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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짱 어른 되기

어릴 적 즐겨보던 만화영화를 떠올려보면, 주인공의 이름이나 기술 앞에 '슈퍼'나 '짱' 같은 수식어가 붙으면 무조건 강하고 멋져 보였다. 물론 그것이 늘 완벽한 승리를 보장하는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악당에게 쓰러지더라도 묵묵히, 그리고 꿋꿋이 다시 일어나 기어코 '슈퍼짱' 필살기를 쓰고 마지막에 승리해 내는 주인공은 정말 멋졌다. 내 올해 새해 계획은 바로 그 '슈퍼짱 어른 되기'로 정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계획을 세웠던 것은 아니었다. 의과대학생은 대개 6년의 긴 학업 기간을 거친다. 다른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고 본인의 커리어를 쌓을 시점에도 여전히 학업에 매진하는 것이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똑같은 교실, 똑같은 자리에서 수업을 듣노라면, 나이는 어엿한 어른이지만 여전히 고등학생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과연 나는 어른인가.어느덧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에, 2026 새해 계획까지 '훌륭한 어른 되기'로 정해놓고 보니, 이런 고민은 피할 수가 없었다. 남들이 보기엔 충분히 어른인 나이지만 생활 패턴은 여느 고등학생과 다르지 않은 삶. 동창들은 결혼과 내 집 마련, 부모님 노후대책에 대해 고민할 때, 나는 시간표와 시험범위, 과제 마감 일정을 고민하는 삶. 고등학생도, 어른도 아닌, 정말 그 사이 어딘가. 어른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가장 어른다운 어른들을 목도하는 곳이 있다. 바로 다름아닌 장례식장이다. 조부상 당시, 아버지는 울다가도 애써 조문객을 맞이하셨고, 화장을 마친 뒤에는 곧장 근무하러 가셨다. 처음에는 어른이란 슬퍼도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다.하지만 내가 본 어른들은 감정을 지워버린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충분히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끝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처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인 채, 그 이후의 삶까지 살아내는 사람들. 어쩌면 어른이란 그런 사람인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되, 그 앞에서 완전히 주저앉지는 않는 사람.어른을 이렇게 수용하는 사람으로 이해하려 하자 불현듯 몇 달 전 복싱장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휴학 당시, 어릴 적 로망이던 복싱을 개강 직전까지 몇 달 배울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두 달쯤 지나자, 첫 스파링을 했다. 그 첫 스파링은 아직까지 내가 잊을 수 없는데, 제대로 된 주먹도 뻗지 못한 채 그저 주먹을 피하려고만 하다가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왼쪽으로 피하면 신기하게도 왼쪽으로 주먹이 날아왔고, 오른쪽으로 피하면 기가 막히게 오른쪽으로 주먹이 날아왔다. 마치 인생의 어려운 일들은 내가 물러서는 방향으로 더 집요하게 날아드는 것처럼. 스파링 직후 나는 분에 못 이긴 나머지 관장님께 철없는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하면 복싱을 잘할 수 있느냐고. 그때 관장님이 해주신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관장님은 먼저, '날아오는 모든 주먹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어떻게든 주먹을 피하려고 몸을 크게 좌우로 움직이면 무게 중심이 흔들려 결국 상대가 느끼기에 샌드백과 다를 바 없다고. 피할 수 없어도 무게 중심을 잡고 상대의 날아오는 주먹에도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면, 머지않아 복싱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그랬다. 중요한 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었다. 그저 맞고만 있으면 안 되었다. 또, 움츠러들면 안 되었다. 링 위에서 움츠려있는 상대만큼 때리기 쉬운 상대는 없으니까. 매 순간의 승부를 모두 이길 수는 없다. 모든 주먹을 다 피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맞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다. 날아오는 주먹에 신음하면서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 내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찾는 것. 어쩌면 내가 어른에게서 배우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런 태도였는지 모르겠다.생각해보면 훌륭한 의사가 되는 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직 그 삶을 직접 살아보지 못한 내가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의사라는 직업 또한 수많은 한계와 실패, 그리고 내 진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상황 앞에 자주 놓이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일을 막아내는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어쩔 수 없는 것들을 외면하지 않은 채 그 안에서 끝까지 자신의 몫을 다하는 사람일 것이다. 내가 되고 싶은 의사도, 내가 되고 싶은 어른도, 아마 그런 모습일 테니까.이제 와 생각해보면 내 새해 계획은 처음부터 조금 잘못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훌륭한 어른 되기'라는 말은 어딘가 지나치게 완벽하고 무거워서, 지금의 나로서는 버겁게 느껴진다. 나는 그렇게 빈틈없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쉽게 흔들리고, 자주 겁을 먹고, 때로는 감당해야 할 고통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기도 하니까.그렇다면 내가 되고 싶은 것은 훌륭한 어른이라기보다, 실패와 한계를 담담히 받아들이면서도 뒤로 물러서지는 않는 사람, 피할 수 없는 주먹 앞에서도 묵묵히 내 스텝을 밟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 좋다.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게. 내 식대로, '슈퍼짱 어른 되기' 정도가.
2026-03-30 05:00:00젊은의사칼럼

페이지를 넘기며 배운 것들에 대하여

어느덧 칼럼을 기고하기 시작한 지 약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겠지만, 처음으로 글을 쌓아가며 시간을 가늠하던 기간이어서인지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지면을 어떤 이야기들로 채워 나가면 좋을지, 긴장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며 고민을 이어가던 날들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7편의 글을 써왔다는 게 새삼스레 놀랍기도 합니다.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바로 독서에 대한 글들인데요. 아무래도 제 가장 오래된 관심사인 동시에 지금의 저를 만든 관심사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어떤 이유로, 어떻게, 어떤 책을 읽어왔으며, 무엇 때문에 계속 읽고 있는지, '독자'로서 살아온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고자 합니다.누구에게나 그렇듯 제게도 어릴 때의 기억은 희미한 잔상처럼 남아있지만, 흐릿한 기억 속에서도 책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적절한 높이의 책장에 꽂힌 전집과 언제든 들을 수 있는 카세트테이프까지 있었으니, 풍족한 독서 생활을 꾸릴 수 있게 도와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스마트폰보다 독서를 더 먼저 시작한 세대의 마지막 구성원 중 한 명으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도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심심함을 타개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던 어린 시절, 책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매번 색다른 흥밋거리를 제공해 주는 고마운 존재였습니다.중고등학생 때는 이전처럼 마음 편히 책을 읽지는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마치 책을 읽는 시간이 공부할 시간을 낭비하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독서량은 이전에 비해 줄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여전히 제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진로를 정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장대익 교수님의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을 포함한 다양한 과학 서적을 통해 과학과 연구에 대한 흥미를 싹틔울 수 있었고, 김승섭 교수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을 읽고 의학의 역할이 눈앞의 환자를 치료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사회 구성원 전체의 건강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의대 진학이라는 목표 또한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글도 쓰고 있는 것 또한 어쩌면 그 시기에 절 찾아와 준 책들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입시를 마치면 책을 많이 읽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대학 입학 후에도 한동안은 그다지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여러모로 정신이 없던 시기이기도 했고, 또 다른 관심사에 몰두하느라 잠시 독서를 등한시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저를 다시 독서의 세계로 인도한 책들은, 오히려 이전에는 잘 읽지 않았던 문학, 특히 소설들이었습니다. 잘 읽지도 않던 소설들이 그때의 제게 왜 그렇게도 필요했는지를,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명확히 알 것 같습니다.당시까지만 해도 저는 모든 것에 일종의 '정답' 내지는 '더 나은 선택'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명확한 정답과 절대적인 기준치가 있는 입시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체득된 이러한 사고방식은, 꽤 견고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대학 입학 후, 그렇게 바라던 자유를 얻었음에도 저는 오히려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었고, 미숙한 지금의 선택이 미래의 후회를 불러올지 두려워 어느 것도 쉽게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그런 시기를 거치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자신을 정답이라는 틀에 끼워 맞추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틀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탐색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는 것을요. 그런 깨달음을 얻고 또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바로 소설이었습니다. 소설, 특히 장편 소설은 여러 인물의 생애를 조망하도록 합니다.그 과정에서 인물은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하게 되죠. 그중 일부는 '정답'에 가까워 보이기도 하고, 어떤 선택은 마치 '오답'처럼 비춰집니다. 하지만 소설을 끝까지 읽어 내려가면 알게 됩니다. 중요한 건 '선택 그 자체' 보다는 '그 선택 이후의 삶' 라는 것을 말입니다. 세상에 옳고 그른 선택이란 것은 없습니다. 그저 선택만이 있고, 그 이후의 삶이 펼쳐질 뿐입니다. 답 그 자체보다도 답안을 써 내려가는 과정이, 또한 그 답안을 정답으로 만들어 나가는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저는 소설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앞으로도 다양한 책을 읽고 또 많은 경험을 하면서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저는, 책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이를 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도 어쩌면 선물 같기도, 한편으로 운명 같기도 한 책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책장을 넘기며 발견할, 페이지 너머 펼쳐질 선명한 세상들을 기대하면서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2026-03-23 05:00:00젊은의사칼럼

