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바둑기사와 인공지능 로봇의 대결.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것은 누가 바둑을 잘 두느냐는 넘어 '로봇이 인간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를 한눈에 보여주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로봇은 의사를 대체할 수있을 것인가.' <메디칼타임즈>는 의료 일선에 있는 의사들에게 직접 물어봤다.
① <의사는 사라질 직업인가> 저자 김현정 서울시립 동부병원장
"올 게 왔구나. 가까운 미래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지난 9일 오후,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로봇 알파고의 대국 직후 만난 김현정 서울시립 동부병원장(정형외과)의 첫 마디였다.
인간과 로봇의 대국은 로봇의 승리로 끝났다. 그는 인간으로서 또한 로봇의 발전에 위협받는 의사로서 내심 이세돌의 승리를 응원했던 탓이다.
김현정 병원장은 지난 2014년도 <의사는 사라질 직업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펴내며 컴퓨터가 의사를 대체할 수 있으며 이는 먼 미래가 아닌 당대에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이 책은 의료의 영역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믿어왔던 의료계에 파장을 일으키며 최근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조차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는 "그래도 아직은 컴퓨터는 인간을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나를 비롯한 많은 의사들이 로봇의 성장에 놀라고 긴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내과, 영상의학과 의사라고 더 치명적이고 외과의사라고 안전하다고 볼 수 없는 의료계 전체의 변화라고 봤다.
그는 이어 "개인적으로는 컴퓨터로 대체되는 부분은 과감하게 로봇에 맡기고 컴퓨터가 흉내낼 수 없는 영역을 계속해서 찾아나가 것"이라며 "지금 의사들이 이 부분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미국 유명 대학병원은 이미 시범적으로 슈퍼컴퓨터 왓슨을 임상에 도입해 진단 및 처방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보인 상태다.
다시 말해, 로봇을 의료현장 투입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김현정 병원장은 의사의 역할을 크게 진단과 진료(처방) 2가지로 구분, 컴퓨터 알고리즘을 잘 짜면 의사를 대체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인간의 영역을 넘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가령, 각종 검사 결과를 데이터화 하더라도 의사가 환자를 만났을 때 보고 느끼는 환자의 안색과 표정의 변화 등을 통해 진단을 내리고 환자에게 위안을 주고 공감해주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로봇이 인간의 '휴먼 팩터' 갖출 수 있을까?
김 병원장은 로봇이 의사를 대체하게 되는 가까운 미래에 대해 기대보다는 우려가 높다고 했다.
특히 그는 이번 경기에서 이세돌과 마주보고 앉아 알파고를 대신해 바둑 돌을 옮기는 역할을 한 것에 주목했다.
그는 "그는 컴퓨터의 조수역할을 했지만, 만약 그가 알파고의 주인이라면 그는 슈퍼컴퓨터를 소유함으로써 이세돌이라는 천재 바둑기사를 이긴 셈"이라며 "슬프지만 이는 자본의존적 사회가 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봤다.
그는 이를 의료계에 적용, 자본화됐을 때의 우려를 제기했다. 병원 업무의 상당부분을 지원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슈퍼컴퓨터가 나왔을 때, 자본이 있는 병원은 이를 도입해 새로운 의료서비스를 선보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병원은 격차가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한 그는 로봇이 과연 인간의 고유한 영역인 공감 능력 등 인적요인을 갖출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의사는 환자를 인격체로 보고 의학적으로 A라는 치료가 맞더라도 환자 본인의 의견을 수렴해 다른 대안을 찾고 함께 고민하는데 컴퓨터는 정해진 답만을 환자에게 요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인간 즉 의사에게는 환자의 의지에 따라 진료를 중단하거나 방법을 바꿀 수 있는데 과연 인공지능 로봇이 이런 능력까지 갖출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로봇이 의사를 대체하게 될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면서도 "만약 만들어진다면 인정 많은 로봇이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