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진료,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문제가 지난해 내내 의료계 현안의 중심에 있었지만 서울시 구의사회들의 관심은 시들했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결의문 채택 등 투쟁 일변도였던 분위기가 화합, 단합을 강조하며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을 공감하는가 하면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메디칼타임즈는 지난주 모두 종료된 25개 구의사회 정기총회 중 17곳의 서울시의사회 건의안 내용을 분석했다.
지난해만 해도 건의안에는 원격진료 및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사용 절대 반대는 꼭 등장했지만 올해는 건의안에 아예 언급조차도 안 한 곳이 절반에 달했다.
한 구의사회장은 "알만한 사람은 이제 다 아는 문제인데다 의협 차원에서 반대하고 있는 문제라서 굳이 건의안에 넣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신 의원 경영과 직결된 건의안들이 속속 눈에 띄었다.
카드 수수료율 인하 및 개인 정보 보호 자율점검 간소화 등이 대표적이다.
개원가는 정부의 카드 수수료율 인하 방침에도 지난해와 같거나 오히려 오른 카드 수수료율을 연초부터 받아야 했다. 개인정보보호 강화 일환으로 개원가는 개인정보 자율점검을 해야 하고, 하지 않은 기관은 현장점검을 받을 수도 있다.
중구의사회는 5000원 미만 카드결제 수수료 면제를 주장했고, 강남구의사회, 관악구의사회, 금천구의사회 등도 카드 수수료 인하를 제안했다.
종로구의사회는 개인정보보호 자율점검 관리비를 인정을 건의안으로 채택했고 금천구의사회 역시 개인정보보호 자율점검 간소화를 내세웠다.
실손의료보험 심사 위탁이나 병의원이 청구토록 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노원구 송파구 동작구의사회는 실손보험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단골주제인 노인정액제 개선 문제도 어김없이 나왔다. 중구, 종로구, 마포구, 강북구, 금천구, 중랑구, 양천구, 용산구, 동작구, 구로구 등이 노인정액제 3만원으로 인상 등의 안을 내놨다.
중구의사회는 지난해부터 실시된 65세 이상 노인 독감백신 무료접종 사업에서 발생했던 백신 수급 문제를 짚으며 '독감백신 수급 배포 시스템 개선'을 제안했다. 물리치료 수가도 1일 2부위로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관악구와 서초구, 성북구는 간호인력 수급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관악구의사회는 간호조무사 수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서울시의사회 홈페이지와 구인구직 사이트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성북구의사회는 병의원 직원 인력을 육성, 교육하는 방안을 논의해 직원 공급과 A/S를 대행해주는 기업대학 설립 등을 제시했다.
서초구의사회 구현남 회장은 "주 6일 근무다 보니까 젊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회피하고 있다"며 "공고를 내면 한달에 한명도 안 올 때가 많다. 직원이 나간다고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이 밖에도 송파구의사회의 지하철 역사 내 의원 개설 저지, 의료폐기물 수거비 인상 대책 마련과 강서구의사회의 국립한방병원 설립 추진 저지 등 지역구의 현안들이 눈에 띄었다.
정치세력화, 동작구·성북구는 건의안 채택…중랑구는 사업계획에
총선 시즌인 만큼 구의사회는 의사 집단의 정치세력화를 강조하고 나섰다.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은 정기총회장에서 축사를 통해 "의료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입법 과정에서 의사가 개입해 올바른 보건의료 정책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라며 "서울시의사회가 하고 있는 1인 1정담 가입 운동을 통해 의료계도 정치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의사회가 총선 출마 후보를 검증하고 정치력을 발휘해 주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동작구의사회는 대한의사협회 정치역량 강화를 위한 의정회 부활 및 국회의원 후원활동 적극 전개를 서울시의사회 건의안으로 채택했다.
성북구의사회도 정책을 정치권에 반영할 수 있는 전문가로 구성된 의정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향애 회장은 "싸움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용병이 하는 것"이라며 "우리의 정책을 전달할 수 있는 전문가 조직을 구성해 조직과 소통하고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랑구의사회는 아예 '정치적 영향력 극대화를 위한 업무 추진'을 올해 총무부 사업 계획으로 넣었다.
직접적으로는 국회의원이나 자치 단체장에 입후보하고 간접적으로는 정당 가입 운동 추진, 국회의원 후원회 기부를 할 예정이다.
오동호 회장은 "회원들의 생각이 투쟁보다 협상을 원하고 있다. 체념이라기 보다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한 결과"라며 "내부 목소리를 단결해 정부와 정책 대결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인당 10만원의 정치 후원금을 내거나 1인 1정당 가입하기 등 국회 입법 활동에 참여하고 의사회 중심으로 단결해야만 의료계를 둘러싼 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