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리베이트 쌍벌제 이전의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들을 적발해 행정처분하는 근거로 쓰고 있는 범죄일람표. 메디칼타임즈는 리베이트 행정처분 대상이 된 한 의사의 고백을 통해 범죄일람표의 허점을 짚고, 복지부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대해 살펴봤다.
<상> 면허정지 예고장 받은 의사의 고백
<하> 예고장만 보내고 처분은 깜깜무소식 복지부
"하…."
부산에서 내과의원을 하고 있는 40대의 K원장은 지난 3월 보건복지부로부터 한 통의 공문을 받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한숨을 자아낸 공문은 C제약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아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켰다'는 명목으로 의사면허 정지 처분을 내릴 것이라는 예고를 담고 있었다.
K원장이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시점은 4년도 더 지난 이야기였고, 리베이트 쌍벌제가 시행되기도 전이었다.
K원장이 황당함을 호소하는 부분은 복지부가 면허정지 처분 근거로 삼은 것이 검찰 측에서 넘긴 '범죄일람표'였다. 범죄일람표는 제약사가 만든 리베이트 장부를 지칭하는 말이다.
"수사 기관처럼 불러서 조사를 한다는 등의 사전 절차 하나 없이 면허정지 처분 예고를 했습니다. 의사를 한 지 20여 년이 훌쩍 지났는데 가장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의사가 된 것이 치욕스럽습니다."
복지부는 리베이트 쌍벌제가 시행되기 전 리베이트 수수행위에 대해선 금액에 따라서 행정처분 강도에 차이를 두고 있다. 면허정지 처분을 받는 최소한의 리베이트 금액은 300만원이다. 복지부는 검찰로부터 받은 범죄일람표를 근거로 올해 초부터 면허정지 행정처분 예고 통지를 하고 있다.
K원장은 범죄일람표만으로 리베이트 금액을 단정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범죄일람표를) 100% 인정할 수 없습니다. 4년이나 지난 상황에서 기억도 나지 않는데다 모르는 금액도 섞여 있었습니다. 아무런 조사를 받지도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면허정지한다는 통지가 왔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일례를 들어서 설명했다.
"리베이트 쌍벌제가 시행되기 전에는 의사들이 (리베이트를) 안 받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관행적으로 영업사원들이 거래처 의원 원장의 이름을 회사에다 말하고 일방적으로 판촉비를 타왔습니다. 그러면 회사에 그 원장 이름이 들어가게 되죠. 결국 의사들은 받지도 않았는데 어처구니 없는 희생자기 되는 것입니다."
의사 단체들의 소극적인 대응에 대해서도 아쉬운 마음을 털어놨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서울시의사회 등은 실제로 행정처분을 받는 회원이 나오면 대규모 소송으로 맞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충청남도의사회는 복지부와 제약의사회를 상대로 무고죄 소송을 벌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법적 대응'에 적극 나서고 있는 의사단체는 없다.
실제로 면허정지 처분을 받은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현재 면허정지 처분 예고 통지서만 보냈고, 면허를 정지하고 싶은 기간을 의사 쪽에서 정하도록 했다.
"복지부는 대규모 처분을 내리면 시끄러워 질 것을 감안해 의사 개개인에게 사정을 봐주는 것 같은 공문을 보내고 있습니다. 개인이 아닌 단체가 됐을 때 힘을 발휘할 수 있는데 의사단체들이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갑갑하기만 합니다."
K원장은 갑갑함 속에서도 한낱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20여개 제약사와 연관된 수천여명의 의사가 행정처분을 받을 위기에 있습니다. 의협이 나서서 정치적인 관점으로 접근해 행정심판, 행정소송 등에 힘을 써야 합니다. 혹시라도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