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지원 정책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겠지만, 얼마나 출산율이 높아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정부가 출산율 회복을 위한 단기 보완대책으로 난임시술 의료비 지원 확대 카드를 꺼냈지만 정작 산부인과 의사들은 회의적인 반응이다.
앞서 지난 25일, 보건복지부(장관 정진엽)는 국무총리 주재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저출산 단기 보완대책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대책에 따르면 난임 시술 의료비 지원을 당초 10월에서 9월부터 모든 계층으로 전면 확대한다. 또 일정 소득(전국 가구 월평균 소득 150% 이하) 이하만 지원했던 난임시술 지원 소득기준을 전면 폐지하고, 소득 하위계층 지원금 및 지원횟수를 상향했다.
내년 10월부터 난임 시술비 및 시술 관련 제반비용(검사, 마취, 약제 등) 건강보험 적용도 추진할 예정이다. 더불어 미숙아(2.5kg 미만 출생) 집중치료 및 후속치료 보장성 강화를 통해 미숙아 출생 가구 의료비 부담을 줄일 방침이다.
정부는 난임시술 의료비 지원 확대로 현재 5만명에서 9만6000명이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출생아 수가 8000명~1만2000명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부 대책을 접한 산부인과 의사들은 정부 지원이 출산율 증가로 직결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했다.
경기도 A종합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현재 난임 치료비는 비급여라서 비용이 병원별로 천차만별"이라며 "대학병원을 제외하고 불임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은 10여개에 불과한데 난임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에게 돈을 더 주면 특정 병원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B산부인과 원장도 "비용을 지원을 한다고 하면 환자 입장에서는 솔깃하고 장기적으로 아기가 많이 생길 것 같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며 "정책 생산의 근거가 없다"고 꼬집었다.
"난임시술 지원, 출산율 증가 근거 희박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삼식 선임연구원이 최근 열린 제4차 여성건강포럼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난임 진단을 받은 사람 중 10명 중 7명은 치료를 받기로 했고, 6명은 체외수정, 인공수정 같은 난임시술을 받아들였다.
난임시술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서는 20%가 치료에 성공해서라고 답했고 18%가 가능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11%가 경제적 부담 때문에 난임시술을 포기했다.
난임시술을 받다가 중단한 이유도 10명 중 4명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제적 부담이라고 답한 비율은 28%였다.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 고창원 진료교수는 "난임시술을 받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은 임신을 할 때까지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부 지원은 최대 4회다. 집을 팔아가며 20번까지 하는 사람도 봤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정부 자료를 보면 난임시술 지원으로 2014년 기준 출산율이 전년 대비 0.03명 증가했다"며 "비용 투자 대비 얼마나 큰 효과를 누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실질적 경제 혜택·근본적 문제 해결 고민해야"
복지부의 이번 대책은 실효성이 결여됐다며, 출산 이후 가정 경제에 보다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도 높다.
A종합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출산을 경험해본 사람들이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다. 아이를 낳아도 키우는 게 어려운 현실이니 안 낳으려고 하는 것"이라며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집중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 역시 "다자녀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다자녀 가정에 실질적 혜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연 법제이사에 따르면 프랑스의 경우 아기를 낳으면 평생 사용이 가능한 다자녀 우대 카드를 준다. 이 카드를 통해 모든 경제활동에서 10%의 비용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대신 그 비용을 국가가 보전한다. 결국 출산을 하면 소득이 늘어나는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출산율 상승에 가시적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프랑스의 다자녀 우대 카드 같은 것을 만들어 가정에 실질적인 경제적 혜택을 주면 문제가 해결된다. 경제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숙아 치료 보장성 강화 역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재연 이사는 "미숙아에 대한 치료 지원도 중요하지만 미숙아를 낳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며 "미숙아를 낳지 않도록 산모관리를 잘 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조기진통 등 미숙아 출산 가능성이 있는 경우 병원에서 밀접하게 관찰하고 관리해야 한다.
김 이사는 "조기진통이 있는 경우 수시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하루에 몇회씩 할 때도 있다"며 "그러나 건강보험에서는 모니터링을 1회 밖에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이 조기진통이 있는 산모를 위해 모니터링을 자주하면 심평원은 과다청구로 간주하고 삭감시킨다"며 "미숙아 출산 가능성이 높은 산모에 대한 전향적 건강보험 지원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결국 미숙아 출산을 줄이기 위해선 조기진통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는 정밀한 관리에 대한 급여체계가 개선돼야 한다"며 "조산을 10%만 줄여도 의료비 뿐 아니라 엄청난 사회적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