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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가 사소해지도록 도전하는 법

2025년을 마무리하던 몇 주 전, 매년 습관처럼 해오던 연말정산 대신 조금 특별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하여 '실패 일기'.벌써 1학년만 2년 차인 내가 휴학 후 정말 다양한 일들을 해봤는데, 도대체 몇 번이나 실패했는지 한 번쯤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었다.하나씩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2월쯤 제출했던 공모전 서류 탈락, 우주의학 대회 낙방, 밴드 공연에서의 코드 실수...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이것보다 훨씬 많은 실패가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적어보려니 구체적인 장면들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당시에는 세상이 무너질 듯 아쉬웠던 일들도 시간이 흐르니 점차 흐릿해진 것이었다. 결국 내게 더 선명한 인상으로 남은 것은 무엇을 실패했느냐가 아니라, 작년에 새롭게 시작한 일들과 그 과정에서 마주친 사람들이었다.작은 실수 하나가 곧 큰 책임으로 이어지는 의대 사회에서 '틀림'은 늘 피하고 싶은 대상이었던 내가, 어떻게 1년 만에 실패의 목록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무뎌질 수 있었을까.불안이 빚어낸 도전의 관성사실 나는 실패에 꽤 예민한 아이였다. 초등학생 시절, "What page is it?"을 "Page what?"이라고 거꾸로 말했다가 들려오던 수군거림은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았다. 처음 나간 MUN에서는 결의안을 쓸 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오히려 남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무력감을 느꼈고, 중학교 학생회 면접에서는 서너 번을 연달아 떨어지기도 했다.사람들은 10개가 넘는 동아리와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나를 보며 열정이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시작은 어쩌면 불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신입생으로 입학하자마자 의도치 않은 긴 멈춤을 겪으며 마음이 복잡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성적이 좋으면 그해를 열심히 살았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잘 살고 있는지 판단할 기준이 사라져 버린 기분이었다.기저에 깔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매번 새로운 도전으로 답을 내려 했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습관이 된 '열심히 살기'라는 관성은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는 휴학기 속에서 나를 버티게 해준 나만의 방식이 되었다.실패의 모수를 늘리는 일이 불안을 돌파하는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실패에 무뎌진 내 장점은 강철 같은 멘탈이 아니라, 단순히 실패의 모수를 늘린 데서 왔다. 여러 일을 동시에 벌이다 보면 필연적으로 내가 전혀 못 하는 분야와 마주하게 된다. 10번 도전해 1번 성공하는 사람과 100번 도전해 10번 성공하는 사람의 성공 확률은 10%로 같다. 하지만 후자는 90번의 실패를 겪으며 실패를 '일상적인 데이터'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이제 나에게 실패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100번 하다 보면 10번 정도는 안 될 수도 있고, 때로는 50번 넘게 안 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어제 겪은 실패를 곱씹을 틈도 없이 오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다 보니, 개별 실패의 무게는 자연스레 가벼워졌다. 더 많이 실패할수록, 나는 오히려 실패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나의 자아를 여러 곳에 나누어 담는 이유이런 다채로운 활동들은 일종의 '정신적 안전장치'이기도 했다. 의대생의 자아는 보통 '학업'이라는 단일 종목에 올인되어 있다. 그래서 시험을 망치면 인생 전체가 무너지는 기분을 느끼기 쉽다. 하지만 나는 내 자아를 우주의학, AI, 밴드, 공연 동아리, 인턴십 등 여러 바구니에 나누어 담았다.우주의학 연구가 뜻대로 풀리지 않아도, 저녁에 있을 밴드 연습이나 학회 세미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다. 하나가 흔들려도 나를 지켜줄 또 다른 내가 있다는 믿음. 그것이 내가 번아웃에 빠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비결이었다. 성공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계속 믿어주기 위해 나는 여러 개의 문을 동시에 두드렸다.우리, 조금만 더 뻔뻔해지자밥약에서 만난 후배들은 종종 묻는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실패하면 어떡할지 두렵다고. 그럴 때면 나는 완벽한 정답률보다 오답을 써내고도 다시 펜을 들 수 있는 '뻔뻔함'에 대해 이야기한다.의료 현장에서의 실수는 치명적일 수 있기에 우리는 늘 완벽을 훈련받는다. 하지만 '의대생'이라는 타이틀을 잠시 내려놓은 '청년'으로서의 삶은 조금 더 헐거워도 괜찮지 않을까. 실패가 사소해질 만큼 더 많이 시도하고 기꺼이 무너져 본다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 2026년의 연말정산에서도 여전히 무엇을 실패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을 만큼, 즐거운 시도들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2026-02-19 05:00:00젊은의사칼럼

흔들려도 괜찮은 우리들을 위하여

필자는 스스로에게 퍽 인색한 편이다. 어지간한 성취에는 '성장'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고, 웬만한 흔들림 앞에서는 '냉철함'이라는 가면을 먼저 고쳐 쓰곤 했다. 의대에 발을 들인 이후, 나의 세계에서 평정심은 추구해야 할 미덕을 넘어 반드시 갖춰야 할 삶의 도구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일렁이지 않는 고요한 수면 같은 마음. 필자는 그것이 어른의 자격이자, 한 명의 의료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마땅한 농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하지만 매일 쏟아지는 강의록과 직접 지원해 다녀온 여러 병원 실습, 뿐만 아니라 내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각양각색의 현장 사이에서, 필자가 마주한 것은 완벽한 고요함이 아닌 끊임없는 균열이었다. 한때는 그 균열을 나의 미숙함이라 치부하며 외면하려 애썼으나, 이제는 그 틈새를 통해 비로소 평정심의 진정한 얼굴을 마주하기 시작한다.1. 쿨함이라는 허울과 내면의 파동우리는 유독 '쿨함'이 숭상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감정의 파고를 드러내는 일은 촌스러운 일로 치부되고, 불안을 내비치는 일은 전문성의 결여로 여겨지곤 한다. 특히나 '일희일비하지 마라'는 인생 선배들의 가르침은 나 같은 흔들리는 영혼에게 마치 절대적인 계율처럼 다가온다. 그 가르침은 분명 우리를 단단하게 단련시키지만, 동시에 우리 내면의 가장 인간적인 떨림을 '도려내야 할 군더더기'로 여기게 만들기도 한다.인간의 마음이 어찌 항상 고요한 호수일 수 있을까. 밤을 지새우며 눌러 담은 지식이 무색해질 만큼의 무력감을 느낄 때, 혹은 누군가의 고통이 내 살갗을 스치는 듯한 통증으로 다가올 때, 우리 마음은 필연적으로 흔들린다. 이때 필요한 것은 "괜찮다"라는 무미건조한 자기 암시가 아니다. "나는 지금 이 파도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고 있구나"라고 나 자신을 투명하게 응시하는 인정의 시선이다.2. 미디어가 투영하는 현대인의 초상: 회피형, 불안형, 그리고 안정형최근 대중 매체와 SNS를 휩쓸고 있는 화두 중 하나는 단연 '애착 유형'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을 '회피형 인간(Avoidant)', '불안형 인간(Anxious)', '안정형 인간(Secure)'이라는 틀 안에 가두고 분석하기를 즐긴다. 미디어는 흔히 '안정형'을 우리가 도달해야 할 유토피아로 묘사하고, '회피형'이나 '불안형'을 교정해야 할 결함처럼 다룬다.의학적 환경에서 이 워딩들을 복기해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발견된다. 과도한 업무량과 감정 노동에 노출된 젊은 의사들은 종종 '선택적 회피형'이 되기를 자처한다. 감정적 소모를 막기 위해 환자와의 거리를 극단적으로 두거나, 자신의 불안을 외면하기 위해 업무 자체에만 매몰되는 식이다. 반대로 완벽주의에 함몰된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역량을 의심하는 '불안형'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하지만 우리가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미디어에서 말하는 '안정형 인간'은 결코 불안을 느끼지 않거나 회피하고 싶은 욕구가 없는 초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진정한 의미의 안정형은 자신의 불안을 인지하고, 때로는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사실조차 투명하게 '인정'하는 사람이다. 즉, 평정심의 본질은 유형의 구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태를 직시하는 태도에 있다.3. 회피와 인정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흔히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실패로 돌아갈 때, 우리는 '회피'라는 도피처를 찾는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직면하는 대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회피는 일시적인 진통제일 뿐 근본적인 치료제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억눌린 감정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번아웃'이나 '냉소주의'라는 이름의 부작용으로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관건은 본인이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두렵구나", “나는 지금 저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눈치를 보고 있구나”, "나는 지금 저 환자의 고통에 깊이 동요하고 있구나"라고 인정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버티는 나무는 강한 태풍에 꺾이기 쉽지만, 바람의 방향에 맞춰 함께 흔들리는 유연한 가지는 부러지지 않는다.인정은 무책임하게 감정에 휩쓸리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파도를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메타인지의 과정이다. 내가 흔들리고 있음을 인정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 흔들림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선택권을 갖게 된다.4. 일희일비(一喜一悲)를 넘어, 인간적인 자아로 거듭나기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혈액 수치 하나에 안도하고, 예상치 못한 합병증에 밤잠을 설치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인간이자, 환자의 삶에 책임을 느끼는 의료인이라는 증거다. 이뿐만일까. 누군가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마음을 앓고, 서툰 관계의 끝자락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는 것 역시 우리가 여전히 삶의 무늬를 그려 나가는 투명한 청춘이라는 증거다.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격언은 감정을 죽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감정의 파고에 매몰되어 다음 판단을 그르치지 말라는 경계의 메시지로 읽어야 한다.평정심이란 고요한 호수 같은 상태가 아니라, 거친 바다 위에서도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항해사의 평형감각과 같다. 배가 파도에 따라 기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물리적 현상이다. 항해사가 해야 할 일은 배가 기울지 않게 막는 것이 아니라, 기운 만큼 키를 다시 조정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5. 흔들려도 괜찮은 우리들을 위하여살아가며 우리가 마주할 수만 가지의 상황 속에서, 평정심은 언제나 도달하기 어려운 이상향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자. 완벽하게 고정된 '안정형'의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불안하고, 때로는 회피하고 싶으며, 매 순간 흔들리는 존재들이다.중요한 것은 회피하지 않는 용기다. 내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나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의 비참함을, 공명하는 나의 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 그 인정의 태도 위에서라야 비로소 가짜 평온함이 아닌, 단단하고 유연한 진짜 평정심이 싹틀 수 있다.여전히 길 위에서 서툴게 중심을 잡고 있을 나의 사람들에게, 그리고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을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흔들림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그리고 누군가의 삶에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다. 그러니 기꺼이 흔들리자. 그 흔들림 끝에 닿을 우리의 평정심은 이전보다 훨씬 더 깊고 단단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2026-02-09 05:00:00젊은의사칼럼

