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내과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머리 속이 멍해졌었다. 20대 초반부터 제2형 당뇨병으로 고생하다 25살이 되던 지난 2011년 내게 내려진 또 하나의 고통이었다.
2007년 제2형 당뇨병을 진단받고 경구혈당강하제와 인슐린을 끼고 살던 나였다. 언제부턴가 몸이 자주 붓고 왠지 모를 무기력함이 반복됐었지만 그저 컨디션이 안 좋은 탓이려니 했다.
그러던 2011년 전신에 부종이 발생하자 내분비대사내과 의사 선생님은 당뇨 합병증이 의심되다며 날 신장내과로 보냈다. 신장내과에서 실시한 검사에서 난 당뇨병성 신증에 의한 만성콩팥병을 진단받았다.
당뇨병 치료를 받으면서 합병증의 무서움을 익히 알고 있던 나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은 만성콩팥병이란 말을 듣자마자 떠오른 '투석'이라는 단어였다. 그 고통스럽다는 투석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두려움을 넘어 공포감까지 느꼈었다.
언제쯤 되면 투석을 시작해야 하냐고 묻자, 의사 선생님은 "투석은 5기 때부터 시작하는데 만성콩팥병 진단 후 투석을 받기까지는 약 3~8년으로, 평균 5년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마치 내 삶이 그 정도 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당시 신장내과 의사 선생님에 따르면 내 혈청크레아티닌 수치는 1.88mg/dL, 사구체 여과율은 56ml/min였다.
의사 선생님은 "구형흡착탄이라는 약으로 혈청크레아티닌 수치를 낮출 수 있지만 수치가 2.0mg/dL이 넘지 않아 비급여"라고 설명했다.
난 그 약을 쓰지 않았고 신기능은 점점 나빠졌다. 결국 2년 뒤 신장 상태가 나빠져 만성콩팥병 4기가 됐다.
만성콩팥병 4기에 이르자 투석에 대한 내 공포감은 극으로 치달았다. 몸 상태도 안 좋아졌다. 입맛도 없고 속도 울렁거리고 기운도 빠진 것이 느껴졌다. 의사 선생님은 요독증 때문이라고 설명해줬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구형흡착탄을 처방해줬다. 복용 후 3개월 만에 혈청크레아티닌 수치가 3.56mg/dL에서 2.73mg/dL로 감소된 것. 1년 뒤에는 무려 1.96mg/dL까지 떨어졌다. '투석 시작 시기를 늦출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이 생기면서 투석에 대한 공포도 잠시 잊혀졌다.
그러나 그런 희망도 잠시뿐. 나는 그 약을 끊을 수 밖에 없었다. 바로 급여기준 때문이었다.
의사 선생님에 따르면 그 약은 혈청 크레아티닌 수치가 2.0mg/dL이 넘어야 건강보험으로 쓸 수 있지만 나는 상태가 호전돼 혈청 크레아티닌 수치가 1.96mg/dL이었기 때문에 0.04mg/dL 차이로 건강보험 대상이 아니었다.
비급여로 내가 약값 전액을 부담해서 쓸 수는 있었지만 내 상황에서 한달에 15만원이 넘는 약값을 부담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약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약을 끊자 신장 기능이 또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2015년 4월 혈청 크레아티닌이 2.32mg/dL로 올라 구형흡착탄을 복용하기 시작했지만 불과 다섯달 뒤인 9월경 수치가 1.94mg/dL로 감소해 또 다시 구형흡착탄을 중단해야만 했다.
미칠 노릇이었다. 약을 먹으면 분명히 좋아지는데, 투석 시작시기도 늦출 수 있다고 하는데 그놈의 급여기준에 묶여 몸이 좋아질만하면 약을 끊고 또 다시 상태가 악화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결국 올해 1월 내 혈청 크레아티닌 수치는 4.07mg/dL까지 급격히 상승했다. 만성콩팥병 4기 판정을 받았을 때보다 신장 기능이 악화된 것. 결국 구형흡착탄을 다시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복용을 시작한 구형흡착탄의 이름은 '레나메진'. 가루 형태이던 기존 구형흡착탄에 비해 알약으로 돼 있어 복용도 수월해졌고, 효과도 만족스러웠다. 만성콩팥병 4기에서 복용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혈청 크레아티닌 수치는 3.05mg/dL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레나메진으로 달라진 삶…급여기준에 무너진 희망
의사 선생님은 1~2년 후면 투석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결과이긴 하지만 조금 더 일찍 약을 먹을 수 있었다면 그 시기를 늦출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너무 크게 남는다.
의사 선생님은 혈청 크레아티닌 수치가 2.0mg/dL 이하에서도 레나메진을 복용하면 분명히 효과가 있고 투석 시작 시기를 지연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실제로 의사 선생님에 따르면 비급여로 레나메진을 먹고 있는 환자의 경우 혈청 크레아티닌 수치가 1.0mg/dL 후반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레나메진을 만나고 그들의 삶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만성콩팥병 환자들의 가장 큰 공포는 '투석'이다. 투석을 피할 수는 없지만 시작 시기를 조금이라도 지연시키는 것이 환자들의 바람이고 희망이다. 그리고 레나메진을 복용하면 그 시기를 늦출 수 있다고 한다. 투석을 하루라도 미루고 싶은 환자들에게 레나메진은 희망과 같은 약이다.
그러나 그런 환자들의 희망은 '급여기준' 때문에 꺾이고 있다. 건강보험으로 레나메진을 복용하기 위해 환자들은 자신의 신장이 더욱 악화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약이 있어도 건강보험 적용을 받기 위해 상태가 악화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면 그 건강보험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건강보험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