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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5 잔치'로 전락한 연구중심병원 "찔러라도 볼까"

발행날짜: 2012-12-17 06:20:45

지방병원들 자포자기 하면서도 준비…전문병원은 절레절레

|기획| 계륵으로 전락한 연구중심병원

진료 중심의 병원환경을 연구중심으로 바꾸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연구중심병원 사업이 방향성을 잃고 헤매고 있다. 예산이 없는 복지부는 병원의 희생을 강요하고, 수백억원의 정부 지원을 기대하며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병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메디칼타임즈>는 연구중심병원 사업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짚어봤다. <편집자주>

상> 연구중심병원, 빅5만의 잔치되나
<하> 방향성 잃은 연구중심병원 불신 자초
재도약의 기회다. 지방에 위치한 A국립대병원은 연구중심병원 지정을 계기로 지방대병원의 설움을 딛고 한단계 성장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직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지만 솔직히 큰 기대는 안한다. 대형 빅5병원과 지방에 국립대병원과는 게임이 되질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열린 연구중심병원 지정 사업 설명회에 참석하기 전에만 해도 핑크빛 미래를 꿈꿨지만 어느새 '잘 되면 좋고, 안되고 그만이라는 식'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해온 게 있는데…못 먹어도 고(G0)"

최근 보건복지부가 연구중심병원 지정 사업과 관련해 당초 해당 병원에 수백억원의 예산지원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일절 예산지원이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 때문에 병원들이 혼란에 빠졌다.

내부적으로 별도 조직을 꾸려 해왔던 사업을 단번에 뒤집을 수도 없고, 밑빠진 독에 물붓기를 해야하는 사업에 섣불리 병원 예산을 쏟아붓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게 지방 병원들의 속내다.

A국립대병원 관계자는 "우리 병원이 연구중심병원에 지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일단 시작했으니 중단할 수는 없다. 다음주 쯤 지정 신청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산을 투자한 게 없어서 설령 안된다고 하더라도 병원 경영상에 큰 지장은 없다"면서 "애초에 리스크를 감안해 시설, 인력 등 예산을 크게 투자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지금 생각하면 일을 크게 벌이지 않은 게 다행스러울 정도다.

반면, 소위 빅 5병원들은 지방 국립대병원들과는 달리 연구중심병원 지정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시설뿐만 아니라 인력 측면에서도 경쟁 상대가 없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인력 및 시설 인프라를 볼 때 우리 병원이 아니면 어디서 연구중심병원을 하겠나. 예산 지원이 없다는 점은 불만스럽지만 이와 무관하게 추진해야할 사업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세브란스병원과 삼성서울병원 고위 관계자 또한 "우리 병원은 시설이나 인력측면에서 모든 준비를 마쳤다"면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실제로 서울대병원은 개방형융합의료기술연구원 건립 사업을 통해 연구중심병원 인프라와 운영시스템 구축 사업에 들어갔고, 세브란스병원은 내년 2월 완공을 목표로 '에비슨 의생명 연구센터'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또한 현재 운영 중인 삼성생명과학연구소와 임상과학연구소에 유전체의학과 맞춤의학을 연구하는 삼성유전체연구소(SGI)와 재생의학연구소, 의료기기개발 연구소 설립 등 독보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어차피 빅5병원 잔치…비용 손해 최소화"

이는 안될 걸 알면서도 끝까지 가보겠다는 지방의 국립대병원과는 상반된 분위기다.

지방 병원들은 이미 조직을 구성해 사업을 추진해온 이상, 이대로 접을 순 없으니 시도는 해 볼 계획이다.

다만 재정적 손해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꾀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들이 연구중심병원 지정 사업 설명회에 참석해 설명을 듣고 있다.
B국립대병원 관계자는 "일단 한번 해보기로 했다. 포기는 안한다"고 말하면서도 "지정 신청서에는 현재 연구전담의사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채 내년도 계획만 잡아놓은 상태"라고 털어놨다.

C국립대병원 또한 탈락할 것을 알지만 지정 신청할 계획이다. 이 역시 지정 신청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만 충원하고 부수적인 보조인력은 서류상으로 계획만 세워뒀다.

즉, 일정대로 지정신청을 하지만 시설은 물론 인력까지 어느 것 하나 자신있게 내세우기란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특히 연구중심병원에 잠시 군침을 흘렸던 전문병원들도 예산지원이 없다는 소식에 아예 고개를 돌였다.

모 전문병원 대표원장은 "처음에 새로운 기회가 되겠다 싶어서 관심을 가졌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잠시 진지하게 검토하다가 포기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병원 관계자는 "상급종합병원 기준에선 가능할 수 있지만, 전문병원에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예산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전문병원이 기준에 충족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인력 기준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호소했다. 당장 진료 의료진을 채우기도 벅찬 상황에서 연구진을 채용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한 전문병원 관계자는 "연구중심병원도 결국 빅5병원의 잔치로 끝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면서 "전문병원 지정할 때에도 정부는 대단할 혜택을 줄 것처럼 얘기했지만 이름뿐인 전문병원에 불과하지 않나. 고생해서 준비해놓는다고 어떤 메리트가 있을 지도 의문"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