시작의 의미에 대하여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한 해의 시작인 1월은 아마도 모두에게 매우 정신없이 지나가 버리는 한 달이 아닐까. 1월은 마치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불꽃놀이처럼 설레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타고 남은 잿더미처럼 그리 화려하지 않은 일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걸 다들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새해가 다가오는 것이 그다지 설레지 않았다. 생일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1월생인 나로서는 생일이 새해와 함께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기 일쑤였고, 그렇게 점차 '새로운 시작'의 의미가 내 안에서 퇴색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쯤, 한 책을 만났다. 바로 김영하 작가의 장편소설 작별인사였다. 이 책은 여러 의미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등장인물 선이와 달마의 대화 장면을 고르고 싶다.선이는 함께 지내던 휴머노이드 민이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관련 연구실에 도착하여 그곳의 휴머노이드 연구원, 달마에게 민이를 되살려달라 부탁한다. 하지만 달마는 선이에게 오히려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왜 그래야 하느냐고, 과연 '재활성화'된 휴머노이드가 당신에게 고마워할 것 같냐고. 연구원은 계속해서 묻는다.과연 그 휴머노이드가 태어나기 전에 애초에 결정권이 있었다면 '애완용 휴머노이드'로 태어나겠다고 결정했을까? 다시 재활성화된다고 해도, 미래에 어떤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과연 재활성화하는 것이 이 휴머노이드를 위한 일이 맞을까?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인 만큼 선이도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이윽고 달마는 고통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생명체는 애초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태어나지 않은 존재는 고통의 근원인 자아가 없으므로 아무것도 아쉬울 것이 없지만, 태어나서 겪는 고통은 분명한 해악이며, 삶은 대부분 괴롭고 잠깐의 기쁨을 갈망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충격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태어난 것은 당연히 축하해야 할 일이고, 죽음은 슬픈 일이라고만 생각해왔다. 좀 더 커서는 말기 암 환자분들의 사례를 보면서 어쩌면 죽음이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긴 했지만, 동시에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라 말하는 달마의 시각은 이미 태어나 살아가는 인간인 나에겐 너무 가혹하게 들렸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할 수 없을 것만 같아 아득하기도 했다.계속 고민을 거듭해야 할 주제겠지만, 달마의 질문에 대해 나의 잠정적인 답변은 다음과 같다. 삶이 소중하고, 의식이 있는 생명체로 태어난 것이 가치 있는 이유는 삶의 모든 것에 스스로가 '이름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삶에는 여러 가지 고통과 기쁨이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가 이들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스스로가 어떻게 이름을 붙이고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객관적으로 보기에 한없이 기쁠 만한 일도 저주로 느껴질 수 있고, 그 반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해석'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태어나는 것은 정해진 불행이 아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여정이 된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태어난 날을, 한 인간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것이 아닐까?태어나는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새해,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면서 다시금 이름을 붙일 기회를 얻는다. 마치 새로운 일기장을 펼친 것처럼, 우리 앞에 쌓여 있는 수많은 여백을 하나둘 채워 나가야 하는 것이다.시작이 힘들고 지긋지긋할 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새로운 시작은 또 다른 가능성을 품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결말은 알 수 없겠지만, 스스로를 조금 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성실히 채워 나간다면 이미 그 자체로도 이야기는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2026-02-02 05:00:00젊은의사칼럼

이 세상 모든 유급생들에게

[메디칼타임즈=조선의대 1학년 박요한 ] "예과 때는 놀아~ 절대 공부하지 마~"선배들을 만나면 흔히 들을 수 있는 조언이었다. 본과 때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 하니, 예과 때 놀아놓으라는 말. 심지어 몇몇 교수님조차 열심히 놀아두라고 말씀하시고, 하물며 어떤 선배는 예과 때 유급당하는 건 하려고 노력해도 쉽지 않다며 우리의 일탈(?)을 장려했다.나 또한 5번의 수능을 치른 후 심신이 지친 상태였기에, 그들의 조언은 정말 달콤했다. 한번 놀기 시작하니 그 맛을 알게 되었고, 당하려고 노력해도 당하기 어려운 유급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몸서리칠 정도로 추웠던 2023년 겨울 어느 날, '그 어려운걸' 내가 해내고 만다.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그저 아프고 막막했다. 사실 의대 유급이라는 것은 경험한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직접적으로 조언을 구하거나 위로해줄 사람조차 없었다. 또 남들 앞에서 아프다고 말을 꺼내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모든 고통은 다 아픈 법이지만 아무도 공감해줄 수 없는 고통이 이렇게나 아프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5수 후 의과대학 입학은 성공이요, 드라마였지만 유급은 그저 명백한 실패였다. 물론 내겐 군대라는 선택지도 있긴 했었다.그리고 복학해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학교를 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그저 겁나서 도망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뇌리에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다시 학교에 다니기로 했다. 후배들과 함께.의과대학생이 유급을 당하면 그동안 쌓아왔던 2가지를 잃는다. 바로 자기 자신이 자부심을 느꼈던 것(공부)과 자신의 인간관계이다수많은 유급생이 으레 그렇듯, 이들 또한 의과대학에 입학했을 정도로 본래 우수한 학생들이다. 의과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는 공부를 잘한다고, 성실하다고, 우수한 성적으로 타인의 인정을 한 몸에 받던 학생들이었다.또, 의대생활 특성상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고 모두가 같은 강의를 듣기에 하루 종일 붙어 지내던 동기들과의 유대감은 절대적이다. 그렇기에 본인이 자부심을 느끼고 잘한다고 생각했던 공부, 그리고 나를 지탱해주던 인간관계라는 두 축이 꺾이게 되면 우리는 흔히 자신을 잃어버리고 무너지고 만다.유급을 맞게 되면 정말 오롯이, 나 홀로 서게 된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고민하게 된다. 나는 도대체 뭘까? 내게서 '의대생', '21학번' 같은 잡다한 명찰들을 다 떼어내고, '공부 잘하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전부 빼버리면 과연 나에게는 무엇이 남지? 그리고 주위 사람들은 그 명찰들을 잃어버린 나를 이전처럼 좋아해 줄까?아니 그런데 그들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게 정말 중요한가?처음에는 낮아진 학번에서 내 가치를 입증하려고 부던히 애를 썼다. 내 이마에 붙은 '유급'이라는 주홍글씨가 너무나 선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지만, 그저 겁먹은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120명 앞에서 당당히 조장으로 나서 발표하려 하고, 어떻게든 성적을 잘 받아 만회하려 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아등바등했다.하지만 그 치열한 과정 속에서 문득 든 생각은, 결국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저 사람들이 날 좋아하지 않아도, 그들의 호감을 잃어도 나는 홀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유급 당했을 때처럼 무언가를 또 잃어도, 나는 지금처럼 또 꿋꿋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또 잃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다다르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그때부터 타인이 아닌 진정한 '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학교 자습실에서 누가 몇 시까지 공부하더라, 누가 어디까지 진도를 나갔더라, 하는 말들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또, 예전처럼 남들 앞에서 오래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려 굳이 학교 자습실에서 공부하지 않았다. 그냥 집에서 혼자 공부했다. 나는 내가 세운 계획대로 가고 있고, 충분히 지키면서 가고 있으니까.또 예전이라면 주위 열심히 공부하는 동기들을 보면서 불안에 떨며 공부만 했을텐데, 지금은 딱히 개의치 않는다. 책상 앞에만 앉아있기보다 몸을 움직이고 싶어 평일에 공부를 미리 끝내놓고 동네 형들과 풋살을 찼다.월요일 시험이 없는 주간엔 교회 찬양팀에 참여해 토요일 연습을 도왔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던 예전의 나를 되찾아, 내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투비닥터 매거진과 메디컬타임즈 칼럼진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커지고 나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다.그러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마냥 잃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방학에는 기존 21학번 동기들과 여행을 함께 가기도 하고, 경조사 때도 그들은 함께 와주었으며, 지금도 자취방 이웃으로 지내고 있다. 오히려 학교생활을 도와줄 든든한 선배가 120명이나 생긴 셈이었다. 잔뜩 긴장해서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제가 질문이 있는데요"라고 묻는 것에 비해, "야야, 너 이거 답 아냐?"라고 물어볼 수 있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였다.그리고 복도에서 마주치는 21학번 친구들을 보면 "안녕하세요 선배님~" 하고 너스레를 떨며 웃으며 인사하고 그들은 웃으면서 받아준다. 물론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혼자 꿍해서 움츠러들어 있다면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누구도 먼저 찾아와서 챙겨주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내가 먼저 털고 일어나기로 했다. 유급을 당했어도, '나'라는 사람은 여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믿기 때문이다.그저 평범히 살아가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 할 말은 없지만, 이는 과거의 나와 비교하면 정말 대단한 변화다. 지금은 유급을 맞기 전보다 훨씬 단단하고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스스로 받는다. 더 이상 내게 어떤 특장점들이 사라지게 되어도, 혼자 꿋꿋이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믿음 말이다.사실 이러한 생각들을 공개적인 지면에 실기엔 다소 조심스럽다. 나조차도 많은 고민을 하고 글을 몇 번이고 다듬었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철학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맞다고, 혹은 틀렸다고도 할 수 없는. 심지어 시간이 지나면서 나조차도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생각들. 어쩌면 1년 뒤에 내 글을 보고 부끄러워 이불을 뻥뻥 차고 있을 수도 있겠지.다만 혹시나 뜻하지 않은 유급에 방황하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버텨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나도 아팠고, 힘들었고, 그렇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말이다.여담이지만 요즘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2'의 열풍이 뜨겁다. 그 중에서도 지금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를 몰고 있는 셰프는 '임성근 셰프'와 '최강록 셰프'일 것이다. 그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바로 눈치 보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을 밀고 나간다는 점이다. 누가 뭐라 하든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그저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우직하게 밀고 나간다.자기 자신만을 믿고 말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눈치를 보며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만,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홀로 설 수 있는 단단한 사람. 그렇기에 그 매력이 지금의 인기몰이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그리고 그 이면에는 그들처럼 눈치 보지 않고 홀로 단단히 살아가고픈 사람들의 소망이 담겨있지는 않을까.나도, 아니 우리도 이러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왜? 내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비단 유급이 아닌 다른 그 어떠한 형태의 어려움이더라도, 그 어려움에 흔들리기엔 내 인생은 한 번뿐인 너무나 소중한 인생이니까.
2026-01-26 05:00:00젊은의사칼럼

