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외과가 다른 외과 계열과 극명하게 다른 특성이 있다. 다른 과의 수술은 대개 사람의 몸에서 무언가를 제거하는 과정이다. 암을 제거하고 죽은 장기를 적출하고 고름을 배출하는 것이 일반적인 수술 과정이다.
그에 반해 성형외과는 인체에 무언가 만들어내는 수술을 한다. 소위 '언청이'라 표현하는 구순구개열 환자에게 입술을 만들어주고 입천장을 만들어준다. 얼굴의 윤곽을 다듬고 쌍꺼풀과 유방을 만든다. 재건 수술이라 일컫는 성형외과의 특성은 창조적인 과정이며 심미안을 요구한다. 그래서 전공의 면접 때 유일하게 창조하는 수술이라서 성형외과를 지원했다고 말했었다.
아직도 성형 수술에 대해 권위자들의 다양한 방법과 학설이 제시되고 있다. 같은 질환에 접근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유방암 재건 수술에서 보형물을 이용하는 방법, 뱃살을 이용하는 방법, 엉덩이 살을 이용하는 방법, 등살을 이용하는 방법 등 환자의 기호와 체형에 따라 달리 접근한다.
교수님들은 성형외과를 창의력과 미적 감각도 필요한, 발전 가능성이 많은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성형외과라고 하면 서울 강남의 중심지, 부유한 지역에 위치한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병원을 떠올린다. 물론 미용 수술 역시 성형외과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다. 재건 수술과 미용 수술은 맞닿아 있다.
성형외과 영역이 미남, 미녀를 만들어내는 '의느님'의 광명이 비치는 깔끔한 영역은 아니다. 고약한 냄새와 고름이 함께하는 상처 치유 등 성형외과의 영역은 광범위한데 종합병원에서는 그 역할이 더욱 조명 받는다. 온몸이 화상으로 일그러진 경우, 산업재해나 교통사고로 손가락이 절단되고 다리가 부러지거나 살점이 뜯어져 나가는 경우에도 성형외과가 필수불가결하다.
영어로 디브라이드먼트(debridement)라고 하나 읽을 땐 불어 발음으로 '데브리망'이라 불리는 수술이 있다. '변연절제술'이라 하여 감염, 염증, 괴사로 인해 득이 되기보다 해가 되는 살점들을 공격적으로 절제하는 시술이다.
데브리망은 상처 치유에 기본이 된다. 상처가 정상적인 치유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만성 창상이 돼 치유가 어렵다. 상처 주변에 지저분한 딱지가 앉거나 누렇게 균의 사체들이 끼는 경우 이를 제거해야 치유가 이뤄진다.
데브리망은 죽은 조직을 절제하고 만성화된 상처를 상처의 급성기로 돌려놓아 치유가 진행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데브리망을 하고 나면 얼핏 보기에 이전보다 상처 크기도 커지고 출혈과 통증이 동반되어 오히려 상처를 악화시켰다고 오해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피가 나지 않는 만성 창상에서 새로운 피가 새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혈액순환이 좋아졌다는 징후이다. 심한 욕창은 엉덩이 꼬리뼈까지 만져지지만 피 한 방울 나지 않는다.
데브리망은 성형외과에서 가장 지저분하지만 필수적인 수술이다. 하루에도 5~6건의 데브리망이 일정 내내 이루어졌다. 데브리망을 하면 고여 있던 고름이 퍽 하고 터진다. 형언할 수 없는 곰팡이 냄새가 날 때도 있다. 강남 등지의 성형외과 광고 이미지와 정반대의 모습이다.
한동안 재건수술 현장에 있다 미용 수술에 수술 스크럽을 들어갔다. 교수님의 예리한 경험으로 가슴에 보형물을 슥 넣으니 예쁜 가슴이 만들어진다. 미용 수술 영역도 심오하고 신기할 뿐이다.
