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에서 발생한 대리 수술 논란으로 병원계를 향한 국민의 불신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유령수술이 횡행하고 있다는 의미로 대학병원을 '유령의 집'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는 상황. 대학병원과 모든 전문의들이 송두리채 의심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대한 비판과 불신은 충분히 수용하더라도 '대리수술'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잡고 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번 기회에 대리수술 문제를 반추해보자는 것이다.
삼성서울병원 대리수술 논란 어떻게 진행됐나
논란의 중심에 있는 삼성서울병원 사태는 지난 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부인과 명의로 알려진 A교수가 수술 스케줄을 잡아놓은 상황에서 학술대회 참석을 위해 일본으로 출국한 날짜다.
A교수가 급하게 출국하면서 이미 잡혀있던 스케줄은 결국 A교수의 사사를 받던 전임의(펠로우)가 맡게 됐고 일부 타 교수의 참관과 도움으로 3건의 수술이 진행됐다.
결론적으로 수술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A교수의 명성을 듣고 초조하게 수술을 기다리던 환자와 보호자들은 해당 교수가 수술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자 경악했고 결국 언론을 통해 해당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이같은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내부 고발이 단초가 됐다. 수술이 끝난 3일 뒤인 11일 이번 사건은 내부 고발에 의해 병원 내부에 알려졌고 삼성서울병원은 이틀간의 조사를 거친 뒤 13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해당 교수에게 무기정직 처분을 내렸다.
또한 권오정 병원장을 비롯해 병원 임원진과 해당 교수가 환자와 보호자를 찾아가 사과했고 진료비 일체를 배상했다. 언론을 통해 사실이 알려진 것은 이 시점 부터다.
그러나 병원장과 해당 교수의 사과 등으로 마무리되는 듯 하던 사건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다.
언론 보도로 해당 교수의 실명까지 알려지면서 병원은 물론 각종 포털에 병원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서울병원은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올리고 선처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와 대한의사협회 등도 병원의 징계와는 별도로 제재를 준비중이라는 점에서 논란은 여전하다.
보건복지부가 관할 보건소에 사건 조사를 지시했다는 점에서 만약 알려진 사건의 사실을 완전히 뒤엎을만한 내용이 있지 않다면 면허정지 등의 처분이 불가피한 이유다.
의협 또한 중앙윤리위원회 등을 통해 법적 처분과 회원자격 정지 및 박탈을 준비중이라는 점에서 이번 논란은 당분간 쉽게 사그라들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서울병원만의 문제인가…공감과 비난 공존하는 병원계
이러한 논란에 대해 병원계는 두가지 시선이 공존하는 분위기다.
아예 해외에 나가있으면서 집도의로 이름을 올린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부도덕한 행위라는 의견과 이번 사건을 A교수만의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다.
A교수와 삼성서울병원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대중들의 지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소한 환자와 보호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수술 스케줄을 변경하는 등의 대책을 세웠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논란으로 열심히 수술하고 있는 다른 동료 의사들에게까지 매도당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B대학병원 외과 교수는 "의사로서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없는 부분이 있다"며 "수술방 근처도 아닌 해외에 나가있으면서 집도의로 이름을 올리고 이에 대한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면 어떤 변명으로도 비난을 피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이어 "의사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와 예의를 저버린 것"이라며 "관행이라는 등의 말로 물타기하고 덮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비단 A교수와 삼성서울병원만의 잘못이겠느냐는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뒤틀린 수가로 인해 수익성을 맞추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리수술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외과 의사가 몇명이나 있느냐는 공감의 목소리다.
병원장 출신의 C대학병원 외과 교수는 "왠만한 대학병원에서 수술방 2~3개씩 열어놓지 않는 외과 의사가 있느냐"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모두가 대리수술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털어놨다.
또한 그는 "물론 이번 사건은 도의적으로 인정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은 맞다"며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대리수술 논란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돌이켜 볼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수련과 사기 담장 걷는 대학병원…"원칙과 기준 필요"
대부분의 외과 의사들도 이 교수의 이같은 지적에는 동의하는 부분이 많다. 원칙을 지켜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대학병원이라면 대리수술에 대한 논란의 씨앗은 피해가기 힘들다는 설명.
특히 전공의와 전문의 수련을 담당하고 있는 수련병원이라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지속적인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는 만큼 이번 사태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D대학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과연 어디까지를 대리수술이라고 하는가는 늘 논란이 있어왔던 부분"이라며 "대학병원중에서 교수가 수술 전체를 담당하는 사례는 극히 드문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교수가 이 모든 과정을 직접 하게 된다면 전임의들과 전공의들은 참관 외에는 아무 것도 배울 수 없게 된다"며 "수술의 중요한 포인트 2%를 교수가 하고 나머지 98%를 전공의나 전임의가 했다면 이는 대리수술인지, 교수 참관하에 전공의가 수술을 집도했다면 대리수술인지 아닌지 명확하게 구분이 가능한가"고 반문했다.
이에 따라 막연하게 '대리수술'이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프레임에 갖히지 말고 병원과 교수, 환자와 국민들간에 이 문제를 폭넓게 논의하고 합의가 이뤄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도록 일정한 기준과 제도를 확립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대학병원과 환자 모두 수련과 사기 사이 담장을 걸으며 서로 의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어느 환자가 전공의나 전임의가 수술을 집도한다고 하면 아무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겠냐"며 "산부인과 참관이 문제가 된 것도 같은 것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결국 암암리에 전임의나 전공의에게 수술 기회를 주는 관행이 생겨나게 된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그 관행을 악용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단순히 '누가' 수술을 했는가에 초점을 맞춰 대리수술을 논하기 보다는 의도와 상황에 따라 설득과 이해를 통해 의사와 환자 모두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아울러 만약 이러한 법과 제도를 악용해 단순히 수익이나 실적을 올릴 목적으로 대리수술을 진행한 경우 강하게 이를 처벌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법적, 제도적으로 수술절차에 대한 일정 부분 기준을 수립하고 수련의 필요성과 의도에 대해 충분히 설득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며 "다만 이번 사건과 같이 법, 제도의 취지에 반해 누구도 인정할 수 없는 부도덕한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중한 처벌을 내리는 등의 장치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