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민예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는 조선의 예술을 일컬어 '무기교의 기교'라고 칭했다. 계획적이지 않은 채 우연에 기대 자연미를 한껏 살린 기교야 말로, 무기교가 빚어낸 기교라는 역설이다.
그런 야나기 무네요시가 만일 경기도의사회 회장 선거에 출마한 한부현 후보를 봤다면 '무기교의 기교'를 실천하고 있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28일 한부현 후보(기호 1번, 경기도의사회 수석부회장)이 출마를 공식화 했다. 그것도 공약도 없이.
수원 라마다 호텔에서 만난 한 후보는 "이제 막 기호 추첨이 끝났고 1번 번호를 부여받았다"며 "어찌어찌 하다 보니 이렇게 경기도의사회장이라는 막중한 직책에 출마하게 됐지만 본인은 난세의 영웅도 아니고 회원 여러분과 크게 다를 것 없는 한 명의 의사일 뿐이다"고 운을 뗐다.
말은 "어찌어찌 하다 출마했다"는 겸사로 시작했지만 한 후보는 1999년 소아청소년과개원의사회 경기지회 총무로 시작해 수원시의사회 섭외이사·재무이사, 2000년 의약분업 투쟁 당시 수원시 의쟁투 재무이사 등을 두로 역임했다.
현재는 화성시의사회장직에 적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밑바닥에서부터 잔뼈가 굵어진 셈.
그는 "경기도의사회를 기계에 비유하자면 하나의 커다란 부품과 같다고 생각한다"며 "의협이 아무리 강력해 봤자 시도의사회가 무력하면 힘을 쓸 수 없고, 경기도의사회 역시 31개 시군구의사회의 협조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역시 '무공약의 공약'이다.
이번 선거에서 라이벌로 거론되는 현병기 후보만 해도 이미 ▲경기도의사회원들의 회원권익 보호 ▲이익단체로서의 역할 명확화 ▲중앙의협과 시군의사회와의 원활한 소통과 협조 ▲건설적 정책의 발굴과 실천이라는 네가지 공약을 내건 상태.
한부현 후보는 "내세울 만한 공약은 없고, 더 급한 일이 항상 터지는 마당에 공약에 얽매이기도 싫다"며 "상황에 맞춰 우선순위를 두고 일하는 것이 공약이라는 공약이다"고 밝혔다.
그는 "작년에는 원격의료 폭탄이 날라왔고 아직 불발탄에 그쳤지만 언제 또 터질지 모르겠다"며 "올해는 규제 기요틴이라는 폭탄까지 정부가 심심하면 하나씩 날리는 폭탄들에 조용하고 실속있게 대처하는 것이 희망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료계가 매번 내놓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성명서는 이제 정말 지겹다"며 "회무의 연속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 출마를 결심한 만큼 지난 회장들의 공약 사항에 끝까지 매진해 하나라도 건져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공약이 없다고는 했지만 역설적으로 매번 회장들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그치는 경우를 미연에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한부현 후보는 "조인성 경기도의사회장이 입법발의를 추진한 의료행위방해방지법안이나 사무국 안정화 방안, 회관 부지 관련 소송 등 마무리 되지 않은 일들에 매듭을 지을 생각이다"며 "얼마나 일하느냐 보다 어떻게 일하느냐가 중요한 시기에 허황된 공약으로 회원들을 기만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과 가정을 가다듬은 후에야 나라와 천하를 경영할 수 있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기본 철학으로 무공약을 내걸었다"며 "수신제가를 위해 의사의 권익증진에 관한 일 등을 포함한 경기도의사회 회칙 이행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