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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을 위한 생일빵

박성우
발행날짜: 2017-01-03 05:00:33

인턴의사의 좌충우돌 생존기…박성우의 '인턴노트'[64]

인턴을 위한 생일빵

2011년 5월은 보령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날은 생일이었지만 집에서 미역국도 못 먹을 처지였다.

생일날은 다행히 당직이 아니어서 저녁에는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동기들과 조촐하게 외식이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마침 정규 수술도 많지 않아 일찍 끝나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들어온 지 30분도 되지 않아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다.

"형, 트랜스퍼 있는데 급하게 와야 할 것 같아요."

당직도 아닌데 트랜스퍼를 가야 한다는 전화가 온 것이다. 알고 보니 트랜스퍼 상황 발생 시 1순위인 당직 인턴이 낮에 서울로 트랜스퍼를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2순위인 백back 당직 인턴은 잠시 병원 밖에 나가있는 상태였다.

환자는 보령에서 처치가 불가능한 응급상황이었다. 상급병원으로 트랜스퍼가 필요했고 당직 인턴 둘의 복귀를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생일인데다 심지어 오프였지만 편하게 입고 있던 옷에 급하게 가운만 걸치고 응급실로 향했다.

"환자, 지금 MI고 지금 CPR해서 돌아온 상태야. 예전 CV history 있고, NTG랑 bivon이랑 뭐 다 달아놓았으니까 가는 도중에 혹시라도 CPR 터지면 epi랑 atropine 줄 테니까 확인해서 주고 잘 갔다 와."

과장님께 간단한 인수인계를 듣고 간호사가 건네주는 약봉지 두 개를 받았다. "선생님, 이거는 아트로핀(atropine)이고 이건 에피(epinephrine)예요. 구분하기 쉽게 앞에 써놓았어요."

환자는 급성 심근경색이었고 심폐소생술과 필요한 처치를 했음에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심혈관 중재시술이 가능한 상급 병원, 천안의 종합병원으로 이송이 결정됐다.

약봉지와 진료 의뢰서, 영상 CD 복사본과 동기가 열심히 짜던 앰부를 받고 주렁주렁 달린 수액과 함께 구조차를 탔다. 얼핏 심근경색 환자는 심폐소생술 이후 1시간 이내에 다시 심정지가 올 확률이 높다고 공부했던 기억이 스쳤다.

천안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응급 구조사 아저씨에게 최대한 빨리 이송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흔들리는 구조차 안에서 앰부를 짜기 시작했다.

보령에서 천안까지는 1시간 45분이 걸렸다. 주렁주렁 달려 있는 수액만큼이나 환자의 징후가 안 좋아 보였다. 시속 150킬로미터로 달리는 구조차 안에서 환자가 누워 있는 침대가 덜컹거렸다.

동승한 나는 안전벨트도 없이 비스듬히 앉아서 환자를 지켜보았다. 심장박동을 대신하는 심전도가 흔들릴 때마다 조마조마해하며 환자가 잘 버텨주기를 바랐다.

그런 바람에도 환자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세 번이나 맥박이 끊어졌다가 돌아왔다. 1~2초.

그 찰나에도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을 했다. 어느새 내 손에는 바로 주입이 가능한 에피네프린 주사기를 쥐고 있었다. '살얼음판을 넘나든다'는 표현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구조차는 2차석 국도를 요란한 사이렌 소리로 달려 54분 만에 천안의 종합병원에 도착했다. 환자와 환자의 심장은 다행스럽게도 잘 버텨주었다. 손에 쥐고 있던 에피네프린은 다행히 쓰이지 않았고 심폐소생술도 하지 않았다.

이미 연락을 받고 기다리던 의료진이 반가웠다. 한숨을 돌리고 진료소견서를 전하며 간략한 인계를 하고는 재빠르게 빠져나왔다.

1시간이 넘지 않는 사이에 미안하다는 당직 인턴의 문자와 생일 축하한다는 친구들의 문자가 여러 통 와 있었다. 다시금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병원을 지키는 인턴에게도 생일이 있다. 내 생일에, 그것도 당직 아닌 쉬는 날에 이렇게 위급한 환자의 트랜스퍼를 간 것도 서러운데 만약 환자가 이송 도중 사망했다면 우울한 생일이 될 뻔했다.

환자가 잘 버텨준 것만으로도 큰 선물이 되었다. 보령에 복귀하니 응급실의 모든 의료진이 위험하지 않았냐고 물어보았다.

인턴 동기들에게 오늘 일을 이야기했더니 인턴을 위한 생일빵이라며 위로해주었다. '인턴을 위한 생일빵'을 제대로 맞은 것 같다.

[65]편으로 이어집니다.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