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 카테터(Foley Catheter). 환자들에게 설명할 때는 '소변줄'이라고 부르나 의학 용어로는 '폴리'라고 부른다.
환자들이 입원하는 동안 여러 이유로 폴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침상에서 절대 안정이 필요한 환자들의 경우 화장실에 오갈 수 없기에 필요하고, 수술 도중 환자의 항상성 유지를 위해 소변량 확인 시 필요할 때도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수술은 준비하는 과정에서 인턴이 폴리를 넣는다.
"인턴 선생님 폴리 넣어주세요." "인턴 선생님 폴리 빼주세요."
인턴들이 처음 근무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일이 채혈과 폴리를 넣는 일이다.
폴리라는 이름은 이 소변줄을 디자인하고 고안해낸 '닥터 폴리'의 이름을 기려 지은 것이라 한다. 이후 70여 년간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입에 숱하게 이름이 오르내렸다.
새벽에 곤히 자고 있는데 "선생님 환자가 소변 못 누고 있어요. 폴리 좀 넣어 주세요." 콜을 받을 때면 외친다. "아우 정말 지긋지긋하다! 그놈의 폴리!"
일반 병동에서도 쉽게 마주치는 폴리지만 비뇨기과의 경우 더욱 중요하다. 소변을 잘 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인 과라 각종 비뇨기과적 시술이나 수술 뒤에는 폴리가 꼭 뒤따른다. 직경이 굵은 폴리나 다른 병동에서는 접하기 힘든 색다른 디자인의 폴리들을 비뇨기과에서 볼 수 있다.
방광암이나 전립선암 등을 수술할 때면 소변이 나오는 요도를 절제하고 봉합하는 경우가 잦다. 장기를 자르고 봉합하면 상처 치유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피가 새어나온다. 봉합 부위에서 배어나온 피가 응고되면 혈전이 발생한다.
찐득찐득하게 응고된 혈전이 떠다니다가 배뇨되지 못하면 통로가 막히고 소변을 누지 못하는 응급상황이 발생한다. 비뇨기과 수술 환자에게서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폴리를 이용하여 세척을 지속적으로 한다. 피떡이 진 상처를 깨끗이 세척하면 말끔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일반적인 폴리는 소변이 나올 수 있는 카테터 입구와 고정하기 위한 풍선으로 향하는 두 가지 구멍이 있다. 하지만 방광 세척을 하기 위한 폴리의 경우 세 가지 구멍을 가지고 있다.
세척용 식염수가 들어가는 입구와 나오는 입구가 따로 있어서 세척으로 인한 혈전의 여부와 출혈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인 폴리가 청록색인데 노란색 세척용 폴리는 제법 신기했다.
인턴 근무 내내 폴리와 관련된 콜을 받으면 괴롭다. 첫 번째는 아무리 의사라고 해도 성기에 위치한 요도를 찾아내서 굵은 카테터를 밀어넣는 술기 자체가 탐탁지 않기 때문이다.
성기는 사람에게 제일 은밀한 부위다. 환자를 위한 술기라고 하지만 인턴에게 처음부터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기는 쉽지 않다. 할머니 할아버지라면 그래도 다행이다. 젊은 환자에게 폴리를 넣을 때는 뻘쭘할 뿐더러 괜히 죄 짓는 느낌도 들었다.
여자 동기들 중 몇명은 울지 못할 해프닝도 겪었다. 응급실에서 혈기 왕성한 고등학생에게 폴리를 넣는 도중 학생이 그만 여선생님의 손길에 반응한 것이다.
예쁘장한 인턴이 폴리를 준비할 때면 환자의 부인이 술기가 끝날 때까지 노려보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아무리 멸균 장갑을 낀 채 술기를 진행해도 '그곳'이 불끈 반응하면 인턴도 환자도 모두 당혹스럽다.
여성 환자들의 경우 여 간호사들이 하는 경우가 많지만 남자 간호사 수가 부족하고 항상 남자 인턴만 근무하는 경우는 아니니 여선생들이 고생하는 에피소드는 늘 빠지지 않고 회자된다.
근무 도중 무릎 수술을 받아야 했던 남자 인턴은 폴리를 스스로 넣은 채 수술실에 들어왔다고 했다. 아마도 정형외과 인턴 동기가 여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곳을 맡기고 싶지 않았나 보다.
두 번째로는 요로 감염을 막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멸균 물품들이 많기 때문인데 밤중의 폴리 콜은 오래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배뇨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경우 폴리를 통해 억지로 소변을 방광에서 빼낸다.
소변이 마려운데 계속 참다 보면 아랫배가 땅땅하게 아파온다. 소변이 나오지 않아 밤새 화장실을 드나든 환자의 방광에는 수 리터의 오줌이 비축되어 있다. 폴리를 거치하지 않는 경우 '넬라톤(Nelaton)'이라 하여 소변만 일시적으로 빼낼 때가 있다.
그 때는 10분이고 20분이고 환자 아랫배 방광 위를 지긋이 누르면서 소변이 모두 빠져나올 때까지 자리를 뜰 수가 없다. 아닌 밤중에 환자의 배를 누르면 소변 냄새가 슬슬 올라오기를 30분, 그 자체로 고역이다.
하지만 폴리 덕분에 환자에게 감사의 말을 들을 때도 많다.
"피 뽑을게요" 하고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잔뜩 찌뿌린 환자의 얼굴을 맞이해야 하지만 "소변줄 빼드릴게요" 하고 병실에 들어가면 환자의 얼굴이 완연히 빛나는 게 그때는 '흡혈귀 인턴'이 아니라 '부처님 미소를 지닌 인자한 의사 선생님'으로 비춰지나 보다.
폴리를 달고 있으면 그와 이어진 소변 주머니도 같이 들고 다녀야 하니 거동할 때 불편하다. 환자들 중에는 소변 보는 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되고 찝찝한 느낌 때문에 빨리 빼버리고 싶다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풍선으로 고정된 폴리를 풀고 쑤욱 뺄 때면 할아버지들은 외쳤다.
"아이구야! 쑥 빠지네! 시원하다! 선생님요, 고맙습니데이."
여자는 해부학적으로 남성에 비해 요도가 짧기 때문에 폴리를 넣을 때 통증도 적고 쉬운 편이다. 하지만 남자의 경우 성기 끝에서부터 방광까지 밀어 넣어야 하기 때문에 통증도 심하고 원활하게 삽입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미끈미끈한 멸균 젤리를 듬뿍 바르고 자연스럽게 넣는 것이 인턴이 익혀야 할 술기이기도 하다.
환자가 소변을 잘 보는 것은 중요하다. 입원을 하면 수액을 통해 수분 공급을 하기 때문에 평상시보다 소변을 더 자주 보게 된다. 그외 환자의 전해질 상태나 신장 질환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이자 검체가 될 때가 있다.
모든 환자가 충분한 수분을 섭취한 만큼 배뇨가 잘되는지 살피는 것은 환자를 돌보는 기본이다. 소변을 본다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행위다.
하지만 비뇨기과는 이 문제로 끙끙 앓고 입원하는 환자들이 많다. 건강하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에는 늘 소변이 콸콸 잘 나오는 것에 대한 감사도 포함되어야 할 것 같다.
[54]편으로 이어집니다.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