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은 어떤 명목으로도 두 개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의료법 33조 8항)
의료인의 의료기관 중복 개설을 막고 있는 의료법 조항, 일명 1인 1개소법은 위헌일까 아닐까.
헌법재판소는 10일 오후 2시 대심판정에서 3시간 30분여분에 걸쳐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방청권 배부는 10여분만에 끝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1인 1개소법을 적극 반대해오던 김덕 원장(전 대한치과의사협회 서울지부 학술이사)는 공개 변론 1시간 전부터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1인 1개소법은 위헌!'이라는 1인시위를 하기도 했다.
변론에는 1인 1개소법이 위헌이라는 주장을 펼칠 법무법인 지평 김성수·박성철·박보영 변호사와 법무법인 태평양 유욱·이상철 변호사, 법무법인 세승 김선욱·정혜승 변호사가 참석했다.
합헌 주장을 위해서는 보건복지부 측 변호인은 법우법인 원일 정의정·박선민 변호사, 건강보험공단 김준래 변호사가 자리했다.
참고인으로 대한브랜드병의원협의회 최혁용 부회장과 법무법인 여명 유화진 변호사가 나왔다.
이날 재판관들은 양측 모두 '주장'만 있지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는 지적을 잇달아했다.
이에 따라 네트워크 병원 시스템 경영 평가 관련 논문, 중복 의료기관 개설이 부당청구나 과잉진료 등에서 더 문제가 된다는 객관적 자료, 네트워크 의료기관으로 인해 개인 의원이 폐업한 사례 등 구체적인 자료 제시를 요구했다.
애매모호한 조항, 운영과 개설의 차이는?
1인 1개소법 조항에 들어가 있는 '개설'과 '운영'의 차이가 모호하며 '어떤 명목으로도'라는 말이 불확실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성수 변호사는 "법률에서 개설이라고 표현했을 때는 업무 개시뿐만 아니라 운영이라는 의미까지 포함된다"며 "1인 1개소법 조항에는 운영이라는 단어가 추가됐는데 이 때문에 개설 의미가 달라진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어떠한 명목이라는 말도 의미가 모호하다"며 "명확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별도로 정의를 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유화진 변호사는 법리적으로 개설과 운영의 차이를 구분 지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개설과 운영이 비슷하지만 판례에서 운영은 인력 관리, 개설 신고 등을 누가 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실제 의료 행위를 하지 않으면 개설로 보지 않는다. 즉, 개설에는 진료행위 시행이 추가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중복개설은 불법진료 가능성을 높인다?
정부는 한 명의 의료인의 두 개 이상 의료기관 설립을 허용했을 때 먼허대여, 환자유인행위, 무면허 의료 행위, 과잉진료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의정 변호사는 "국민 건강보호라는 공익보다 영리추구를 우선해 환자의 무리한 유치, 과잉진료로 인한 의료과소비, 의료자원 수급 계획의 왜곡, 개인 의원의 폐업 등 건전한 의료질서를 어지럽히는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준래 변호사 역시 한 명의 의료인이 다수의 의료기관 경영시 본질인 의료행위에 집중하기 힘들어 의료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감을 드러냈다.
김 변호사는 "1인 1개소법의 근본 취지는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의료인은 자신의 면허를 바탕으로 개설된 의료기관에서 의료 행위를 하도록 하기 위해 장소적 한계를 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수 의료기관 경영이 목적이라면 전문 경영인이 훨씬 효과적"이라며 "법인 형태로 전문경영인을 두고 여러 개의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방법도 있다"고 덧붙였다.
수술 건수나 MRI 촬영 건에 따른 인센티브의 실례도 들었다. A병원은 월 매출 실적에 따라 3%의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수익금은 모두 개설자에게 귀속되도록 한다. B병원 역시 수술 1건당 5만~15만원, MRI 1건당 2만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김 변호사는 "1인 1개소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측은 네트워크 병원의 문제만이 아니고 다른 의료기관도 마찬가지라는 놀라운 주장을 한다"고 꼬집으며 "불법의 평등 주장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의료계 전반의 문제를 특정 병원 형태에 끼워 맞추기"
정부의 주장에 네트워크 형태로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유디치과와 튼튼병원 측 변호인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맞섰다.
정혜승 변호사는 "이 법 조항은 불법 의료 행위 근절을 통해 의료의 공공성을 제고한다는 것인데 불법행위들은 특정 유형의 의료기관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의료계 전반에 걸친 문제"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과잉진료도 네트워크 의료기관만의 특징이 아니다. 인센티브 제도도 종합병원, 대학병원에서 더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다"며 "건강보험제도가 탄탄한 편이기 때문에 과잉진료가 행해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탐지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불법 네트워크 의료기관이라고 꼽히는 병원들이 심평원의 각종 적정성 평가에서 1등급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장했다.
최혁용 부회장도 "소규모 의원이 과잉진료 위험이 훨씬 높다"며 "다수의 의료기관을 운영하면 불법의 온상지가 될 것이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된 주장"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의료 기관 개설과 그 안에서 의료행위를 어떻게 규제하느냐는 별개의 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네트워크 의료기관 방식을 정부가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고 규제의 틀을 별도로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1인 1개소법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유화진 변호사는 의료인의 본분이라고 했다.
그는 "본질적으로 개인이든 연합이든 영리추구는 부정할 수 없다"며 "개인 의원을 할 때는 본인이 직접 한 의료 행위로 수익을 갖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의료 본질적인 부분에서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의료 기관을 여러 개 개설하면 형식상 개설 의사는 외부의 통제에 의해 원하지 않는 진료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실질적 소유자는 본인의 의료 행위가 아닌 다른 부수적 요인에 의해 수익을 창출하게 된다. 이는 의료인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