나의 자리

임상실습 시작을 앞두고 이사를 했다.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와 꼬박 5년을 안암골에서만 살다 거의 처음으로 서울 서남부권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잠을 자는 장소만 구로로 바뀌었을 뿐, 내 머리는 아직 내 자리를 학교 앞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이사한 지 한 달여가 넘었지만, 아직도 습관적으로 서울역에서는 시청 방향 열차를 타고, 6호선으로 환승하는 합정에서는 자꾸 망원역으로 발길이 간다. 김유신은 말 목이라도 자를 수 있었다지만 난 지도 앱을 켜고 걸으면서도 매일 길을 실수하니 어쩔 줄을 모르겠다.실습 첫 주가 끝나고 동기들과 안암에서 간단하게 맥주 한 잔을 했다. 처음 해보는 임상실습이라 온몸에 들어갔던 긴장이 그제서야 풀렸는지 평소 잘 먹지도 않는 맥주가 술술 들어갔다. 그러다 자연스레 친구가 내게 막차 시간을 물어왔다.맞다. 여긴 이제 더 이상 내 집이 아니고, 난 이제 안암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셔도 되는 몸이 아니었다. 심야할증 택시비로 5만 원을 낼 게 아니라면 2호선 막차가 끝나기 전, 어떻게든 돌아가야 했다. 얼굴이 발개진 채로 비틀거리는 사람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넘은 게 얼마만 인지.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내 자리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것 같다. 왜, 그 책상 중간에 줄을 찍 그어두고 '여기는 내 구역이니까 넘어오면 안 돼' 하는 초등학생, 그게 나였다. 내 필통, 내 책상서랍, 내 자리, 내 사물함… 내 구역은 전부 나에 맞춰 커스텀하고 누가 침범하기라도 하면 표정에 티는 안 내려고 노력했지만, 뒤에서는 닿은 자리들을 쓸고 닦으며 침입자의 흔적을 지우려 애썼다.그런 내게 병원 학생방은 마치 남의 집에 온 것만 같은 불편함을 준다. 정해진 자리가 없고, 적당히 눈치껏 빈자리에서 EMR에 접속해 할 일을 하는 공간이라니. 켜자마자 자동 로그인되어 용도별로 분류된 3개의 크롬 프로필이 나를 반기는 내 노트북과 달리, 이제 내 눈앞에는 수많은 게스트 프로필과 정돈되지 않은 문서함이 놓여 있다. 내 기기가 아닌 위치에서 로그인하거나, 작업을 한 경우 그 로그인 흔적과 문서 등을 모두 깔끔하게 지우고 나와야 속이 시원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약간…아주 약간 고문이다.실습할 때 매일같이 들고 다녀야지 하고 야심차게 구매한 1L짜리 스탠리 텀블러도 회진이며 의국이며 계속 이동하는 입장에서는 사치고, 노트북조차도 이따금씩 팔에 끼고 직원식당 배식을 받을 때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학생방이 어색하다가도, 이럴 때면 또 병원에서 유일하게 '내 자리'라고 할 만한 사물함이 그리워진다. 사실 그나마 마음 붙일 공간인 자취방마저도 6개월 뒤에는 이사해야 하기에 내 마음대로 꾸미고픈 마음을 꾹꾹 누르고 있다.어쩌면 내가 불편한 건 책상이 아니라, 내가 속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언제부터였을까, 이따금씩 자기소개를 할 때 마땅히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껏 의대에서는 흔히 동아리 이름을 빌려 날 소개하곤 했다. 굳이 나의 특성에 대해 중언부언하지 않아도 댄스 동아리와 교지편집부 소속이라 말하면 상대방이 동아리의 성격이나 속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대중하여 나를 어떤 사람이라 가늠하는 게 꽤나 편리했다.오늘 오랜만에 자기소개를 해보란 요청을 받았는데, 으레 그렇듯 '춤추고 글 쓰는 것 좋아합니다'라고 말하다 춤을 마지막으로 춘 게 1년이 넘었으며, 더 이상 교지에 글을 기고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난 더 이상 댄스동아리 부원이나, 편집부 편집장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럼 나는 이제 무엇으로 정의되는가?빠르게 자리를 만들고 싶어 조급한 마음이 든다. 가깝게는 PHIS 시스템 아이디를 저장할 수 있는 PC와 텀블러를 놓을 수 있는 자리가 있는 레지던트 선생님이 부럽고(투정인 것을 잘 안다), 더 나아가서는 그냥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부럽다.고민에 대한 해답은 찾지 못한 채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신기하게도, 그 부유하는 느낌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여전히 학생방 컴퓨터는 어지럽게 놓여 있지만 이젠 어떤 컴퓨터를 써야 가장 빠르게 구동이 되고, 프린터와 사물함 사이를 오가는 동선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안다. 텀블러는 약간 아쉽게 되었지만, 그때그때 버릴 수 있는 500ml 생수병을 아침마다 들고 집을 나선다. 생각해보니 마침 설거지하기 귀찮기도 했다.회진 돌 때는 종이로 뽑은 차트에 열심히 말씀을 받아적고 이따금씩 짬이 날 때 타이핑해 정리하곤 한다. 조금 더 내 자신을 깊게 소개하는 자기소개는 여전히 고민되지만, 그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나를 간결하고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PK 1조 강지민입니다'라는 문장이 생겼다.'다 울었니? 이제 그럼 할 일을 하자'는 오은영 선생님의 유명한 밈이 있다. 필자가 굉장히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다.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내내 불평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냥 그때그때 주어지는 일을 하다보면 시간은 흐르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듯 나도 그럭저럭 익숙해져 간다. 때로는 확실히 뿌리내린 내가 그리운 날도 있겠지만 글쎄, 개구리밥처럼 온몸이 물에 둥둥 떠 있는 것도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다. 조금 더 유연함을 얻었다고 생각하지 뭐.아직도 내 영역을 확실히 갖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 욕심은 몇 년 뒤로 살짝 미뤄두고 오늘도 오늘의 일정을 소화한다. 그렇게, 자리가 없는 것도 하나의 자리가 아닐까, 생각하는 요즈음이다.
2026-03-16 05:00:00젊은의사칼럼

보이지 않는 선

의사 국가고시 실기 시험을 준비하면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환자와의 라포, 즉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다. "추운 날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많이 걱정되실 텐데 제가 잘 설명해 드릴게요"라는 말들이 평가 항목에 포함될 만큼,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심리적 안정을 주는 것은 의사의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진다.나 역시 어릴 때부터 의사를 꿈꾸며 환자에게 친절하고, 무엇이든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 왔다. 또한 그게 당연한 의사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습을 돌며 의사와 환자 사이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실습 중 어떤 환자를 만나 직접 문진하고 신체 진찰을 하며 짧은 시간 동안 라포를 형성했다. 창가 쪽 침대에 앉아 계셨는데, 말씀하실 때 손을 자꾸 무릎 위에 올렸다 내리셨다. 통증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손의 움직임이 이상하게 기억에 남았다. 환자분은 "언제쯤 퇴원할 수 있나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간절함과 두려움이 엉킨 환자분의 목소리에 가슴이 뻐근하게 조여왔다.당장이라도 조금만 더 계시면 금방 좋아지셔서 퇴원할 수 있다고, 불안을 잠재울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환자의 병세는 아무도 알 수 없고, 섣부른 희망을 주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지 알기에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끝내 삼켜내야만 했다. 나는 아직 학생이라 확실한 말씀을 드리기 어렵다는 방어적인 대답으로 대신했고, 그분은 그러냐고, 알겠다고 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환자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하여 결국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동안 멍한 상태가 지속되었고, 병실에서 나누었던 짧은 대화와 환자분의 옅은 미소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슬픔만은 아닌,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담당 주치의 교수님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만큼 짧은 시간을 그 환자와 함께했을 뿐인데 이 정도의 충격이라면, 수년, 수십 년간 수많은 환자의 악화와 사망을 곁에서 지켜봐 온 의사들은 과연 어떻게 이 파동을 견뎌내고 있을까. 실습 중 환자의 사망 연락을 받고 덤덤하게 사망선고를 하러 가시는 교수님의 모습을 보았다. 교수님은 슬퍼하는 보호자를 위로한 후 슬픔을 내비치지 않고 바로 다음 환자를 진료하러 가셨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오랜 시간 진료 현장에서 수많은 환자를 겪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도 덤덤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교수님께서는 당신 기억에 아직도 남아 있는 환자분의 이야기를 해 주시며 환자의 죽음은 아직도 힘들고 잊히지 않는다고 하셨다. 환자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말씀하시는 말투와 눈빛에서 덤덤함 속에 자리 잡은 슬픔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저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 단련해 온 무감각의 결과라고 생각했지만, 환자의 죽음을 겪고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 그것이 다음 환자를 살리기 위해, 끓어오르는 슬픔을 억누르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야만 하는 사투의 흔적으로 느껴졌다.만약 의사가 환자의 죽음에 깊이 동화되어 무너져 내린다면 당장 옆 병상에서 숨을 헐떡이는 다른 환자에게 누가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을까. 환자와 '보이지 않는 선'을 유지하는 것은 의사 자신의 심리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패이자, 동시에 환자에게 객관적이고 최선의 의학적 처치를 제공하기 위해 의료 현장이 의사에게 강제하는 규범이었다. 이 선을 지키기 위해 의사는 매 순간 자신의 인간적인 연민 중 일부를 베어내는 상실을 겪는다.'환자에게 따뜻하게 다가가는 것'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이전의 나는 이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는 덕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둘은 끊임없이 모순되며 매 진료의 순간마다 치열하게 충돌한다. 환자, 보호자의 차가운 손을 맞잡고 함께 울어주고 싶은 충동과, 당장 이성을 되찾고 다음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의사의 본분 사이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리고 의사는, 잔인하게도 후자를 선택하도록 훈련받는 사람들이다.실습 전의 나는 그저 '착하고 따뜻한 의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환자의 첫 죽음을 겪고 난 지금, 나는 공감과 거리두기라는 두 가지 팽팽한 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야 하는 의사의 무거운 숙명을 조금이나마 엿보게 되었다.보이지 않는 선. 나는 훗날 내 이름을 걸고 환자를 책임지는 의사가 되었을 때, 이 선을 완벽하게 지켜낼 자신이 아직은 없다. 선을 넘지 않으려다 환자의 고통에 무감각한 기계가 되어버리진 않을지, 혹은 선을 넘어 환자의 슬픔에 매몰되어 버리진 않을지 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나를 향해 옅게 웃어주던 그 환자의 얼굴을 영원히 잊지 않고, 따뜻함과 냉철함이 충돌하는 경계선 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고민할 것이다.
2026-03-09 05:00:00젊은의사칼럼