한 해는 갔지만, 우리는 남았다

[메디칼타임즈=경북의대 이진규 졸업생 ] 2025년 12월 31일 밤 11시 50분. 의사가 응급실 당직을 서며 모니터 화면을 내린다. "2040년, 의사 1만 명 부족" 창밖에서는 새해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들리고, 복도에는 앰뷸런스 사이렌이 날카롭게 울린다.'2040년이면 나는 몇 살이지? 그때도 나는 응급실에 남을 수 있을까?'거리는 환호성으로 가득하지만, 응급실의 공기는 여전히 긴장으로 팽팽하다. 온 세상이 지난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올 해를 반기는 지금, 나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우리 의료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2년 전에도 숫자가 있었다. 2000명 증원. 그때도 정부는 과학적 근거를 내세웠고, 의료 현장은 현실의 목소리를 외쳤다. 이번에도 숫자가 나왔다. 5개월간 12차례 회의 끝에 나온 1만 명 부족. 더 정밀해 보이지만 회의록을 읽다 보면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문장들과 마주친다."충분히 토의하고 많은 것을 반영하면 최상이겠지만 시간적인 걸 고려 안 할 수도 없다", "마지막 회의를 앞둔 시점에서 시간 부족을 이유로 새로운 분석이나 대안 검토는 사실상 배제되고 있다", "이렇게 가도 되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다"한 위원은 이와 같이 위원회의 존재 이유를 묻기도 했다.  의사 인력 추계가 완벽할 수는 없다. 어느 나라에서든 정치적 요소가 개입되기 마련이고,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다. 다만, 2년 전에도 이번에도 충분히 다뤄지지 못한 것들이 있다. 근로기준을 훨씬 웃도는 의사들의 실제 노동량, 그리고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AI가 바꿀 의료 현장의 미래.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필수 의료 전공을 망설이는 젊은 의사들의 고민과 원가에도 한참 못 미치는 현재 수가 구조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병원들의 현실 또한 그 숫자 안에는 담기지 못했다.추계 과정을 들여다보면, 여러 현실적 제약이 보인다. 한 위원이 회의록에서 밝혔듯 시간의 압박 속에서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기 어려웠고, 교육 여건이나 수련 환경, 교수진 확보와 같은 요소들이 깊이 있게 다뤄지지 못했다. 과학적 추계를 목표로 시작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여러 변수가 제한적으로만 반영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쉽지만,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기에 단순히 이 위원회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싶지 않다. 대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우리는 정말 의사 숫자만 늘리면 되는 걸까?'  우리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의사 증원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가 모두 틀린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숫자 논쟁에만 매몰되어 정작 환자들이 겪는 불편은 뒷전이 된 것은 아니었는지 묻게 된다.많은 의료진이 이미 알고 있듯, 답은 시스템이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의사 수는 평균보다 적을지 모르나, 의사 1인당 감당하는 외래 진료량은 평균의 몇 배에 이른다. 제왕절개 수술 수가가 67만 원에 불과한 현실, 강남에서 개업하는 것과 영덕에서 일하는 것 사이의 거대한 격차를 그대로 둔 채 단순히 의사의 숫자만 늘리는 정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왜곡된 의료 전달체계, 수가 현실화, 수련 환경 개선과 같은 숙제들이 산더미처럼 남았다. 거리의 환호성은 점점 멀어진다. 새해의 첫 시간, 응급실엔 여전히 환자가 온다. 2026년 1월 1일 아침. 지난 밤의 고민들은 잠시 뒤로한 채, 나는 여느 날과 같이 병동 회진을 돌며 환자에게 묻는다."어젯밤 잘 주무셨어요?"통계는 틀릴 수 있고, 정책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아픈 사람 옆에 서 있는 사람은 의사라는 사실이다. 매일 아침 병동에 출근해서 환자의 이름을 부르고, 상태를 확인하고 보호자에게 설명하며 때로는 함께 울어 주는 그 마음은 숫자에 보이지 않는다. 새해 첫날도, 의사는 환자 곁에 있다.2040년에 의사가 정말 1만 명 부족할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2026년 오늘, 나는 환자를 볼 것이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통계는 내일을 말하지만, 우리는 오늘을 견딘다.  2040년의 숫자가 아니라, 2026년 환자의 곁에서. 
2026-01-19 05:00:00젊은의사칼럼

