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정반합의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최근 의사 사회는 내적 발전을 위한 성장통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열의 사회. 산부인과의사회가 두 개의 단체로 갈라섰고, 소아청소년과개원의사회도 회장 선거 직선제 전환 과정에서 회원 간 갈등을 겪었다.
의사협회 집행부도 강청희 전 부회장의 해임건을 둘러싸고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마저 신-구 집행부 사이의 부당이득금환수 소송으로 시끄럽기는 마찬가지.
역사를 정반합의 과정으로 보았던 헤겔은 이런 분열을 건설적 발전에 수반되는 요건으로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개원내과의사회에서만큼은 내적 발적을 위한 분열이 필수적이 아니라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화합을 위해 필요한 것은 분열이 아니라 '포용'이라는 최성호 개원내과의사회 회장을 만났다.
5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최성호 회장이 집행부 임원진 구성을 완료했다. 신창록 부회장, 박근태 총무이사 등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띄는 건 우연이 아니다. 최성호 회장이 던진 화두 때문이다.
"20명."
다름 아닌 전임 집행부 소속 이사진의 재등용 숫자다. 최성호 집행부의 인재 기용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전임 집행부 소속 임원을 새 집행부로 포용한 사례가 드물다는 점 때문이다.
그간 의사회 단체의 전임 집행부 인사의 포용 시도는 이뤄졌지만 소폭 인선에 불과했다. 의료계는 선거운동을 위해 발벗고 나서준 개국공신에게 한 자리씩 줘야 한다는 관습이 여전히 지배하는 사회다.
개원내과의사회는 전임 집행부 소속 임원진을 대거 재등용시키며 관습 타파에 나섰다. 이유는 뭘까.
"이번 회장 선거에서 전임 집행부 소속 임원들이 누구를 지지했냐와 같은 정치적 부분은 결코 중요치 않습니다. 선거 이후 중요한 건 일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최성호 회장은 지역의사회 활동부터 잔뼈가 굵은 인물. 16년이 넘게 의사회 일을 맡아오며 숱한 임원진 교체를 직접 목격했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새 집행부가 들어선 이후 줄곧 쇄신의 이름으로 벌어진 캐비닛 교체였다.
최 회장은 "의사회에서 오랜기간 일하면서 집행부 임원진이 교체되는 사례를 수도 없이 봐 왔다"며 "일 잘하고 능력있는 분들이 정치적 이유로 교체되는 것이 늘 아쉬웠다"고 털어놨다.
특히 각 과의 전문성이 고도화되면서 임원진의 연속성이 곧 회무와 직결된다는 점이 그의 마음을 이끌었다.
최성호 회장은 "내과 같은 경우는 보험 분야가 중요하기 때문에 내과의사회의 히스토리와 대정부와의 관계 설정에 능통한 인사 한 분 한 분이 중요하다"며 "회무의 연속성이라는 의미에서 전임 집행부 임원진의 대거 기용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물론 새로 임명된 임원도 있지만 능력이 최우선이라는 명제는 확실하다"며 "이런 관점에서 이준우 재무 부회장이나 김금미 재무이사 등도 새로 수혈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전임 집행부 보험통인 신창록 부회장은 이번에도 보험수석 부회장을 맡았다. 박근태 총무이사, 김성남 대외협력 겸 총무이사, 은수훈 공보이사 등도 각자 역할과 능력을 존중해 기존의 직위를 최대한 유지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능력으로만 기용하는 탕평책이 회무 추진에 효과가 있을까.
최성호 회장은 "잡음이 생길 것이란 외부의 우려와 달리 회무 추진에 어려움은 커녕 더욱 잘 운용되고 있다"며 "너무 많은 현안이 있어 파벌을 나눠 정치를 하는 등 부차적인 데 신경 쓸 겨를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회원을 생각한다면 당면 과제 해결에 바빠야 하는 게 당연하다"며 "본인이 회장으로 있는 한 소송전, 정치 파벌 등 내부 갈등뿐 아니라 상위 단체와의 마찰 역시 구경하기 힘들 것이다"고 단언했다.
최성호 회장은 최근 보건복지부의 전화상담 수가 신설에도 의협의 '오더'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과거 각과 개원의사회들이 정부 측과 접촉하며 각자도생 하던 모습과는 달라진 풍경. 내부뿐 아니라 외부 화합을 위해서도 노력하겠다는 게 빈말이 아닌 셈이다.
최성호 회장은 분열의 의사회에 '탕평책'이라는 메세지를 던졌다. 그의 처방은 다음과 같다.
"회원을 우선시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