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심장판막치환술을 받고 항응고제 와파린을 복용해 오던 환자 김 모 씨는 제주도 J대학병원의 처방전을 들고 근처 A약국으로 갔다.
약사가 건넨 약을 복용하던 김 씨는 약국을 다녀온 지 20일이 지나 의식을 잃고 쓰러져 J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왔다. 김 씨는 갑자기 말이 어눌해졌고 좌측 편마비 등의 증상을 호소했다.
뇌 MRI 결과 급성 우측 중대뇌동맥 경색 진단을 받았다.
20일 사이, 김 씨에게는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알고 보니 A약국의 김 약사가 조제한 약 때문이었다. 김 약사는 병원 처방전과 달리 와파린 2mg 1tab만 조제해 투약 지시를 했다.
제주지방법원 제2민사부(재판장 유석동)는 환자 김 씨가 약사 김 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김 약사가 환자 김 씨와 그의 가족에게 줘야 할 손해배상금은 1억9174만원이다. 법원은 약사의 책임을 60%로 제한했다.
J대학병원 측은 평소 하루 6mg의 와파린을 복용하던 김 씨의 PT(INR) 수치(혈액응고수치)가 3.41로 측정돼 처방을 5mg으로 바꿨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적은 수치의 약을 복용하다 뇌경색까지 생긴 것이다. 응급실로 실려온 김 씨의 PT(INR) 수치는 1.18로 측정됐다.
법원은 강동성심병원 신체감정촉탁결과 등을 인용해 김 약사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약사는 처방전과 다른 약을 조제했을 뿐만 아니라 조제 기록 과정, 약제 용기 또는 포장에 용량 등을 기재하는 과정에서 처방전과 다른 조제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중과실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처방 받은 약에는 와파린 말고 다른 약도 있어 환자가 어느 알약이 와파린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어렵다"며 "담당 의사는 혈액응고수치에 따라 와파린 용량을 조절해 왔는데 기존 처방약과 알약 숫자도 달라 비교도 불가능했다"고 판시했다.
약사의 책임을 제한한 이유에 대해서는 "환자가 처방전대로 약을 복용했다고 하더라도 뇌경색 위험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법원은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