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산업의 진흥과 글로벌 진출을 위해 정부의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가운데 예산 지원보다는 신약의 혁신적 가치를 인정하고 제약산업이 클 수 있는 법적 근거와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보령제약 최성준 전무는 지난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0 제약강국 도약의 성장엔진 점검 - 제약산업 육성정책, 미래를 향한 대화' 세미나에서 국내 제약산업의 현 주소와 발전을 위한 의견을 피력했다.
최성준 전무는 "국내 제약업계에서 2015년 10월 현재까지 30년간 26개의 신약을 허가받았으나 글로벌 블록버스터라고 간주되는 매년 10억불의 매출을 달성한 신약은 하나도 없는 실정"이라며 "이는 국내 제약업계가 태생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갖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현상이 정부가 국산 신약에 대한 혁신적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봤다.
최 전무는 "보령제약은 카나브라는, 전 세계에서 9번째로 고혈압약 만들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앞에 있던 7개의 약에 대한 특허가 끝나서 호기를 맞았었다"며 "그런데도 상황은 굉장히 어렵다. 경쟁제품은 상당히 비싸지만 우리나라에선 첫 치료용량인 카나브 600mg의 약가를 670원 밖에 주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최 전문에 따르면 가격이 낮다보니 카나브에 관심을 가졌던 국가들도 눈길을 돌리는 상황이다.
그는 "낮은 가격 때문에 터키 등 일부 국가는 지금 가격으론 수입해서 팔지 못한다며 계약을 하지 못한 사례가 있다"며 "집에서도 인정 못받는 자식이 밖에 나가서 인정을 받을 수 있겠는가. 내 집에서 때려서 키운 자식이 밖에 나가서 기를 펴고 살겠는가. 농담처럼 말하지만 실제로 상황이 그렇다"고 하소연했다.
국내의 약가 인하로 인해 해외시장에서도 약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도 밝혔다.
최 전문는 "국내에선 약가연동제 등 여러 기제가 있기 때문에 약가가 계속 떨어지는데 해외에서도 국내 약가가 반영이 된다"며 "국내에서 법이 바뀌고 상황이 바뀌면 다른 나라에선 금새 우리나라의 상황을 다 안다. 한국에서 약가 떨어지면 자신들도 약가를 낮추려는 상황이 계속 생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약산업에 대한 정부의 투자보다는 제약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최 전문는 "많은 이들이 정부가 제약산업에 더 투자해야 한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반대의견을 내고 싶다"며 "정부에서는 룰만 만들어주고 법규만 만들어주고 공정하게 봐주기만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축구로 비교하면 경기장을 지어주고 선을 그어주고 심판만 봐주면 된다"며 "정부가 골을 넣거나 선수를 뽑아줄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R&D 예산으로는 지원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밝혔다.
그는 "정부는 제약산업에 지원하겠다고 하는데 화이자만 해도 R&D에 100조원을 투자한다"며 "우리나라 전체 정부 예산이 얼마인가. 그걸 줄 순 없다"고 말했다.
이어 "차라리 예산을 주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며 "다만 금융기관이나 펀드나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유롭게 우리나라 신약 파이프라인에 투자할 수 있도록 환경만 만들어주면 잘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의 예산 지원이 자칫 안일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최성준 전무는 "연구비를 주면 바이오든 학계든 제약회사든 안주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며 "배가 고파야 나가서 먹을 찾을텐데 연구비를 주면 뭣하러 나가서 돈을 끌어오고 투자자를 찾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보건의료 혜택을 확대하는 것과 제약산업을 진흥하는 것을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도 개진했다.
최 전문는 "보건의료를 비용으로만 생각하는 관점이 있다"며 "사람들을 오래 건강하게 살게하고 일을 하고 살게 하면 그 사람들이 경제활동을 해서 돈을 벌어들이는 효과가 크다. 비용을 아껴서 환자들이 골골대면서 오래만 살고 활동을 못하는 것에 비용 대비 효과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이어 "비용을 줄이려고 약가, 재료비 등 다 깎아버리면 발전이 없다"며 "우리나라는 의외로 후진적 구조를 여럿 가지고 있다. 거기에 대한 개선 없이 기술만 앞서갔기 때문에 환경 조성이 안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약품의 혁신적 가치에 대한 정부의 인정도 요구했다.
최 전무는 "혁신적 신약의 가치를 인정하는 약가 산정 및 보험급여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정부의 직접적인 R&D 투자보다 제약기업의 동인을 이끌어내는 것에 더 좋은 유인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국민들은 좋은 진료를 원하지 싼 걸 원하지 않는다. 가격이 더 나와도 좋은 진료를 받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가격을 지불하지 못할 상황에 있는 이들은 국가가 보호해야 겠지만 가격을 본인이 지불할 수 있을 때는 좀 놔뒀으면 좋겠다"며 "정부는 신약개발을 위한 인적 자원의 확보에 필요한 법적 지원을 완비하고 신약의 허가와 관련된 지식, 경험 및 전문성을 축적해 제약산업이 신약개발을 통해 지식산업으로서의 가치를 배가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