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총만 들고 총알 없는 심부전…기증받아 버티는 현장"
[메디칼타임즈=김민건 기자] 좌심실보조장치(LVAD)를 삽입했다고 심부전 치료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퇴원 후에도 장치가 멈추면 생명이 위험해 의료진은 밤낮없이 환자의 연락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국내 LVAD 모니터링 수가는 회당 5만원 수준에 불과해 전담 인건비와 소모품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대한심부전학회 차기 이사장으로 선출된 정욱진 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 교수가 메디칼타임즈와 만나 이 문제를 화두로 꺼낸 데는 이유가 있다. 세계 최상위권에 오른 국내 심부전 진료 수준과 달리, 환자를 끝까지 책임지는 연구·정책·관리체계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정욱진 대한심부전학회 차기 이사장(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 교수)은 메디칼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더 이상 명의 한 명에게 의존하는 시스템은 안 된다"며 중증 심부전 극복을 위한 국가적 어젠다 설정과 시스템 투자를 촉구했다.정 교수는 "진료 수준이 아니라 연구 지원과 정책적 배려가 크게 떨어져 있다"며 암과 마찬가지로 중증 심장질환도 이제는 국가적 과제로 다뤄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더 이상 명의 한 명한테 의존하는 시스템은 안 된다"며 의사 개인이 아닌 다학제 치료팀과 전문센터에 보상하고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가 임기 중 추진할 핵심 과제도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정 교수가 인터뷰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은 것은 'LVAD 관리료 현실화'와 '심부전 연구재단 설립'이다. 하나는 진료현장에서 당장 해결해야 할 시급한 현안이고, 다른 하나는 심부전 분야가 장기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다져야 할 주춧돌이다.심부전 170만명 시대…치료 발전 못 따라가는 사회적 관심과 정책 지원국내 심부전 진료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는 것은 질환에 대한 낮은 인지도와 정책적 지원 부족이다. 고령화와 함께 환자 수는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심부전은 여전히 대중에게 생소한 질환이다.정 교수는 "국내 심부전 유병률은 3.4%로, 심장이식이나 LVAD 같은 고난도 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도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이 같은 환자 증가세를 두고 전 세계적으로 '심부전 팬데믹'이라는 표현까지 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질환의 중증도에 비해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정 교수는 암이나 만성 콩팥병 환자와 비교해 중증 심부전 환자들이 정책적 혜택에서 소외돼 있다고 짚었다. 일부 중증 심장질환 환자는 약값 등의 70%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환자를 진료 현장에서 많이 마주한다"고 전했다.가장 시급하면서도 과소평가된 과제를 하나만 꼽아달라는 질문에 그의 답은 명확했다. '정책적인 뒷받침'이었다. 정 교수는 심부전에 대한 정책적 배려와 지원이 이제 막 첫발을 뗀 단계라고 평가하면서 "총만 들고 있는데 총알이 없으면 일할 수가 없다"고 비유했다. 정 교수는 "이제는 중증 심장질환에 대한 국가적 어젠다를 세울 시기가 됐다"며 중증 심부전 환자가 더 이상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모든 심장혈관질환의 종착역'…생명 연장 넘어 삶의 질까지정 교수가 심부전을 설명할 때 즐겨 쓰는 표현은 '모든 심장혈관질환의 종착역'이다. 각종 심장질환이 악화되면 결국 심부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심장과 심부전 치료의 관계를 자동차 엔진에 비유했다. 타이어와 외관이 아무리 멀쩡해도 엔진이 멈추면 차는 달릴 수 없다. 정 교수가 심부전 '치료'를 넘어 '극복'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정 시술이나 치료를 성공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예방부터 치료, 재활, 완화의료에 이르기까지 환자의 삶 전반을 연결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심부전 치료에서는 생명을 연장하는 것 못지않게 환자가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심부전은 심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환자마다 원인과 동반질환, 심장 기능, 약물·시술에 대한 반응이 모두 다르다. 정 교수는 이런 특성을 '종합예술'에 비유하며, 심부전 전문의는 여러 치료 분야를 조율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정 교수는 "암 치료에서 다학제 진료가 이뤄지는 것처럼 심부전에서도 다양한 전문가가 함께해야 한다"며 "이것이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폐고혈압 분야에서도 재활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여러 진료과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가천대 길병원에서는 심장이식과 LVAD 치료를 위해 심장내과와 흉부외과가 매주 만나 환자 치료 방향을 논의하며, 재활의학과와 영상의학과도 여기에 힘을 보탠다. 정 교수는 나아가 환자와 보호자까지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논의 과정에 함께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이 과정에서 의사 개인의 역량만큼 중요한 것이 치료팀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의료 인력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같은 맥락이다. 