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4년차 박근혜 정부가 경제활성화 명분으로 일반인 회사설립의 건강관리서비스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의약단체와 시민단체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건강관리서비스 사업은 MB 정부 시절 보건의료계를 뜨겁게 달군 현안으로 시범사업까지 갔으나 입법화 실패로 본 사업은 물거품 됐다.
박근혜 정부는 왜 건강관리서비스를 재추진할까. 과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보건복지부는 왜 사실상 수용 입장을 보이고 있을까.
답을 찾기 위해서는 MB 정부 초기 상황을 되짚어봐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9월 대통령 주재 제2차 투자활성화 및 일자리 확대를 위한 민관합동회의를 통해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민간 참여를 통한 건강관리서비스가 일자리 창출과 투자활성화 실천방안으로 제시됐다.
당시 정부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은 보험업체 등 민간인 전문업체 설립으로 예방적 건강관리와 질병관리 등 신규 건강관리서비스업이 등장해 고부가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한국은 의료법과 건강보험법 등 규제로 민간 영역의 건강관리서비스 시장화가 미흡한 만큼 의료행위와 구분해 의료법상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키로 했다.
대통령 주재 회의 후 정책 추진속도는 가속 페달을 밟았다.
복지부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을 통해 건강관리서비스 사업의 당위성을 적극 홍보했다.
보건산업진흥원은 '건강관리서비스 및 U-Healthcare 시장 규모 추계' 연구보고서(연구책임자 이윤태, 연구자 김시연, 박수범)에서 2008년 건강관리서비스 이용자는 전체 인구의 9.91% 수준이며, 시장규모는 약 1조 2000억원~1조 4000억원 규모로 추산했다.
2015년 건강관리서비스 이용률은 15~20% 수준으로 높아지고, 시장규모 역시 2조 6000억원~3조 5000억원 수준으로 커지며, 종사자 시장 규모로 서비스 이용률이 15%인 경우 최소 3만 3000명, 20% 경우 4만 5000명 고용창출 효과가 있다고 예측했다.
복지부 움직임에 화답하듯, 2010년 2011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변웅전 의원과 손숙미 의원은 건강관리서비스 도입 관련 법안을 잇따라 발의했다.
동네의원 의사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비전문인에 의한 건강관리서비스는 의사들의 설 자리를 빼앗는 결과는 물론 왜곡된 의료제도로 유사의료행위 범람 등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건의료 관련 진보단체도 대형자본인 보험업체 설립 허용 등을 의료민영화 시초라고 규정하고 국민건강의 '빈익빈 부익부' 등 의료양극화를 초래한다고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청와대 오더를 받은 복지부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2010년 6월 의료단체와 전문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건강관리서비스 활성화 포럼을 발족해 여론형성에 집중했다.
복지부는 '건강관리서비스 관련 Q&A 자료집' 배포를 통해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했다.
복지부는 "건강관리서비스는 영양과 운동상담 및 모니터링 등 건강증진을 통한 예방이 주목적으로 치료영역으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의료인 뿐 아니라 전문인력 참여가 바람직하다. 개설권을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만이 갖게 될 경우 지나친 규제가 될 수 있다"고 공표했다.
유사의료행위 제공과 건강기능 식품 판매 우려에 관련, "건강관리서비스가 제도화되면 오히려 비만관리와 건강관리 등 범람하고 있는 각종 유사의료행위들이 법에 따라 엄격히 규제될 수 있다. 건강관리서비스기관도 유사의료행위를 제공할 경우 의료법에 따라 처벌된다"고 선을 그었다.
복지부는 의료민영화 일환이라는 주장에 대해 "건강관리서비스는 의료가 아니므로 영리법인 도입여부는 전혀 별개 사안이다. 의료민영화라고 미리 예단하고 무조건 반대한다면 전국민 건강관리라는 정책적 목표를 실현하기 어려워질 것이다"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복지부는 보건의료계 반발 속에서 건강관리서비스 시범사업까지 강행했다.
서울 강동구와 강북구, 송파구, 경기 양평, 대전, 광주 등 6개 지자체가 참여해 인력과 건강측정 장비를 배치했다.
건강관리서비스 목표인원 미달도 문제지만 모 지자체 경우, 민간대행업체 직원 1명이 국민 67명의 건강관리를 담당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결국 야당과 보건의료계 반대와 시범사업 부실 등으로 건강관리서비스 사업은 뒤안길로 사라졌다.
2016년 박근혜 정부의 건강관리서비스는 과거와 판박이다.
정부는 지난 2월 17일 대통령 주재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새로운 수출 동력 창출을 위한 민간 신산업 진출 촉진 방안으로 건강관리서비스 추진을 공식화했다.
복지부는 의료행위가 아닌 질환예방과 건강유지 등 일반적 건강관리서비스 종류를 명확히 규정해 3분기 중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새로운 서비스 영역 창출을 지원한다는 보고했다.
가이드라인 세부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해 2분기 중 이해 관계자 협의 및 연구용역을 실시해 서비스 유형과 사례를 상세하고 다양하게 제기해 현장 혼선을 최소화한다는 입장이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의료법 개정이 아닌 가이드라인 제정이다.
한 번의 실패를 거울삼아 현행법에서 가능한 모든 방안을 총동원해 건강관리서비스를 관철하겠다는 절박함이 묻어있다.
그렇다고 보건의료계 입장이 달라졌을까. 답은 '아니오'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성명서를 통해 건강관리서비스 활성화는 이름만 바꾼 의료민영화 정책이라고 규정하고 의료법 등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을 행정부 독단 가이드라인으로 시행을 결정하는 것은 월권이며 불법이라고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했다.
의사협회도 헬스케어 산업 활성화라는 미명 하에 국민과 의료계가 반대하는 각종 산업화 정책을 우회적으로 추진하려는 기재부 중심의 투자활성화 대책을 비판한다면서 더 이상 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건강관리서비스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복지부가 재추진한다는 것은 역으로 중앙부처 내 복지부 위상을 반증하는 셈”이라면서 “의-정 관계가 계속 어긋나면서 신뢰감은 떨어지고 가시적 성과를 바라는 경제부처의 높아진 목소리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으로 보여진다”고 예측했다.
복지부 입장은 과거와 동일하다.
속도를 늦출 순 있어도 사업 자체는 불가피한 셈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업체들의 건강관리서비스 건의가 강해 연구용역 등으로 일시 시간을 벌었다. 복지부 입장도 난감하다"고 귀띔했다.
건강정책과(과장 이상진) 관계자는 "과거와 다른 패턴으로 갈 것이다. 의료행위가 아닌 건강관리와 생활습관 개념을 정해 논의를 심도 있게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원격의료 시범사업과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허용 그리고 건강관리서비스까지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명분으로 보건복지부를 압박하는 중앙부처 내부의 움직임이 더욱 거세지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