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일원화를 위해 어렵게 마련된 자리에서 의사-한의사가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의료계는 한약재의 규격화와 한의학적 치료의 과학적 검증을 우선적으로 요구한 데 반해 한의사들은 의료계의 근거없는 폄훼가 계속되는 한 일원화는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21일 대한개원의협의회와 선한의료포럼이 공동으로 개최한 제1회 의료일원화 공청회가 앰베서더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이재호 개원협의회 부회장과 조정훈 의협 한방대책특위 위원, 김용호 한의협 중앙대의원, 최인호 한의협 위원이 서로의 입장만 주장한 채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먼저 한특위 조정훈 위원은 "의료일원화를 논하기에 아직 시기 상조"라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현대 의료기기 등 한의계와의 갈등이 아직도 진행형이고 정부도 이런 것을 방기하고 있기 때문에 법적, 제도적 질서가 먼저 자리 잡기 전에는 일원화는 불가능하다는 것.
그는 "한특위는 의학과 한방을 대등하게 보는 관점을 반대한다"면서 "대한민국 의료는 서양-동양의학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대의학과 대립되는 개념인 대체의술 중 하나로 한방을 봐야한다"면서 "이 둘을 합치면 갈등이 치유된다는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라고 단언했다.
변리사와 변호사가 역할 갈등으로 분쟁을 겪고 있지만 이 둘을 통합할 수 없듯이 의학은 과학을 베이스로 하기 때문에 비과학적인 한의학과 통합은 무리라는 설명이다.
이재호 대개협 부회장도 한의학의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검증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부회장은 "의대에 한의학 개념을 습득할 수 있는 교과과정을 개설하는 등 의료계의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한의계도 한약재의 문제점을 먼저 지적하고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못 박았다.
그는 "일원화의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한약재의 표준화가 안돼 있기 때문"이라면서 "비방이라는 이유로 안전성 유효성에 대해서는 묵묵 부답하지 말고 일원화를 위해서는 표준화를 우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한약재의 효과와 부작용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후 치료원리에 따른 과학화 및 현대화를 모색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하지 않고 영역 확대만 하면 의료법 위반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환기시켰다.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 기자 역시 의료일원화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그는 "의료일원화라는 말보다는 면허일원화를 써야 하지만 아무도 찬성하는 사람이 없다"면서 "인간의 몸을 바라보는 체계와 진단 체계가 다른데 어떻게 합치겠냐"고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한사람은 류마티스라고 하고 다른 쪽은 풍이라고 하기 때문에 서로 각자의 체계를 발전시키는 방법 밖에는 없다"면서 "일원화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의계 역시 성급한 일원화에 난색을 표명했다.
김용호 한의협중앙대의원은 "의료 통합을 위한 전제조건은 상대에 대한 인정과 배려"라면서 "하지만 현재 의사들은 근거없는 한의약 폄훼와 악의적인 왜곡보도로 진료영역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폄훼에 앞장섰던 한특위가 일원화를 논의하는 자리에 의료계 대표로 참여하는 것도 매우 유감스럽다"면서 "진정 통합을 논의하고 싶다면 폄훼를 중단하고 강력한 처벌 기준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폄훼를 중단한다는 약속이 있어야만 한의협 대의원총회에 통합의료 논의를 건의할 수 있다는 것.
그는 "의료계의 한의대 폐지를 전제로 하는 일원화는 한방의료를 축소하고 일본식으로 한의약을 말살하려는 의도이므로 동의할 수 없다"면서 "통합을 위해 우선 한방의료를 육성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최인호 한의협 위원 역시 의료계의 태도를 문제삼고 나섰다.
그는 "의료계가 매번 한의약의 간독성 문제를 제기한다"면서 "농약 검사를 철저히 하는데도 중금속 범벅이라는 말로 폄훼를 하고 있는 태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한약 먹고 죽은 사람이 없듯이 한약재는 몇백년 동안 안전성을 검증을 받은 것"이라면서 "한의학을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말고 한의학 체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달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