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의사들의 폭탄 선언으로 갑상선암 과잉 진료 논란이 일면서 의료계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국립암센터 가정의학과 서홍관 박사와 고대의대 예방의학과 안형식 교수, 가톨릭의대 가정의학과 이재호 교수 등이 속한 '갑상선암 과다진단 저지를 위한 의사연대'의 주장이 그 시작이다.
무분별한 건강검진과 의사들의 과잉진료로 불필요하게 갑상선암 환자가 늘고 있다는 것이 의사연대의 주장. 하지만 갑상선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비 전문가의 궤변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반박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은 크게 동요하고 있으며 일부 대학병원에서는 수술 취소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가히 갑상선암 '쇼크'라고 부를만 하다.
그러자 정부도 갑상선암 조기진단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공언하며 이같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또한 정부의 부화뇌동이라고 지적한다.
갑상선암 전문가들 500여명이 모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대한갑상선학회. 이를 이끌고 있는 정재훈 이사장(성균관의대)을 만나 지금의 논란을 짚어봤다.
Q.의사연대 등에서는 불필요한 조기진단으로 갑상선암 환자만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갑상선암 환자 증가는 우리나라만의 추세가 아니다. 세계 모든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미국 국가통계 자료인 SEER을 봐도 갑상선암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조기진단의 영향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질병을 하루라도 빨리 찾아내 치료하는 것은 의사의 사명이다. 이를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의사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Q. 이들은 유독 우리나라에서 갑상선암 환자가 급증하는 것을 문제삼고 있다. 의사들이 불필요한 검사를 권유해 돈벌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우선 우리나라 의료환경의 특성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미국의 경우 초음파 검사 비용이 1000불을 넘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최소 2만원이면 검사를 받을 수 있다. 그만큼 의료 접근성이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다는 의미다.
결국 미국 국민들은 비싸서 엄두를 낼 수 없는 초음파 검사 등을 우리나라 국민들은 너무나 쉽게 요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환자가 검사를 원하는데 이를 의사가 거부할 수 있는 환경인지 되묻고 싶다. 또한 만약 이를 거부했다가 암이 발견돼 소송이 들어온다면 이를 보호해줄 장치는 있는가?
Q. 그렇다면 의사들이 수술할 필요가 없는 작은 암까지 일부러 수술을 권유하고 있다는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대한갑상선학회가 2010년 발간한 진단과 치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보면 이 주장이 잘못됐다는 것이 바로 드러난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직경이 0.5cm이하인 경우 림프절로 진행된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한 세포검사 자체를 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0.5cm 이하의 갑상선암은 암이 아닌데도 암처럼 보이는 위양성률이 높고 세포검사를 시행할 때 부적절한 검체 빈도가 높기 때문이다. 또한 작은 종양은 시간을 두고 관찰해도 성장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세계 각국의 논문이 있다.
Q. 하지만 의사연대 등은 1cm이하의 갑상선암은 수술할 필요가 없는데 의사들이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1cm이상의 갑상선암은 수술해야 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의사는 없다. 또한 0.5cm 미만은 굳이 수술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대부분 동의하는 부분이다.
문제는 종양 직경이 0.6cm에서 1cm사이의 갑상선암이다. 의사연대가 주장하는 것도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2008년 일본의 노구치 박사 등이 40여년간 갑상선암 환자를 추적 관찰한 결과를 보면 0.6cm에서 1cm사이의 갑상선암 환자는 재발률이 14%로 높고 암의 크기가 0.6cm 이상이면 측면 림프절 전이가 더 흔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미국 갑상선학회 치료 가이드라인을 봐도 이 크기의 갑상선암은 수술을 권유하고 있다.
Q. 특히 의사연대는 갑상선암의 5년 생존율이 거의 100%에 달하는 상황에서 굳이 건강검진에 초음파 검사를 넣어야 하는지를 지적한다.
의사연대 소속 의사들이 가정의학과나 예방의학과 등 갑상선암 진료를 해본적 없는 비 전문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무지한 발언이다.
여러 논문을 고찰해보면 갑상선암의 누적 사망률은 5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30년까지 지속적으로 늘어난다. 즉 생존율을 조사하고자 한다면 15년 이상의 관찰기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결국 이러한 해프닝은 갑상선암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다른 암의 잣대를 들이대서 나타난 잘못된 판단이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갑상선암은 당뇨와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당뇨병의 5년 생존율을 조사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Q. 또한 의사연대는 증상이 있거나 손으로 만져지는 갑상선암만 치료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한다. 암의 성장이 느리다면 그 때 수술해도 충분하지 않느냐는 지적인데.
이 또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무지의 소치다. 대부분 갑상선암은 증상이 없다. 결국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직경이 4.5cm이상으로 주위 장기를 압박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때쯤에는 이미 원격전이가 일어나거나 완치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단순히 조기진단이 많다는 이유로 환자의 병을 방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정부를 포함한 어느 누가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로 완치를 꿈꾸는 환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Q. 그렇다면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는 정부와 의사연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갑상선암 발생율 세계 1위라는 기록은 분명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뒤틀어진 의료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 모두가 이에 대한 깊은 반성이 필요한 것도 맞다.
과잉진단과 과잉치료는 절대적인 악행이므로 반드시 피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비 전문가들의 근거없는 주장으로 비합리적이고 획일적인 제재가 가해진다면 이는 더욱 나쁜 해악이다.(참고로 보건복지부는 최근 건강검진시 갑상선암 진단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환자가 자신의 건강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검사를 받겠다는 의지는 기본권이다. 이는 정부도, 의사도, 그 어떤 단체도 막을 수 없는 환자의 권리다.
치료 또한 마찬가지다. 암이 발견되면 지금까지 입증된 근거에 입각해 개인의 의학적 상태, 동반 질환 유무, 진행상태와 기대 여명 등을 고려해 전문가들이 치료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단순히 건강보험 재정이 많이 투입된다고, 또한 사회적 비용이 높다고 이를 막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치료는 순수한 의학적 판단과 근거에 의거해 진행돼야 하며 여기에 효율성, 경제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환자의 목숨을 두고 도박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