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에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과가 편향적으로 한의사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의료계에서는 한의약정책과가 내린 '친 한의사적'인 유권해석을 무시해야 한다는 다소 과격한 발언도 대응책의 일환으로 제시됐다.
5일 대한의사협회(회장 추무진)는 회관 3층에서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제42차 의료정책포럼을 개최했다.
먼저 박광재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위원은 기존 판례와 유권 해석을 중심으로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박 위원은 "복지부의 한의약정책과는 기존의 판례와 유권해석도 무시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전적으로 한의사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도 모자라 복지부 내에서도 상반된 유권해석이 나오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2011년 한의약정책과는 혈액검사가 한의사의 영역인지 여부에 대해 유권해석을 내렸다"며 "한의약정책과는 '한의사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의학적 검사를 양방 의료기관에 의뢰하고 그 결과를 한방치료에 참고, 활용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는 "한의약정책과는 한의사의 혈액의 위탁검사가 불법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동일 시기 보건의료정책과의 답변은 달랐다"며 "보건의료정책과는 '한의학적 근거가 아닌 검사는 환자를 의뢰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한의약정책과는 한의사가 혈액검사를 위탁할 수 있다고 본 반면, 보건의료정책과는 혈액검사 위탁 대신 환자를 직접 양방 의료기관에 의뢰해야 한다고 상반된 해석을 내놓았다는 설명이다.
박광재 위원은 "2015년 1월 한의약정책과는 아예 한의사의 혈액검사기 사용을 인정하는 유권해석을 내렸다"며 "이를 보면 '혈액검사기는 채혈을 통해 검사결과가 자동적으로 수치화돼 출추되기 때문에 한의사의 혈액검사기 사용은 가능하다고 판단된다'고 해석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는 "한의약정책과가 내린 유권해석이 과연 혈액검사의 전문가 단체인 진단검사학회나 내과학회 등의 자문을 거쳤는지 모르겠다"며 "과거에 복지부가 한의원의 혈액검사는 불법이라 했던 유권해석을 무시한 근거 역시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채혈이 한방의료행위인지, 혈액검사의 범위는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도 애매하다"며 "심지어 한의약정책과는 한의원의 간호조무사 단독 물리치료는 위법이 아니라는 유권해석까지 내놓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아예 한의약정책과의 유권해석을 무시하라는 다소 과격한 발언도 나왔다.
이평수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한의약정책과는 의료계와 한의계 등 이해 당사자의 이해를 조정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며 "면허 내 의료행위 범위와 관련된 유권해석은 면허를 담당하는 부서가 해야지 한의약정책과가 나서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차라리 의협 자체에서 한의약정책과 유권해석을 거부해야 한다"며 "이런 유권해석을 인용해 법원이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한 판결을 내린 건 굉장히 황당한 일이다"고 꼬집었다.
그는 "재판관들이 의학전문가들이 아닌데 면허 범위와 같은 전문적인 영역을 의뢰하기 때문에 납득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며 "지금껏 '한의사니까 안 된다'는 식의 감성적, 형식적 대응 대신 이성적,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토론 패널로 나선 임민식 대한개원의협의회 의무이사는 "지금 의료계의 대처 방안이 어떤 의료기기는 허용되고 안 되고 하는 미시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것 같다"며 "의학이 무엇이고 한의학이 무엇인지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거시적인 대응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의사의 권리는 천부인권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와 국민이 허용하는 범위로 결정된다"며 "이 사회에서 의권이 왜 존중돼야 하는지 사회, 국민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