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빼고 흉터 치료하는 레이저 기기를 한의사들이 통증 완화 목적으로 쓰려고 한다. 심지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납득하기 힘든 과정을 거쳐 이를 허가해줬다."
대한피부과학회와 의사회가 사마귀 등 조직 파괴 목적으로 쓰는 레이저 기기를 통증 치료하는 데 사용하려는 한의사들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진상 파악에 나섰다.
피부과의사회 임이석 회장은 1일 서울 그랜드힐튼에서 제18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지난 5월 식약처가 탄산가스 레이저 기기를 통증 완화에 쓸 수 있다고 허가한다는 것을 최근 인지했다"며 "국민 건강을 손상시키는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허가 과정을 파악한 후 적극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식약처는 지난 5월 탄산가스레이저수술기(제품명 COSCAN III)를 허가했다. 이 기기는 조직의 절개, 파괴, 제거 및 통증 완화를 목적으로, 탄산가스를 매질(medium)로 이용한다.
피부과의사회에 따르면 해당 기기는 한방레이저의학회와 H제약이 공동 개발한 것으로 '하니 매화 레이저'로 광고되고 있다. 한방레이저의학회와 H제약은 식약처 허가 이후 한의사를 위한 CO2 프락셀 레이저라고 홍보하며 실전강좌 등을 마련해 제품 교육까지 하고 있다.
홍보물에는 "하니매화레이저는 매화침의 원리를 현대화해 한의사를 위한 CO2 프락셀 레이저로 맞춤 설계됐다"며 "통증치료는 물론 다양한 효능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 나와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허창훈 교수는 "피부과학회는 이미 지난해 7월 매화 레이저 광고를 인지하고 식약처에 품목허가 진행사항에 대해 질의했다"며 "이 때만 해도 식약처는 허가가 진행된 바가 없으며 허가할 때 피부과의 의견을 참고하겠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식약처가 답을 내놓은지 불과 몇 개월 만에 사용목적에 통증 완화를 추가한 탄산가스 레이저 수술기를 허가했다"며 "피부과학회나 의사회에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식약처는 이 기기가 수술기에 조사 기능을 추가한 조합기라고 설명했다"며 "출력을 조절해 고출력으로 수술을, 저출력으로 조사를 할 수 있는 조합기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부과 의사들은 식약처의 허가 과정을 납득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레이저 기기 목적에 '통증 완화'를 추가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허 교수는 "매질 탄산가스가 통증 완화에 효과 있다는 것은 치과 쪽에 염증을 줄여준다는 내용의 논문 1~2개 정도만 찾았다"며 "근거가 없는 데 단순히 서류 심사만으로 허가를 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식약처도 해당 기기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라고 했지만 사실 다른 나라에서도 본 적 없다"며 "신기술이라면 레이저 수술기가 통증 완화에 효과가 있다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데이터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증 완화가 목적이라면 굳이 수술기와 조사기를 합한 조합기 형태로 만들 필요가 없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허 교수는 "통증 완화는 조사기만으로 충분하다"며 "수술기에 조사기를 붙였다는 자체가 수술기도 이용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피부과의사회 이근수 재무이사도 "수술기로 사마귀 등 병변 부위를 절개하고 아물도록 하니까 통증 완화가 생기는 것이지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통증 완화만 내세우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피부과학회와 의사회는 식약처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한 후 허가 취소를 추진할 예정이다.
허 교수는 "등급이 낮으면 서류 심사만으로 품목허가를 내는 경우가 있는데 식약처는 어느 정도로 생각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며 "사실 관계 파악 후 공식적으로 허가 취소, 변경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