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는 무지(無知)에서 온다. 무지의 대상이 생명과 직결되는 가공할 만한 질환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비정형 용혈성 요독증후군(aHUS)이 그런 존재다.
의사에게도 요독증후군은 손에 잡힐 듯 손에 잡히지 않는 안개같았다. 타 질환과 증상이 겹쳐 진단이 어렵다. 소아에서 발병률은 100만명당 3.3명. 혹자는 '울트라 레어' 신질환으로 부르기도 한다.
진단도, 그렇다고 딱히 치료법도 신통치 않았지만 희소식이 들렸다.
2011년 미국 FDA가 솔리리스(성분명 : 에쿨리주맙)을 aHUS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희귀의약품으로 승인한 데 이어 식품의약안전처도 올해 3월 aHUS 치료제로 적응증을 확대했다.
이걸로 전쟁은 끝났을까. 아쉽게도 아니다.
"치료제가 있어도 진단 못하면 무용지물"
최근 혈액내과 등 3개 분과가 협업, 비정형 용혈성 요독증후군의 진단과 관리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 JKMS(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지에 게재했다.
치료제가 나온 마당에 진단과 치료 가이드라인을 만든 까닭은 뭘까. 가이드라인 제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오도연 분당차병원 혈액내과 교수를 만났다.
오도연 교수는 "aHUS가 워낙 희귀질환이다 보니 지금껏 제대로 된 치료법이 없었다"며 "보조치료를 해도 유의미하게 사망률을 낮추거나 후유증을 막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간 치료제가 없어 체계적인 진단방법을 개발할 요구나 동기마저 희미했던 게 사실이다"며 "aHUS가 기타 질환과 증상이 유사하게 겹쳐 진단이 쉽지 않은 것도 가이드라인 제작을 어렵게 했다"고 지적했다.
혈전성 미세혈관병(TMA)은 ▲대장균으로 인한 용혈성 요독증후군(STEC-HUS) ▲혈전성 혈소판 감소 자반증(TTP) ▲비정형 용혈성 요독증후군(aHUS)로 나뉜다.
고민이 시작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신경계 및 신장 관련 징후 및 증상들이 aHUS와 TTP가 겹치고, 위장관계(GI) 징후 및 증상은 aHUS와 STEC-HUS가 서로 겹쳐 구분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도연 교수는 "4년 전 국책연구비를 지원받아 수행하는 과정에서 TTP와 aHUS가 임상적으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며 "호주에서 개최된 학회에 참석하면서 이 둘의 구분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TTP는 억제성 자기항체의 유무가 ADAMTS13의 극심한 결핍을 야기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며 "반면 aHUS는 ADAMTS13 활성도가 10%를 초과하는 등 보체의 만성적이고, 통제가 불가능한 활성화로 인해 발병한다"고 구분졌다.
이어 "TTP와 aHUS를 구분하는 척도가 되는 ADAMTS13 수치 확인은 본 병원에서만 가능하다"며 "대학교수를 제외하면 대다수 의사들이 aHUS 진단 방법을 몰라 빠른 전원이나 진단 의뢰가 없어 안타까운 마음에 가이드라인 제정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환자를 위해서라면 혼자서 기술을 독점하면서 은밀히 진료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게 그의 판단.
그의 말을 빌리자면 진단 및 치료 권고안은 의사들의 진단 역할을 제어하려는게 아니라 질환을 제대로 알려 환자의 치료 기회를 확대하고 의사들에게는 자신있는 진료 등 근거 마련을 위해 기획됐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에 타 교수들도 흔쾌히 동참했다.
가이드라인 제정에는 소아신장, 혈액내과, 신장내과 3개 분야에서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박영서, 신촌세브란스병원, 서울삼성병원, 고대안암병원, 고대구로병원 등 쟁쟁한 교수진 11명이 대거 참여했다.
"에쿨리주맙 치료 성과 드라마틱…급여 절실"
그간 보조치료를 받아도 약 33-40%의 환자들은 비정형 용혈성 요독증후군의 첫 번째 발병시 사망하거나, 말기 신장 질환(ESRD)까지 진행됐다.
추후에 재발될 경우를 포함해 환자들이 혈장교환술(PE) 또는 혈장주입술(PI)을 받더라도 모든 환자의 65% 정도에서 진단 후 일 년 안에 사망하거나, 투석을 받아야 하거나, 영구적으로 신장이 손상된다.
반면 에쿨리주맙의 성적표는 합격점. 비정형 용혈성 요독 증후군의 근본 원인인 보체에 직접 작용하는 치료제로서 2년간 투여한 결과 보조요법 대비 사망 위험이 83% 감소했고 3년간 투여한 결과 89% 감소했다.
에쿨리주맙의 치료 효과를 경험한 오도연 교수도 '드라마틱'이라는 표현으로 추켜세웠다.
오 교수는 "혈장을 교환해봤자 사망률 감소 역할은 크지 않았다"며 "반면 에쿨리주맙은 aHUS 환자 87명을 대상으로 약 20개월간 진행된 임상에서 지속 투여군은 투여 중단군에 비해 혈전성 미세혈관병증 발생율이 약 66% 낮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비용. 솔리리스는 병당 30ml에 614만원이 소요되고 한번 투약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오도연 교수는 "올해 초 aHUS 환자가 발생했지만 비용이 문제였다"며 "해당 제약사를 달래기도 하고 목청을 높이기도 하면서 약을 구해 썼더니 두 달만에 혈색소 수치가 5.4에서 20 이상으로, 혈소판 감소증도 260 이상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드라마틱한 결과가 모든 aHUS 환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며 "확실한 치료제가 있는데도 돈 문제로 보완이나 대체요법을 하다가 사망하는 환자가 나오는 것 만큼 불행한 일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100만명 당 3.3명이 이 희귀질환자로 추산되는 만큼 국내 인구를 감안하면 150명에서 200명 정도가 국내 환자로 추산된다"며 "잠정적으로 100명으로 시작해서 200명 정도까지 예산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부가 힘을 써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