효율 포기 선언

[메디칼타임즈=단국대 본과 3학년 박정은 ] 한 달 전, 유튜브를 둘러보다 "우리는 왜 번거로운 사랑과 우정을 해야 할까?"라는 제목의 영상을 발견했다. 좋아하는 에세이스트 이슬아의 강연이라 눈길이 갔고, 왠지 모르게 제목에 공감돼 재생목록에 저장해 두었다. 그리고 며칠 전 '나중에 볼 영상' 목록을 뒤적이다 마침내 영상을 보게 되었다.해당 영상은 국내 유수의 IT 기업 네이버에서 열린 이슬아 작가의 강연을 녹화한 것이었다. 요즘 같은 대(大)효율 시대에 예측 불가능하고, 생산성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다분하고,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쓰게 하는 우정과 사랑을 우리가 왜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강연은 시작됐다. 혼자 먹는 저녁상이 적적해 배경음악 같은 용도로 튼 영상이었지만 어느 시점부터 나는 손을 움직이는 걸 잊고서 온 청각을 그녀의 차분한 어조에 집중하게 됐다.최근 학교로 복귀해 병원 실습을 시작한 나는 묘한 불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휴학 기간에 주어졌던 달큰한 자유(독서, 프로젝트 등 하고 싶은 다른 일을 할 자유)를 빼앗겨 생긴 불만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온종일 바쁘게 움직였다.조원들과 함께 점심 먹는 대신 도시락을 싸 다니며 시간을 아껴 학교 공부와 과제를 해결했고, 삼삼오오 카페에 갈 때 병원 컴퓨터 앞에 앉아 환자 기록을 훑었다. 조금이라도 더 배워두고, 집에 가서는 다른 할 일을 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그렇게 하루를 오직 "최고 효율"로 채우며 시간을 벌었지만 마음 한구석 불쾌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자각이 명징하게 들었다. 황폐한 사막을 혼자 달리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이런 내 상태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이슬아 작가의 강연이었기에 더 와닿았다. 이슬아 작가는 "우정은 참 피로한데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친구를 사귀고 사랑을 주고받는 일은 때론 우리를 지치게 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그 피로함 속에 인간관계만의 즐거움과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작가는 또 "만약 기쁨과 슬픔, 사랑스러움과 지겨움의 극적인 낙차가 없다면 우리를 웃고 울리는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관계에서 비롯되는 예측 불가능한 감정의 롤러코스터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뜻이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느끼던 불만족의 정체를 깨달았다. 효율을 좇느라 인간관계가 주는 즐거움과 색깔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다.그 깨달음은 묵직한 충격을 줬다. 일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며 타인의 무작위성이 불러올 혼란을 기피해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걸은 꼴이었다. 결국 나는 얼마 전부터 효율을 포기하고 의식적으로 비효율을 실천 중이다.목적 없이 동기들과 보내는 시간 늘리기,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지인들 만나기, 시시콜콜한 카톡에 답장 바로 하기, 고민하고 글쓰는 시간 갖기. 그 언젠가 나도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해냈던 일들이나, 효율 최우선주의에 굴종한 뒤로 재활이 필요할 만큼 낯설고 버거워진 활동들이다. 오랜만에 마주한 느슨한 대화와 나눔 속에서 익숙한 소속감과 생기가 서서히 되살아났다. 마음 속 한켠에서 '이거지!'라는 외침을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하고.사람들과 얽혀 살아간다는 것은 곧 예측 불가능한 순간들의 연속 속에 놓인다는 뜻일 테다. 뜻밖의 요구에 시간을 내주고, 예상치 못한 감정에 함께 휘말리기도 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공동체의 일부가 된다. 누군가를 깊이 이해할 때 생기는 무게감,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 그 불규칙함과 무게를 견디기 버거울 때가 있어도 진폭이 지나간 자리에야 비로소 관계라는 것이 자리를 잡는다.문득 시골 마을의 풍경이 떠올랐다. 정자나무 아래 평상에 둘러앉아 한나절을 도란도란 보내던 마을 어르신들의 모습. 겉보기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느린 시간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아마 그 속에서 가장 깊은 유대와 온기를 나누고 있었으리라.세상은 여전히 효율을 외치고, 나는 여전히 그리고 오래도록 효율과 비효율 사이 요동치는 균형을 조율하느라 끝없이 고민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불편한 감촉이야말로 삶에 꼭 필요한 것임을 이제는 안다. 그 가르침 덕분에 나는 조금은 더 성숙해지고, 삶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서툰 삶을 하나씩 눈뜨며 배워가는 과정이야말로, 결국 삶의 즐거움이자, 매일 갱신되는 삶의 퀘스트 아닐까?
2026-01-12 05:00:00젊은의사칼럼

표준 너머의 판단…가이드라인에 대한 소고

[메디칼타임즈=고려의대 2학년 강지민 ] 2학기가 끝났다. 총 11과목, 402시수, 전공선택 과목을 제외하면 25.5학점. 임상의학 네 개 카테고리를 16주간 달렸다. 한 학기를 돌아보자니, 기초의학만 배웠던 본과 1학년 때와 달리 올해는 유달리도 많은 '가이드라인'을 외웠다는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딱 떨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가이드라인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절대적 진리가 되어주었지만, 이따금은 나를 혼란 속에 빠뜨리기도 했다.그 혼돈의 정점은 응급의학 수업이었다. 응급의학에서 다루는 가이드라인은 주로 5년을 주기로 개정되는데, 하필 올해가 2025년이었다. 게다가 강의 편제상 2학기 마지막인 8카테고리에 응급의학이 포함되어 있었다.교수님이 금년 개정안을 반영해 강의하실 때면 기출문제를 온전히 믿을 수 없다는 점에서 머리가 복잡했고, "올해 말에 개정될 예정이니 2020년 버전으로 보자"라고 하시는 날에는 한편으로 감사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래도 PK나 인턴 때는 2025년 가이드라인을 따로 공부해놔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샘솟았다.이보다 더 빈번하게 가이드라인이 개정되는 종양학에서는, 아직 올해가 몇 개월이나 남아 있음에도 벌써 2026년도 NCCN 가이드라인을 들고 오신 교수님도 계셨다. 이처럼 가이드라인 변동을 빠르게 반영하시는 교수님들의 경우에는, 과거 기출문제에서 이해가 가지않는 부분을 한참 구글링하다가 해당 연도의 가이드라인에서 답을 찾곤 허탈한 웃음을 지은 적도 있었다. 그야말로, 가이드라인에 울고 웃은 한 해였다.그러다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막연히 의사들이 처방을 내릴 때는 '경험'이나 '감'이 더 크게 작용할 것이라 여겨왔다. 그러나 올해 임상의학을 배우며 느낀 바는, 실제 임상 과정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이드라인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이었다.환자의 증상은 해리슨이나 전공서적의 기준에 따라 점수화되고, 처치는 수많은 학회들이 오랜 시간 검토해 온 guideline에 따라 이루어진다. 임상에 수많은 grey zone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토록 표준화된 세계가 존재한다는 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의학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과학적이었고, 훨씬 더 정교한 학문이었다.이러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역시 인상 깊었다. 해리슨의 한 문장, guideline의 한 줄이 바뀌기까지는 수많은 multicenter RCT가 전제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그 RCT를 수행하고 있을 것이고, 그렇게 집적된 자료 위에 최신 지침이 쌓여 간다. 객관성과 재현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이 과정은, 가이드라인이 왜 '표준'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이드라인이 모든 상황을 완벽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특히 감염학에서, 배양 결과가 나오기 전 환자에게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guideline이 전제하는 틀 안에서 empirical antibiotics가 사용된다.이는 가이드라인의 부정이 아니라, 오히려 가이드라인이 현실의 임상을 고려해 허용한 영역에 가깝다. 대부분의 감염은 일정한 패턴을 보이고, 항생제를 신속히 투여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오류의 위험을 상회하기에 이러한 접근이 지침에 포함된 것이다.이 지점에서 가이드라인은 절대적 명령이 아니라, 의사의 판단을 지탱하는 좌표처럼 느껴졌다. 오랜 시간 누적된 환자 경험과 판단의 흔적이 근거로 정제되어 guideline이 되고, 다시 그 guideline이 다음 세대의 임상을 규정한다.무수한 RCT와 체계적 연구가 의학을 정교하게 만든다면, 그 연구들을 가능하게 한 경험의 집합은 의학을 인간적인 학문으로 만든다. 나는 이 순환 구조가 의학의 본질에 가장 가깝다고 느꼈다. 더 나아가, 이러한 과정 자체가 의사라는 직업과 그 전문성에 대한 하나의 '존중'이 아닐까 싶었다.그렇기에 실제 의료현장에서 내가 마주할guideline은 지금껏 퍼시픽 문제를 풀 때와 달리 절대적 진리가 아니며, 전능하지도 않다. 이 부분은 내년 실습을 돌면서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같은 advanced gastric cancer라 하더라도 환자가 100명이면 100개의 서로 다른 케이스가 있고, 환자의 의지, 가족의 생각, 경제적 여건, 동반 질환에 따라 치료의 방향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guideline은 어디까지나 '이상이자 원형'일 뿐, 현실에 맞게 조정하고 재구성하는 역할은 결국 의사에게 달렸다.오후 5시만 넘어도 어둑어둑해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완연한 겨울을 실감한다. 약간 돌아오긴 했지만, 의대를 다닌 지 6년 만에 이론 강의 블록을 모두 마쳤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실제 환자를 대면하며 진정한 의사로서의 능력을 배양하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학습은, 거칠게 말하자면 AI도 할 수 있는 일이니…. (사실은 AI가 더 잘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인간답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저녁이다.
2026-01-05 05:00:00젊은의사칼럼

