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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동안 떼인 진찰료 1조원 "차등수가 폐지 분수령"

이창진
발행날짜: 2015-04-13 12:00:17

복지부, 진료시간과 적정수가 동시 추진…의협 "제도 폐지 우선"

[초점]복지부 차등수가제 폐지 논의 착수

시행 14년 만에 차등수가제 폐지 논의를 놓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장관 문형표)는 최근 의약단체 간담회를 열고 차등수가제 폐지를 대안으로 다양한 방안을 논의했다.

◆제도 취지와 문제점:차등수가제는 의사 1인당 1일 평균 진찰횟수 75건을 기준으로 진찰료(조제료)를 차등 지급하는 제도로 의원급(약국)을 대상으로 2001년 7월 시행됐다.

적정진료를 유도하고 특정 의료기관에 환자 집중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진찰료가 ▲75건 이하 100% ▲76~100건 90% ▲101~150건 75% ▲150건 초과 50% 등으로 조정(삭감)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환자 수가 많다는 이유로 진찰료를 삭감하는 모순적인 제도를 14년 동안 지속했다.

쉽게 말해, 소문난 맛집 A 식당에서 하루 손님이 75명을 넘으면 지자체(정부)에서 음식값 일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세금으로 떼어간다는 의미다.

의원급 한해 평균 600억~700억원 차등수가제 조정액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제도 시행 14년을 합치면 약 1조원 상당의 진찰료를 삭감당한 셈이다.

그동안 최대 피해자인 이비인후과를 비롯해 내과와 소아청소년과, 정형외과 등 보험과 위주 진료과는 수 년 전부터 제도 폐지를 주창했으며, 국회도 국정감사를 통해 차등수가제 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그 때마다 복지부는 개선 필요성은 공감하나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며 사실상 제도 유지 입장을 고수했다.

◆제도 폐지 대안 적정진료 시간:복지부는 차등수가제 폐지를 전제로 의원과 병원 등 모든 의료기관별 의사 진료시간 공개를 제안했다.

진료 의사 1인당 진료시간 또는 환자 수 정보를 공개해 국민 편의와 의료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박윤옥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차등수가제를 일차의료 발전을 저해하는 적폐로 규정하고 폐지를 강도높게 주장했다.
심사평가원 홈페이지를 이용한 요양기관 의사별 일일 환자 수 공개로 병의원 쏠림 현상을 표시해 소비자 스스로 내원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미이다.

복지부가 갑자기 의사 진료시간 공개를 제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수가를 관장하는 보험정책국의 최근 움직임을 돌아보면 이미 예고된 사안이다.

보험급여과 손영래 과장은 지난해 3월 전문기자협의회와 간담회에서 "일 외래환자 75명인 차등수가 기준은 너무 획일적이다"라면서 "중증도별 환자 특성을 감안해 오랜 상담이 필요한 질환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의사협회와 복지부는 의정 합의를 통해 차등수가제를 포함한 의료제도 및 수가 개선방안 등에 진일보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주무과장인 보험정책과 이창준 과장의 발언도 궤를 함께 한다.

이창준 과장은 지난해 12월 전문기자협의회와 만나 "의정 직능발전협의체를 재가동해 소아청소년과와 이비인후과 등 일차의료 수가적정화를 위한 시범사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과장은 "수가만으로 의원급 운영이 가능하도록 진찰료 중심 진료과를 중심으로 시범사업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적정수가 문제는 이견이 존재하므로 가급적 비급여 비중을 줄이고 건강보험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등수가제 폐지와 일차의료 적정수가 방안을 한 세트로 추진하겠다는 전략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적정수가 추진방안 중 핵심은 의사 적정 진료시간이다.

모든 수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가입자단체의 동의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차등수가제 폐지든, 진찰료 인상이든 구체적이고 합당한 실천방안이 뒤따라야 한다.

복지부는 차등수가제 폐지와 적정수가 방안을 한 세트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과 수가 실무 책임자인 보험정책과 이창준 과장(좌)과 보험급여과 손영래 과장(우).
결국, 개원가 숙원사업인 차등수가제 폐지와 진찰료 인상을 동시에 해결하면서 의사 진료시간 공개로 소비자 알권리와 만족도를 높이는 '일석이조' 효과가 가미된 묘수이다.

물론 복지부가 이 같은 전략을 세운 이면에는 국민들의 의료기관 이용 둔화에 따른 수 조원대의 건강보험 흑자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내재되어 있다.

◆쟁점과 향후 과제:의료계는 차등수가제 폐지 소식이 알려지자 내심 환영하면서도 공식적인 입장은 자제하고 있다.

제도 폐지에 대한 복지부 방침이 불명확하고, 개원가 내부에서 우려 목소리도 개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장관 결재라는 공식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점을 들며 차등수가제 폐지와 의사 진료시간 공개 맞교환 카드에 대한 의료계와 시민단체 등 여론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개원가 일각에서는 차등수가제 폐지에 동의하나 진료 시간 공개가 자칫 진찰료 삭감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체 의원급 중 차등수가제 대상인 15% 의원(의사 1인당 일일 환자 75명 이상) 문제 해결을 위해 나머지 85% 의원이 진료시간에 따른 진찰료 차등제 빌미를 제공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복지부는 기우에 불과하다며 일축했다.

보험급여과 관계자는 "진료시간에 따른 진찰료 감산(삭감) 방안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초진과 재진 적정 진료시간 보상 차원에서 현행 진찰료에 수가 가산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미국도 10분, 20분 등 진료 시간별 진찰료를 구분해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차등수가제 폐지와 적정 수가를 위해서는 건강보험 투입이 필수적이다"며 "동네의원을 찾는 환자를 설득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 질 제고 차원에서 합당한 적정 진료시간 마련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의사협회는 차등수가제 폐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가 문제는 건정심 의결이 필요한 만큼 공급자와 더불어 가입자 동의가 필수적이다. 서울에서 열린 건정심 회의 모습.
한 임원은 "복지부가 심평원 청구심사 자료를 통해 의원급 환자 수(진료 시간)를 이미 파악하고 있다. 진료시간 공개 제안은 대형병원 쏠림 현상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젊은 의사들은 차등수가제 유지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고, 기성 의사들은 폐지 입장을 보이고 있다"면서 "차등수가제 폐지는 14년 동안 정부에게 떼인 돈을 차단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논의에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오는 23일 전후 의약단체와 2차 간담회에 이어 가입자단체 확대 간담회 그리고 건정심 안건 상정 등 연내 차등수가제 폐지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분위기는 의료계에 우려하다. 문제는 가입자단체 주장에 따른 복지부 입장 변경 등 변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의료계 내부의 중지와 더불어 환자 입장을 반영한 구체적 실천방안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차등수가제 폐지와 적정수가 기회가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