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원외탕전실을 이용한 한의원 및 한방병원 1700곳이 진료비 수 십억원을 환수당할 위기에 처했다.
이는 지난해 7월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자동차보험심사를 본격적으로 맡으면서 비급여 진료비까지 심사한 결과 드러난 것이다.
심평원 자보심사센터는 대한약침학회에서 운영하는 원외탕전실을 이용한 한방 병의원이 청구한 한방약침 비용을 심사조정 할 예정이라고 31일 밝혔다.
대상기관 수만도 1700개다. 이는 자보심사를 청구한 한방병의원 4000개 중 절반 가까이에 해당하는 숫자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청구, 지급된 비용만도 62억원에 달한다.
심평원 관계자는 "한방약침을 실시하는 모든 의료기관으로부터 조제현황 자료를 받아 검토한 결과 62억원 중 상당 부분이 조정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심사조정 내용은 4월 중 보험회사에 전달한다는 방침이다.
원외탕전실은 한의사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설이다. 원외탕전실에서 한의사 및 한약사들은 처방전에 따라 약침을 직접 조제할 수 있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원외탕전실은 한방의료기관의 부속시설로 설치, 운영해야 한다. 한약국, 제분소, 건강원, 탕제원, 조제 시설을 갖춘 특정 학회 등은 그 대상이 아니다.
심평원 관계자는 "의료법에 따르면 약침학회는 원외탕전실을 운영할 수 없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탕전실을 운영하면서 한약 및 한약제제 조제행위를 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법 원외탕전실을 이용한 요양기관들이 심사 조정 대상에 오른 것"이라면서 "약침이 비급여다 보니까 그동안 관행적으로 묵인됐던 게 이번에 드러나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약침학회의 불법 원외탕전실 운영과 관련, 보건복지부에서 여러차례 한의사협회를 통해 협조요청이 내려간 부분이다.
복지부는 2008년 원외탕전실 관련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이 이뤄진 후 수 차례에 걸쳐 합법적인 방식으로 탕전 등 조제행위를 하도록 안내 및 홍보를 요청한다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번 환수 조치에 대해 한의협은 약침학회의 원외탕전실에서 '자가조제'한 한의사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의협 관계자는 "심평원이 지적하는 것처럼 학회가 자체적으로 탕전실에서 약침을 제조, 판매한 것은 원칙상 틀린 부분"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약침학회에서 하고 있는 것은 자가조제시설이라고 보면된다. 한의사가 원외탕전실에서 직접 약침을 조제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따로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심평원은 단호한 입장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의료법상 약침학회가 원외탕전실을 설치 운영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곳에서 한의사가 약침을 직접 조제했어도 법을 어긴 것이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한의사가 약을 조제하는 것은 장소의 제한이 없다는 것이 약침학회의 주장이다. 이 부분에 대한 법률자문도 모두 마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한의사의 조제행위는 의료행위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의료법에 따라 의료행위는 의료기관 내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심평원 자보심사센터는 이를 계기로 '비급여'를 구체적으로 데이터화 할 수 있는 거점으로 나설 예정이다.
문제있는 비급여를 골라낼 수 있는 새로운 창구가 되는 셈이다.
황의동 센터장은 "자동차보험에 비급여 진료 내역까지 모두 청구가 들어온다. 외상 중심이라서 자료 확보에는 한계가 있지만 진료비 증가의 주된 원인인 비급여를 관리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