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10년 이어온 AI 의사 대체 논쟁…"거부감보다는 제도가 문제"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AI가 의사를 대체할까." "AI가 의사의 일자리를 줄어들게 하지 않을까."의료AI가 등장한 이후 가장 오래 반복된 질문이다. 영상 판독 정확도가 전문의 수준에 근접하고, 생성형 AI까지 의료 현장에 들어오면서 '의사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하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 AI를 사용하는 의사들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AI는 의사를 대신하기보다 사람이 놓칠 수 있는 순간을 메우는 '보조자'에 가깝고, 오히려 지금 의료AI 확산을 가로막는 것은 의사들의 거부감이 아니라 제도라는 지적이다.AI 활용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활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AI 산업 및 AI 교육 체계에 걸맞은 산업·인력 육성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 "AI 없는 판독은 이제 두려울 정도"대한영상의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은평성모병원 영상의학과 정승은 교수는 의료AI를 가장 오래 사용해 본 경험자 중 한 명이다. 그는 AI가 이미 영상의학과 진료의 일부가 됐다고 평가하면서도, 그 역시 지금 의료AI 산업이 마주한 가장 큰 과제는 성능 경쟁이 아니라 '제도 설계'라고 진단했다.은평성모병원이 가장 먼저 도입한 진단AI는 유방촬영 AI였다. 당시에도 성능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만큼 업무 부담이 큰 유방촬영 판독을 위해 비교적 빠르게 도입을 결정했다.정 교수는 "전문가가 봐도 맞는 소견인데 AI가 한 번 더 확인해주니 신뢰감이 높아지고 판독에 대한 자신감도 생긴다"며 "지금은 오히려 AI가 없으면 판독하는 것이 두려울 정도"라고 말했다.대한영상의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은평성모병원 영상의학과 정승은 교수는 의료AI 산업의 성패가 제도 설계에 달려있다고 진단했다.그는 "원래 복부·비뇨생식기 전공인데 인력이 부족해 흉부와 유방까지 함께 판독하게 됐다"며 "흉부 CT에서 작은 결절을 찾는 일은 쉽지 않지만 AI가 작은 병변을 먼저 알려주면 사람이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상당 부분 보완해 준다"고 설명했다.반대로 사람이 쉽게 찾는 큰 병변은 AI가 놓치는 경우도 있다. 결국 AI와 전문의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는 '협력자' 관계라는 것이다.■ 환자에게 산업 육성 비용을 부담시키는 구조 정당할까정 교수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현재 의료AI의 비급여 운영 방식이다. 현행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제도에서는 AI 진단을 적용할 경우 환자가 별도의 비용을 부담한다. 유방촬영의 경우 기존 검사비가 약 1만 5000원인데 AI를 적용하면 환자는 같은 금액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정 교수는 이 같은 구조가 의료현장에서도 여러 문제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그는 "AI는 돈을 냈든 안 냈든 의료진 입장에서는 모두에게 사용하는 것이 더 편하고 정확하다"며 "돈을 낸 환자만 AI를 쓰고 그렇지 않은 환자는 AI를 쓰지 않는 구조는 의료의 형평성 측면에서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이어 "왜 산업 육성을 환자의 비급여 부담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산업 지원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궁극적으로는 충분한 임상 근거가 확보된 AI는 비급여를 넘어 건강보험 급여 체계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 그의 판단. '사후 검증 시스템 부재'도 허점으로 꼽힌다.현재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고 신의료기술평가 유예를 통과하면 의료현장에서 비급여 처방이 가능하지만, 실제 임상에서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이를 재평가하거나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장치는 사실상 없다.정 교수는 "학습에 사용한 데이터와 실제 의료현장에서 만나는 환자는 다르다"며 "AI도 약물처럼 시판 후 실제 임상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평가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특히 흉부 X-ray AI처럼 여러 회사 제품이 경쟁하는 분야에서는 성능 차이가 적지 않은데도 환자는 동일한 비용을 부담하는 현실도 문제로 지적했다.