하루는 개에게 물려 눈꺼풀이 세로로 길게 찢어져서 온 어린 환자가 있었다. 흉측하게 찢어진 아이의 눈꺼풀을 보면서 어떻게 봉합할 수 있을까 싶었다. 수술이 진행되면서 벌겋게 결막이 노출되고 있던 조직들이 눈꺼풀의 형태를 찾아갔다. 수술 후 점차 붓기가 빠지고 예전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다시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성형외과 수술은 도안이 매우 중요하다. 환자의 몸에 스케치하듯 그리는 이 도안들이 수술의 뼈대가 되고 나침반이 된다. 경험이 쌓이면 도안을 그리는 것도 피부의 긴장도나 살결을 고려한 작품이 나온다. 몇 밀리미터 차이의 섬세함이 짐작키 어려웠던 수술 후 환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본원에는 당일 수술센터라 하여 입원 치료가 필요하지 않는, 간단한 수술의 경우 당일에 수술받고 바로 퇴원하는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모든 수술이 며칠 전부터 입원해서 지내다가 수술을 받고 또 다시 며칠을 입원하고 퇴원하는 것은 아니다.
수술 전후 입원이 필요했던 경우도 최근에는 당일 수술이 가능한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수술 술기와 마취의 발전, 환자 관리가 발전하면서 가능해졌다. 또 병원 경영의 입장에서도 비용절감의 효과가 있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흔하게 발생하는 오해 중 하나가 안정을 취하는 것에 대한 입장 차이다. 환자들은 수술을 받으면 침상 안정을 충분히 취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며칠 푹 쉬고 움직여야 몸이 좋아진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조기보행이라 해서 수술 후 한 단계 빠르게 일상생활을 하도록 격려해 몸의 상태를 평상시처럼 회복시키는 개념이 있다. 연구 결과 환자가 장시간의 수술 후 가만히 침상 안정을 하고 있을 때보다 움직이면서 근육을 썼을 때 그만큼 회복도 빠르고 합병증도 줄었다고 한다. 치료의 연장선상인 것이다. 그래서 환자들에게 수술 후 하루라도 빨리 걸으라고 격려하고 숨을 세게 부는 운동을 시켜서 회복을 빨리 하도록 한다.
하지만 이런 지시를 하면 환자들 중에는 수술하고 아파죽겠는데 퇴원시키려고 재촉한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다. 전신마취 후 식이를 진행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충분한 설명이 있지 않으면 환자는 의료진을 쉽게 오해한다.
병원에는 다양한 환자들이 입원하기 때문에 원내 감염, 즉 병원 내 세균들에 의해 폐렴이나 요로 감염 등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병원에 오래 입원하는 것이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도 득은 아니다.
그래서 입원이 필요하지 않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당일 수술센터가 이용되는 것이다. 수술 한두 시간 전에 내원하여 준비하고 수술을 진행한다. 수술 이후에는 전신마취인가 국소마취인가에 따라 회복실에서 1~4시간 정도 회복하고 귀가한다.
당일 수술센터를 주로 이용하는 과는 안과, 성형외과, 이비인후과 등 마이너과들이다. 성형외과에도 흉터제거 수술이나 코 골절 수술, 유두재건수술처럼 국소마취 혹은 전신마취라 할지라도 간단하게 끝나는 수술들은 대개 당일 수술센터를 이용한다.
환자나 병원 입장에서는 합리적이고 편리한 시스템이지만 성형외과 주치의에게는 골칫덩어리인 경우가 많다. 첫째, 일정 조정과 안내가 번거롭고 둘째, 문제 발생 시 해결에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이다. 당일 수술일수록 일정 가변성이 농후해 수술 며칠 전에 환자에게 직접 전화해서 수술 여부를 물어봐야 한다. 갑자기 환자가 수술 전날 일정을 미루겠다고 하거나 아예 수술 날짜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경우도 있다. 말 그대로 수술 일정에 '빵꾸'가 나는 상황이다.
입원 환자의 경우 수술 일정이 변경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환절기나 겨울에는 환자가 주말 사이 감기에 걸리면 전신마취가 불가능한 경우도 발생한다. 일정 변경이 생길 때마다 다음 주에 수술 예정인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일정을 앞당길 수 있는지 물어보고 빵꾸를 메꾸어야 한다.
성형외과 인턴을 하면서 종종 "안녕하세요. 여기 종합병원 성형외과입니다. ○○○ 환자분 맞으시죠? 내일 수술 있는 것 알고 계신가요? 그대로 진행해도 큰 문제 없겠습니까?" 하고 안내 전화를 했다. 환자에게 연락이 안되는 경우에는 보호자 연락처라도 알아내 몇 번씩 전화를 했다.
