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치료실과 주사제 조제 탕비실 위생상태 불량, 약품 보관상태 매우 불량 등 감염관리가 안 되는 것은 기본이었다.
여기다 주사기 재사용, 무자격자인 간호조무사의 의료 행위 등 의료법 위반까지.
이곳은 지난해 한창 문제가 됐던 서울 양천구 다나의원도 아니고, 강원도 원주 한양정형외과도 아니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I의원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간호조무사가 직접진단 하고 물리치료를 하는가 하면 통증주사를 직접 처방하고 주사했다. 의사는 그런 간호조무사를 못 본척했다.
간호조무사는 허리, 어깨,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 243명에게 통증주사 치료를 했고 이 중 61명에게서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간호조무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고, I의원 이 모 원장은 의료법 위반,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았다.
통증 치료를 받으러 갔다 병원균 감염이라는 날벼락을 맞은 환자 18명은 이 원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5민사부(재판장 김종원)는 최근 이 원장에게는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원장이 18명의 환자에게 배상해야 할 금액은 8억7707만원. 적게는 1237만원에서 최대 1억4579만원까지 배상해야 했다. 법원은 이 원장의 책임을 70%로 제한했다.
판결문을 통해 드러난 I의원의 실태는 이렇다.
이 원장은 1974년에 의사면허를 취득했으며 산부인과 전문의다. 20세에 의대를 입학해 휴학 없이 6년을 보냈다고 가정하면 그는 2016년 현재 68세가 된다.
그는 2009년 9월, 간호조무사 조 모 씨와 영등포구에 I의원을 열었다.
조 씨는 개원 후 약 3년 동안 허리, 어깨, 무릎 등의 통증 환자에게 용태를 묻거나 엑스레이 필름 판독을 직접 했다. 물리치료실에서 추나요법 시술을 했으며 환자의 통증 부위에 주사제를 투여하는 등 무면허 의료 행위를 했다.
구체적으로 조 씨는 통증 환자에게 물리치료실에서 추나요법을 하고, 트리암주 40mg 중 20~30mg, 리도카인주 20ml 중 1ml, 생리식염수 20ml 중 약 1ml를 섞어서 주사했다.
문제는 주사 과정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것. 2012년 4~9월 조 씨가 통증주사를 직접 조제해 주사한 환자 243명 중 61명에게 비정형 마이코박테리아 감염, 화농성 관절염 농양, 염증성 관절염, 결핵균 감염 등의 집단 감염이 일어났다.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질병관리본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서울시 및 영등포구로 이뤄진 합동조사단이 역학조사를 한 결과 61명은 모두 I의원에서 트리암주 주사제를 맞은 환자들이었다.
합동조사단의 현장조사 결과를 보면 물리치료실 청결도가 낮았고, 주사제를 조제한 탕비실 위상상태도 불량했다. 탕비실 냉장고에는 쓰다 남은 트리암주 주사제가 음료수와 함께 보관돼 있을 정도로 약품 보관상태도 엉망이었다. 남은 트리암주는 며칠 보관하다 다른 환자 주사 조제에 재사용까지 했다.
간호조무사 조 씨는 환자 피부를 직접 손으로 눌러가며 통증 부위를 확인한 다음 해당 부위에 주사제를 투여했다. 이 과정에서 일회용 장갑을 착용하거나 주사 부위를 소독하는 등의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같은 주사기로 여러 부위에 주사제를 수차례 투여하기까지 했다.
재판부는 "간호조무사는 무릎 관절강에 주사제를 투여하기에 앞서 손을 깨끗이 씻고 주사부위를 충분히 소독해 멸균 처리된 장갑을 착용하는 등 무균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원칙을 설명했다.
이어 "주사제 투여 과정에서도 한 부위당 한 개의 멸균 주사침을 사용해 외부 병원균이 관절강으로 침투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간호조무사의 무면허 의료 행위를 방관한 이 원장에게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의료과실을 인정할만한 증거는 없지만 간호조무사를 고용한 당사자로서 책임은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의사가 간호조무사를 실제 지휘, 감독한 사실이 없거나 의원 실질적 운영자인 간호조무사에게 고용돼 자신의 명의만 대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객관적, 규범적으로 볼 때 의사는 의료행위와 관련해 간호조무사를 지휘 감독해야 할 지위에 있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