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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의학과의원은 '을'…진료비 직접청구하고 싶다"

박양명
발행날짜: 2014-02-19 12:20:23

개원의 19명 심평원 상대 소송…"자보환자 특수성 인정해 달라"

|초점|입원 자보환자, 위탁 영상검사 진료비 청구권 논란

A병원은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는 환자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B영상의학과의원에 MRI 촬영을 의뢰했다. 이 때, 영상검사 비용은 A병원과 B의원 중 어디에서 청구해야 할까?

정답은 A병원이다.

영상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게 A병원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7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자동차 보험 심사를 위탁하면서 만들어진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청구서 및 명세서 세부작성요령'에도 나와 있다.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청구서 및 명세서 세부작성요령 중
타 의료기관에 진료를 의뢰한 의료기관이 비용을 청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 외래진료 중 타 의료기관에 진료를 의뢰했을 때는 의뢰받은 의료기관에서도 수가를 청구할 수 있다.

이에 따르 B의원은 A병원이 진료비를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영상의학과의원들은 입원 환자 영상검사를 의뢰 받아 촬영한 후 진료비를 심평원에 직접 청구해 왔다.

심평원은 규정에 따라 청구분을 '반송'했지만 이같은 일이 반복되자 급기야 영상의학과의원에 직접 청구를 하면 안된다는 안내 전화까지 돌렸다.

그러자 영상의학과의원은 의뢰받은 환자 진료비도 직접 청구할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상의학과 개원의는 '을'…재정 계획 세우기도 애매"

이들 주장의 이면에는 검사를 의뢰한 병의원이 '갑'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자료사진
검사를 의뢰한 병원으로부터 검사비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며, 실제로도 그런 사례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C영상의학과의원은 인근 내과의원에게 초음파 검사 결과보다 정밀한 판독이 필요하다며 CT 검사를 의뢰 받았다.

하지만 C의원 원장은 초음파 검사만으로도 판독이 충분하고, CT 검사까지 할 필요 없다고 내과의원 원장에게 전화했다. 불필요한 검사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한 일이 몇차례 반복되자 내과의원 원장은 다른 영상의학과의원에 검사를 의뢰하기 시작했다.

C의원 원장은 "불필요한 검사를 막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내과 개원의 판단을 부정한 것이 된 것"이라며 "결국 내과의원과 환자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또 다른 영상의학과 개원의는 "검사를 청구한 후 심평원으로부터 '조정'을 당하게 되면 검사를 한 영상의학과의원에 비용을 주지 않는 사례도 있다. 이 때, 검사비를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의뢰하는 병원 입장에서는 거래하는 의원을 그냥 바꾸기만 하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검사 의뢰를 받는 의원은 철저히 '을'의 입장에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러면서 "병의원 간 자금 운용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검사비가 오기만을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 재정적 계획을 세우기도 애매하다"고 말했다.

"입원 환자 외래로 바꾸는 편법까지 등장"

급기야 영상의학과 개원의 19명은 심평원의 진료비 청구 방식이 부당하다며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청구서 명세서 세부작성요령' 공고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집행을 금지하기 위한 가처분신청도 함께 했다.

이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자보 진료비 청구 방식 공고가 국토교통부 고시인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심사 업무 처리에 관한 규정' 4조에 위배된다는 것.

4조는 자보 진료수가 청구인 또는 검체검사공급내역 통보인은 해당 의료기관의 대표자(개설자)다.

이에 따르면 검사를 위탁받은 영상의학과 의원 원장도 의료기관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진료비를 직접 청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즉, 국토부 고시가 진료명세서 세부작성요령보다 상위에 있기 때문에 이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소송에 참여한 한 영상의학과 개원의는 "자보 환자 진료비 청구 과정 자체가 복잡하다. (소송은) 이를 바로 잡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검사를 의뢰하는 병원 입장에서도 통장에 진료비가 입금되면 어디에 검사를 의뢰했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영수증 처리를 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영상의학과개원의사회 관계자는 "심평원이 자보심사를 위탁하면서 건보 기준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에 의뢰한 결과 자보는 건강보험과 다르기 때문에 건보 기준을 무조건 따를 필요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결국은 운영의 묘일 뿐이다. 심평원이 예외규정을 만들면 되는 문제"라면서 "자보 환자는 피해자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건보기준을 무조건 따라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의사회 관계자는 진료비 청구 과정의 불편함 때문에 벌써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형외과는 가능한 검사를 최대한 안하는 추세다. 입원 환자를 외래로 바꿔놓고 검사하고 오라는 편법도 있다"고 말했다.

"위탁 검사비용 청구권 문제는 자보 환자 특성과 관계 없다"

심평원은 진료비 환자 청구 과정의 문제를 자보 환자 특성 문제보다는 의료기관 사이의 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심평원 관계자는 "건보환자나 자보환자나 다를 게 없다는 게 기본적인 입장이다. 자보 환자 특성을 반영한 규정은 고시에 '별표'로 해서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탁 검사비용 청구권 문제는 자보 환자 특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의료기관 사이의 문제로 보고 있다.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환자에 대한 책임은 의뢰한 병원에 있다"고 선을 그었다.

법원도 이같은 심평원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다.

최근 서울행정법원 제14행정부는 영상의학과 개원의 19명이 낸 집행정지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공고의 효력을 정지하더라도 신청인(개원의)에게 직접 자보진료수가의 심사를 청구할 권리가 발생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환기시켰다.

이어 "일시적으로 요양급여 지급이 늦어지는 것은 신청인이 운영하는 병원의 경영상 어려움"이라면서 "공고 때문에 신청인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생길 우려가 있거나, 예방하기 위해 효력을 긴급히 정지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적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