다는 뜻으로, 현재 대한민국 의료계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부는 필수의료 인력 부족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그 과정에서 의료계 전체의 반발을 불러오며 더 큰 위기를 초래했다.어떤 제도나 시스템이든 결점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 제도가 어떻게 시작되었든지 필요할 때 이를 개선해 가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제도를 개선한다는 것은 현재의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부족한 부분을 고쳐 나가며 발전시키는 과정이다. 만약 시스템에 치명적인 결함이 없다면, 전체를 흔들어 다시 시작하기보다는 기존 구조를 유지하며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반면, 시스템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어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개혁이 필요하다. 하지만 "개혁"이라는 단어를 남발하여 단순히 개선의 과정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시스템 자체를 전복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이는 오히려 혼란과 실패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대한민국의 의료 시스템은 오랜 시간 개선을 통해 발전해왔다. 특히, 사회적 변화와 정치적 압박 속에서도 젊은 의사들의 헌신은 이러한 개선의 핵심이었다. 그 결과 오늘날 대한민국은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세계 최고의 의료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고, 이는 우리나라 국민과 의료인들이 함께 만들어낸 기적의 성과이다.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은 미국식 민영화 모델과 영국식 공공 모델의 장점을 조화롭게 결합한 독특한 형태로, 국민들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낮은 비용으로 제공하며 해외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정부는 우리나라 의사 수가 OECD 평균보다 낮다고 하지만, 국민들이 의사 진료를 받는 횟수는 OECD 국가 평균의 2.5배, 언제든지 24시간 이내에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비율이 99%에 달한다.이러한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가장 부러워한 나라가 미국이다. '오바마케어'를 추진했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연설에서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를 극찬할 정도이다. 이러한 한국 의료 시스템의 성공 뒤에는 의사들의 희생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보다 훨씬 저렴한 의료 수가를 받으면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환자를 진료하는 등 의료인들은 그간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왔다.그러나 이러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의료 시스템 개혁이라는 명목으로 의사들에게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미래가 없어진 전공의들은 종합병원에서 전문의가 되기 위해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했던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몇몇 작은 불편함을 이유로 과장된 불만과 문제 제기로 흔들렸다. 슬로건으로만 떠돌던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과 오픈런'은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의사 집단을 악마화하며 의료 기반 자체를 붕괴시키는 데 그쳤다.소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개혁은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젊은 의사들은 자신의 헌신이 어떻게 사회에서 평가받는지,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요구받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사회가 의사들을 존경하던 시절의 이상은 무너졌고, 지금의 현실은 젊은 의료진들에게 냉혹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이는 많은 전공의에게 병원으로 돌아갈 이유를 찾기 어렵게 만들었으며, 더 이상 폭력적인 노동 환경을 견디는 대신 적절한 대우를 요구할 자각을 심어주었다. 의사라는 직업이 더 이상 존경받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사명감이 사라지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이 치러질 수밖에 없다.전공의들이 최저시급도 못 받는 환경에서 다시 병원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제는 그들의 가치를 알고, 적절한 대우를 받을 권리를 요구할 시점이다. 극단적인 상황을 만든 정부는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한 대가를 받아들여야 한다. 앞으로의 선택은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의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진정한 변화에 동참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의료 시스템의 지속적인 개선은 국민 건강을 위해서 필요하다. 하지만 소위 개혁의 대상이 될 의료계와의 소통 없이 일방적인 정책 추진은 필연적으로 저항을 불러온다. 현재 젊은 의사들은 의료 환경 개선과 합리적인 보상 체계를 요구하며 정부와의 대화를 촉구하고 있다. 정부가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정책을 강행한다면, 의료계와의 갈등은 더욱 격화될 것이고, 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피해로 돌아갈 것이다.해법은 단순하다. 정부는 의료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전에 의료진이 체감할 수 있는 환경 개선책을 우선해야 한다.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지원 확대, 의료진의 근무 환경 개선, 그리고 의료 서비스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체계적 방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젊은 의사들이 다시 의료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대화의 문을 열고, 상호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의료개혁은 반드시 국민 건강을 위한 길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개혁은 개선이 아닌 의료 시스템 자체를 흔드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시작된 의료개혁은 의료 붕괴로 향하는 위험한 도박이 되고 말았다. 정부와 의료계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현실적인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 젊은 의사들이 돌아올 때 비로소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가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