내과 실습을 마치며…환자의 삶과 동행하다

[메디칼타임즈=가톨릭관동의대 3학년 안하은 ] 지난번 외과 실습을 마치고 칼럼을 썼을 때, 나는 수술실의 긴장감과 환부를 도려낸 후 회복되어 가는 환자들의 모습에서 느낀 의사의 보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6주간의 내과 실습은 내게 전혀 다른 차원의 질문을 던져주었다. 내과 실습은 드라마틱한 해결보다는,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환자의 삶 그 자체를 마주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외과와 내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환자가 처한 상황과 치료의 지향점에 있었다. 외과 병동의 환자들은 대개 수술을 견딜 수 있는 전신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수술이라는 변곡점을 지나면 회복의 그래프를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반면 내과에서 만난 환자들은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수술보다는 약물과 생활 습관 조절을 통해 질병을 관리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완치가 아닌 관리와 유지가 목표인 상황에서, 환자가 겪는 고통의 시간은 길었고 이를 지켜보는 의료진 또한 끈질긴 싸움이었다. 내과 의사가 짊어져야 할 무게를 처음 실감한 것은 소화기내과 실습 때였다. 나는 간경변증 환자 한 분을 배정받아 문진을 진행하게 되었다. 첫날 병실을 찾았을 때, 환자분은 복수가 차 있어 힘겨워 보이긴 했지만,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내 눈을 맞추며 증상을 설명했고, 학생인 나에게 따뜻한 격려를 건네기도 했다.나는 다음 날의 문진을 기약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병실을 나섰다. 하지만 병마는 예고 없이 환자를 덮쳤다. 이튿날 다시 찾은 병상에서 환자분은 의식이 저하되어 내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셋째 날, 환자분의 상태는 충격적이었다. 간성혼수로 인해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돌아가 있었고, 손발은 의지와 상관없이 꺾여 있었다.불과 이틀 전까지 나와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 급격히 생명력을 잃고 병상에 누운 위중한 환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실습생인 내게 큰 정신적 충격이었다. 환자의 상태가 악화하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면서, 나는 내과 의사가 마주해야 할 상실감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심장내과 실습에서는 생과 사가 갈리는 급박한 현장을 처음으로 목격했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실려 온 환자에게 의료진이 심폐소생술과 관상동맥 중재 시술을 동시에 시행하는 상황이었다. CPR이 실제 사람에게 행해지는 모습은 교과서나 실습실 모형과는 전혀 다른 압도감을 주었다. 좁은 시술실 안에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흉부 압박을 이어가는 인턴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저 치열한 모습이 어쩌면 나의 머지않은 미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과연 나도 저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환자를 살려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책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긴 시간 끝에 환자의 심장 리듬이 돌아왔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환자는 여전히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나는 교수님의 회진을 따라다니며 그 이후의 과정을 지켜보았다. 심장은 다시 뛰지만 깨어나지 못하는 환자 앞에서, 교수님은 보호자를 위로하며 아주 세심하게 환자를 살폈다. 소변량, 혈압, 산소포화도 등 수많은 검사 수치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아주 미세한 약물 용량까지 조절하는 교수님의 판단 과정을 보며 단순히 심장이 다시 뛰게 만드는 것이 끝이 아니라,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데이터 분석과 고민이 필요한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신장내과에서는 만성질환이 환자의 일상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목격했다. 신장내과 병동과 투석실에는 만성 신부전 환자들이 많았다. 환자들은 일주일에 3번, 한 번에 4시간씩 혈액투석을 받아야 했다. 투석 시간뿐만 아니라 이동 시간과 투석 후의 피로감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정상적인 사회생활이나 직업 활동을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더욱 안타까운 점은 신장 질환이 단독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의 합병증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평생 약을 먹고 식단을 조절해 왔음에도 결국 투석을 피할 수 없게 된 환자들의 모습에서 만성질환의 무서움을 보았다. 내과 질환은 환자의 평생을 따라다니며 삶의 질을 좌우하는 무거운 족쇄였다.외과 의사가 수술 여부와 방법을 결정하는 결단의 연속이라면, 내과 의사는 환자의 변화하는 상태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조절하는 인내의 연속이었다. 외과 실습 때는 수술 후 환자가 좋아지는 모습에서 직관적인 보람을 느꼈고, 내과 실습을 하면서는 환자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막아내고, 의식이 없는 환자의 곁에서 수치와 싸우는 의료진의 모습에서 경외심을 느꼈다.6주간의 내과 실습을 통해 나는 의사의 역할에 대해 다시 정립하게 되었다. 환자를 살린다는 것은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내는 순간뿐만 아니라, 서서히 기능을 잃어가는 장기를 대신해 약물을 조절하고, 일상이 무너진 환자의 곁에서 최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긴 여정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앞으로 의사가 되어 마주할 수많은 환자 앞에서, 나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술기를 익히는 것에 더하여 환자의 데이터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의 상태를 놓지 않는 환자와의 동행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2025-12-29 05:00:00젊은의사칼럼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계절

[메디칼타임즈=순천향의대 3학년 오명인 ] 어느 가을날 산부인과를 돌 때였다. 교수님들이 모두 학회를 가셔서 오전에 모두 끝나버린 일정에 바로 공부할 거리를 챙겨서 카페로 향했다. 근데 웬걸 가려던 카페가 임시 휴무였다. 숙달된 P인 나는 당황하지 않고 플랜B를 실행했는데 그건 바로 옆에 있는 샌드위치 집에서 무화과 리코타 샌드위치를 사서 호수 공원에 가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카페를 가서 공부를 하는 플랜 A-1,2,3,4가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았다고 변명을 한다. 내가 하나 강력하게 확신하는 것은, 눈앞에 온 거짓말 같은 날씨는 절대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때 즉시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부천에 산 지 2년이 되어간다. 나는 어떤 동네나 내가 매트리스를 깔고 눕는 곳이라면 곧잘 좋아하고 뿌리를 내리는데, 이번에 지낸 도시는 그중에서도 애착을 갖기 쉬웠다. 특히 부천의 가을은 더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을 갖게 만든다. 나는 기회만 되면 병원 지하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하고 노트북을 챙겨 공원 한복판 정자에서 공부를 하면서 한점이라도 더 가을을 보고 가려고 안간힘을 썼다.자전거를 십분 정도 타고 도착한 호수 공원은 작지만 정리가 잘 되어있어서 걷거나 자전거 타기 매우 좋다. 적당히 볕이 드는 자리를 선택해서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한다. 사실 작년까지 무화과에 취미가 없었는데 이번 여름 오키나와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산 무화과로 아침을 해 먹은 이후로 한국에서도 계속 무화과를 찾아다녔다. 치아바타에 리코타, 무화과와 루꼴라만 들어간 간단한 샌드위치인데 꽤 비싸고, 매우 맛있다. 샌드위치 위로 햇빛이 흔들린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이 빛을 뭐라고 했는데… 뭐라고 했더라.손을 털고 조금 걷기 시작한다. 혹시나 해서 책도 챙겨왔다 <고상하고 천박하게>라는 이훤 작가와 가수 김사월의 주고받은 편지 형식의 책이다. 읽다가 인기척이 느껴져 앞을 보니 양볼이 붉은 아기가 나에게 낙엽을 건넨다. 그 사랑스러운 선물을 책 사이에 끼우기 전에 햇빛에 한번 비춰본다. 샛노란 벚나무 낙엽을 덮고 있는 미세한 갈색 반점들, 그 사이를 지나가는 미세한 잎맥,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가늘고 얇은 경계로 갈라지고 그 틈을 햇빛이 채우면서 빛나고 있었다. 무언가를 이렇게 관찰한 적이 너무 오래전 같았다. 가끔 애인과 구글맵으로 세계지도를 보면서 가끔 어디로 여행 가지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최근에는 생각보다 세상이 너무 좁다는 느낌이 들어서 어이없이 우울해진 적이 있었다. 이 세상의 경험들을 다 묶은 책을 다 읽어버리면, 그 이후에는 어떡하지? 그런 걱정이었다. 그러나 필요 없는 걱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매년 똑같이 돌아오는 가을을, 이번에 지나가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이렇게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웃겼다.
2025-12-22 05:00:00젊은의사칼럼