정 교수는 개별 의사에게만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정 의료진에게 의존하는 치료체계는 그 사람이 현장을 떠나면 팀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그는 "개인이 사라지면 팀도 함께 없어진다"며 개인보다 팀과 시스템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가천대 길병원 심부전 치료팀에 20명 이상의 인력이 함께하고 있다는 설명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전문센터 역시 단순히 전문의 몇 명이 근무하는 기관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심장이식이나 LVAD 치료는 심장내과나 흉부외과 의사 한두 명의 역량만으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개개인이 뛰어난 것도 좋지만 결국 팀이 뛰어나야 한다"며 정부 지원도 여러 보건의료 직종이 참여하는 전문센터와 치료팀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정욱진 대한심부전학회 차기 이사장(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의사 개인이 아닌 다학제 치료팀과 전문센터 중심의 국가적 지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직종 연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직접 참여한 지침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LVAD 관리료가 드러낸 현실…고가 치료 이후 관리는 누가 책임지나정 교수가 팀 중심 지원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대표적인 현안으로 꼽은 것은 'LVAD 관리료'다. 심장의 펌프 기능을 보조하는 고가 장치를 삽입하는 치료는 가능해졌지만, 이를 지속해서 관리할 제도적 뒷받침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정 교수에 따르면 LVAD 삽입에 들어가는 전체 비용은 약 1억8000만원, 장치 가격만 약 1억4000만원에 이른다. 현재 국내에서는 장치 모니터링을 한 차례 시행하고 약 5만원의 수가를 받는다. 이 같은 현행 수가로는 전담 인력과 소모품 비용을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정 교수의 설명이다. 소모품을 새로 마련하기 어려운 현장의 고충을 설명한 정 교수는 "사망한 환자의 물품을 기증받아뒀다가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LVAD 환자를 관리하는 간호사는 기계 이상 등 응급상황에 즉시 대응해야 하므로 밤낮없이 환자의 연락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루 8시간 근무와 휴가 등을 고려해 24시간, 365일 상시 관리체계를 유지하려면 여러 명의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5명가량이 필요한 업무를 실제 현장에서는 단 1명이 도맡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전담 코디네이터의 인건비와 장치 부속품 비용을 보전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가 지원이 필수적이다.일본은 '재택 삽입형 보조인공심장 지도관리료'를 통해 퇴원한 지속류형 LVAD 환자의 외래·재택 관리에 월 4만5000점, 금액으로는 45만엔(우리 돈 약 400만~420만원)의 수가를 인정한다. LVAD 삽입 이후 장기간 이어지는 환자 관리와 의료기관의 책임을 별도의 보상체계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제도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정 교수는 "하루 8시간 근무와 휴가 등을 고려해 24시간, 365일 상시 관리체계를 유지하려면 여러 명의 인력이 필요하다"며 현실적인 지원책을 강조했다.정 교수는 이 문제를 학회 정책 세션에서 보건복지부와 논의한 끝에 "관리료 개선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답변을 들었고, 이러한 일본 사례에 관한 근거 자료도 전달했다고 밝혔다.그는 이 사안을 두고 "세세한 부분처럼 보이지만 중증 심부전 치료에선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고 짚었다. 관리료 개선이 단순한 수가 항목 하나를 조정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가의 치료 이후에도 환자의 생명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느냐와 직결되기 때문이다.등록연구 넘어 RCT로…심부전 연구재단과 전문센터 구상차기 이사장으로서 정 교수가 제시한 또 하나의 핵심 과제는 국내 심부전 연구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가 강조한 연구 형태는 무작위 임상시험(RCT)이다. RCT는 치료 효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진료지침의 근거를 확립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등록연구보다 훨씬 많은 비용과 연구 인프라가 필요하다. 그는 "국내 심장질환 연구비는 암 분야와 비교해 10분의 1에서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며 "충분한 연구 역량을 갖추고도 이를 뒷받침할 재원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이러한 연구를 장기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구상이 바로 '심부전 연구재단'이다. 정 교수는 "전체 회원이 약 1600명에 이르고 학회가 탄탄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만큼 미래를 위한 연구재단 설립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그리는 재단은 심장내과 연구만 지원하는 조직이 아니다. 흉부외과와 소아심장 분야, 재활의학과, 예방의학 등 심부전 극복에 필요한 여러 연관 분야를 함께 뒷받침하는 역할을 염두에 두고 있다. 정부와 민간의 후원 통로를 마련해 대규모 RCT와 환자 중심 연구를 투명하게 지원한다는 구상으로, 제반 여건을 고려해 임기 동안 꾸준히 설립을 추진할 계획이다.정 교수는 "중증 환자의 치료 성과를 개선하는 것이 재입원율 감소와 삶의 질 향상, 생명 연장에 핵심"이라고 강조했다.전문센터 지정과 진료 질 관리체계 구축도 주요 검토 과제다. 첫 단계는 심부전 인증의 제도를 도입해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다. 정 교수는 올해 첫 시험을 시작으로 인증의 제도를 본격화한다고 설명했다. 이후 진료의 질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데이터가 축적되면 우수기관 인증도 검토할 계획이다. 다만 기관 인증에 앞서 전문인력을 충분히 양성하고 치료 성과를 평가할 기반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부연했다.국가 차원에서 권역 심부전센터나 권역 폐고혈압센터를 지정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중증 환자를 여러 기관에 분산하기보다 경험이 풍부한 전문센터로 집중시키면, 전문인력 양성과 의료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중증 심부전센터를 중심으로 심장이식과 LVAD 치료를 집중하고, 국가가 24시간 운영에 필요한 필수 인력을 지원하는 방안도 향후 정부와 협의해볼 수 있는 구상으로 꼽았다.정 교수의 대한심부전학회 이사장 임기는 2027년부터 2029년까지 3년이다. 정 교수는 이사장 임기를 마칠 때 중증 심부전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제도적 이정표를 분명하게 세워놓고 싶다고 밝혔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그는 자신도,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도 언젠가는 심부전 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환자라는 인식 아래 의료체계의 변화를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