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Times
  • 병·의원
  • 개원가

검진평가 제출 서류만 한박스…야근에 특근 '진풍경'

발행날짜: 2013-08-22 06:22:41

현장서류제출 D-10, 개원가 "수익 따졌으면 포기" 부글부글

검진기관 평가를 위한 서류 제출 마감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개원가에서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수백여 항목의 서류를 작성하느라 진료가 끝나고 야근을 하는 것은 물론, 주말에는 직원들을 불러 특근까지 시키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개원의들은 검진기관 평가가 검진의 질과는 상관 없이 그저 서류 작성의 능력을 보기 위한 '평가를 위한 평가'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는 상황.

실제 개원가를 돌며 올해 의원급 검진기관 평가에 대한 불만과 대안, 서류 작성의 부담감 등을 들어봤다.

진료 후 야근에 주말 특근까지 '진풍경'

광진구에서 내과를 운영하는 A원장은 지난 두달간 서류 뭉치와 씨름을 벌였다.

2달 동안 만든 검진평가 제출 서류. 서류철 하나당 문서만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그가 준비한 일반검진 평가 문항수는 117개. 495개 문항의 암검진에 비하면 '양반' 축에 속했지만 이마저도 사과 한 박스 분량이 될 정도로 준비한 서류는 많았다.

A원장이 가장 시간을 많이 할애한 부분은 지침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채혈을 하는데도, 임상병리사의 보수 교육에도 지침서가 필요했다.

"임상병리사가 교육을 받으면 1년 평점의 교육 이수증만 제출하면 될 일인데 교육을 어떻게 하는지, 시간 스케쥴을 어떻게 했는지 지침서를 내라고 하니 황당할 뿐입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각 의원 환경에 맞도록 체혈행위, 신체계측, 시력검사, 청력검사 등도 지침서를 만들어 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검진 후 진료 소견 등 자료 입력은 객관적인 데이터가 있어 크게 어렵지 않지만 지침서를 만드는 것은 자문을 구할 데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A원장은 "수탁을 하는 절차도 지침서를 만들어 내야 할 뿐 아니라 원심분리기도 사진을 찍어서 내라고 하는데, 이런 것들이 과연 검진의 질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차라리 정부가 지침서 등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의원급에 배포를 하고 이를 지키는지 확인하면 간단한 일"이라면서 "정부가 너무 행정편의주의적으로 일을 하려는 것 같다"고 혀를 찼다.

그나마 A원장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하루 1건 정도 검진을 하는 곳이다 보니 시간적 여유가 있는 임상병리사가 옆에서 서류 작업을 많이 도와줬기 때문이다.

반면 노원구 B원장은 이달 들어서부터 진료가 끝나기가 무섭게 철야 근무에 시달리고 있다.

B원장은 "간호조무사에게 행정적인 부분을 시켜봤지만 일의 진척이 더뎌 서류 작업을 전적으로 혼자 할 수밖에 없다"면서 "왜 제출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지침서를 만들다가 화가 나서 문서를 집어 던진 적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한달 동안 1~2시간씩 야근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제출 서류 작성이 완료되지 못했다"면서 "주말에 직원들을 불러 특근을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일반검진 10건 했는데 100여 항목 서류 제출하라니?

제출해야할 서면평가 근거자료를 정리해 놓은 리스트만 십여 페이지를 넘는다.
C원장은 아예 이번 기회에 검진을 '때려치기'로 했다.

환자 서비스 차원에서 수익도 안 되는 검진을 해 왔지만 올해 의원급 평가는 불합리한 점이 너무 많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올해 의원급 검진기관 평가 대상은 총 4706곳. 기준은 지난해 12월 말까지 연간 수검자 수 300명 이상인 기관이다.

문제는 연간 수검자 수의 기준이다.

연간 수검자 300명 이상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하루 1건 이상 검진을 하는 곳이면 평가 대상에 포함된다.

즉 연간 수검자가 3000명인 곳과 300명인 곳이 똑같은 동일선상의 기준으로 평가를 받는다는 소리다.

더욱 문제는 연간 수검자 중 최다 빈도를 차지하는 검진 영역으로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즉 299건의 영유아 검진을 하고 딱 한 건만 암검진을 했다고 해도 495문항에 달하는 암검진 평가 문항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영유아 검진을 주로 하는 가정의학과 B원장도 이런 황당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그가 검진한 환자 수는 총 300여명 남짓. 300명 이상의 평가 대상 기준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셈이지만 결과는 예상보다 혹독했다.

총 290명의 영유아 검진을 하고 10명의 일반검진을 한 것이 발등의 불이 될지 몰랐다.

C원장은 "영유아 검진은 30문항만 평가 지표를 작성해 제출하면 되지만 일반검진은 117문항을 작성해야 한다"면서 "10명의 수검자 때문에 서류 한 박스를 만드느니 차라리 포기하겠다"고 전했다.

검진을 포기한 이유는 다른 곳에도 있다.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평가 기준 때문이다.

C원장은 "필수 평가 항목 중에 화장실의 남녀 구분 여부가 포함돼 있다"면서 "공용 화장실을 쓰면 D등급을 주겠다고 하는 것은 개원가에서는 검진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고 하소연했다.

'D' 등급을 맞고 부실기관의 오명을 쓰느니 차라리 검진을 하지 않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개원의들 의견 반영한 현실화된 기준 작성해야

개원내과의사회 검진 담당 이사는 "검진기관의 평가가 사후 관리를 철저히 해 검진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진의 질과 상관없이 서류 작성 능력을 평가하는 지금의 평가 방식을 벗어나 개원의가 납득할 수 있는 평가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

그는 "검진수가는 진찰료의 52%에 불과하지만 여기에 상담과 결과지 우편 발송, 질관리 기록 입력 등에 들어가는 시간은 일반 환자를 진찰할 때보다 5배 정도는 더 들어간다"면서 "평가는 대학병원급으로 하고 수가 현실화 목소리는 외면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그는 "의사회에서 검진 담당 이사를 맡았기 때문에 어떤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하는지 알아보려고 3년전부터 검진을 하고 있다"면서 "수익을 생각했다면 벌써 포기했다"고 강조했다.

혈압을 재고, 방사선사가 없어 직접 X-ray를 촬영하고 내시경도 하는데다가, 중간 과정마다 상담과 설명을 하는 것은 사실상 개원의들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소리다.

특히 임상병리사를 고용하는데 들어가는 돈과 장비의 유지 보수비, 시약 구입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하면 소규모 의원은 검진을 해도 오히려 손해를 보기 일쑤다.

그는 "이런 개원의들의 피와 땀은 나몰라라 하면서 나쁜 등급을 받지 않으려면 서류를 잘 작성해서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의 극치"라면서 "최근 개원의들이 검진을 포기하겠다는 말이 나오는 게 당연한 현상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검진평가 때문에 검진을 포기하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벌어지면 결국 환자들에게 손해가 돌아간다"면서 "검진 자문위원회에 개원가 인사를 참여시켜 평가 항목을 현실화하고 수검자 수에 따라 평가 항목도 바꾸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