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 약이 될 수 있는가
이런 상상을 해보자. 당신은 암에 걸렸다. 가족들과는 20년 전쯤 연락이 끊겼고, 연락하는 친구는 한두 명뿐이다. 그래도 완치의 꿈을 품고 힘든 검사들을 모두 마쳤고, 가슴팍에는 케모포트도 넣었다. 20차, 30차에 이르는 항암치료도 견뎌냈다. 며칠 전에는 운 나쁘게 다리를 다쳐 혼자 걷기도 어려워졌지만, 이번에도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그런데 주치의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몇 달 남지 않으셨습니다"그 사실은 당신의 삶에서 약이 될까, 독이 될까?혈액종양내과 실습에서 만난 그 환자는 그런 소식을 듣기에는 너무 젊어 보였다. 회진을 위해 커튼을 젖히자, 양손을 깍지 껴 목 뒤에 베고 누워 있다가 급히 몸을 일으켰다. 절망적이지도, 그렇다고 희망을 간절히 붙잡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 눈빛이었다. 교수님이 설명하시는 치료에 대해서 익숙한듯 고개만 끄덕이고 더 질문도 없이 다음 환자로 넘어갔다. 회진을 마친 뒤 교수님께서 물으셨다."아까 그 환자 기억나니?"교수님은 환자의 병력을 차분히 훑으셨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대장암으로 진단받았고 당시 꽤 진행된 병기였다. 지금까지 항암치료를 이어왔지만 반응은 좋지 않았다. 사회적 지지 체계는 거의 없이 혼자 살고 있었고, 다리 부상으로 거동도 어려웠다. 의학적으로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사실은 비교적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그 사실을 환자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는 분명하지 않아 보였다.가족도 친구도 거의 없는 사람에게, 이제 몇 달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환자를 위한 일일까. 그 사실을 안다고 해도 가족들과 친구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거나, 여행을 떠난다 거나 하는 소위 말하는 '의미 있는 여생 보내기'를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면, 진실은 위로가 아니라 형벌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괜찮은가. 환자는 자신의 병을, 자신의 삶의 남은 날을 알 권리가 있지 않은가.교수님은 자신도 어떻게 해야할지 일주일 내내 고민중이라고 하시며, 우리에게도 생각을 물으셨다. 우리는 열심히 고민했지만 어느 쪽도 정답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말하는 것은 잔인해 보였고, 말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해 보였다.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에는 '나쁜 소식 전하기'라는 항목이 있다. 말 그대로 말기 암 판정과 같이 의학적으로 나쁜 소식을 환자에게 전달하고, 앞으로의 치료 계획을 의논하는 시험이다. 객혈이나 호흡곤란처럼 여러 질환을 감별해야 하는 항목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은 충분하다. 해야 할 말도 알고 있다. 그러나 처음 그 모듈을 연습했을 때, 나는 그 사실에 좀처럼 발을 딛지 못했다. 완곡한 표현으로 주변을 맴돌았다. 하지만 훈련 받은 표준화 환자는 집요하게 물었다."그래서 완치가 되는 건가요?"그 '해야할 말을 해!' 하는 눈빛에 나는 결국 말해야 했다. 더 이상 완치를 목표로 하기는 어렵다고.시험장에서 그 말을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의사의 의무임을 반복해서 배웠다. 그러나 실제 병실에서는 그 말이 한 사람의 남은 시간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것도 배운다. 그래서 의사의 삶은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의료진의 선의, 진실과 보호, 희망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진실을 내 뱉어야 하는 삶일 것이다. 우리의 열띤 토론을 듣는 교수님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가 꺼낸 말들은 어쩌면 교수님이 이미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 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답을 쉽게 정할 수 없는 심리적 무게가 그 표정에 남아 있었다. 거미줄 같은 대장암 치료 가이드라인을 아무리 따라가도, 가족이 없는 환자에게 나쁜 소식을 어떻게 전할지, 더 이상 완치를 말할 수 없을 때 어떤 언어로 희망을 다시 정의 할지는 쉽게 알 수 없다. 종양혈액내과 실습의 마지막 날까지도 환자는 똑같이 의연한 표정으로 교수님을 맞았다. 마지막 회진이 끝나고, 아직도 진실을 모를 그 환자를 생각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긴 병원 복도를 걸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환자도 다가오는 크고 무거운 사실을 이미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었을지 모른다고. 어딘가 에둘러 가는 주치의의 말, 침상 뒤에 서 있는 학생들의 눈빛,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병실의 공기 속에서, 환자 역시 더 묻지 않는 방식으로 그 사실을 견디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나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의사가 큰 마음을 씹어 삼켜야 하듯, 나쁜 소식을 듣는 환자도 자기만의 속도로 마음을 준비한다. 그래서 나쁜 소식 전하기란 의사의 일방적인 통보도, 환자에게 모든 진실을 한순간에 떠넘기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의사와 환자가 서로의 준비를 살피며, 결국 피할 수 없는 진실 앞에 함께 도착하는 과정에 가깝다.어쩌면 학생인 우리가 책 바깥에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치료가 더 이상 충분한 답이 되지 못할 때, 그 무거운 진실을 환자와 함께 견디는 방법을, 가끔은 모르는 것이 약이 될 것 같은 순간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