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앞에 섰다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우린 지금 환자의 생명 앞에 서있다. 긴장하지 않을 의료진이 누가 있겠나."
수원의료원 안주희 내과 과장은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한마디 한마디 힘주어 말했다.
지난 22일, 메르스 격리거점병원으로 메르스와 전쟁 중인 수원의료원 메르스 전담팀을 만났다.
현재 수원의료원에 격리된 환자는 13명. 이중 양성이 8명, 의심환자가 5명이다. 지난 21일 치료를 마치고 29명이 대거 퇴원하면서 환자가 많이 줄어든 것도 잠시 이날 와상환자가 5명 추가로 들어왔다.
일각에선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전시 상황이다.
"악조건 속 기질 발휘…신종 감염병 시스템 갖춰"
수원의료원은 메르스 확진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한 직후부터 격리병원을 운영할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난 1일, 메르스 환자 지정 병원으로 전환했다.
8개에 불과하던 음압병동은 별도의 읍압장비를 갖춰 총 39개 병동으로 늘렸다. 행정직원들은 새벽 6시에 출근해 밤 11시까지 근무하며 음압병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챙겼다.
간호사들은 모든 감염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병실 내 청소까지 도맡았다. 의료진 이외 청소 직원이 감염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상황에서 진가를 발휘하듯이 수원의료원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신종감염병에 대한 나름의 시스템을 하나둘씩 구축해나갔다.
"의료진도 말초적인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외부 자문을 통해 의료진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검증하고 안전성을 확인하면서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했다."
안 과장은 의료진들의 감염에 대한 공포를 없애는 것도 시스템이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병실 내 쓰레기통은 어떻게 치워야 하는지, 방역복은 어떻게 벗어야 하는지, 근무가 끝난 후 샤워는 어떻게 어떤 세정제를 써야하는 지 등 모든 행동에 대해 체크했다.
간호사들은 방역복을 입고 10분만 있어도 고글에 김이 서리고 땀이 흘러 눈을 뜰 수 없는 일이 반복되자 내시경할 때 사용하는 코팅젤을 발라 고글에 김을 없애는 노하우도 생겼다.
"일상 속에서도 긴장감…업무의 고단함 느낄 틈이 없다"
수원의료원이 격리병원 운영에 돌입한 지 3주가 훌쩍 지났다.
육체적으로 지칠 법도 하지만 격리병동에 박태경 수간호사는 피로감을 느낄 새가 없다.
"나 뿐만 아니라 모두들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어서 그런지 힘든 것도 못 느끼고 지낸다. 메르스 사태가 완전히 종식되면 다들 방전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전시상황이다.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메르스와의 전쟁에서 이겨야만 하기 때문에 간호사들은 밥맛이 없어도 억지로 배를 채우며 체력을 보강하고 있다.
"소심하고 겁이 많았던 간호사도 환자 앞에선 용기를 갖게 되는 것 같다. 눈앞에 환자가 있는데 어떻게 그냥 둘 수 있으며, 어떻게 방역복을 입지 않을 수 있겠나."
하지만 박태경 수간호사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스스로 사회에서 철저히 격리하다보니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말에 모든 사회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게 생각보다 힘들다. 혹시라도 감염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사회와 격리하는 것이다. 자녀와 나들이나 극장은 생각도 못한다. 생필품 사러 잠시 마트에 가는 게 전부다. 물론 이때도 마스크를 착용한다."
그는 자신 뿐만 아니라 상당수 의료진이 병원과 집을 오가는 것 이외에 모든 사회적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고 했다.
"자녀 외면에 울고, 인식 바뀐 지역사회 응원에 또 울고"
"우리 병원에 근무한 간호사 중에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눈물 한번 안 흘린 직원은 없다."
신현덕 간호사 또한 중학교, 초등학교 자녀를 둔 엄마로서 씁쓸한 경험을 피할 수 없었다.
어느날 학교에 다녀온 막내가 반 친구들이 2m근처로는 다가오지 않는다며 울고불며 우는 것을 달래며 함께 눈물을 훔쳤다.
"엄마는 전쟁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라고 얘기해봤지만 그의 말을 이해하기엔 아이는 너무 어렸다.
"자녀가 어린 간호사들은 기숙사에서 자체 격리를 한다. 감염을 막기 위한 것 보다는 다른 학부모들에게 떨어져 지낸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퇴근 후 한 간호사가 아이와 전화통을 붙잡고 울기 시작하면 눈물바다가 되곤 한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요즘은 지역주민들의 변화에 감동해 눈물을 흘린다.
의료진들이 위험을 무릎쓰고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수원의료원 앞에는 '감사한다' '응원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간혹 김밥도 싸다주고 쿠키도 만들어 가져온다. 수고한다며 응원하고 있다고. 의료진으로써 가슴이 벅차다."
안주희 내과 과장은 오늘도 자신과 동료들을 추스린다.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는 데 용기와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혹여라도 부정적인 여론에 휘둘려 의료진들의 사기가 꺾이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