그는 "좋은 AI와 그렇지 않은 AI가 모두 같은 비용을 받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성과를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성능이 부족한 제품은 개선하거나 시장에서 퇴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숙련자에게는 날개, 초심자에게는 독이 될 수도"AI가 의사의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의학교육 현장에선 새로운 고민도 생기고 있다.정 교수는 "AI 판독 결과와 비교하면서 계속 학습하다 보니 지금은 오히려 AI보다 더 잘 판독하게 됐다고 생각한다"며 "프로기사들이 바둑 AI로 실력을 키우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는 기본 역량을 갖춘 의료진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그는 "다만 아무런 기초 없이 AI만 믿고 진단하는 전공의가 생길까 봐 가장 걱정된다"며 "AI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스스로 판독하는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루닛 인사이트 MMG(맘모그래피) 유방암 판독 보조 의료 AI를 사용하는 정승은 교수는 AI가 의사의 대체자가 아닌, 협력자이자 보조자 관계로 설정했다. 다만 이를 활용하고 자가 검증할만한 수준의 도달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실제로 영상의학회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판독 경험을 쌓기 전까지는 AI 없이 수련하도록 하고, 일정 수준의 자체 판독 건수를 넘어서야 시험 응시자격을 준다. 문제는 자체 판독 여부를 검증할 수단이 없다는 것. 이 역시 허점으로 지목된다.2016년 AI 석학 제프리 힌턴이 "영상의학과 전공의 교육을 중단해야 한다"고 언급했을 당시 의료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실제로 영상의학과 지원율도 크게 떨어졌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예상과 다르다. 업무는 더 늘었고, AI 개발 및 검증 과정에서도 전문의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정 교수는 "처음에는 다들 AI가 의사를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앞으로도 AI는 의사의 파트너이자 협력자로 발전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그는 "결국 AI를 제대로 학습시키고 검증하는 역할은 숙련된 의료진이 계속 맡을 수밖에 없다"며 "현재는 진단 분야에 AI가 집중돼 있지만 앞으로는 예약, 처방, 검사, 물류, 로보틱스 등 병원 운영 전반으로 확장될 여지가 무궁무진하다는 점에서 의사 수요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이어 "지금 AI 세상이 왔다고 하지만 사실은 시작 단계일 뿐"이라며 "앞으로는 진단 하나가 아니라 의료 서비스 전체를 연결하는 AI가 등장해야 진정한 의료AI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료AI 확산 장애물은 의사 경계심 아닌 수가뇌졸중 진료에서는 정맥 내 혈전용해제 투여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신경과 전문의가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대한신경과학회도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의료진을 '뇌졸중 인증의'로 운영하고 있다.응급실에서 뇌졸중 진단 AI가 도입되면서 뇌졸중 전문의가 없이도 초동 대처가 가능한 사례들이 반복 확인된다. AI 도입이 확산될수록 뇌졸중 전문의의 설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은 없을까.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김준엽 교수는 의료AI가 전문의 역할을 일부 대체할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았지만 한계가 있다고 봤다. 장기적으로는 종합병원 등에서 신경과 전문의 고용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은 있지만 여전히 공급보다 수요가 크다는 것.김 교수는 "예전에는 정맥 내 혈전용해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뇌졸중 전문의가 응급실에 상주하는 것이 사실상 필수적인 개념이었다"며 "앞으로 AI가 이런 판단을 상당 부분 보조하게 되면 병원 입장에서는 전문의를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배치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은평성모병원은 2023년 세계 최초로 AI 기반 음성 전자의무기록(Voice ENR)을 도입해 간호 기록을 자동화했다. 