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도, 마법도 일어나지 않았다.
의협 임시 대의원총회 개최를 이틀 앞두고 급작스레 진행된 총파업 재진행 안건 투표에도 불구하고 노환규 회장의 '마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대의원회는 그간 대정부 투쟁에서 불거진 독단적 회무와 정관 위배, 소통 부재를 들어 노 회장을 비대위원장의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노 회장을 배제하고 신설하기로 한 비대위 의미와 향후 풀어야할 대정부 투쟁의 과제를 짚어봤다.
▲"정관 없이 회장도 없다" 투표 마법 꺾은 정관의 방패
대의원회가 투쟁 동력을 훼손하고 있다며 내부 개혁 카드를 꺼내든 노 회장과 정관 준수의 이유로 집행부를 압박한 대의원회.
30일 의협 대강당에서 열린 임총 결과만 놓고 보면 대의원회의 한판승이었다.
이날 변영우 대의원회 의장은 개회사를 통해 "정관 준수 요청에도 불구하고 노 회장은 의료발전협의회 통해 도출한 1차 협의안을 거부했다"면서 "또 임총 공고가 나가자 별도로 회원 투표를 실시하는 등 투쟁 과정에 문제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협은 사단법인이고 정관이 있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면 협회도 회장도 존재할 수 없다"면서 "정관에 문제가 있으면 정관을 개정하면 된다"고 꼬집었다.
투쟁 과정을 점검한 감사단도 '협상 결과'보다는 '독선'을 겨냥했다.
감사단은 "의협은 소수 집단이나 개인이 아닌 전 직역이 조직·체계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면서 "의협은 공통 의견을 취합하고 정관상 공식 대의체인 대의원회를 거쳐야 함에도 노 회장은 개인적 의견을 투쟁 과정에 과도하게 노출했다"고 지적했다.
의견 수렴없이 진행한 야당과 연대나 1차 의발협 협상 결과 부정, 비대위원장직 사퇴라는 폭탄선언, 그리고 SNS를 통해 투표 과정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는 등 독단적 행동이 지나쳤다는 것이다.
노 회장에게 날개를 달아줬던 전 회원 온라인 투표 역시 정관 위배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감사단은 "파업 결정을 위한 모든 회원 투표가 여론 수렴용으로는 타당하다"면서 "하지만 이를 근거한 파업 결정은 정관에 없을 뿐더러 노 회장은 페이스북 의견 개진으로 공정해야 할 투표 결과에 영향을 줬다"고 지적했다.
▲정관 갑옷 입은 의협, 투쟁에 속도 낼수 있을까
이런 불만들은 결국 집행부와 비대위를 분리하는 안건 통과로 귀결됐다.
대의원회는 대정부 투쟁을 위한 신설 비대위 구성 안건을 통과시키는 한편 신설 비대위에서 노 회장을 배제하는 안건까지 의결했다. 독단적 회무 진행에 칼을 빼든 셈이다.
임총이 끝난 직후 의협은 최근 온라인 투표 결과를 발표했지만 이미 대의원회가 투표의 공정성과 타당성을 훑고 지나간 뒤였다.
응답자의 78.7%(1만 9547명)는 새 비대위 구성과 관련해 "의협회장이 비대위원장을 맡아야 한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53%는 대의원총회에서 총파업이 결정되는 경우 (대의원총회 결정 대신) "전체 회원 투표를 다시 해야 한다"고 답했지만 더 이상 노 회장에게 날개를 달아줄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감사단은 내달 정기총회에서 투표 설문 문항 작성자와 투표 관리 주체 등을 점검할 예정이고, 조행식 대의원도 독단과 불통을 이유로 불신임안 재추진을 벼르고 있어 내부 진통은 계속될 전망이다.
한편 향후 대정부 투쟁은 여전히 풀어야할 숙제다.
내달 15일까지 새로운 비대위를 구성하고 원격진료 시범사업 수용 여부를 재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2차 의정 협의에서 수용키로 한 시범사업을 새 비대위가 거부하는 경우 원격진료를 포함한 38개 의료환경 개선 아젠다 마저 논의가 중단될 우려도 존재한다.
새 비대위 구성이 지연되는 경우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막상 4월부터 진행하기로 한 원격진료 시범사업 파행을 이유로 의료계-정부 모두 협상안 파기의 수순에 접어들 가능성이 커진다.
게다가 새 비대위가 총파업 결정에 있어 투쟁의 가속 페달을 밟아준 온라인 투표 방식 대신 대의원 의결 구조를 따를 경우 도리어 투쟁 동력이 훼손될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