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장관 정진엽)는 지난 3일 '보건복지부 조직문화 혁신 출범식'을 통해 깜깜이 인사로 불리는 기존 관행을 타개하는 인사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인사과 정경실 과장은 직급별 인사 스케줄을 예고하는 방안과 복지부 본부와 질병관리본부 인사교류 등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정진엽 장관이 민감한 인사제도를 건드린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8월 임명된 정 장관은 현재 취임 7개월을 맞고 있다.
병원장 시절부터 구성원과 교감을 중시하는 정 장관은 침체된 복지부 문제점을 진단하고 빠른 처방을 내렸다.
공무원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인사과를 통해 인사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복지부 공무원들이 깜깜이 인사를 개선 일순위로 지적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시(행정고시 출신)와 비고시(9급, 7급 공무원 및 의약사 전문직 출신) 간 인사 불균형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시각이다.
본부 전체 인원 780여명(2015년 8월말 현재) 중 고시 출신 27%, 비고시 출신 73%이다.
복지부 본부 고시파 30%, 보건복지 요직 '장악'
서기관급 이상 136명 중 고시 출신 공무원이 81.6%(111명)인 반면, 비고시 출신 공무원은 18.4%(25명)에 불과하다.
보건의료 부서 국장 중 비고시 출신은 공모직인 공공보건의료정책관 1곳이며, 과장직의 경우 보험급여과와 보험평가과, 보건산업진흥과 등 일부 부서장을 제외하곤 모두 고시 출신으로 채운 상태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고시파 30% 공무원들이 복지부 요직에 앉아 보건의료 및 복지 정책을 쥐락펴락하는 셈이다.
20대 입사한 비고시파는 40대 사무관과 50대 서기관 직책으로 '과장'을 끝으로 공무원 생활을 마감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결국, 20대 고시 출신 신입 사무관과 40대 비고시 출신 베테랑 사무관의 경쟁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한 공무원은 "20대 젊고 패기 있는 사무관과 40대 중년 사무관이 경쟁하면 누가 높은 점수를 받겠느냐. 10여 년간 현장 목소리에 입각한 실무 경험보다 한 장의 깔끔한 정책보고서가 윗사람에게 어필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고시 공무원들의 본부 근무도 구태라는 지적이다.
5급 행정사무관으로 복지부에 입사한 후 본부 근무로 일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보건의료계에서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단골메뉴로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고시 사무관들 본부 중심 근무, 탁상행정 비판 초래
행정법만 달달 외운 신입 사무관들이 고시 문구 하나 개정이 요양기관 희비를 바꾼다는 사실을 얼마나 실감하는지, 연구용역을 맡긴 일부 전문가들과의 전화통화로 현장 목소리를 수렴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등은 여전히 물음표이다.
복지부 내부에서도 사무관이든, 주무관이든 첫 입사한 공무원들에게 현장근무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국공립병원 및 심사평가원, 건보공단 등 산하기관은 물론 주요 보건의료단체 1년간 순환 근무로 현장과 거리감을 좁히고 정책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다른 공무원은 "현장을 모르는 고시 사무관들이 입사 후 본부에만 근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면서 "고시파 내부의 학연과 지연으로 자기사람만 끌어주고 다른 공무원은 배척하는 구태는 개선해야 한다. 왜 고시 공무원들만 국내외 파견 근무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야 하느냐"고 꼬집었다.
또 다른 공무원은 "20년 전 사무관 입사 후 본부가 아닌 국립의료원 등 산하기관에 배치돼 체험한 내용이 공무원 생활에 큰 힘이 됐다"고 전하고 "과거에는 학연과 지연에 밀려 산하기관에 배치된 것으로 저평가된 부분이 있었지만 언제부터인지 이마저도 사라졌다"고 귀띔했다.
정진엽 장관도 조직문화 혁신 출범식을 계기로 고여 있던 관료주의에 새로운 물길을 기대할 가능성이 높다.
기재부와 행안부, 청와대까지 촘촘한 인맥으로 구성된 관료주의 인사제도 개선은 사실상 파격이라는 점에서 정 장관의 소신이 얼마나 지속할지 단정하긴 어렵다.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정진엽 장관이 고시와 비고시 모두에게 설사 공정한 잣대가 아니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지금이 아니면 경직된 관료주의를 개선할 기회가 없다"면서 "의사 출신 장관으로 남을 것인가, 마음이 따뜻한 장관으로 기억될 것인가는 정 장관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