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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외과 호스피탈리스트로 산다는 것은

발행날짜: 2015-11-23 05:15:49

서용준 진료교수 "보람 크지만 불안한 미래에 인생 걸 수 없어"


"선생님, 제 남편이 수술받은 부위가 불편하다는데 한번 봐주시겠어요?"
"선생님, 환자 상태가 갑자기 안좋습니다. 지금 봐주셔야겠습니다."

서울대병원 외과 병동에는 '만능해결사'로 통하는 의사가 있다. 환자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환자 보호자는 물론 간호사가 그를 찾는다.

그 주인공은 올해 초부터 서울대병원 외과 호스피탈리스트로 근무 중인 서용준 진료교수(39세). 서울대병원은 호스피탈리스트에게 진료교수 직함을 부여했다.

앞서 서울대병원 서경석 외과 과장이 부족한 외과 전공의 인력을 대신해 병동을 전담해줄 의료진으로 외과 호스피탈리스트 제도를 도입했을 당시 채용한 3명 중 한명이다. 그나마 3명 중 한명이 그만두면서 2명 중 한명이 됐다.

서울대병원 외과 호스피탈리스트 서용준 진료교수
그의 역할은 낮시간대 외과 병동 환자를 전담하고 의대생 및 전공의 교육의 일부를 맡는 것.

외과의사가 병동에만 있으면 답답하지 않느냐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 그는 "의사가 되길 선택했을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수술받은 환자는 내과계 환자와는 전혀 다르다. 교육을 통해 간단한 프로시저(procedure)를 할 수 있겠지만 외과 병동에선 생각보다 다양한 변수가 자주 발생한다"며 외과 호스피탈리스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병동을 지키며 수시로 외래 수술장에서 간단한 수술을 집도, 환자 관리를 강화한 결과 조기 퇴원하는 사례가 늘었다.

호스피탈리스트 투입한 병동 "환자도 간호사도 대만족"

그의 하루는 새벽부터 시작된다. 오전 5시 기상해서 병원에 도착하면 오전 6시 30분, 오전 중에는 병동 내 환자 상태를 파악하고 교수와 회진을 함께 돌며 환자 치료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상의하기도 한다.

이후 담당 교수가 외래를 보는 동안 낮 병동은 서 교수의 책임이다.

환자에게 수술 동의서를 받는 것부터 환자의 간단한 프로시저, 집도까지 모두 그의 몫. 일부는 레지던트나 간호사에게 맡길 수도 있지만 그는 병동 전담 주치의의 손을 거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인터뷰 당일에도 어제 수술 받은 환자의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지자 병원 1층에 별도로 마련해준 외래 수술장에서 상처를 봉합하는 등 문제를 해결했다.

특히 합병증이 발생한 수술 환자 등 리스크가 큰 환자는 그가 전담한다. 하루종일 병동을 지키고 있으니 수시로 환자 상태를 체크할 수 있어 문제가 커지기 전에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병동 만능해결사로 나선 이후 병동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서용준 진료교수
지금까지는 환자가 병동 간호사에게 불편함을 얘기하면 이를 전공의에게 전달하면 전공의가 와서 확인하고 만약 전공의가 처리할 수 없으면 다시 교수에게 전달해 처리해왔다.

상당수 대학병원 병동의 분위기를 살펴보면, 교수는 외래 및 연구일정으로 바쁘다보니 병동은 전공의 몫이다. 또 전공의들도 응급실과 병동을 오가며 환자를 살피다보니 병동 환자는 방치되기 십상이다.

서울대병원 외과 병동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병동에 중심을 잡아주는 전담 의사가 생기면서 변화가 나타났다.

지금은 환자가 간호사를 거칠 필요도 없이 바로 서 교수를 찾는다. 누구보다 간호사들이 좋아한다. 서 교수에게 말하면 신속하고 깔끔하게 문제를 해결해 주니 굳이 전공의를 찾을 필요가 없다.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점점 더 삭막해지는 의사-환자간의 보이지 않는 벽은 다른 나라 얘기다.

어떤 환자는 퇴원하며 서 교수의 손을 잡고 '생명의 은인'이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어떤 환자는 직접 재배한 과일을 가져오기도 한다.

서 교수는 "얼마 전 서울대병원을 퇴직한 원로 교수가 제 손을 잡고 저를 주치의로 만나서 행운이라고 말하는데 가슴이 뭉클해졌다"며 외과 의사를 하기로 결심했던 그 순간이 떠올렸다.

"아무리 열심히해도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답답"

외과 호스피탈리스트로 근무한 지 10개월,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 보람을 느끼며 일했지만 내년 2월을 끝으로 그만둘 계획이다.

서 교수에게 호스피탈리스트로서의 역할은 외과 의사 초심으로 돌아가게 해줬지만, 그의 의사 인생을 걸기엔 불안했다.

서울대병원 호스피탈리스트 연봉은 8천만~9천만원선. 시범사업에 동참 중인 충북대병원 호스피탈리스트의 연봉이 1억원을 훌쩍 넘는 것을 감안하면 그보다 낮은 수준이다.

또한 제도적으로 정립이 안돼 있어 신분이 불안한 상태다. 서 교수는 자신의 상황을 "도로변에 '무엇이든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적힌 가판대 하나 차려놓고 있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자리는 외과 병동 내 간호스테이션 한켠에 놓인 책상 하나. 커피한잔 하며 쉴 공간도 잠시 책을 볼 공간도 이메일을 확인하는 공간도 모두 이 책상에서 해결한다.

외과 병동 내 간호 스테이션 내에 있는 서 교수의 책상. 옆에는 간호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인터뷰는 간호사실 내에 사물함 및 집기 보관장소에서 진행했다. 그의 자리가 워낙 열린 공간이다보니 수시로 환자들이 찾아와 질문을 하기 때문에 조용한 곳을 찾은 것이다.

이것이 지금 호스피탈리스트의 현실이다.

서 교수는 이 제도가 지속되려면 반드시 별도의 공간, PA 등 보조인력, 직업으로서의 안정성 등 3가지는 개선돼야한다고 했다.

연구실까지는 아니더라도 독립된 공간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 그는 이와 더불어 PA 등 보조인력을 투입하면 의료진이 보다 전문적인 부분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그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호스피탈리스트에 관심을 보이는 후배들이 있다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제도적 뒷받침을 통해 그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평생해도 조교수에서 끝난다면 도전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호스피탈리트로서 교수로서 명예롭게 정년퇴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