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으로 불거진 과잉진단 및 과잉진료 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받은 지 수년째. 의료계 내부에서 이를 막기 위해 자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현명한 선택(Choosing Wisely) 캠페인'이 바로 그것.
의료계 석학들의 모임인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현명한 선택 캠페인을 공식 제안했다.
의학한림원은 28일 연세의대에서 보건의료정책포럼을 열고 진료서비스의 적정화를 위한 현명한 선택 캠페인 도입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현명한 선택 캠페인이란 2012년 미국에서부터 시작됐다. 불필요한 진료를 줄이고 환자 권익 보호, 사회적 비용 축소를 위한 의료계 주도의 운동이다. 각 진료과 학회에서 나서 검사와 치료를 줄이도록 환자에게 권고하는 목록을 만들어 배포, 교육하고 있다.
50여개의 학회가 근거에 기반을 두고 중복 가능성이 없는지, 관련 검사나 치료 서비스가 필요한지, 환자에게 해로운지 등을 반영해 5가지의 질문을 만들어 의사가 직접 환자에게 묻는다.
일례로 미국심장학회는 고위험 인자가 없고, 심장병 증상이 없는 환자에게 스트레스 심장영상이나 비침습적 영상 촬영을 하지 않는다 등 5가지 질문을 만들었다.
고대의대 예방의학과 안형식 교수는 "질문 리스트는 철저히 학회 스스로 만든다"며 "전문가들이 빈번히 이뤄지고 있고, 비용이 큰 항목에 대해 근거를 마련한다. 검사, 진단, 수술전 처치, 항생제 같은 약제 등 중요한 질환별로 주제가 200여개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명한 선택 캠페인은 의료의 질, 환자안전에 대한 문제이지 절대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행동을 위한 아이디어는 단순하다. 환자와 의사의 소통"이라고 강조했다.
가톨릭의대 정승은 교수는 현명한 선택 적용의 예로 대한영상의학회의 근거에 기반을 둔 진료지침 개발을 들었다.
정 교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위암 적정성 평가 지표에 수술 전 조영증강 CT를 찍었는지에 대한 항목이 있는데 무슨 근거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며 "적정의료란 근거를 기반으로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고 운을 뗐다.
또 "현명한 선택은 근거를 축적하면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그중 누구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확실한 근거를 어떻게 사용하는 가에 중점을 둔 캠페인"이라며 "근거 축적이 이뤄지면 급여기준이 되는데, 우리나라는 근거 축적 없이 급여기준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영상의학회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과 임상영상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있는데 근거가 확실하게 있는 가이드라인 내용은 학회가 적극적으로 권고하고 환자에게 교육해야 한다"며 "임상의사가 적극적, 지속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잉진단할 수밖에 없는 현실부터 직시하자"
하지만 임상 현장에 있는 의사들은 과잉 검사 및 치료를 막기 위한 캠페인의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확산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앙대병원 소화기내과 김재규 교수는 "과잉 진단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부터 직시해야 한다"며 "병원 경영 개선을 위해 국가 병원마저도 인센티브를 도입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한 중소병원의 인센티브 도입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인센티브 없이 내과의사를 고용했더니 입원비 수입이 1000만원 수준이었다면,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 후 수입이 1억원으로 훌쩍 뛰었단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이를 무시하고 적정 진료, 과잉진단 자체를 놓나는 게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는 제도적 문제와 함께 의료계 내부의 불협화음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근거도 중요하지만 불확실성에 기인한 가치문제가 개입돼 있기 때문에 이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보장성 강화 틀 안에서 공급자의 수평적 팽창에 너무 신경 쓰다 보니 그 병폐가 하나씩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잉진료를 정의하려면 적정진료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같은 진료과라고 하더라도 학회와 의사회 입장이 다르다"며 "진료지침에 대한 합의 없이 학회에서 일방적으로 지침을 발표하는 문화에서 현명한 선택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틀이 만들어지겠나"라고 반문했다.
가이드라인을 신경 쓸 겨를조차 없는 개원가의 씁쓸한 목소리도 나왔다.
요양병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한 의사는 "현재 50대 후반인데 30~40대 의사를 만나면 대화가 안된다. 그들의 현실은 너무 열악하기 때문"이라며 "하루 15시간씩 100명 이상 진료를 봐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의대부터 학비를 빚을 지기 시작해 개원하면 3억~5억원 빚을 지고 있는 젊은 의사들에게 지역사회 의료교육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일차진료 의사 양성, 지원 없이 캠페인을 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국가는 지원하고 의료계는 합심해야"
그렇다면 현명한 선택 캠페인이 의료계 전반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국가는 근거 기반 진료지침 만들기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재규 교수는 "근거기반 진료지침을 개발해서 자신감 있게 내놓을 수 있는 학회가 많지 않다"며 "진료지침을 찾으려면 개인적으로 알아서 찾아봐야 한다. 진료지침에 대한 평가도 안 돼 있다"고 현실을 설명했다.
이어 "국가가 나서서 에비던스(evidence)센터를 만들어 근거를 알려고 하는 집단이 움직일 수 있도록 적극 도와줘야 한다"며 "가이드라인 만들기 등을 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국가가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초에 근거를 만들기 위해 설립된 보건의료연구원의 위상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보건의료연구원 김수경 선임연구위원은 "의료전문가는 자율성(autonomy)과 윤리성이 핵심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보의연이 하고 있는 체계적 문헌고찰 등 R&D 연구에 정부 투자 비용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허대석 교수도 "근거중심 의료가 되려면 의료기술 평가가 선행돼야 하는데 이를 하려고 보의연이 만들어졌다"며 "예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보의연에서 나온 보고서 하나라도 정책이 반영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투자한다면, 내부적으로는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제안들이 나왔다.
허 교수는 "전문가 집단마다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아주 작은 내용이라도 전문가 집단이 모여서 한목소리를 내고 실천할 수 있어야 국민에게 메시지를 전할 때 통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국민에게 정보를 주고 같이 해보자고 이야기하려면 의료계가 먼저 한목소리로 메시지를 주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수경 연구위원도 "전문가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어떤 어젠다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시니어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며 "근거 기반 가이드라인이 현장에 배포될 때도 존경받는 원로의 이야기가 하나의 목소리를 이끌어 내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