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기의 쓰임에 대하여
[메디칼타임즈=경북의대 2학년 노정연 ]누군가와 자신이 선호하는 것과 선호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넌 어쩌다가 그걸 좋아하게 된 거야?"와 같은, 이유를 묻는 말이다. 언뜻 보기엔 단순해 보이는 말이지만 그리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다. 한 사람의 취향은 그동안의 경험이 누적되어 결정되는 대단히 복잡한 무의식적 판단이며, 그러므로 어떤 선호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설명해야만 한다.특히나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경우라면 그 설명은 한층 더 복잡해지고 길어지며, 종국에는 자기 자신조차 답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나에게는 독서가 그랬다. 나날이 줄어드는 독서 인구를 고려한다면 '왜 책을, 더군다나 문학을 좋아하느냐'라는 말이 그리 유별난 것은 아니지만, 이 질문에 답하기는 늘 난감했다. 어떤 경험들을 얼기설기 엮어낸 조잡한 답변밖에는 할 수 없었다. 당연한 결과다.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허무한 결론으로밖에는 귀결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느샌가 나 또한 같은 의문을 품게 되었고, 사뭇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그래서 글로 정리해보고자 했다. 이하는 그에 대한 기록이다.어릴 때부터 책을 손에 쥐고 있던 기억이 유달리 많았다. 부모님의 말씀으로는 아직 글을 모르던 시절부터 동화책을 들고서는 빤히 보고 있었다고 한다. 좀 더 커서는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더 이상 어린이 자료실에서 읽을 게 없어 성인 자료실을 기웃대면서도, 단 한 번도 내가 책을 왜 좋아하는지, 무엇 때문에 읽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그러다 고등학생이 되고, 모든 행동에 대입과 관련된 그럴싸한 이유 내지는 핑계를 찾게 되자 책 읽는 시간은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기더라도 일단은 미뤄야 했고, 그마저도 진로와 관련이 없는 책은 가차 없이 탈락이었다. 그나마 사회과학이나 의학 서적은 읽더라도, 문학 서적에는 손도 대지 않게 되었다.다시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학생이 되고도 계절이 두 번은 바뀐 뒤였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문학은 여전히 아리송했다. 실패했다고 여긴 독서 경험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계속 실패하고, 또 계속 읽다 보니 알 수 있었다. 모든 소설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소설은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는 것을.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작가)의 시선으로 다른 사람(등장인물)의 삶을 바라보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면, 자신의 삶 또한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과거의 사건까지 바꾸어 놓을 순 없더라도 그 사건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새로 쓸 수 있다면 그전까지의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그리고 적어도 대다수의 소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을 연습하기에 아주 좋은 교보재가 되어준다. 또한 내가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상상력의 한계를 끊임없이 부수고, 또 넓혀가며 겸손함을 일깨워준다.이러한 한계의 재설정은 매우 중요하다. 아이러니하지만 상상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함부로 단정 짓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또 어떤 일이든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적어도 그런 노력을 할 수는 있다는 것을 소설이 알려주기 때문이다.그리고 문학은 소외된 목소리를 향해 귀를 기울이는 거의 유일한 매체이다. 사회가 바라는 모습에 부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노력하지 않고도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다. 각종 SNS 등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한 모습을 전시하고, 다른 사람의 편집된 일상을 감상한다. 누구 하나 결핍 따윈 모르는 것처럼 완벽하기만 하다.하지만 소설은 정반대이다. 대부분의 시나 소설에는 완벽한 등장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모두 적어도 하나 이상의 결핍이나 결함을 안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흠결이 오히려 등장인물을 더 매력적이게 하고, 더 나아가 독자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게 만들기도 한다. 모두가 바라는 대로 인생이 흘러가는 것은 아니더라도, 결핍과 결함과 안타까움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또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소설을 통해 배웠다.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내가 문학, 특히 소설을 통해 얻은 깨달음 중 극히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스스로 의식하고 있는 것 중에서도 그나마 설명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들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내가 배운 것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읽기의 쓰임에 대해 정리한다고 해서, 내가 읽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지는 않을 것 같다.애초에 이유가 있어서 좋아하는 것은 애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거래에 가깝지 않을까. 나는 읽기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지만, 한 번도 그런 것을 바라고 읽은 적은 없다. 늘 한 발짝 늦게 깨닫고 있을 뿐이다. 항상 한 걸음 앞서 날 이끌어 주었던 수많은 책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이 글에 쉼표를 찍으려 한다. 아마 평생 고쳐 써야 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