후회 없는 삶

후회가 없는 삶, 그것이 가능하기는 할까?또 한 번의 기말고사를 마무리하고, 작은 여행을 홀로 떠났다. 옆에 친구가 없는 여행의 빈자리는 언제는 추억, 또 언제는 후회가 그 자리를 채웠고, 이번에는 후회의 차례였다. 최근의 몇 가지 사건들로 나는 "그때 그렇게 해야 했는데"라는 말을 자주 되뇌었고, 그 생각들은 꼬리를 물어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졌다.나는 지금, 무엇을 가장 후회하고 있을까. 중학교 때는, 친구들에게 한 말실수를 매일 후회했다. 고등학교 때는 중학교 때 공부하지 않았던 것을, 예과 시절에는 수능 수학 18번 문제에서 계산 실수를 한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시간이 꽤 지난 지금 나는 무슨 후회를 하고 있는가?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한 나는 무작위로 사람들에게 물어보기 위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올렸다.돌아온 답변은 다양했다. 여전히 수능을 인생 최대의 후회로 남겨둔 사람, 한창 키가 클 시기에 다이어트를 한 것이 후회된다는 친구, 어린 시절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것, 대학교에 입학하고 가족과 연락을 뜸하게 한 것….고개가 끄덕여지는 답도 있었고, 그게 평생의 후회라는 점이 의외인 답도 있었다. 남의 대답에서 내 대답을 골라 쓸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마음에 쏙 드는 대답은 없었다. 조금 더 생각해 보기로 하고 비행기에서 내려 도착한 곳은 제주도에 있는 엄마의 대학교 선배님이 운영하시는 작은 게스트 하우스였다. 늦은 밤 내어주신 따뜻한 우유와 빵에 나는 쉽게 고민을 내려놓고 깊이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오랜만에 물속에 몸을 맡기며 시험 기간 동안 굳어 있던 몸을 풀었다. 수영장에서 나와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자전거를 타고 바다를 따라 달렸다. 목적지 없이 흘러가듯 움직이다가, 한 카페에 들어가 책을 펼쳤다. 내가 가져온 책은 『리스본행 야간열차』였다. 오랜 시간 존경받는 교수로 살아온 주인공이 어느 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리스본으로 떠나는 이야기다. 그 여정을 시작하게 만든 문장은 이렇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책장을 오랫동안 넘기지 못하고 문장을 곱씹었다. 내가 후회라고 부르던 감정이, 어쩌면 선택하지 못한 삶들에 대한 그리움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기울자, 아직 식사를 하지 않으셨길 바라면서 숙소로 걸음을 재촉했다. 다행히 집에 도착하자 음식을 준비하는 기분 좋은 냄새가 났고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긴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품고 있던 고민들을 털어놓자 돌아온 대답은 놀라울 만큼 가벼웠다.아직 앞에 많은 분기점들이 놓인 나의 상황을 축복처럼 이야기하며, 기대에 찬 목소리로 내 앞의 가능성을 말해주셨다. 또래 친구들과 전공과 미래를 이야기할 때면 불안과 걱정이 쌓이기 마련이었는데, 오히려 60을 바라보는 한 사람의 시선은 한결 가벼웠다. 그 차이가 마음을 환하게 만들었다. 삶을 사는 것은 끊임없이 선택하는 일이다. 그리고 선택을 내릴 때마다 나의 삶은 가지를 낸다. 어떤 가지를 선택하는 순간, 다른 가능성들은 경험하지 못한 채 남는다. 그래서 후회가 없는 삶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 선택한다는 것은, 겪어보지 못할 것들을 그리워하기로 하는 일에 가깝다.마치 오래 공들였던 미술을 접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나처럼, 정든 동기들을 뒤로하고 혼자 휴학계를 내러 가는 나처럼, 나는 그 모든 것을 그리워하기로 결심하고 지금의 나를 선택했기 때문에 내 앞에 있는 이것을, 최선을 다해서, 잘 해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내 열심의 원동력임을 깨닫자, 마음이 가벼워진다. 후회 없는 삶은 없다. 다만 우리는, 무엇을 그리워할지를 선택하며 살아갈 뿐이다.
2026-03-03 05:00:00젊은의사칼럼

꿀단지 걷어차기

연초에 적는 글 앞머리에 쓰기엔 멋쩍을 만큼 식상한 말이지만, 정말이지 순식간에 한해가 지나갔다. 학교로 돌아간 후로는 유난히 더디었던 하루들이 쌓이더니 속절없이 한 해가 저물었다. 1월에는 1학기 교과목으로 편제되어 있던 해부학, 조직학, 생리학 실습을 했다. 그래도 2주마다 시험이 몰아치던 12월보다는 몸이 편해진 터라, 새해면 으레 그렇듯 새로운 운동을 해보자는 다짐으로 태권도를 등록했다.태권도 성인반에는 의외로 나와 비슷한 또래의 20대 초반 여자들이 많았는데, 타지에서 대학 생활 중인 나에겐 이런 '동네 친구'가 귀해서 수업 전후로 종종 이야기를 나누며 어울리곤 한다. 의대생끼리만 어울리며 살다 보니, 이렇게 전혀 다른 커뮤니티에서 만난 사람들은 우리가 받는 교육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럽다."의대면.. 개구리 해부 뭐 이런 거 해요?" "아뇨, 저흰 사람 해부해요…"으악, 하고 그들은 진저리를 친다. 얼마 전 만난 중학교 친구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진짜 사람 시체를 본다고? 으, 난 못해 못해" 그런 반응을 보고 있자면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다. 과연 당신들이라고 못할까? 우리가 뭐 대단히 선택받은 사람들이라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는 걸까? 그럴 리 없다. 처음 하는 정맥 채혈 실습에 손을 바들바들 떨며 애를 태우는 동기들만 봐도 그렇다. 우리 중에 남의 팔에 바늘을 찔러넣는 데 대단한 재능이 있어 의대에 온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전국의 간호사 선생님들이 능숙하게 해내시는 기본적인 술기조차 아직은 두려운 내가 유능한 의사가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훈련이 필요할까. 서로를 첫 실습 대상으로 하여 불안해하고 있는 우리에게 생리학 교수님은 실습 시간에 기회가 주어질 때 적극적으로 해보라고 당부하셨다. 나중에 PK 때도 어떤 기회가 오면 망설이지 말고 나서야 한다고, 해보겠다고 말하지 않으면 그 기회는 아예 오지 않는다고.'꿀을 빤다'는 말이 있다. 사실 실습 시간에 '꿀 빠는'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조별로 이루어지는 실습에서 굳이 앞서 나서지 않고 조원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 그만이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내가 슬쩍 빠져도 실습은 무탈히 끝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정말 '꿀'일까.새내기 시절,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듣는 대학 생활에 부푼 기대를 안고 있던 나는 스페인어를 배워보고 싶어 '초급 스페인어'를 시간표에 담았다. 하지만 선배들과의 자리에서, 제2외국어 수업은 전공자나 해당 언어 능력자들이 학점을 따기 위해 많이 들어 힘들 거라며, 이른바 '꿀강의'들을 추천받았다. 결국 나는 스페인어 대신 학점을 받기 쉬운 널널한 수업들을 선택했다.선배들은 예과 1학년을 편하게 즐기라는 마음에서 해준 진심 어린 조언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그 선택을 오래 후회했다. 관심 없는 분야의 수업은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자꾸만 수업을 빼먹거나 수업에 가더라도 의미 없이 시간만 죽이다 오곤 했다. 지각과 결석을 꽉 채우고도 학점을 잘 받았으니 나름 '꿀을 빤' 셈이지만, 돌아보니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차라리 그때 스페인어 수업을 들었다면, 고생은 좀 했어도 무언가 남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잠깐의 편안함은 결코 인생의 꿀이 되지 못한다. 기회가 올 때마다 인생의 근육을 단련시키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부디 올해의 나는 조금은 두렵고, 때로는 괴로울지라도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길을 기꺼이 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6-02-23 05:00:00젊은의사칼럼

