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직원이 아니라서 잘 모릅니다."
"심평원 내규상 자문 교수님의 이름은 밝힐 수 없습니다."
개원가에 따르면 삭감을 당한 의사가 그 이유를 듣기 위해 건강보험공단과 심평원에 전화를 하면 익숙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위는 건보공단 직원의, 아래는 심평원 직원의 답변이다.
최근 강압적 현지조사 제도 개선 움직임과 맞물려 심사실명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솔솔 나오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삭감이 발생했을 때 보다 전문적인 답변을 듣기 위해서는 조정 결정을 한 당사자와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심사실명제는 이미 지난해 심평원의 척추질환 심사조정률이 과도한 점을 지적하며 신경외과학회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제안한 바 있다.
심평원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비상근위원들에 대한 외부 압력이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로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부당한 삭감이 이뤄지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현지조사 개선 분위기에 발맞춰 심사실명제 도입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한 안과 의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 억울한 사연을 전했다.
그는 1년 전, 녹내장 등을 동반한 환자에게 백내장 수술을 한 후, 특정 질병을 동반한 환자에게 해당하는 수술비를 청구했다. 그런데 건보공단으로부터 수술비 일부를 환수한다는 통보를 받은 것.
그는 "백내장 수술을 포괄수가제인데 난이도별로 단계가 있어서 특정 질병이 동반된 환자를 수술하면 수술비가 6만원 정도 상승한다"며 "해당 환자들이 백내장과 함께 특정 질병을 앓고 있었다는 증거를 모아서 재심을 청구했는데도 다시 환수 결정이 났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공단에 전화했더니 심평원 직원이 아니라서 모른다며 심평원 통합 콜센터 번호를 알려줬다"며 "심평원에 전화해도 삭감과 환수 이유를 물어본다면 자문교수 자문에 따라 정한 것이라고 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문 교수가 누구냐고 물으면 심평원 내규상 알려줄 수 없다고 할 것"이라며 "왜 삭감 당한지도 모르고 환수를 당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한 소아청소년과 원장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감기 이후 귀가 아프다는 환자의 귀지를 제거하고 중이염 검사를 했다. 그리고 귀지제거술을 청구했는데 환수 통보를 받았다.
이 원장도 역시 왜 환수를 당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는 "건보공단 직원은 왜 조정이 됐는지 이유를 몰랐고, 심지어 심평원이 시키는 데로 한다고 말했다"며 "심평원 직원도 자문교수의 자문을 따랐을 뿐이라고 해서 자문교수 이름을 물어봤지만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경기도 한 중소병원장은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돈을 이유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져가겠다고 하면 억울할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심사실명제 요구는 대한의사협회 차원에서도 수차례 요구해오던 사안.
의협 관계자는 "오래전부터 심사실명제를 주장해왔지만 심평원은 번번이 심사위원 모집이 어려워진다는 등의 이유로 거절했다"며 "개인의 재산과 직결되는 심사를 익명으로 한다면 급여를 청구하는 당사자들의 수용성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조정을 겪었을 때 부당함이 있으면 이의 제기하고 다시 설명하는 절차를 직접적으로 거쳐야 하는데 익명으로 조정이 이뤄지니 제대로 반박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