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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의원에 몰려오는 근로기준법 이름의 '먹구름'

손의식
발행날짜: 2014-04-08 06:13:08

9월부터 임신여성 단축근무 신청 허용…위반시 과태료 500만원

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제공:보건노조>
고용노동부는 임신한 여성 근로자의 1일 근무시간 2시간 단축 허용 등을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을 지난달 24일 공포했다.

이 때문에 당장 9월부터 간호인력 운용과 관련해 의료기관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높다.

개정된 법률을 살펴보면 제74조 제7항에 '사용자는 임신 후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에 있는 여성 근로자가 1일 2시간의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임신을 이유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더라도 임금을 삭감할 수 없다는 점도 명시했다.

개정 근로기준법은 '사용자는 제7항에 따른 근로시간 단축을 이유로 해당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해선 안 된다'고 규정했다.

사용자가 이를 어길 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벌칙도 새로 마련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개정된 법률은 임신 12주 이내의 경우 유산의 위험이 가장 크고 임신 36주 이후는 조산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해당 기간에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도입해 임신·출산 친화적인 근로환경 조성을 위해 마련됐다.

해당 법률은 상시 300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의 경우 공포 후 6개월이 지난 오는 9월 25일부터, 상시 300명 미만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는 공포 후 2년이 지난 2016년 3월 25일부터 시행된다.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 중 신설된 조항.
고용노동부 여성고용정책과 관계자는 메디칼타임즈와의 통화에서 "이 법률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동일하게 적용된다"며 "사업행태에 관계없이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노동법 전문가들은 국가에서 강제 적용하는 법률인 만큼 인력부족으로 인한 업무 공백 해소방안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무법인 '나라' 김기선 노무사는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국가에서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라 따르지 않을 수 없다"며 "부족한 인력에 따른 업무 공백은 시간제 근로자 고용 등의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의료기관 "지금도 인력부족에 시달리는데 법 시행되면 타격 커"

그러나 가뜩이나 간호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의료기관들은 해당 법률의 시행을 앞두고 한숨이 늘고 있다.

특히 의원급 의료기관은 법에 당장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간호인력의 수가 적다는 측면에서 종별 의료기관 중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의원협회 윤용선 회장은 "임신부의 권익을 증진하고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취지에는 동의한다"며 "그러나 인력난이 심각해 필수인력만으로 겨우 운영하는 의원급 의료기관에 개정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면 진료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임신한 간호사·간호조무사가 근무시간 단축을 신청할 경우 대체인력 수급이 쉽지 않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윤 회장은 "의료는 다른 업종과 특성상 대체인력이 많지 않다"며 "특히 진료과별로 근무가 숙달돼야 하는 경우가 많아 대체인력 없이 의료공백 상태에서 업무를 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의료기관들이 해당 법률로 인해 가임기 여성의 채용을 꺼리게 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윤 회장은 "해당 법률로 인해 피해를 본 의료기관이 발생할 경우 해당 의료기관은 앞으로 간호사나 간호조무사를 채용할 경우 가임 여부를 따지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숙련도·연속성 중요한 간호사 특성상 대체인력 투입 쉽지 않아"

당장 오는 9월부터 법이 적용되는 대형병원들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

병원협회 나춘균 대변인은 "임신한 여성 근로자의 복지적이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법률이지만 문제는 실효성이다"며 "잘나가는 기업들은 괜찮지만, 적자로 경영이 어려운 병원 중에서 이를 지킬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일반 기업과 다른 병원의 업무적 특성에 비쳐볼 때 해당 법률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곳은 병원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나 대변인은 "제조업의 경우 이틀 치 물량을 하루에 생산할 수도 있고 업무를 쉴 수도 있지만, 병원의 업무는 그렇지 않다"며 "해당 법률이 시행에 들어가면 병원계의 타격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업무의 숙련도 및 연속성 차원에서 대체인력 마련도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반 기업들과 달리 간호사에게는 업무의 숙련도와 연속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런 이유로 시간제 근로자 등의 대체인력 투입은 실효성이 낮아 대안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보건노조 "임신조차 순서 정하는 현실, 법 실효성 낮아"

의료기관 노동자들은 임신 여성을 보호하는 차원에서의 법률 마련은 높게 평가하면서도 법률은 안정적 시행을 위한 제도 기반이 미흡하다는 점을 한계로 지목했다.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나영명 정책실장은 "임신 여성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상당히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법률"이라며 "그러나 법을 시행하기 위한 대체인력이나 시스템이 미흡한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상당수 병원 여성 근로자들이 인력부족으로 임신조차 순번제로 하는 상황에서 해당 법률의 실효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보건노조가 지난해 3월부터 5월까지 2만2,233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중 18%가 임신순번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임신순번제 등의 이유로 원치 않는 피임을 하는 경우도 10%를 넘었다.

나영명 정책실장은 "지금도 육아휴직 등이 있지만, 인력이 없어서 신청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신청하면 죄인 취급마저 받고 있다"며 "병원 여성 근로자들이 임신조차 순서대로 하는 등 자유로운 출산이 허용 안 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모든 문제는 인력 충원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발생하는 현상"이라며 "개정 근로기준법 역시 그림 속의 떡과 같이 실효성이 낮을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