실패가 사소해지도록 도전하는 법

2025년을 마무리하던 몇 주 전, 매년 습관처럼 해오던 연말정산 대신 조금 특별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하여 '실패 일기'.벌써 1학년만 2년 차인 내가 휴학 후 정말 다양한 일들을 해봤는데, 도대체 몇 번이나 실패했는지 한 번쯤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었다.하나씩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2월쯤 제출했던 공모전 서류 탈락, 우주의학 대회 낙방, 밴드 공연에서의 코드 실수...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이것보다 훨씬 많은 실패가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적어보려니 구체적인 장면들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당시에는 세상이 무너질 듯 아쉬웠던 일들도 시간이 흐르니 점차 흐릿해진 것이었다. 결국 내게 더 선명한 인상으로 남은 것은 무엇을 실패했느냐가 아니라, 작년에 새롭게 시작한 일들과 그 과정에서 마주친 사람들이었다.작은 실수 하나가 곧 큰 책임으로 이어지는 의대 사회에서 '틀림'은 늘 피하고 싶은 대상이었던 내가, 어떻게 1년 만에 실패의 목록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무뎌질 수 있었을까.불안이 빚어낸 도전의 관성사실 나는 실패에 꽤 예민한 아이였다. 초등학생 시절, "What page is it?"을 "Page what?"이라고 거꾸로 말했다가 들려오던 수군거림은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았다. 처음 나간 MUN에서는 결의안을 쓸 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오히려 남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무력감을 느꼈고, 중학교 학생회 면접에서는 서너 번을 연달아 떨어지기도 했다.사람들은 10개가 넘는 동아리와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나를 보며 열정이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시작은 어쩌면 불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신입생으로 입학하자마자 의도치 않은 긴 멈춤을 겪으며 마음이 복잡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성적이 좋으면 그해를 열심히 살았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잘 살고 있는지 판단할 기준이 사라져 버린 기분이었다.기저에 깔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매번 새로운 도전으로 답을 내려 했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습관이 된 '열심히 살기'라는 관성은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는 휴학기 속에서 나를 버티게 해준 나만의 방식이 되었다.실패의 모수를 늘리는 일이 불안을 돌파하는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실패에 무뎌진 내 장점은 강철 같은 멘탈이 아니라, 단순히 실패의 모수를 늘린 데서 왔다. 여러 일을 동시에 벌이다 보면 필연적으로 내가 전혀 못 하는 분야와 마주하게 된다. 10번 도전해 1번 성공하는 사람과 100번 도전해 10번 성공하는 사람의 성공 확률은 10%로 같다. 하지만 후자는 90번의 실패를 겪으며 실패를 '일상적인 데이터'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이제 나에게 실패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100번 하다 보면 10번 정도는 안 될 수도 있고, 때로는 50번 넘게 안 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어제 겪은 실패를 곱씹을 틈도 없이 오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다 보니, 개별 실패의 무게는 자연스레 가벼워졌다. 더 많이 실패할수록, 나는 오히려 실패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나의 자아를 여러 곳에 나누어 담는 이유이런 다채로운 활동들은 일종의 '정신적 안전장치'이기도 했다. 의대생의 자아는 보통 '학업'이라는 단일 종목에 올인되어 있다. 그래서 시험을 망치면 인생 전체가 무너지는 기분을 느끼기 쉽다. 하지만 나는 내 자아를 우주의학, AI, 밴드, 공연 동아리, 인턴십 등 여러 바구니에 나누어 담았다.우주의학 연구가 뜻대로 풀리지 않아도, 저녁에 있을 밴드 연습이나 학회 세미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다. 하나가 흔들려도 나를 지켜줄 또 다른 내가 있다는 믿음. 그것이 내가 번아웃에 빠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비결이었다. 성공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계속 믿어주기 위해 나는 여러 개의 문을 동시에 두드렸다.우리, 조금만 더 뻔뻔해지자밥약에서 만난 후배들은 종종 묻는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실패하면 어떡할지 두렵다고. 그럴 때면 나는 완벽한 정답률보다 오답을 써내고도 다시 펜을 들 수 있는 '뻔뻔함'에 대해 이야기한다.의료 현장에서의 실수는 치명적일 수 있기에 우리는 늘 완벽을 훈련받는다. 하지만 '의대생'이라는 타이틀을 잠시 내려놓은 '청년'으로서의 삶은 조금 더 헐거워도 괜찮지 않을까. 실패가 사소해질 만큼 더 많이 시도하고 기꺼이 무너져 본다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 2026년의 연말정산에서도 여전히 무엇을 실패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을 만큼, 즐거운 시도들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2026-02-19 05:00:00젊은의사칼럼

흔들려도 괜찮은 우리들을 위하여

필자는 스스로에게 퍽 인색한 편이다. 어지간한 성취에는 '성장'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고, 웬만한 흔들림 앞에서는 '냉철함'이라는 가면을 먼저 고쳐 쓰곤 했다. 의대에 발을 들인 이후, 나의 세계에서 평정심은 추구해야 할 미덕을 넘어 반드시 갖춰야 할 삶의 도구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일렁이지 않는 고요한 수면 같은 마음. 필자는 그것이 어른의 자격이자, 한 명의 의료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마땅한 농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하지만 매일 쏟아지는 강의록과 직접 지원해 다녀온 여러 병원 실습, 뿐만 아니라 내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각양각색의 현장 사이에서, 필자가 마주한 것은 완벽한 고요함이 아닌 끊임없는 균열이었다. 한때는 그 균열을 나의 미숙함이라 치부하며 외면하려 애썼으나, 이제는 그 틈새를 통해 비로소 평정심의 진정한 얼굴을 마주하기 시작한다.1. 쿨함이라는 허울과 내면의 파동우리는 유독 '쿨함'이 숭상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감정의 파고를 드러내는 일은 촌스러운 일로 치부되고, 불안을 내비치는 일은 전문성의 결여로 여겨지곤 한다. 특히나 '일희일비하지 마라'는 인생 선배들의 가르침은 나 같은 흔들리는 영혼에게 마치 절대적인 계율처럼 다가온다. 그 가르침은 분명 우리를 단단하게 단련시키지만, 동시에 우리 내면의 가장 인간적인 떨림을 '도려내야 할 군더더기'로 여기게 만들기도 한다.인간의 마음이 어찌 항상 고요한 호수일 수 있을까. 밤을 지새우며 눌러 담은 지식이 무색해질 만큼의 무력감을 느낄 때, 혹은 누군가의 고통이 내 살갗을 스치는 듯한 통증으로 다가올 때, 우리 마음은 필연적으로 흔들린다. 이때 필요한 것은 "괜찮다"라는 무미건조한 자기 암시가 아니다. "나는 지금 이 파도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고 있구나"라고 나 자신을 투명하게 응시하는 인정의 시선이다.2. 미디어가 투영하는 현대인의 초상: 회피형, 불안형, 그리고 안정형최근 대중 매체와 SNS를 휩쓸고 있는 화두 중 하나는 단연 '애착 유형'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을 '회피형 인간(Avoidant)', '불안형 인간(Anxious)', '안정형 인간(Secure)'이라는 틀 안에 가두고 분석하기를 즐긴다. 미디어는 흔히 '안정형'을 우리가 도달해야 할 유토피아로 묘사하고, '회피형'이나 '불안형'을 교정해야 할 결함처럼 다룬다.의학적 환경에서 이 워딩들을 복기해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발견된다. 과도한 업무량과 감정 노동에 노출된 젊은 의사들은 종종 '선택적 회피형'이 되기를 자처한다. 감정적 소모를 막기 위해 환자와의 거리를 극단적으로 두거나, 자신의 불안을 외면하기 위해 업무 자체에만 매몰되는 식이다. 반대로 완벽주의에 함몰된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역량을 의심하는 '불안형'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하지만 우리가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미디어에서 말하는 '안정형 인간'은 결코 불안을 느끼지 않거나 회피하고 싶은 욕구가 없는 초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진정한 의미의 안정형은 자신의 불안을 인지하고, 때로는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사실조차 투명하게 '인정'하는 사람이다. 즉, 평정심의 본질은 유형의 구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태를 직시하는 태도에 있다.3. 회피와 인정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흔히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실패로 돌아갈 때, 우리는 '회피'라는 도피처를 찾는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직면하는 대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회피는 일시적인 진통제일 뿐 근본적인 치료제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억눌린 감정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번아웃'이나 '냉소주의'라는 이름의 부작용으로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관건은 본인이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두렵구나", “나는 지금 저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눈치를 보고 있구나”, "나는 지금 저 환자의 고통에 깊이 동요하고 있구나"라고 인정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버티는 나무는 강한 태풍에 꺾이기 쉽지만, 바람의 방향에 맞춰 함께 흔들리는 유연한 가지는 부러지지 않는다.인정은 무책임하게 감정에 휩쓸리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파도를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메타인지의 과정이다. 내가 흔들리고 있음을 인정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 흔들림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선택권을 갖게 된다.4. 일희일비(一喜一悲)를 넘어, 인간적인 자아로 거듭나기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혈액 수치 하나에 안도하고, 예상치 못한 합병증에 밤잠을 설치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인간이자, 환자의 삶에 책임을 느끼는 의료인이라는 증거다. 이뿐만일까. 누군가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마음을 앓고, 서툰 관계의 끝자락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는 것 역시 우리가 여전히 삶의 무늬를 그려 나가는 투명한 청춘이라는 증거다.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격언은 감정을 죽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감정의 파고에 매몰되어 다음 판단을 그르치지 말라는 경계의 메시지로 읽어야 한다.평정심이란 고요한 호수 같은 상태가 아니라, 거친 바다 위에서도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항해사의 평형감각과 같다. 배가 파도에 따라 기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물리적 현상이다. 항해사가 해야 할 일은 배가 기울지 않게 막는 것이 아니라, 기운 만큼 키를 다시 조정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5. 흔들려도 괜찮은 우리들을 위하여살아가며 우리가 마주할 수만 가지의 상황 속에서, 평정심은 언제나 도달하기 어려운 이상향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자. 완벽하게 고정된 '안정형'의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불안하고, 때로는 회피하고 싶으며, 매 순간 흔들리는 존재들이다.중요한 것은 회피하지 않는 용기다. 내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나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의 비참함을, 공명하는 나의 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 그 인정의 태도 위에서라야 비로소 가짜 평온함이 아닌, 단단하고 유연한 진짜 평정심이 싹틀 수 있다.여전히 길 위에서 서툴게 중심을 잡고 있을 나의 사람들에게, 그리고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을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흔들림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그리고 누군가의 삶에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다. 그러니 기꺼이 흔들리자. 그 흔들림 끝에 닿을 우리의 평정심은 이전보다 훨씬 더 깊고 단단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2026-02-09 05:00:00젊은의사칼럼

