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으로 도덕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양심, 사회적 여론, 관습 따위에 비춰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의 총체를 뜻한다.
특히 도덕은 외적 강제력을 갖는 법률과 달리 각자의 내면적 원리로서 작용하며 인간 상호간에 작용한다.
쉽게 말해 노인을 공경하지 않으면 비도덕적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지탄을 받지만 이로 인해 법적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그런데 정부가 규정한 비도덕적 진료행위에는 자격정지 최대 12개월이라는 처벌이 따른다. 결국 비도덕이라는 말로 포장하긴 했지만 불법으로 간주하고 처벌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러면서 "비도덕적 진료행위 명칭 때문에 오해가 생긴 것 같다"니, 속된 말로 "비겁한 변명입니다"인 셈이다.
또 한가지, 도덕의 사전적 의미를 감안할 때 임신중절수술은 과연 비도덕적일까.
임신중절의 다양한 이유를 생각하면 단적으로 그렇다, 아니다로 규정할 수 없는 문제다. 심지어 헌법재판소조차 4대 4로 의견이 갈려 합법화가 부결되는 등 사회적 논란이 지속 중인 민감한 사안이다.
왜 의견이 갈리는 것일까.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 때문이다. 여성계에 따르면 임신중절 이유의 대부분이 '원치 않는 임신'과 '사회‧경제적 부담'이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가 발표한 '미혼모 차별경험 척도 개발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직장 생활을 하던 미혼모 응답자 중 97%가 일을 그만뒀다고 답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실시한 '미혼모 실태 조사'에서도 미혼모들은 '경제적 문제'를 임신 이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원치 않는 임신'이 '어쩔 수 없는 임신중절'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낳아서 키울 수 없는 환경 탓이다.
그렇다면 과연 정부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산모들에게, 원치 않는 출산을 한 미혼모들에게 도덕적인가.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인 '위드맘'에 따르면 미혼모자를 위한 가족복지시설은 60곳에 불과하다. 지난해 기준으로 약 2만 4000명에 달하는 미혼모 수를 감안할 때 턱없이 부족하다.
임신중절을 줄이기 위해선 이를 비도덕으로 가장한 불법으로 규정하고 산부인과 의사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기에 앞서, 임신중절이 줄어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국가적 인프라 구축이 우선이다.
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은 채 규제와 처벌이라는 채찍으로만 임신중절을 줄이려 하는 정부가 오히려 비도덕적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의사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의업(醫業)을 행하는 이들이다. 모든 의사들에게 국민의 생명은 소중하다.
특히 새 생명을 두 손으로 받아내는 산부인과 의사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런 그들이 임신중절수술을 실시할 때의 마음을 정부는 한번이라도 헤아렸는지 모르겠다.
한번이라도 그 마음을, 그 고통을 헤아렸다면 함부로 '비도덕'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 임신중절 근절에만 혈안에 돼 산부인과 의사에게 비도덕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려 한다면 그야말로 비도덕적 행정행위인 셈이다.
복지부는 이달말 의사협회 의견이 전달되면 존중하는 방향으로 내부 검토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검토 이후의 결정이 진정 존중하는 방향이 될 지는 미지수다.
지금이라도 당장 정부는 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 진료행위에서 제외해야 한다. 그리고 잠시나마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했던 국민과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