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 대한 신뢰는 추락했고 환자들은 불안에 휩싸인 지금, 정부와 의료계 그리고 국민들은 무엇을 어떻게 대비하고 준비해야할까.
지난 28일 오후 서울대병원과 의사협회 공동 주최로 열린 'C형간염 집단발생 정책토론회'에서는 병원 내 의료진들의 고백이 눈길을 끌었다.
서울대병원 오명돈 교수(감염내과)는 과거 IMF시절 사례를 소개하며 감염관리를 어려움을 토로했다.
당시 국가 최대 위기상황으로 모두 힘을 모아 허리띠를 졸라매는 분위기 속에서 서울대병원 내에서도 고가의 치료재료 중 하나인 '혈관 카테터'를 소독해서 재사용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재사용해도 무방한지 판단하는 역할을 맡은 오 교수는 "매우 작은 구멍을 세척해야하는데 도저히 불가능해보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역시 일회용으로 만든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면서 "아마 다수의 의료기관도 사회적, 환경적 여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병원 내에서 감염사고 원인을 조사해보면 의료진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시스템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면서 "의료인 및 의료기관이 최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감염관리를 못했다는 식으로만 비춰지는 것은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플로워에서 보라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이정만 과장은 사전에 준비해온 '일회용 기관내 삽관 서킷' 등 재료대를 보여주면서 심각한 실태를 공개했다.
그는 "대학병원급은 재사용하지 않지만 일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는 몇개월씩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심지어 서킷에 곰팡이가 끼어 있을 정도"라고 적나라하게 설명했다.
또한 그는 "레지던트 1년차 시절, 혈관 카테터를 재사용하던 때가 있었다. 나는 혹시 내가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가방에 늘 일회용 카테터를 소지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2년차부터는 재사용하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꺼림직했지만 환경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과거를 떠올리기도 했다.
"자율규제? 무너지 의사의 신뢰 회복이 최우선"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잇따른 집단감염 사태로 의사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는 데 공감했다.
한국소비자연맹 강정화 회장은 "의료소비자들은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다. 자율규제가 바람직하다고 하지만, 솔직히 의료계 내부적인 이해관계가 작용해 과연 규제가 가능할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의사협회 조현호 의무이사는 "사실 이번 사태는 상식에서 벗어난 사건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면서 "하지만 협회 차원에서 적극 홍보 및 교육에 나서고 있어 향후 동일한 사태는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정보공개, 어떻게 하는 게 효율적인가?"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한 의료기관의 정보공개 여부를 두고는 미묘하게 의견이 갈렸다.
소비자연맹 강정화 회장은 "정보공개는 중요한 사안"이라며 적극적인 공개를 주장했고, 김양중 기자는 "민감한 부분이지만 의심 의료기관까지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의사협회 조현호 의무이사도 "정보공개 및 업무정지 등 조치에 대한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적어도 역학조사 결과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해야한다"면서 "이 과정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분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모 대학병원 관계자는 건국대병원을 예로 들며 "성급한 측면이 있다"면서 "해당 병원은 적극적인 자율신고로 사실을 확인한 경우인데 이에 대해 상을 주지는 못할 망정 비난의 대상만 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