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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20명 죽는 중환자실…중재원 다니다 망한다"

박양명
발행날짜: 2016-07-01 05:00:59

의사도 환자도 의료분쟁법 우려…"조사 자체로 진료 위축"

|메디칼타임즈 창간 13주년 기념 정책토론회|

"대형병원 중환자실에서는 한 달 평균 20명이 사망한다. 의료분쟁 조정이 자동개시 된다면 유족들이 모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문을 두드릴 수도 있다는 소리다. 그러면 의료진은 조사에 대한 부담으로 환자 치료를 못할 것이다."

대한중환자의학회 홍상범 총무이사(서울아산병원)는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에 대한 의료현장의 두려움을 털어놨다.

메디칼타임즈가 창간 13주년을 맞아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과 30일 의생명연구원에서 '의료분쟁법 자동개시, 의료계 진전인가 퇴보인가'를 주제로 개최한 정책토론회에서다.

의료계에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으로 조정 절차가 급증하고 조사가 강화되며 외과계열 기피 현상 등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해 있는 상황.

단순한 법 조항일 뿐이라며 넘겨버리기엔 의사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는 게 의료계의 목소리다.

홍상범 이사는 "중요한 팩트 중 하나가 현재도 환자의 생명, 바이탈을 다루는 진료과는 인기가 없다. 열정페이라는 말을 쓰고 있을 정도로 이미 충분히 힘들다"며 "의료분쟁 조정이 강제 개시되더라도 건수가 폭증하지 않을 것이며 의사가 직접 조정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전혀 와 닿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정 과정에서 그냥 서면조사도 힘들다. 법원에도 가본적 있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라며 "10명을 치료하면 2명이 사망하는 곳이 중환자실이다. 현재 하고있는 업무에서 행정적인 부담이 몇 건만 늘어도 너무 힘들 것"이라고 토로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분쟁조정법령 대응TF 이우용 위원장(의무이사, 삼성서울병원 외과)도 법 조항의 한계를 지적했다. 법에는 의료분쟁 조정이 강제 개시 되면 의사가 직접 안 가고 대리인이 출석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개원가에서는 꿈도 못 꾸는 얘기라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의사가 아닌 대리인이 출석할 수 있다고 하지만 개인의원 입장에서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간호조무사가 나가서 무슨 이야기를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도 외과의사로서의 경험을 곁들였다.

그는 "의료분쟁을 겪은 적 있는데 결국 무과실이라는 판정이 나왔다"며 "하지만 몇 개월 동안 너무 괴로웠다. 수술방이 싫었다. 앞으로 1%의 환자를 살리기 위해 주저 없이 수술을 할 수 있을까, 전공의에게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민된다"고 말했다.

이어 "중환자를 많이 보지만 같은 수술을 해도 환자마다 결과가 다르다. 알 수가 없다"며 "의사가 진짜 잘못한 의료분쟁도 있지만 상당수의 의사들도 사실은 피해자"라고 덧붙였다.

젊은 의사들의 걱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송명제 회장은 "요즘 젊은 의사들은 최소한의 방어진료를 할 때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진료 위축이 사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강제조정까지 생겨 송사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생각하는 젊은 의사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걱정할만한 일은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법의 선언적, 상징적 의미는 무시할 수 없는 게 사실이자 현실"이라고 전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대한병원협회 김필수 법제이사는 "의료분쟁조정법 자동개시는 조정개시율을 높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궁여지책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법 시행 후 일정 기간 후 평가를 했을 때 개시율은 높아졌지만 조정률 자체가 낮아지면 또 무슨 이야기가 나오겠나"라고 반문하며 "분쟁촉발법이 아닌 분쟁이 해결될 수 있는 쪽으로 하위법령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우용 위원장도 "의료분쟁조정 제도는 의사들이 먼저 만들자고 했는데, 왜 의사들이 참여하지 않고 있을까 생각해봤다"며 "문제는 공정성이다. 많은 의사들이 공정하다고 느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감정부 의사 역할 확대 공감…환자단체, 6인 감정부 제안

토론회는 법 조항과 의료현장의 괴리를 토로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의료사고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감정부'에서 전문가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에 의료계와 환자 모두 공감대를 형성했다.

감정부는 사실을 조사하고 의료진 과실 유무를 판단하며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업무를 한다.

개정된 의료분쟁조정법 26조에 따르면 감정부는 5명으로 구성할 수 있다. 소비자 권익 관련 분야 5년 이상 종사자 1명, 변호사 자격 취득 후 4년 이상 지난 사람 2명(이 중 검사 1명은 반드시 포함), 의사 면허 취득 후 6년 이상 지난 사람 2명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 안기종 대표는 '6인 감정부'를 제안했다.

그는 감정부의 회의에 참여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했다.

안 대표는 "감정부 회의에 그동안 100번 넘게 들어가 봤는데, 그 회의 과정을 국민과 의료단체 협회장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의사 2명은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 한 명씩 들어오는데 100번 중 6~7번은 위원들끼리 의견이 달라 언쟁을 벌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상임위원이 병원 원장급이라면 비상임위원은 병원 과장급이다.

그는 "비의료인 감정위원들은 회의 전 열심히 공부하고, 회의에서는 환자 입장에서 질문도 던지면서 의사들의 의견을 듣고 토론한다"며 "5인 감정부에서 의사 수가 비의료인보다 적은 것이 문제라면 의료인을 한 명 더 늘이는 것을 제안한다. 전문성 확대 차원에서 환자에게도 좋다"고 주장했다.

홍상범 이사도 "사망의 의료과실 여부를 감정, 판단하기는 너무 어렵다. 특히 중증은 초전문적 분야"라며 "중환자 의학에서는 근거가 나올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감정부터도 초전문가들이 협조해 중환자를 기피하지 않도록 법령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스 이경권 변호사도 주제발표를 통해 "감정부는 완벽하게 의학적 일을 해야 하는데 감정부에 의사가 2인만 들어가는 구조는 잘못됐다"고 했다.

복지부, 의료분쟁조정법 하위법령 제정 로드맵 공개

복지부는 7~8월 사이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어 9월 전에는 초안을 만들어 입법 절차에 돌입할 예정이다.

복지부 정영훈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의료 사고를 100% 줄일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것은 이해하고 있다"며 "의료중재원이나 한국소비자원이 있는데도 의료사고 관련 민원을 많이 받다보니 복지부 차원에서 독립된 감정단을 만들어야 하냐는 생각까지도 나왔다. 물론 현재 법체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1급 장애 중 어떤 부분들이 자동 개시돼야 하는지, 이의신청 범위는 어디까지 설정할지 등에 대해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한다"며 "7월쯤 토론회 등 협의를 거쳐서 의료분쟁조정법 목적에 준해 법령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법이 시행된 후 발생할 수 있는 전공의 외과계 기피 현상, 의사들의 배상 문제 등도 대비할 수 있도록 하위법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같이 고려해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