다만 그는 이러한 변화가 곧바로 전문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현재 국내 의료현장은 뇌졸중 전문의를 포함한 신경과 전문의 자체가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그는 "지금은 전문의 숫자가 부족한 문제가 훨씬 더 크기 때문에 당장 우려할 사항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AI는 부족한 전문의를 보완해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역할이 더 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오히려 의료AI 확산을 막는 현실적인 장벽은 의사들의 우려가 아닌 '수가'라고 강조했다.현재 의료기관은 AI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더라도 이를 활용한 판독이나 진료에 대해 별도의 보상을 받을 수 없다. 병원은 AI 소프트웨어 구독료와 유지관리 비용을 자체 예산으로 부담해야 하는 구조다.김 교수는 "AI 소프트웨어를 이용했다고 해서 환자에게 청구할 수 있는 수가가 아직 없다"며 "규모가 큰 병원은 투자할 수 있지만 비용이 적지 않아 종합병원 이하에서는 지속적으로 도입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결국 의료AI의 다음 과제는 성능 경쟁이 아니라 제도 설계라는 것. 그는 "AI가 빠른 대응을 통해 환자 예후를 개선하고 사회적 비용 감소에도 도움이 된다는 근거가 축적돼야 한다"며 "그런 데이터가 쌓여야 AI 활용에 대한 적정 수가도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뇌졸중 영역에서 AI의 역할은 더욱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개발 중인 뇌동맥류 진단 AI는 사람이 놓치기 쉬운 병변을 찾아주는 것은 물론, 반복 검사에서 동맥류 크기 변화를 자동으로 분석해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판독 부담까지 줄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의료AI의 다음 무대는 '병원 전체'실제로 의료AI의 변화는 진단실에서 병원 전체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은평성모병원이 세계 최초로 AI 기반 음성 전자의무기록(Voice ENR)을 도입해 간호 기록을 자동화한 것도 그 일환. 기록 시간을 줄여 간호사가 환자에게 더 많은 시간을 쓰도록 하자는 것이 목표였다.은평성모병원 정보보호팀 이성식 팀장은평성모병원 정보보호팀 이성식 팀장은 "간호사는 본연의 업무인 환자 케어에 집중해야 하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기록 업무에 상당한 시간을 쓰고 있다"며 "기록 시간을 줄여 그만큼 환자를 더 돌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Voice ENR 개발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병원은 2019년 음성 차트 개발에 착수해 2020년 PDA 기반 시스템을 선보였고, 이후 휴대성과 활용성을 높인 스마트폰 기반 모바일 ENR을 개발해 2023년 전 병동으로 확대 적용했다.개발 과정에는 현장 간호사들이 직접 참여했다. 약 300명의 간호사가 6개월 동안 음성 데이터를 제공하며 AI를 학습시켰다. 의료용어의 다양한 발음은 물론 개인별 발화 습관과 병동 소음 환경까지 반영해 실제 임상에서도 높은 음성 인식률을 확보했다.간호행정교육팀 김수빈 간호사는 "같은 의학용어도 사람마다 발음이 모두 다른데 그런 부분까지 학습했다"며 "개인별 발음 특성도 반영돼 대부분 정확하게 인식된다"고 설명했다.도입 효과도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수혈·항암치료·이중확인 업무는 약 99%가 모바일 ENR을 통해 이뤄지고 있으며, 활력징후 입력과 바코드 채혈 등도 80% 이상 활용되고 있다.김 간호사는 "환자 옆에서 바로 기록할 수 있어 기록의 즉시성과 정확성이 높아졌고, PC를 오가는 시간이 줄면서 그만큼 환자를 한 번 더 살필 시간이 생겼다"고 말했다.은평성모병원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생성형 AI를 접목한 차세대 간호 기록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의료 특화 소형언어모델(SLLM)을 활용해 간호사와 환자의 대화 내용을 AI가 이해하고, 필요한 간호기록과 처치기록을 자동으로 분류·작성하는 것이 목표다.이 팀장은 "AI가 대화의 문맥을 이해해 필요한 기록 양식에 자동으로 입력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며 "응급 심폐소생술처럼 여러 의료진이 동시에 말하는 상황에서도 화자를 구분해 투약과 처치 기록을 자동 생성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AI 확산 흐름은 다른 병원으로도 전파되고 있다. 대전선병원, 동아대병원, 충남대병원, 화순전남대병원 등 다수 의료기관이 모바일 ENR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은평성모병원은 단순한 음성 입력을 넘어 AI가 의료진의 행정 업무를 대신하는 방향으로 고도화를 이어갈 계획이다.의료AI는 이미 의료현장에 들어왔다. 이제 남은 질문은 'AI가 의사를 대체할까'가 아니다. AI를 의료체계 안으로 어떻게 안전하게 편입시키고, 어떻게 검증하며, 어떤 방식으로 보상할 것인가로 좁혀지고 있다. 의료AI 미래는 제도에 달려있다는 게 임상 현장의 진단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