마라톤 트랙에는 사람이 많다

[메디칼타임즈=단국의대 1학년 유우선 ] 약리학 3차 시험이 끝났다. 어제는 밤을 샜고, 다음 주는 병리학과 예방의학, 신경생리학 시험이 몰아친다. 그리고는 본과 1학년의 한 학기가 장장 2년 만에(예기치 않은 휴학 기간을 셈하여) 끝이 난다.본과는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공부량이 많아서, 하도 소문이 자자해서는 아니고, 그냥 내가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낼지가 빤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매몰될 내가 보였다. 그저 의사로서의 배움에 성실히 임하면 된다는 대전제보다, 그에 딸려오는 부수적인 것들, 이를테면 성적, 시험 결과나 완료도 같은 것들에 매몰될 나. 학기 시작 전에는 하는 데까지만 하는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만 다하면 돼, 수없이 혼자 글을 쓰고 되뇌이면서 생각 정리를 해보았지만 내심은 별로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리고 8월 개강 이후 4개월은 예측 그대로 흘러갔다. 훅 줄어든 수면 시간, 어마어마한 공부량에 쫓겨 만성적으로 갖게 된 초조감, 매주 시험 결과에 따라 널뛰는 흥분과 좌절. 이 모든 것은 빵빵하게 하루하루를 채워 내 일과를 아주 불건강하게 부풀렸다. 엊그제 병리학 교재에서 본 Myocardiac hypertrophy에 빠진 심장처럼, 비대해진 하루를 짊어지고 사는 기분이었다고 표현하면 적절할 것이다.그것이 임계점을 넘었을 때는 지난 주말이었다. 1주일에 최다 시험을 3개까지는 경험해보았지만, 학기의 마지막 2주 동안은 시험 7개에 실습까지 하나가 몰아칠 예정이었다. 그에 대비하여 지난 주말에는 당장 다음 주에 봐야 할 약리학 3차 시험 준비는 우선 잠시 밀어두고 다른 과목을 준비했다. 아침 8시부터 스터디카페에 앉아 밥도 먹지 않고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하루가 다 지나 문득 진도를 짚어보니 헛웃음이 나왔다.분명히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 오늘 계획한 목표량에 도달하기에는 한참 모자랐고, 아침에 한 페이지는 다시 펼쳐보면 새롭기만 했다. 그 느낌이 너무 싫었다. 그래도 나름 많은 로딩과 과제를 감당하면서 타파할 계획을 늘 세워왔는데 지금은 그 계획조차 세울 수가 없었다. 그대로 의욕이 꺾이자 더 이상 스터디카페에서는 버틸 수 없어 집으로 가 침대에 몸을 묻었다, 자야 해, 하고 되뇌이면서도 속이 복잡했다. 외운 것과 외우지 못한 것, 이해한 것과 모르는 것이 한 뭉치로 뒤섞여 머리를 끈적하게 더럽혀 푹 자지도 못했던 지난주의 밤이었다.그렇게 주말이 끝나고 학교에 가는 것도 괴로웠다. 학교에 가면 또 나보다 열심히 하고 나보다 많이 공부해둔 동기들이 있겠지. 체력도 좋고 머리도 좋은 애들이 좀 덜 열심히 했으면 좋겠는데, 그래야 내가 어찌어찌 나아갈 틈이라도 나올 텐데 이들은 열정까지 빠지는 면이 없어 나를 옴싹달싹 못하게 한다. 오늘 아침부터 그 풍경을 보아야 한다는 게 너무 싫었다.무너진 몸과 마음을 그러앉고 돌아본 강의실에는 역시 열기를 온몸으로 뿜는 동기들이 있었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집중하는 동기도, 눈을 감고 암기를 하다가 그대로 잠들 뻔한 동기도 있었다. 서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 대해 열을 내어 설명을 하고 머리를 싸매거나, 졸음껌에 커피를 연신 들이키는 풍경은 예사였다. 그런 동기들을 보자 주말 내내 부산하던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나를 더 무너뜨릴 줄 알았던 강의실은 되려 내 손에 펜을 다시 쥐게 했다.예전 같았으면 경쟁심이라고 읽었을 마음이다. 지기 싫으니까, 남들 하는 만큼 해야 하니까 다시 독기를 갖고 임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다른 사람에 대한 질투나 경쟁으로 버틸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음을 알았다. 경쟁이 과열되었던 학기 초는 한참 지나 이제 마지막 몇 주만을 남겨두었는데도 공부할 것은 여전히 많고, 체력은 실시간으로 고갈되고 있으며, 모두가 전에 비해 지쳤다는 것이 자명했으니까. 이제는 충격을 받을 겨를도 없다. 순간순간 무너지는 자기 자신을 건져 올리며 달리기를 지속해야 하는 시기이다. 내가 주말에 넘어졌던 그 트랙은 다른 사람과 완주 시간을 경쟁하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스스로의 완주를 두고 버티는 마라톤 트랙이었다.이를 인지하고 주변을 바라보자 확 체감되었다. 각자의 속도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동기들, 그러니까 동료들의 달리기가 있었다. 그리고 참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버티며 뛰고 있다는 그 사실에 기운이 났다. 모두가 참 대단하고, 또 좋아 보였다.솔직히 말하면 주변인, 동료애, 그런 것에 영향을 받는 타입은 전혀 아니다. 더 확실히 말하자면 오히려 혼자 시간과 로딩을 감내하고 버티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또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강의실로부터 전해져 온 그 감응이 더 나를 생경하게 했다. 나를 버티게 하는 건 늘 나 뿐이고, 그 생각은 바뀔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실시간으로 대략 40명의 사람에게 건져 올려지는 감각은 참으로…낯설고 고마웠다.물론 그들이 내 어리숙한 동료들이 나에게 특별히 무언가를 해준 것은 없었던 상황이나, 그저 내 옆을 뛰는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근육에 에너지를 주는 기분이었다.동기라. 괜히 '同'자를 쓰는 것이 아니다. 하나가 되어 같은 과정을 밟는 이 사람들은 너무 당연해서 무감해지나 또 당연하게도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상처를 핥는다.고작 본과 1학년 한 학기가 지났으니, 앞으로 달려야 할 남은 트랙이 훨씬 더 길다. 그러나 지난 주말에 한 번 넘어지고, 또 시 일어나면서 위안이 되는 사실을 몇 가지 더 알았다. 물통은 나만 하나밖에 못 든 줄 알았는데, 옆에 한 모금 정도야 나눠줄 사람이 있다는 것. 최소…40명 정도는. 나만 혼자 뛰면서 힘들어한다고 생각하며 외로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 똑같은 사람들 최소 40명은 있으니까.다음 주는 시험 5개가 남아있는 지옥의 한 주인데, 내 바보같이 우직한 동기들이 또 열심히 잘 버텨주길 바란다. 그럼 나도 수시로 고개를 들어 그 달리기에 합류할 힘을 얻을 터이니. 
2025-12-15 05:00:00젊은의사칼럼

의학을 오래 사랑하기 위해

[메디칼타임즈=가톨릭관동의대 1학년 정지은 ]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의학이라는 학문이 유독 흥미로웠다. 누군가의 몸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변화들을 읽어내는 일이 신기했고, 지식이 쌓일수록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이 보인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래서 의대를 꿈꿨고, 결국 그 길 위에 서게 되었다.휴학을 마치고 다시 학교에 돌아온 첫 학기의 시작은 심장 파트였다. 처음 며칠 동안은 그야말로 공부가 재밌었다. 심장이 전기 자극을 받아 움직이는 방식, 압력 변화로 판막이 열리고 닫히는 순간들, 구조들이 서로의 빈틈을 정확히 메우며 돌아가는 정교함이 경이로웠다.모르는 개념들이 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그림처럼 머릿속에 자리 잡는 경험이 이어졌고, 그 과정 자체가 공부하게 하는 큰 힘이 되었다. 선배들이 말하던 "본과는 버겁다"라는 말을 들었어도, 그때의 나는 그 말이 왜 나오는지 실감할 수 없었다. 공부가 어렵다는 감정보다 '배운다'는 감정이 먼저였다.그러나 계속 이어지는 본과 수업의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과목이 바뀌고 강의록이 매일 쌓이기 시작하면서, 의학을 향한 흥미는 서서히 압박과 의무감의 무게 속으로 밀려났다. 처음에는 흥미로웠던 내용들도 "오늘 안 끝내면 내일 밀린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내용의 의미보다 양이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고 있는데도 공부에 쫓기는 느낌. 내가 공부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공부가 나를 끌고 가는 느낌. 그 감정이 하루하루 깊어졌다.그러는 사이, 나는 하루 세네 시간 남짓 자는 생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아이패드를 열었고, 밥을 먹는 동안에도 암기를 반복했다. 누워도 머릿속에서 외우지 못한 내용이 흘러나왔고, 꿈속에서도 족보 문제를 풀고 있었다.좋아서 시작한 공부인데, 어느새 좋아하는 마음이 도리어 나를 몰아붙이는 힘이 되어 있었다. 호기심 대신 초조함이, 성취감 대신 압박이 자리를 차지했다. 내가 원하던 모습이 아님을 알면서도 멈추기 어려웠다.그러다 최근 내분비학 시험이 끝나고 난 뒤 처음으로, 나는 멈춰서 내 상황을 바라볼 시간이 생겼다. 시험이 끝났다는 사실보다, '이제 잠시라도 숨을 고를 수 있다'는 안도가 더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 여유 속에서, 나는 드디어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물어볼 수 있었다."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본과 생활을 보낼 수 있을까?"천천히 생각해보니, '의학을 좋아한다'는 감정 하나만으로는 이 시간을 지탱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마음은 분명 시작을 끌어주는 불씨였지만, 그것만으로는 긴 시간을 하나의 방향으로 밀어주는 힘이 되지 못했다.내가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이유도 결국 더 잘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지만, 어느 순간 그 바람이 나 자신을 압박하는 기준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다 문득, 좋아하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 마음을 지나치게 다그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닿았다.나는 여전히 의학이 좋다. 하지만 의학을 향한 열망이 아무리 크더라도, 나라는 사람이 건강하게 유지되지 않으면 그 마음 또한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학을 통해 누군가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하고 싶다면, 먼저 나 스스로가 어떤 상태인지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결국 좋아하는 마음을 오래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의학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길을 걷는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래서 앞으로의 나는 공부의 양이나 속도만을 기준으로 하루를 판단하기보다, 어떤 마음과 어떤 상태로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에 더 귀 기울이려 한다.의학이라는 넓고 깊은 세계를 탐구하면서도 그 안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법을 조금씩 익혀가는 시간, 좋아하는 마음이 무거운 짐으로 바뀌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감각,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걷는 나를 잘 챙기는 태도. 이런 것들이 결국 내가 이 길을 오래 걸어갈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바탕이라는 생각이 든다.
2025-12-08 05:00:00젊은의사칼럼