오후 내내 연락하다 겨우 연락된 환자에게서 "모르는 전화번호여서 안 받았어요. 죄송합니다"라는 대답을 들으면 허탈한 웃음밖에 안 나왔다.
반대로 재건 환자들의 경우 오랜 기간 입원 관찰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주로 피판 수술이라 하여 살점 및 근육이 손상된 경우, 다른 부위의 조직을 떼어내어 복원하는 수술이 있다. 외상 환자의 재건 수술의 경우 골절 등 다른 문제들로 오래 입원할 때도 있다. 혹은 당뇨 등의 만성질환자 수술은 수술 이전부터 꽤 오랜 기간 관찰 및 처치를 하며 수술이 적합할 때까지 기다린다.
피판 수술을 통해 건강한 조직을 상처에 이식한 후 안전하게 생착시키려면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수술 전부터 데브리망을 통해 감염을억제하고 죽은 조직을 제거해야 한다. 이식하는 부위에 땅이 비옥해야 새로 덮어놓는 조직이 잘 붙어 튼튼한 살이 된다.
하루에도 간단히 끝나는 여러 수술로 바로 퇴원하는 환자들도 있지만, 한 달 넘게 입원 중인 환자들, 피판 수술을 하는 날이면 2~3시간이 멀다하고 이식한 부위가 잘 생착되는지 확인해야 하는 환자들도 있다.
그래서 성형외과 장기 입원 환자들은 주치의, 인턴과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든다.
더 예뻐지고 멋있어지고 싶어 성형 수술을 택한 환자들도 온다. 당뇨 때문에 발바닥이 썩어 들어가 매일 데브리망을 하는 환자들도 있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실과 바늘로 '루뻬'라고 부르는 수술용 안경을 쓰고 미세한 손놀림으로 수술한다. 욕창의 죽은 조직을 잘라내고 긁어내기 위해 '큐렛'이라는 기구로 살을 박박 긁어내는 경우도 있다.
다른 인턴들은 성형외과 의사가 소방수 같다고 했다. 다른 과에서 처치곤란한 상처가 있으면 성형외과 의사가 찾아가기 때문이다. 예전에 간이식 수술 시 미세 혈관들을 문합할 때 성형외과 의사가 혈관들을 문합했다고 했다.
응급실에 얼굴이 찢어져서 오는 환자들을 봉합하기 위해 전공의 선생님들은 새벽에도 몇 번씩 병동에서 응급실까지 오갔다.
쓰러지지 않고 마친 한 달 간의 성형외과 인턴. 어느덧 인턴 페어웰 회식날이 왔다. 다른 병원에서 수련한 전문의 선생님에게 다른 대학병원도 성형외과가 가장 힘든지 물어보았더니 당연하다고 대답하셨다.
어느 병원에가나 신경외과와 성형외과가 가장 힘든 과로 1, 2위를 다툰다고 했다. 밖에 서 보이는 이미지와 실제 하는 일에 가장 큰 괴리가 있는 곳이 종합병원 성형외과일 것이다.
의대 시절 성형외과 수업 때 교수님이 여러 장의 수술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중에는 교통사고로 인해 아스팔트 도로에 얼굴이 갈리면서 눈코 입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뭉개진 환자의 사진이 있었다. 모두가 수술장면 중 가장 징그럽다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몸의 겉가죽이기 때문에 밑의 살점과 근육이 보이는 성형외과 수술 과정은 징그럽다.
눈꺼풀이 찢어진 채 안구가 동그랗게 드러나거나 뺨이 찢어져서 안쪽 이빨까지 보이는 경우도 그렇다. 손가락이 절단되거나 끊어진 경우 살점이 없고 중간에 뼈가 덜렁거리는 모습이 보이는 경우는 기괴하기 짝이 없다.
성형 수술 후 깔끔하게 복원돼 예전 형태를 찾아가는 사진들을 보면서 한 친구가 말했다.
"수술하는 도중의 사진은 도대체 저게 팔인지 다리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끝날 즈음 보니 얼굴인 것을 알겠다"고.
한 달 동안 현장에서 힘들게 버텨가며 관찰하고 느꼈던, 극과 극을 달리는 성형외과였다.
[37]편으로 이어집니다.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