시작의 의미에 대하여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한 해의 시작인 1월은 아마도 모두에게 매우 정신없이 지나가 버리는 한 달이 아닐까. 1월은 마치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불꽃놀이처럼 설레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타고 남은 잿더미처럼 그리 화려하지 않은 일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걸 다들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새해가 다가오는 것이 그다지 설레지 않았다. 생일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1월생인 나로서는 생일이 새해와 함께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기 일쑤였고, 그렇게 점차 '새로운 시작'의 의미가 내 안에서 퇴색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쯤, 한 책을 만났다. 바로 김영하 작가의 장편소설 작별인사였다. 이 책은 여러 의미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등장인물 선이와 달마의 대화 장면을 고르고 싶다.선이는 함께 지내던 휴머노이드 민이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관련 연구실에 도착하여 그곳의 휴머노이드 연구원, 달마에게 민이를 되살려달라 부탁한다. 하지만 달마는 선이에게 오히려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왜 그래야 하느냐고, 과연 '재활성화'된 휴머노이드가 당신에게 고마워할 것 같냐고. 연구원은 계속해서 묻는다.과연 그 휴머노이드가 태어나기 전에 애초에 결정권이 있었다면 '애완용 휴머노이드'로 태어나겠다고 결정했을까? 다시 재활성화된다고 해도, 미래에 어떤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과연 재활성화하는 것이 이 휴머노이드를 위한 일이 맞을까?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인 만큼 선이도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이윽고 달마는 고통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생명체는 애초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태어나지 않은 존재는 고통의 근원인 자아가 없으므로 아무것도 아쉬울 것이 없지만, 태어나서 겪는 고통은 분명한 해악이며, 삶은 대부분 괴롭고 잠깐의 기쁨을 갈망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충격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태어난 것은 당연히 축하해야 할 일이고, 죽음은 슬픈 일이라고만 생각해왔다. 좀 더 커서는 말기 암 환자분들의 사례를 보면서 어쩌면 죽음이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긴 했지만, 동시에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라 말하는 달마의 시각은 이미 태어나 살아가는 인간인 나에겐 너무 가혹하게 들렸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할 수 없을 것만 같아 아득하기도 했다.계속 고민을 거듭해야 할 주제겠지만, 달마의 질문에 대해 나의 잠정적인 답변은 다음과 같다. 삶이 소중하고, 의식이 있는 생명체로 태어난 것이 가치 있는 이유는 삶의 모든 것에 스스로가 '이름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삶에는 여러 가지 고통과 기쁨이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가 이들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스스로가 어떻게 이름을 붙이고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객관적으로 보기에 한없이 기쁠 만한 일도 저주로 느껴질 수 있고, 그 반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해석'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태어나는 것은 정해진 불행이 아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여정이 된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태어난 날을, 한 인간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것이 아닐까?태어나는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새해,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면서 다시금 이름을 붙일 기회를 얻는다. 마치 새로운 일기장을 펼친 것처럼, 우리 앞에 쌓여 있는 수많은 여백을 하나둘 채워 나가야 하는 것이다.시작이 힘들고 지긋지긋할 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새로운 시작은 또 다른 가능성을 품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결말은 알 수 없겠지만, 스스로를 조금 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성실히 채워 나간다면 이미 그 자체로도 이야기는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2026-02-02 05:00:00젊은의사칼럼