돌아오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메디칼타임즈=가톨릭 관동의대 1학년 배지섭 ] 본과 1학년, 병리학 수업 시간이었다. 세포가 손상을 입더라도 일정 수준까지는 회복할 수 있지만, 특정 임계점을 넘어서면 다시는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교수님의 설명을 듣던 중이었다. 핵이 쪼개지고 세포막이 터져버리면, 아무리 좋은 처치를 해도 돌이킬 수 없다. 그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배우던 그 강의실의 건조한 공기 속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지나간 인연 하나를 떠올렸다.그 시절의 나는 세포 하나를 지키는 법도 모를 만큼 철이 없었고, 나약했다. 내 나약함이나 부족함이 드러나는 것 그 자체를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바닥이 드러나려는 순간, 가장 쉬운 선택을 했다. 상대를 밀어내고 '나'라는 존재를 지키는 것. 하지만 그 '나'는 실은 위태로운 자의식에 불과했다. 인연을 스스로 끊어내는 것이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던 그때의 판단은, 지금 돌이켜보면 내 인생 가장 큰 오판이었다.의학에는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결정적인 시간, '골든타임'이 있다. 생명에만 골든타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도, 관계에도 분명한 골든타임이 존재한다. 나는 그때 내 방어기제에 갇혀 그 결정적인 시간을 놓쳐버렸다."나는 아직 당신을 잘 모른다", "나는 아직 나조차도 잘 모르겠다"관계를 망치고 난 뒤에야 깨닫는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내 사람'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나'라는 존재의 중요도를 잠시 뒤로 미룰 줄 아는 용기였다는 것을. 내 세계를 포기하고 상대의 세계에 종속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의 세계와 너의 세계가 만나, 홀로 지켜내던 그 좁은 세계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우리'의 세계로 확장되어 가는 과정임을 그땐 알지 못했다.한때는 나를 통과해가는 모든 인연을 붙잡고, 최대한 다양한 사람을 내 곁에 두는 것이 능력이라 믿었던 적도 있다. 넓은 인맥, 많은 친구, 내가 그들을 잇는 징검다리가 되는 삶. 그 시절의 경험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 덕분에 내 세계의 폭은 분명 넓어졌다. 하지만 의학 공부가 깊어질수록 얕은 지식만으로는 생명을 구할 수 없음을 깨닫듯, 인간관계 또한 '폭'보다는 '깊이'가 절실해지는 순간이 온다.수많은 인연의 스침보다, 단 한 명의 '내 사람'과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 시점. 우리는 그 시점을 놓친 대가로 가끔 뼈아픈 후회를 치룬다.최근 우연히 본 드라마의 대사가 폐부를 찔렀다. "저는 모든 만남과 이별이 운명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그 모든 사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죠. 제가 세상을 구할 순 없겠지만 제 곁에 있는 사랑하는 이라도 지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세상을 구하는 거창한 의사가 되기 전에, 내 곁의 사람조차 지키지 못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워지는 대목이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어 줄 거라는 안일함. 그 안일함 속에서 뱉은 날 선 말들은 공기 중에 흩어지지 않고 관계를 얼룩지게 했다. 그리고 "아차" 싶어 바로잡으려 했을 땐, 이미 관계는 병리학 책에서 보았던 그 '비가역적' 변곡점을 지난 뒤였다.이것이 타이밍이 가진 무서움이다. 한 번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죽어버린 세포가 되살아나지 않듯, 타이밍을 놓친 관계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그렇다면 뒤늦은 후회와 반성은 무의미할까? 병리학적으로 이미 죽은 조직은 되살릴 수 없지만, 의사는 그 과정을 복기하며 다음 환자를 살릴 지혜를 얻는다. 나에게 이토록 아픈 '반성'은 지나간 시간을 바로잡을 순 없어도, 다가올 미래의 선택을 바꿀 힘이 된다. 인간은 결국 관계로부터 성장하기에, 이러한 뉘우침은 '특정 시절'과 '특정 사람'만이 가르쳐줄 수 있는, 가장 값비싼 배움일 것이다.어쩌면 그 시절의 미숙함과 그 사람과의 이별은, 비단 의사뿐만 아니라 앞으로 제대로 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나에게 가장 값비싼 '임상 실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살리는 일도, 사람을 사랑하고 지키는 일도, 결국엔 그 결정적인 타이밍과 깊이, 그리고 인성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가르쳐주었으니 말이다.
2025-12-01 05:00:00젊은의사칼럼

나를 믿는다는 것은

[메디칼타임즈=고신의대 2학년 김민지 ]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다르게는, 초심을 기억하는 건 어렵다.그것이 내가 이번 여름과 가을. 두 계절을 지내며 한 생각이다.휴학 후 개강이 다가왔다. 하루에 7시간, 8시간씩 주에 6일. 살인적인 스케줄이었지만 그 시간표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나의 십대 시절 목표는 오직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1인분을 해내는 사람이고 싶었고 기왕이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조건에 의사는 완벽한 직업이었다. 의과대학에 입학하고서는 하루하루가 즐거웠고, 졸업해 나의 오랜 꿈을 이루리란 기대에 하루하루가 꿈같았다.하지만 휴학 기간의 나는 1인분은커녕, 마이너스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허전함을 채워보려 이것저것 도전을 해봤지만, 결국 내가 하고싶은 공부는 하지 못하고 둥둥 떠도는 상태. 본질에서 동떨어진 것만 같아 우울했다. 그래서 개강 후에는 모든 순간 공부했다. 과외를 끼운 사이사이에나, 밥을 먹다가도, 그리고 잠자기 전까지도 공부를 했다. 공부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하지만, 대면 개강 이후에는 상황이 변했다.혼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부대끼며 공부하다 보면 보이는 게 있다. 저 친구는 아까 배운 내용을 바로 심화까지 해낸다거나, 이 친구는 해부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뛰어나다거나. 거기에 더해 누구는 어떻게 공부하고, 누구는 한번 보면 외우고, 누구는, 누구는, 누구는…. 들려오는 정보는 방대했다.'나는?'하는 생각에 감정을 갈무리하기 어려웠다. 나의 부족한 점이 보이고, 그 점을 채우기도 전에 계속해서 늘어나는 쏟아지는 정보가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책상 앞에 앉으면 숨이 턱 막혔다. 다른 친구들은 더 빨리했을까, 이미 완벽하게 했을까…. 방법이 중요해졌고, 남들의 진도가 신경 쓰였다.그러다 탈이 났다. 하루에 두 시간씩 이주. 그렇게 잠도 안 자고 공부를 하다 보니 몸살이 났다. 뭐가 그리도 바빴던 것인지. 열이 올라 공부를 하지 못한 채 가만히 멍하니 생각하다 보니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더라, 라는 물음에까지 닿게 되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고 싶어서? 이번 시험 성적을 잘받기 위해서?…아니, 다 아니다. 그냥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서. 그 이유 하나였다. 의사가 되고싶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 그걸 잊은 채 단기적인 목표에 갇혀 나를 갉아먹기에 급급했다. 지금껏 잘못된 방향으로 달려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장기적인 목표를 생각하며 나만의 페이스를 찾기로 마음먹었다.우선, 나를 돌보기로 했다. 원래 나를 돌봐야 남을 돌볼 수 있는 법이다. 다시 '나의 리듬'을 만들기로 했다. 내내 쉬지 않고 공부만 하다 보니,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지쳐갔다. 무작정 공부하기보다는 정해진 시간만큼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쉬는 것에 죄책감이 느껴질 때면 '공부를 지속하기 위한 쉼이다'라고 생각하니 편해졌다. 또한, 짬이 날 때마다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 했다. 카페에 갈 때는 괜시리 바다가 잘보이는 창으로 가고, 일요일에는 좋아하는 샌드위치를 사먹었다. 밥을 먹을 때만큼은 공부 이야기가 아니라, 친구들과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떠들어댔다. 마음이 가벼웠다. 실제로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것을 하다보니 능률이 좋아졌다.그러다보니 점차 나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나를 위한 나만의 방법을 가장 잘 알고있는 것은 나일 터였다. 내가 어느 부분이 약한지, 어떻게 시간을 분배하는 것이 좋은지, 어떻게 달래가며 공부해야 하는지. 내가 공부해 온 모든 시간들이 증거이다. 거북이는 거북이이고, 토끼는 토끼다. 사람마다 맞는 공부의 방식은 다르고, 차이가 있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님을 이제는 안다. 다른 친구들이 어디를 공부하고 있는지를 비교하며 불안해하기 보단, 나는 내 맞춤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공부도 삶의 일부이자 살아감의 과정이다. 삶과 맞닿은 모든 일은 결국 나를 알아가고 기억해 내는 일이다. 내가 왜 무언가를 하고 싶은지를 고민하고, 그 이유를 찾았다면 잊지 않고 간직한다. 내게 맞는 방식을 찾아 수없이 시도하고, 그 과정을 버텨온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쌓아가는 것이 삶인 것 같다. 오늘도 조금은 흔들릴지라도 꾸준히 나 자신을 살아내보려 한다.
2025-11-24 05:00:00젊은의사칼럼

