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의료기관이 환자의 진료비 내역 등을 정리해 직접 실손보험을 청구하는 방안이 확정되자 대학병원들이 한숨을 내쉬고 있다.
건강보험 급여비용 청구만으로도 인력이 부족한데 환자 개인의 선택으로 들어놓은 보험 업무까지 도맡아야 하느냐는 하소연이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의료기관이 직접 환자의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도록 하는 '실손의료보험금 청구절차 간소화 방안'을 추진키로 결정했다.
금융위는 상반기에 의료기관과 실손보험사간에 청구 시스템을 구축한 뒤 하반기 시범운용을 거쳐 내년부터 이를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으면 병의원이 직접 진료비 내역을 보험사에 전달해 환자에게 보험금을 주도록 요청해야 한다.
의료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간소화 방안이 추진되자 대학병원들은 답답한 마음을 호소하고 있다. 환자의 민간 보험업무까지 병원에서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A대학병원 관계자는 "대다수 대학병원이 그렇겠지만 건강보험 급여비용을 처리하는데만도 밥먹듯 야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이런 상황에 실손보험 청구 업무까지 하라는 것이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대체 환자가 자의적으로 가입한 보험의 청구 업무를 의료기관이 맡아야 하는 이유가 뭐냐"며 "포퓰리즘 정책의 끝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대다수 대학병원들도 마찬가지 반응이다. 병원의 인력을 왜 환자의 실손보험 청구를 위해 써야 하느냐는 항변. 또한 그 부담을 왜 의료기관에게 지우느냐는 반발도 만만치 않다.
B대병원 보험심사실장은 "백번 양보해서 청구 업무를 맡는다고 하면 이에 대한 별도 수가를 책정해야 하는 것 아니느냐"며 "청구를 위해 필요한 비용과 인력 부담은 어쩔 셈이냐"고 반문했다.
환자와의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병원이 보험사와 환자 사이에 끼어 불필요한 갈등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다.
A대병원 관계자는 "병원 입장에서는 순전히 청구를 대행하는 입장인데 자칫하면 보험사와 환자 사이에 끼어 욕만 얻어먹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우리 입장에서는 당연히 받아야 하는 비용인데 문제가 생기면 양쪽에서 욕을 먹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아울러 그는 "더 나아가 소송이라고 진행되면 청구만 대행하고서도 법정에 끌려다니는 상황이 벌어질 것 아니냐"며 "어떤 식으로도 백해무익한 일"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