이 세상 모든 유급생들에게

[메디칼타임즈=조선의대 1학년 박요한 ] "예과 때는 놀아~ 절대 공부하지 마~"선배들을 만나면 흔히 들을 수 있는 조언이었다. 본과 때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 하니, 예과 때 놀아놓으라는 말. 심지어 몇몇 교수님조차 열심히 놀아두라고 말씀하시고, 하물며 어떤 선배는 예과 때 유급당하는 건 하려고 노력해도 쉽지 않다며 우리의 일탈(?)을 장려했다.나 또한 5번의 수능을 치른 후 심신이 지친 상태였기에, 그들의 조언은 정말 달콤했다. 한번 놀기 시작하니 그 맛을 알게 되었고, 당하려고 노력해도 당하기 어려운 유급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몸서리칠 정도로 추웠던 2023년 겨울 어느 날, '그 어려운걸' 내가 해내고 만다.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그저 아프고 막막했다. 사실 의대 유급이라는 것은 경험한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직접적으로 조언을 구하거나 위로해줄 사람조차 없었다. 또 남들 앞에서 아프다고 말을 꺼내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모든 고통은 다 아픈 법이지만 아무도 공감해줄 수 없는 고통이 이렇게나 아프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5수 후 의과대학 입학은 성공이요, 드라마였지만 유급은 그저 명백한 실패였다. 물론 내겐 군대라는 선택지도 있긴 했었다.그리고 복학해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학교를 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그저 겁나서 도망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뇌리에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다시 학교에 다니기로 했다. 후배들과 함께.의과대학생이 유급을 당하면 그동안 쌓아왔던 2가지를 잃는다. 바로 자기 자신이 자부심을 느꼈던 것(공부)과 자신의 인간관계이다수많은 유급생이 으레 그렇듯, 이들 또한 의과대학에 입학했을 정도로 본래 우수한 학생들이다. 의과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는 공부를 잘한다고, 성실하다고, 우수한 성적으로 타인의 인정을 한 몸에 받던 학생들이었다.또, 의대생활 특성상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고 모두가 같은 강의를 듣기에 하루 종일 붙어 지내던 동기들과의 유대감은 절대적이다. 그렇기에 본인이 자부심을 느끼고 잘한다고 생각했던 공부, 그리고 나를 지탱해주던 인간관계라는 두 축이 꺾이게 되면 우리는 흔히 자신을 잃어버리고 무너지고 만다.유급을 맞게 되면 정말 오롯이, 나 홀로 서게 된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고민하게 된다. 나는 도대체 뭘까? 내게서 '의대생', '21학번' 같은 잡다한 명찰들을 다 떼어내고, '공부 잘하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전부 빼버리면 과연 나에게는 무엇이 남지? 그리고 주위 사람들은 그 명찰들을 잃어버린 나를 이전처럼 좋아해 줄까?아니 그런데 그들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게 정말 중요한가?처음에는 낮아진 학번에서 내 가치를 입증하려고 부던히 애를 썼다. 내 이마에 붙은 '유급'이라는 주홍글씨가 너무나 선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지만, 그저 겁먹은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120명 앞에서 당당히 조장으로 나서 발표하려 하고, 어떻게든 성적을 잘 받아 만회하려 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아등바등했다.하지만 그 치열한 과정 속에서 문득 든 생각은, 결국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저 사람들이 날 좋아하지 않아도, 그들의 호감을 잃어도 나는 홀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유급 당했을 때처럼 무언가를 또 잃어도, 나는 지금처럼 또 꿋꿋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또 잃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다다르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그때부터 타인이 아닌 진정한 '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학교 자습실에서 누가 몇 시까지 공부하더라, 누가 어디까지 진도를 나갔더라, 하는 말들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또, 예전처럼 남들 앞에서 오래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려 굳이 학교 자습실에서 공부하지 않았다. 그냥 집에서 혼자 공부했다. 나는 내가 세운 계획대로 가고 있고, 충분히 지키면서 가고 있으니까.또 예전이라면 주위 열심히 공부하는 동기들을 보면서 불안에 떨며 공부만 했을텐데, 지금은 딱히 개의치 않는다. 책상 앞에만 앉아있기보다 몸을 움직이고 싶어 평일에 공부를 미리 끝내놓고 동네 형들과 풋살을 찼다.월요일 시험이 없는 주간엔 교회 찬양팀에 참여해 토요일 연습을 도왔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던 예전의 나를 되찾아, 내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투비닥터 매거진과 메디컬타임즈 칼럼진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커지고 나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다.그러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마냥 잃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방학에는 기존 21학번 동기들과 여행을 함께 가기도 하고, 경조사 때도 그들은 함께 와주었으며, 지금도 자취방 이웃으로 지내고 있다. 오히려 학교생활을 도와줄 든든한 선배가 120명이나 생긴 셈이었다. 잔뜩 긴장해서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제가 질문이 있는데요"라고 묻는 것에 비해, "야야, 너 이거 답 아냐?"라고 물어볼 수 있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였다.그리고 복도에서 마주치는 21학번 친구들을 보면 "안녕하세요 선배님~" 하고 너스레를 떨며 웃으며 인사하고 그들은 웃으면서 받아준다. 물론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혼자 꿍해서 움츠러들어 있다면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누구도 먼저 찾아와서 챙겨주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내가 먼저 털고 일어나기로 했다. 유급을 당했어도, '나'라는 사람은 여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믿기 때문이다.그저 평범히 살아가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 할 말은 없지만, 이는 과거의 나와 비교하면 정말 대단한 변화다. 지금은 유급을 맞기 전보다 훨씬 단단하고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스스로 받는다. 더 이상 내게 어떤 특장점들이 사라지게 되어도, 혼자 꿋꿋이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믿음 말이다.사실 이러한 생각들을 공개적인 지면에 실기엔 다소 조심스럽다. 나조차도 많은 고민을 하고 글을 몇 번이고 다듬었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철학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맞다고, 혹은 틀렸다고도 할 수 없는. 심지어 시간이 지나면서 나조차도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생각들. 어쩌면 1년 뒤에 내 글을 보고 부끄러워 이불을 뻥뻥 차고 있을 수도 있겠지.다만 혹시나 뜻하지 않은 유급에 방황하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버텨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나도 아팠고, 힘들었고, 그렇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말이다.여담이지만 요즘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2'의 열풍이 뜨겁다. 그 중에서도 지금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를 몰고 있는 셰프는 '임성근 셰프'와 '최강록 셰프'일 것이다. 그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바로 눈치 보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을 밀고 나간다는 점이다. 누가 뭐라 하든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그저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우직하게 밀고 나간다.자기 자신만을 믿고 말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눈치를 보며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만,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홀로 설 수 있는 단단한 사람. 그렇기에 그 매력이 지금의 인기몰이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그리고 그 이면에는 그들처럼 눈치 보지 않고 홀로 단단히 살아가고픈 사람들의 소망이 담겨있지는 않을까.나도, 아니 우리도 이러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왜? 내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비단 유급이 아닌 다른 그 어떠한 형태의 어려움이더라도, 그 어려움에 흔들리기엔 내 인생은 한 번뿐인 너무나 소중한 인생이니까.
2026-01-26 05:00:00젊은의사칼럼

한 해는 갔지만, 우리는 남았다

[메디칼타임즈=경북의대 이진규 졸업생 ] 2025년 12월 31일 밤 11시 50분. 의사가 응급실 당직을 서며 모니터 화면을 내린다. "2040년, 의사 1만 명 부족" 창밖에서는 새해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들리고, 복도에는 앰뷸런스 사이렌이 날카롭게 울린다.'2040년이면 나는 몇 살이지? 그때도 나는 응급실에 남을 수 있을까?'거리는 환호성으로 가득하지만, 응급실의 공기는 여전히 긴장으로 팽팽하다. 온 세상이 지난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올 해를 반기는 지금, 나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우리 의료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2년 전에도 숫자가 있었다. 2000명 증원. 그때도 정부는 과학적 근거를 내세웠고, 의료 현장은 현실의 목소리를 외쳤다. 이번에도 숫자가 나왔다. 5개월간 12차례 회의 끝에 나온 1만 명 부족. 더 정밀해 보이지만 회의록을 읽다 보면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문장들과 마주친다."충분히 토의하고 많은 것을 반영하면 최상이겠지만 시간적인 걸 고려 안 할 수도 없다", "마지막 회의를 앞둔 시점에서 시간 부족을 이유로 새로운 분석이나 대안 검토는 사실상 배제되고 있다", "이렇게 가도 되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다"한 위원은 이와 같이 위원회의 존재 이유를 묻기도 했다.  의사 인력 추계가 완벽할 수는 없다. 어느 나라에서든 정치적 요소가 개입되기 마련이고,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다. 다만, 2년 전에도 이번에도 충분히 다뤄지지 못한 것들이 있다. 근로기준을 훨씬 웃도는 의사들의 실제 노동량, 그리고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AI가 바꿀 의료 현장의 미래.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필수 의료 전공을 망설이는 젊은 의사들의 고민과 원가에도 한참 못 미치는 현재 수가 구조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병원들의 현실 또한 그 숫자 안에는 담기지 못했다.추계 과정을 들여다보면, 여러 현실적 제약이 보인다. 한 위원이 회의록에서 밝혔듯 시간의 압박 속에서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기 어려웠고, 교육 여건이나 수련 환경, 교수진 확보와 같은 요소들이 깊이 있게 다뤄지지 못했다. 과학적 추계를 목표로 시작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여러 변수가 제한적으로만 반영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쉽지만,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기에 단순히 이 위원회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싶지 않다. 대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우리는 정말 의사 숫자만 늘리면 되는 걸까?'  우리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의사 증원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가 모두 틀린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숫자 논쟁에만 매몰되어 정작 환자들이 겪는 불편은 뒷전이 된 것은 아니었는지 묻게 된다.많은 의료진이 이미 알고 있듯, 답은 시스템이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의사 수는 평균보다 적을지 모르나, 의사 1인당 감당하는 외래 진료량은 평균의 몇 배에 이른다. 제왕절개 수술 수가가 67만 원에 불과한 현실, 강남에서 개업하는 것과 영덕에서 일하는 것 사이의 거대한 격차를 그대로 둔 채 단순히 의사의 숫자만 늘리는 정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왜곡된 의료 전달체계, 수가 현실화, 수련 환경 개선과 같은 숙제들이 산더미처럼 남았다. 거리의 환호성은 점점 멀어진다. 새해의 첫 시간, 응급실엔 여전히 환자가 온다. 2026년 1월 1일 아침. 지난 밤의 고민들은 잠시 뒤로한 채, 나는 여느 날과 같이 병동 회진을 돌며 환자에게 묻는다."어젯밤 잘 주무셨어요?"통계는 틀릴 수 있고, 정책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아픈 사람 옆에 서 있는 사람은 의사라는 사실이다. 매일 아침 병동에 출근해서 환자의 이름을 부르고, 상태를 확인하고 보호자에게 설명하며 때로는 함께 울어 주는 그 마음은 숫자에 보이지 않는다. 새해 첫날도, 의사는 환자 곁에 있다.2040년에 의사가 정말 1만 명 부족할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2026년 오늘, 나는 환자를 볼 것이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통계는 내일을 말하지만, 우리는 오늘을 견딘다.  2040년의 숫자가 아니라, 2026년 환자의 곁에서. 
2026-01-19 05:00:00젊은의사칼럼