슬픔을 공부하는 일에 대하여

[메디칼타임즈=경북의대 1학년 노정연 ] 기관 삽관 실습수업 날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접해보는 모형의 기도를 찾기 위해 갖은 애를 쓰던 와중,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눈앞에 모형이 아니라 부모님이 쓰러져 있다고 생각해라"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과연 저는 정신을 똑바로 붙들고 침착하게 기관 삽관을 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겁니다.그저 울고만 있지 않으면 다행일 테죠. 상상만으로 몸서리가 쳐지는 끔찍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상상이 아닌, 일상 속에서 마주할 다분히 현실적인 일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작년 한 해 동안 응급 구조대의 출동 건수는 336만 건에 달합니다. 하루에만 평균 9,000건 이상의 응급 환자 이송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절대 작다고 할 수 없는 숫자입니다. 슬픔은 마치 그림자 같아서 구태여 내려다보지 않는 한 우리는 항상 그 존재의 가능성마저 잊은 듯 살아가지만, 사실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일지도 모릅니다.세상에 이렇게 슬픔이 가득한데, 어떻게 매번 피해 가길 바랄 수 있을까요? 병원을 오가며 스쳐 지나갔던 수없이 많은 환자분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귓가를 울리던 사이렌 소리를 떠올리니 저절로 숙연해집니다. 미래에 의사가 되어 마주하는 환자분들과 가족분들 모두 잠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고달파지는 슬픔들을 매순간 견디고 계실 것이라는, 다분히 현실적이면서도 잔인한 이 문장의 무게를 이제서야 가늠하고 또 배우고 있습니다.의과대학에서 배우는 대부분의 학문은 질병에 대한 것입니다. 주로 질병의 원리와 해결방안에 관한 내용들이죠. 의학은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환자들을 분석한 후, 일관된 진단 기준 및 치료 방안 등을 개발해 왔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의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전에는 원인조차 알 수 없던 병들이 이제는 간단히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바뀌기도 했고, 수많은 환자분들께 새 생명을 선물하기도 했죠. 하지만 과연 이걸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의학에서 주로 다루는 수치들은 결코 눈물 흘리는 법이 없지만, 우리가 앞으로 만나게 될 환자들은 모두가 각자의 사연을 안고 내원하기 마련입니다. 어떤 이야기는 엄청나게 슬프고, 또 어떤 이야기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황당할 수도 있습니다. 환자 개인에게 있어 질병은 정량화될 수 없는, 개인의 고유하고도 주관적인 경험입니다. 과연 의사로서 우리는 환자의 슬픔을 모두 헤아릴 수 있을까요? 이미 답은 정해져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로서 환자의 슬픔을 헤아리기 위한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신형철 문학 평론가는 저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심장이다. 심장은 언제나 제 주인만을 위해 뛰고, 계속 뛰기 위해서만 뛴다. 타인의 몸속에서 뛸 수 없고 타인의 슬픔 때문에 멈추지도 않는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니까. 그럴 때 인간은 심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한겨레 출판(2016))상대방의 고통에 결코 가닿지는 못하더라도, 그 한계를 슬퍼하면서 우리는 또 하나의 '슬픈 심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슬퍼하는 누군가의 심장을 홀로 두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치 사람 인(人)자가 서로 기댄 모습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형상화한 것처럼, 우리는 상대방을 결코 온전히 이해하거나 합일할 수는 없더라도, 서로에게 기대어 잠시 쉬어갈 수 있지는 않을까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영원히 슬픔을 피해갈 수는 없겠지만, 함께 슬퍼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은 더 견딜 만하지 않을까요?앞으로 슬퍼하는 사람을 무수히 많이 보게 될 의학도들에게 꼭 필요한 마음 가짐 중 하나는 슬픔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환자의 슬픔을 끝까지 함께하는 것이 의사의 덕목이자 윤리일 테니까요. 무엇 하나 동일한 슬픔이 없을 것이고 또 어느 하나도 가볍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평생을 공부해도 계속 모자라고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음은 자명합니다.
2025-11-17 05:00:00젊은의사칼럼

사람의 모든 움직임은 근육에서 시작한다

[메디칼타임즈=경북의대 이진규 졸업생 ] 사람이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과 같다. 인간의 뇌는 애초부터 움직임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거대하고 캄캄한 두개골 속에 갇힌 연두부 같은 뇌는 위험 상황이 닥치면 언제든 도망갈 궁리를 한다.외부세계에서 입력된 위험 신호에 즉각적으로 '움직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튼튼한 두 다리와 두 팔은 어쩌면 뇌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충신과도 같다. 우리는 그렇게 자신을 지켜왔고 살아냈다.슬프게도, 모든 사람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뇌가 손상되어 움직이라는 신호를 보내지 못하거나, 신경 회로가 꼬이거나 끊어지는 등 다양한 원인 때문이다. 근육까지 신경이 전달되지 못하면, 작동하지 않는 근육은 서서히 기능을 잃는다.근섬유다발의 수가 줄어들고 근력은 점점 약해진다. 스스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근육이 심하게 위축되면 체중을 지탱하는 뼈가 골절에 취약해질 뿐 아니라, 전신의 대사 기능이 극심하게 저하된다. 그렇게 한 인생의 해가 저물어간다.교통사고나 추락으로 발생한 외상성 뇌손상 환자들, 도파민 분비 저하로 움직임이 느려지고 지속적인 떨림을 겪는 파킨슨병 환자들, 유전자 결함으로 3~5세경부터 근육이 점차 약화되어 운동 능력을 상실하는 듀센 근이영양증 환자들, 운동신경세포의 점진적인 파괴로 인해 근육이 약해지고 결국 호흡 기능까지 상실하는 루게릭병 환자들.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그리 멀지 않은 우리네 이야기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을 포기할 수 없다. 의사는 몸 안의 병과 싸우지만, 공학자는 몸과 기계를 연결한다. 이 움직임을 되찾기 위한 시도는 의학의 영역을 넘어 공학으로 확장되었다. 뇌와 기계를, 근육과 신호를 잇는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시도는 이미 반세기의 역사를 갖고 있다. 뇌 깊숙한 곳에 전극을 삽입하는 뇌심부자극술은 수많은 파킨슨병 환자의 떨림을 멈춰주었고, 두개골 밖에서 전기장과 자기장으로 뇌를 자극하는 기술은 이미 임상에서 일상이 되었다.최근에는 더욱 정교해졌다. 빛, 소리, 초음파로 뇌 특정 부위를 자극하는 광유전학과 음향유전학이 등장했고, 스위스 연구진은 척수신경 자극으로 하반신 마비 환자를 다시 걷게 만들었다.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는 뇌 이식 칩으로 원숭이를 조종하는 데 성공했다.이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 곁에서 조용히 시작되었다. LG전자는 뇌파를 조율해 수면을 유도하는 이어폰을 내놓았고, 파낙토스는 뇌파로 정신 질환을 진단하는 기술을 상용화했다. 서울대 연구진은 생체적합성 소재로 뇌와 근육 손상을 최소화하며 신호를 주고받는 인공피부와 인공근육을 개발 중이다.그렇다면 이런 기술들은 왜 중요할까? 기존 치료법을 돌아보면 답이 보인다.모든 의사의 허리춤에는 두 개의 무기가 있다. 하나는 약물, 다른 하나는 수술이다. 약물은 전염병으로부터 우리를 살려냈고, 수술은 암으로부터 우리의 수명을 늘렸다. 인류 의학사를 지탱한 두 기둥이다.하지만 두 무기에는 한계가 있다. 약물은 전신을 순환하며 부작용을 낳고, 수술은 절개와 마취의 위험을 안고 있다. 항생제 알레르기 때문에 감염을 치료할 수 없는 사람, 고령으로 암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생겨난다.더 큰 문제는 신경계 질환이다. 파킨슨병의 도파민 부족을 약으로 보충할 수는 있어도, 손상된 신경 회로 자체를 복구할 수는 없다. 루게릭병의 운동신경세포 파괴를 수술로 막을 방법은 없다. 약물은 너무 광범위하고, 수술은 너무 침습적이다. 신경계는 그 사이 어딘가의 정밀함을 요구한다.그때, 세 번째 무기가 등장한다. 바로 전자약이다.전자약은 약물처럼 전신을 떠돌지 않는다. 수술처럼 조직을 크게 절개하지도 않는다. 대신 전기, 빛, 자기, 초음파라는 에너지를 병변 부위에만 정확히 전달한다. 약물과 수술 사이의 빈틈, 바로 그 정밀한 공간을 파고든다.더 중요한 것은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약물은 일방적으로 투여되고, 수술은 한 번의 결단이다. 하지만 전자약은 실시간으로 신경 신호를 읽고, 필요한 만큼만 자극을 조절하며, 환자의 상태 변화에 즉각 반응한다. 마치 신경계와 대화하듯이.뇌심부자극술부터 뉴럴링크, 그리고 우리 곁의 이어폰과 인공근육까지, 이 모든 기술이 전자약의 범주에 속한다. 이것은 약물과 수술을 대체하는 무기가 아니다. 세 무기가 함께할 때, 비로소 우리는 신경계라는 미지의 영역에 온전히 다가갈 수 있다.평생 앉아 지내던 사람이 일어나 걷는다. 약물도, 수술도 포기한 환자가 움직임을 되찾는다. 기적은 멀리 있지 않다.의사 면허증의 잉크가 아직 마르지도 않았지만, 논문을 읽을 때마다 귓가에 맴도는 목소리가 있다."나야, 전자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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