효율 포기 선언

[메디칼타임즈=단국대 본과 3학년 박정은 ] 한 달 전, 유튜브를 둘러보다 "우리는 왜 번거로운 사랑과 우정을 해야 할까?"라는 제목의 영상을 발견했다. 좋아하는 에세이스트 이슬아의 강연이라 눈길이 갔고, 왠지 모르게 제목에 공감돼 재생목록에 저장해 두었다. 그리고 며칠 전 '나중에 볼 영상' 목록을 뒤적이다 마침내 영상을 보게 되었다.해당 영상은 국내 유수의 IT 기업 네이버에서 열린 이슬아 작가의 강연을 녹화한 것이었다. 요즘 같은 대(大)효율 시대에 예측 불가능하고, 생산성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다분하고,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쓰게 하는 우정과 사랑을 우리가 왜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강연은 시작됐다. 혼자 먹는 저녁상이 적적해 배경음악 같은 용도로 튼 영상이었지만 어느 시점부터 나는 손을 움직이는 걸 잊고서 온 청각을 그녀의 차분한 어조에 집중하게 됐다.최근 학교로 복귀해 병원 실습을 시작한 나는 묘한 불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휴학 기간에 주어졌던 달큰한 자유(독서, 프로젝트 등 하고 싶은 다른 일을 할 자유)를 빼앗겨 생긴 불만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온종일 바쁘게 움직였다.조원들과 함께 점심 먹는 대신 도시락을 싸 다니며 시간을 아껴 학교 공부와 과제를 해결했고, 삼삼오오 카페에 갈 때 병원 컴퓨터 앞에 앉아 환자 기록을 훑었다. 조금이라도 더 배워두고, 집에 가서는 다른 할 일을 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그렇게 하루를 오직 "최고 효율"로 채우며 시간을 벌었지만 마음 한구석 불쾌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자각이 명징하게 들었다. 황폐한 사막을 혼자 달리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이런 내 상태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이슬아 작가의 강연이었기에 더 와닿았다. 이슬아 작가는 "우정은 참 피로한데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친구를 사귀고 사랑을 주고받는 일은 때론 우리를 지치게 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그 피로함 속에 인간관계만의 즐거움과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작가는 또 "만약 기쁨과 슬픔, 사랑스러움과 지겨움의 극적인 낙차가 없다면 우리를 웃고 울리는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관계에서 비롯되는 예측 불가능한 감정의 롤러코스터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뜻이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느끼던 불만족의 정체를 깨달았다. 효율을 좇느라 인간관계가 주는 즐거움과 색깔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다.그 깨달음은 묵직한 충격을 줬다. 일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며 타인의 무작위성이 불러올 혼란을 기피해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걸은 꼴이었다. 결국 나는 얼마 전부터 효율을 포기하고 의식적으로 비효율을 실천 중이다.목적 없이 동기들과 보내는 시간 늘리기,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지인들 만나기, 시시콜콜한 카톡에 답장 바로 하기, 고민하고 글쓰는 시간 갖기. 그 언젠가 나도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해냈던 일들이나, 효율 최우선주의에 굴종한 뒤로 재활이 필요할 만큼 낯설고 버거워진 활동들이다. 오랜만에 마주한 느슨한 대화와 나눔 속에서 익숙한 소속감과 생기가 서서히 되살아났다. 마음 속 한켠에서 '이거지!'라는 외침을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하고.사람들과 얽혀 살아간다는 것은 곧 예측 불가능한 순간들의 연속 속에 놓인다는 뜻일 테다. 뜻밖의 요구에 시간을 내주고, 예상치 못한 감정에 함께 휘말리기도 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공동체의 일부가 된다. 누군가를 깊이 이해할 때 생기는 무게감,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 그 불규칙함과 무게를 견디기 버거울 때가 있어도 진폭이 지나간 자리에야 비로소 관계라는 것이 자리를 잡는다.문득 시골 마을의 풍경이 떠올랐다. 정자나무 아래 평상에 둘러앉아 한나절을 도란도란 보내던 마을 어르신들의 모습. 겉보기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느린 시간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아마 그 속에서 가장 깊은 유대와 온기를 나누고 있었으리라.세상은 여전히 효율을 외치고, 나는 여전히 그리고 오래도록 효율과 비효율 사이 요동치는 균형을 조율하느라 끝없이 고민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불편한 감촉이야말로 삶에 꼭 필요한 것임을 이제는 안다. 그 가르침 덕분에 나는 조금은 더 성숙해지고, 삶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서툰 삶을 하나씩 눈뜨며 배워가는 과정이야말로, 결국 삶의 즐거움이자, 매일 갱신되는 삶의 퀘스트 아닐까?
2026-01-12 05:00:00젊은의사칼럼

표준 너머의 판단…가이드라인에 대한 소고

[메디칼타임즈=고려의대 2학년 강지민 ] 2학기가 끝났다. 총 11과목, 402시수, 전공선택 과목을 제외하면 25.5학점. 임상의학 네 개 카테고리를 16주간 달렸다. 한 학기를 돌아보자니, 기초의학만 배웠던 본과 1학년 때와 달리 올해는 유달리도 많은 '가이드라인'을 외웠다는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딱 떨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가이드라인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절대적 진리가 되어주었지만, 이따금은 나를 혼란 속에 빠뜨리기도 했다.그 혼돈의 정점은 응급의학 수업이었다. 응급의학에서 다루는 가이드라인은 주로 5년을 주기로 개정되는데, 하필 올해가 2025년이었다. 게다가 강의 편제상 2학기 마지막인 8카테고리에 응급의학이 포함되어 있었다.교수님이 금년 개정안을 반영해 강의하실 때면 기출문제를 온전히 믿을 수 없다는 점에서 머리가 복잡했고, "올해 말에 개정될 예정이니 2020년 버전으로 보자"라고 하시는 날에는 한편으로 감사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래도 PK나 인턴 때는 2025년 가이드라인을 따로 공부해놔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샘솟았다.이보다 더 빈번하게 가이드라인이 개정되는 종양학에서는, 아직 올해가 몇 개월이나 남아 있음에도 벌써 2026년도 NCCN 가이드라인을 들고 오신 교수님도 계셨다. 이처럼 가이드라인 변동을 빠르게 반영하시는 교수님들의 경우에는, 과거 기출문제에서 이해가 가지않는 부분을 한참 구글링하다가 해당 연도의 가이드라인에서 답을 찾곤 허탈한 웃음을 지은 적도 있었다. 그야말로, 가이드라인에 울고 웃은 한 해였다.그러다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막연히 의사들이 처방을 내릴 때는 '경험'이나 '감'이 더 크게 작용할 것이라 여겨왔다. 그러나 올해 임상의학을 배우며 느낀 바는, 실제 임상 과정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이드라인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이었다.환자의 증상은 해리슨이나 전공서적의 기준에 따라 점수화되고, 처치는 수많은 학회들이 오랜 시간 검토해 온 guideline에 따라 이루어진다. 임상에 수많은 grey zone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토록 표준화된 세계가 존재한다는 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의학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과학적이었고, 훨씬 더 정교한 학문이었다.이러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역시 인상 깊었다. 해리슨의 한 문장, guideline의 한 줄이 바뀌기까지는 수많은 multicenter RCT가 전제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그 RCT를 수행하고 있을 것이고, 그렇게 집적된 자료 위에 최신 지침이 쌓여 간다. 객관성과 재현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이 과정은, 가이드라인이 왜 '표준'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이드라인이 모든 상황을 완벽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특히 감염학에서, 배양 결과가 나오기 전 환자에게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guideline이 전제하는 틀 안에서 empirical antibiotics가 사용된다.이는 가이드라인의 부정이 아니라, 오히려 가이드라인이 현실의 임상을 고려해 허용한 영역에 가깝다. 대부분의 감염은 일정한 패턴을 보이고, 항생제를 신속히 투여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오류의 위험을 상회하기에 이러한 접근이 지침에 포함된 것이다.이 지점에서 가이드라인은 절대적 명령이 아니라, 의사의 판단을 지탱하는 좌표처럼 느껴졌다. 오랜 시간 누적된 환자 경험과 판단의 흔적이 근거로 정제되어 guideline이 되고, 다시 그 guideline이 다음 세대의 임상을 규정한다.무수한 RCT와 체계적 연구가 의학을 정교하게 만든다면, 그 연구들을 가능하게 한 경험의 집합은 의학을 인간적인 학문으로 만든다. 나는 이 순환 구조가 의학의 본질에 가장 가깝다고 느꼈다. 더 나아가, 이러한 과정 자체가 의사라는 직업과 그 전문성에 대한 하나의 '존중'이 아닐까 싶었다.그렇기에 실제 의료현장에서 내가 마주할guideline은 지금껏 퍼시픽 문제를 풀 때와 달리 절대적 진리가 아니며, 전능하지도 않다. 이 부분은 내년 실습을 돌면서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같은 advanced gastric cancer라 하더라도 환자가 100명이면 100개의 서로 다른 케이스가 있고, 환자의 의지, 가족의 생각, 경제적 여건, 동반 질환에 따라 치료의 방향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guideline은 어디까지나 '이상이자 원형'일 뿐, 현실에 맞게 조정하고 재구성하는 역할은 결국 의사에게 달렸다.오후 5시만 넘어도 어둑어둑해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완연한 겨울을 실감한다. 약간 돌아오긴 했지만, 의대를 다닌 지 6년 만에 이론 강의 블록을 모두 마쳤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실제 환자를 대면하며 진정한 의사로서의 능력을 배양하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학습은, 거칠게 말하자면 AI도 할 수 있는 일이니…. (사실은 AI가 더 잘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인간답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저녁이다.
2026-01-05 05:00:00젊은의사칼럼

내과 실습을 마치며…환자의 삶과 동행하다

[메디칼타임즈=가톨릭관동의대 3학년 안하은 ] 지난번 외과 실습을 마치고 칼럼을 썼을 때, 나는 수술실의 긴장감과 환부를 도려낸 후 회복되어 가는 환자들의 모습에서 느낀 의사의 보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6주간의 내과 실습은 내게 전혀 다른 차원의 질문을 던져주었다. 내과 실습은 드라마틱한 해결보다는,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환자의 삶 그 자체를 마주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외과와 내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환자가 처한 상황과 치료의 지향점에 있었다. 외과 병동의 환자들은 대개 수술을 견딜 수 있는 전신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수술이라는 변곡점을 지나면 회복의 그래프를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반면 내과에서 만난 환자들은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수술보다는 약물과 생활 습관 조절을 통해 질병을 관리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완치가 아닌 관리와 유지가 목표인 상황에서, 환자가 겪는 고통의 시간은 길었고 이를 지켜보는 의료진 또한 끈질긴 싸움이었다. 내과 의사가 짊어져야 할 무게를 처음 실감한 것은 소화기내과 실습 때였다. 나는 간경변증 환자 한 분을 배정받아 문진을 진행하게 되었다. 첫날 병실을 찾았을 때, 환자분은 복수가 차 있어 힘겨워 보이긴 했지만,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내 눈을 맞추며 증상을 설명했고, 학생인 나에게 따뜻한 격려를 건네기도 했다.나는 다음 날의 문진을 기약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병실을 나섰다. 하지만 병마는 예고 없이 환자를 덮쳤다. 이튿날 다시 찾은 병상에서 환자분은 의식이 저하되어 내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셋째 날, 환자분의 상태는 충격적이었다. 간성혼수로 인해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돌아가 있었고, 손발은 의지와 상관없이 꺾여 있었다.불과 이틀 전까지 나와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 급격히 생명력을 잃고 병상에 누운 위중한 환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실습생인 내게 큰 정신적 충격이었다. 환자의 상태가 악화하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면서, 나는 내과 의사가 마주해야 할 상실감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심장내과 실습에서는 생과 사가 갈리는 급박한 현장을 처음으로 목격했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실려 온 환자에게 의료진이 심폐소생술과 관상동맥 중재 시술을 동시에 시행하는 상황이었다. CPR이 실제 사람에게 행해지는 모습은 교과서나 실습실 모형과는 전혀 다른 압도감을 주었다. 좁은 시술실 안에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흉부 압박을 이어가는 인턴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저 치열한 모습이 어쩌면 나의 머지않은 미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과연 나도 저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환자를 살려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책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긴 시간 끝에 환자의 심장 리듬이 돌아왔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환자는 여전히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나는 교수님의 회진을 따라다니며 그 이후의 과정을 지켜보았다. 심장은 다시 뛰지만 깨어나지 못하는 환자 앞에서, 교수님은 보호자를 위로하며 아주 세심하게 환자를 살폈다. 소변량, 혈압, 산소포화도 등 수많은 검사 수치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아주 미세한 약물 용량까지 조절하는 교수님의 판단 과정을 보며 단순히 심장이 다시 뛰게 만드는 것이 끝이 아니라,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데이터 분석과 고민이 필요한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신장내과에서는 만성질환이 환자의 일상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목격했다. 신장내과 병동과 투석실에는 만성 신부전 환자들이 많았다. 환자들은 일주일에 3번, 한 번에 4시간씩 혈액투석을 받아야 했다. 투석 시간뿐만 아니라 이동 시간과 투석 후의 피로감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정상적인 사회생활이나 직업 활동을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더욱 안타까운 점은 신장 질환이 단독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의 합병증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평생 약을 먹고 식단을 조절해 왔음에도 결국 투석을 피할 수 없게 된 환자들의 모습에서 만성질환의 무서움을 보았다. 내과 질환은 환자의 평생을 따라다니며 삶의 질을 좌우하는 무거운 족쇄였다.외과 의사가 수술 여부와 방법을 결정하는 결단의 연속이라면, 내과 의사는 환자의 변화하는 상태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조절하는 인내의 연속이었다. 외과 실습 때는 수술 후 환자가 좋아지는 모습에서 직관적인 보람을 느꼈고, 내과 실습을 하면서는 환자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막아내고, 의식이 없는 환자의 곁에서 수치와 싸우는 의료진의 모습에서 경외심을 느꼈다.6주간의 내과 실습을 통해 나는 의사의 역할에 대해 다시 정립하게 되었다. 환자를 살린다는 것은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내는 순간뿐만 아니라, 서서히 기능을 잃어가는 장기를 대신해 약물을 조절하고, 일상이 무너진 환자의 곁에서 최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긴 여정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앞으로 의사가 되어 마주할 수많은 환자 앞에서, 나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술기를 익히는 것에 더하여 환자의 데이터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의 상태를 놓지 않는 환자와의 동행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2025-12-29 05:00:00젊은의사칼럼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계절

[메디칼타임즈=순천향의대 3학년 오명인 ] 어느 가을날 산부인과를 돌 때였다. 교수님들이 모두 학회를 가셔서 오전에 모두 끝나버린 일정에 바로 공부할 거리를 챙겨서 카페로 향했다. 근데 웬걸 가려던 카페가 임시 휴무였다. 숙달된 P인 나는 당황하지 않고 플랜B를 실행했는데 그건 바로 옆에 있는 샌드위치 집에서 무화과 리코타 샌드위치를 사서 호수 공원에 가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카페를 가서 공부를 하는 플랜 A-1,2,3,4가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았다고 변명을 한다. 내가 하나 강력하게 확신하는 것은, 눈앞에 온 거짓말 같은 날씨는 절대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때 즉시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부천에 산 지 2년이 되어간다. 나는 어떤 동네나 내가 매트리스를 깔고 눕는 곳이라면 곧잘 좋아하고 뿌리를 내리는데, 이번에 지낸 도시는 그중에서도 애착을 갖기 쉬웠다. 특히 부천의 가을은 더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을 갖게 만든다. 나는 기회만 되면 병원 지하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하고 노트북을 챙겨 공원 한복판 정자에서 공부를 하면서 한점이라도 더 가을을 보고 가려고 안간힘을 썼다.자전거를 십분 정도 타고 도착한 호수 공원은 작지만 정리가 잘 되어있어서 걷거나 자전거 타기 매우 좋다. 적당히 볕이 드는 자리를 선택해서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한다. 사실 작년까지 무화과에 취미가 없었는데 이번 여름 오키나와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산 무화과로 아침을 해 먹은 이후로 한국에서도 계속 무화과를 찾아다녔다. 치아바타에 리코타, 무화과와 루꼴라만 들어간 간단한 샌드위치인데 꽤 비싸고, 매우 맛있다. 샌드위치 위로 햇빛이 흔들린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이 빛을 뭐라고 했는데… 뭐라고 했더라.손을 털고 조금 걷기 시작한다. 혹시나 해서 책도 챙겨왔다 <고상하고 천박하게>라는 이훤 작가와 가수 김사월의 주고받은 편지 형식의 책이다. 읽다가 인기척이 느껴져 앞을 보니 양볼이 붉은 아기가 나에게 낙엽을 건넨다. 그 사랑스러운 선물을 책 사이에 끼우기 전에 햇빛에 한번 비춰본다. 샛노란 벚나무 낙엽을 덮고 있는 미세한 갈색 반점들, 그 사이를 지나가는 미세한 잎맥,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가늘고 얇은 경계로 갈라지고 그 틈을 햇빛이 채우면서 빛나고 있었다. 무언가를 이렇게 관찰한 적이 너무 오래전 같았다. 가끔 애인과 구글맵으로 세계지도를 보면서 가끔 어디로 여행 가지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최근에는 생각보다 세상이 너무 좁다는 느낌이 들어서 어이없이 우울해진 적이 있었다. 이 세상의 경험들을 다 묶은 책을 다 읽어버리면, 그 이후에는 어떡하지? 그런 걱정이었다. 그러나 필요 없는 걱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매년 똑같이 돌아오는 가을을, 이번에 지나가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이렇게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웃겼다.
2025-12-22 05:00:00젊은의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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